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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 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6년 4월
평점 :
“저는 한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2014년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이 남긴 발언이다. 분단된 남북을 통일하는 데는 어마어마한 물적 인적 자원이 필요한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통일에 따르는 경제적 과실은 실제로 대박일까? 통일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수십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통일 비용을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또 남북 주민 간의 문화적 이질감을 통합하는 데 있어서 사회적 비용 또한 무시 못 한다. 통일이 실제 이뤄지면 60년 넘게 분단된 이산가족들의 재결합 등 국가와 사회적 치유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물적 재원이 소요되기 때문에 정책연구와 집행에 있어 경제적 득과 실을 따지지 않을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통일되면 남북의 인구 9천만 명이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는 효과를 볼 수 있어 당장 내수 시장의 확대 효과가 발생한다. 북한의 지하자원 가치는 약 6,700조 원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북한의 자원에 한국의 자본과 기술이 합쳐진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통일을 통해 남한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적지 않다고 분석했다. 전자회로 등 핵심부품에 쓰이는 희토류 등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확보하면 남한에는 ‘횡재(windfall)’의 기회다. 이코노미스트는 ‘통일은 횡재다’라고 예상했다. ‘조갑제닷컴’ 대표 조갑제는 자신의 칼럼에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을 ‘머리가 시원해지고 가슴이 뻥 뚫리는 명언’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통일 한국이 되면 독일 수준의 강대국이 될 거라고 믿었다.
풍부한 천연자원을 확보한 나라는 정말 강대국이 될 수 있을까? 꼭 그렇지만 않다. 콩고, 앙골라,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아프리카의 가난한 국가들이라는 것 말고도 이들 나라엔 공통점이 있다. 내전에 시달린다는 점과 천혜의 자원이 풍부한 국가라는 점이다. 땅만 파면 석유, 천연가스, 다이아몬드가 쏟아지는 나라들이 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 땅에서 서로 싸우는 걸까. 이에 대해 경제학자들이 내린 결론이 있다. 이름하여 ‘천연자원의 저주’다. 나라 경제를 천연자원에 의존하는 개발도상국일수록 가난하고 부패한 독재자를 갖기 쉬우며 내전에 휩쓸리기 쉽다. 돈으로 쉽게 환산할 수 있는 자원으로 백성들 배를 불리면 좋으련만 지도자는 부패와 손을 잡고 저 혼자 부자가 돼버린다. 자원보유국의 관심이 더 큰 파이를 만드는 것보다는 기존 파이의 더 큰 몫을 차지하는 데만 쏠려있다. 그러면 정권을 유지하는 데 주로 사용되고 경제성장을 위한 물적, 제도적 기반을 닦는 데는 소홀해진다. 이를 눈뜨고 봐줄 수 없는 반대파는 무기를 들고 일어서게 마련이다. 천연자원들은 손에 돈을 쥐여 줄지는 모르지만, 일자리를 만들지는 못한다. 천연자원 중심 산업에 너무 쏠리면 다른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기까지 한다.
‘통일대박론’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이다. 통일 한국이 아프리카 빈국처럼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파 경제학자들은 ‘천연자원의 저주’ 사례를 들면서 자원을 국유화한 나라의 실정을 비판하는데 우리나라가 잘 사는 이유를 ‘자원이 없다는’ 점에서 찾고 있다. 그러면서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의 빠른 경제성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우익의 거두 조갑제는 우리나라가 통일되면 ‘무지무지한 지하자원을 얻는 대박’이라고 주장한다. 대기업 산하 경제연구소 소속 경제학자들도 통일 한국의 북한 땅에 매장된 지하자원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지하자원을 이용하여 이익을 창출하는 통일 한국의 청사진을 벌써 그려놓는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도 한국이 다이아몬드와 석유가 없어서 복 받은 나라라고 말한다. 통일 한국은 다행히 다이아몬드와 석유가 없다. 베네수엘라처럼 천연자원을 국유화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하지만 부정부패와 비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천연자원을 개발할 권리를 얻기 위해 기업들이 정부에게 로비를 펼칠 거고, 권력과 기업이 불건전하게 공생하는 정경유착의 그늘이 우리나라 경제에 드리워진다. 부국(富國)이 되려면 국민의 생산 의욕을 증진하는 ‘좋은 제도(good institution)’가 정착되어야 한다. ‘좋은 제도’가 이루어지는 조건 중 하나가 바로 부패가 없는 사회다. 대통령의 ‘통일대박론’, 이코노미스트의 ‘통일 횡재론’을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통일 한국 이후에 일어날 수 있는 ‘천연자원의 저주’를 대비할 수 있도록 경제 기초체력(Fundamental)이 안정적으로 탄탄해야 한다.
