-
-
빈 배처럼 텅 비어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485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6월
평점 :
※ 제3회 세종도서 독서감상문 대회 출전작
살다 보면,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들먹이며 허무에 감염될 때가 있다. 영혼의 복판을 꿰뚫는 통렬한 슬픔을 겪은 사람은 절대 그 아픔을 경험하기 전, 그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최승자 시인은 깊은 내면의 상처를 온전히 끌어안지도, 그렇다고 질끈 무심한 척 내버리지도 못하면서, 끊임없이 상처를 되새김질한다. 그녀의 시는 지금까지의 삶을 되새김질한 결과 찾아낸 결론이다. 《빈 배처럼 텅 비어》는 시인의 피 흘리는 상처를 응시해야 하는 시집이다. 《빈 배처럼 텅 비어》는 아프게 눈물로 그려낸 통렬한 생존 증명서이며, 오랜 시간 자신을 짓눌렀던 고독을 건조한 문장으로 풀어낸 일기다.
나의 생존 증명서는 詩였고
詩 이전에 절대 고독이었다
고독이 없었더라면 나는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세계 전체가 한 병동이다
꽃들이 하릴없이 살아 있다
사람들이 하릴없이 살아 있다
「나의 생존 증명서는」 50쪽
한정되고 닫힌 세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범하게 담아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비애와 허무를 드러낸다. 시를 읽으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죽음이다. 시인이 읊조리는 말은 애처로운 묘비명처럼 느껴진다.
내 손가락들 사이로
내 의식의 층층들 사이로
세계는 빠져나갔다
그러고도 어언 수천 년
빈 배처럼 텅 비어
나 돌아갑니다
「빈 배처럼 텅 비어」 9쪽
시인은 자신의 생존기를 통해 허무와 죽음 앞에서 인간의 허물어지기 쉬운 존재가치와 존엄을 그려냈다. 절망 속에서 삶의 진정성은 어쩌면, 생존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구원의 가능성이 완전히 차단된 세상에서는 생존하기 위한 삶의 방식이 잘난 지식보다 중요한 것일 수 있다.
지식과 지식이 싸울 때
自然 소외는 한없이 깊어지고
역사는 흙탕물이 되어 흘러간다
죽으면 땅의 지식은 필요가 없고
하늘의 지식이 필요하다
그 잘난 지식들을 얼굴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
들판에서 보리와 밀이 웃더라
저기 지식을 구걸하는
한 무리의 동냥아치들이 지나간다
「들판에서 보리와 밀이」 49쪽
시인은 삶의 허무와 우울, 그리고 슬픔의 소리 들을 품어 안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 운명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한 마리의 부운몽(浮雲夢)이 되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몽유(夢遊)의 세계를 떠돈다.
정신과 병동에서
또 고장난 하루가 펼쳐진다
세상은 흘러가겠지
넋 놓고 세월은 흘러가겠지
하루하루 바보 같은
나날이 지나가겠지
(나는 지금 한 마리의
떠도는 부운몽이올시다)
「한 마리의 떠도는 부운몽」 21쪽
인생은 단 한 번에 끝나는 ‘일회용 인생살이’로 보일는지 모르지만, 인생 이면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믿기에 희망을 품고 버틴다. 일생을 타인의 임종을 지키고 살아온 한 수도사의 증언을 생각해 본다. “사람이 죽을 때 모습은 그가 살아왔던 모습과 같다. 다른 말로 한다면 사람의 죽음은 그 사람의 삶과 동질이다.” 죽음은 평생 살아온 삶의 열매와 같다. 그래서 대충 살고 의미 없이 죽을 수 없다. 내용 없이 사는 무미건조한 인생은 허무하다. 그래서 어떻게 죽을 것이냐의 고뇌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이냐의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나저러나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도 언제나 해는 뜨고 언제나 달도 뜬다
저 무슨 바다가 저리 애끓며 뒤척이고 있을까
삶이 무의미해지면 죽음이 우리를 이끈다
죽음도 무의미해지면
우리는 虛와 손을 잡아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31쪽
시인에게 허무는 더 이상 애써 극복해야 할 대상도 끝내 무릎 꿇을 운명도 아닌, 이제 다만 물끄러미 들여다봐야 할 삶의 풍경이다. 허무의 끝에까지 가봤던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정신병동 같은 막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김춘수 시인은 ‘무의미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노력’이라고 말했다. 실눈을 뜨더라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해야 한다. 그래야 허무를 견디게 하는 면역성이 생긴다. 우리는 차가운 허무와 손을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