통일 한국이 ‘천연자원의 저주’에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천만다행이다. ‘통일대박론’을 비관적으로 보는 내 입장의 근거가 부실하게 느껴진다면, 그에 대한 반박을 인정하겠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를 읽으면서 통일 한국의 미래상을 나름대로 예측해봤다. UN의 대북 제재 이후 북한 체제가 점점 흔들리고 있다. 어떤 이들은 저절로 북한이 붕괴하기를 원한다. 남한 정부와 남한 국민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 상황은 북한만의 위기가 아니라 언제가 닥쳐올 정세 변화를 맞아야 하는 남한의 위기일 수도 있다. 현실적이지 않은 ‘기우’에 불과한 것일까. 나는 통일 한국의 문제를 ‘건설적 편집증(constructive paranoia)’으로 조심스럽게 보고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창안한 표현이다. 전통사회의 사람들은 현대인이 보기에 지나치게 조심성이 많다. 현대인은 전통사회의 구성원이 경험으로 습득하였던 것보다 위험을 잘못 평가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 남북한이 통일되는 상황은 기쁜 일이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성과는 화려해 보이지만, 문명사에 비추어 보면 그러한 발전이 이루어진 시기는 극히 짧은 순간일 뿐이다. 우리가 긍정적으로 보는 성과 역시 매우 취약한 토대 위에 서 있다. 우리나라뿐만 전 세계가 지구의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생산의 감소, 불평등 문제, 그리고 환경자원이 감소하는 위기에 직면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우리나라는 통일이라는 특별한 내적 변수까지 고려해야 한다. 외적이든 내적이든 복잡한 요인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국가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 이를 간과한 채 국가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하면, 위기의 균열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러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한마디로 ‘(정부가) 정신 못 차리면 통일은 쪽박이다’, 이렇게 생각한다.
※ 딴죽걸기
* 2장에 국가의 ‘성쇠의 반전’을 설명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를 주장한 학자로 ‘다론 아제모을루(Daron Acemoglu)’와 ‘제임스 로빈슨’이 언급되었다. (70쪽) ‘다론 아제모을루’ 발음이 어려운데, 이 두 학자가 쓴 책이 2012년에 번역되어 나왔다. 원제는 ‘Why Nations Fail’, 번역본 제목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다. 이때 Daron Acemoglu을 ‘대런 애쓰모글루’로 표기되어 있다.
* ‘신적인 존재로 여기는 황제에 대한 충성심과 일본의 문화적 가치입니다’ (115쪽)
일황 호칭을 ‘천황’, ‘덴노(てんのう)’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호칭 표기에 대한 논란이 많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중국이 일황을 ‘황제’로 부른다.
* 책 부록으로 실린 질의응답 형식의 글 ‘재레드 다이아몬드에게 문명의 길을 묻다’를 보면서 약간 실망했다. 다이아몬드는 한국 교육을 미국 교육과 비교하면서 한국 교육의 장점을 칭찬했다. 212쪽에 있는 문장을 인용해본다.
“내가 알기로는 학교 교사의 위상이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높고, 학력 테스트에서도 한국 학생의 성적이 미국 학생보다 더 높습니다.”
한국 교사의 위상이 미국 교사보다 높다? 다이아몬드도 오바마 대통령처럼 한국 교육의 현실을 잘 모르는 '에듀켄탈리즘(educentalism, 교육 education과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를 합친 말)'의 환상에 빠졌다. 그것보다 다이아몬드는 우리나라가 출산율 저하 문제로 인해 교사 정원이 감소세로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