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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평점 :
톨스또이는 행복한 사람들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사람들은 그 이유가 갖가지라는 세계의 문호다운 예리한 관찰을 했다, 사실, 그 점은 국가도 마찬가지다. 잘 사는 국가는 비슷하게 잘 사는데, 못 사는 국가는 그 이유가 제각각이니까. 신문의 국제면은 연일 기아, 전쟁, 빈곤, 환경파괴, 무역 분쟁, 삶의 질의 저하 등으로 메워지고 있다. 세계가 이렇게 자기 소모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다가는 지금의 문명이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누가 세계를 이렇게 만들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누가 수혜를 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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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이것이 세계의 번영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이것이 재앙을 초래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세계화’가 바로 그것이다. 세계화가 시대의 화두가 된 지도 오래다. 세계화의 문제는 한마디로 불평등의 문제이다. 선진국과 개도국,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에 가속하는 격차를 두고 위기의식이 거론되고 있다. 한스 페터 마르틴과 하랄트 슈만은 공저 《세계화의 덫》(영림카디널, 2003)에서 전 세계가 20%의 부유층과 80% 빈곤층으로 양분된다는 암울한 전망을 하였다. 오늘날 현실은 그들이 경고한 ‘20 대 80 사회’를 향해 날로 고착화하는 형편이다. 세계화는 지구촌을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시키면서 동시에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갈가리 찢어놓는 이중성을 드러냈다. 국경이 사라진 거대한 세계시장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쌓는 부(富)는 그 이전 시대보다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이미 경제학에서는 세계화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에 관해 치열한 이론적, 실증적 논쟁이 벌어져 왔다. 주류경제학자들은 경제를 개방하고 상품과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한다면 개도국에서 투자가 촉진되고 경제의 효율성이 상승할 것이라 주장한다. 세계은행은 1996년 로마 식량정상회의에서 2015년까지 세계 기아 인구를 절반 수준으로 줄인다는 계획을 채택한 바 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진행되고 있다. 세계화의 가속화에 따라 국가 간, 계층 간 소득 격차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곳곳이 기아의 고통에 허덕인다.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남부에 사는 5억9000만 명 중 3분의 1은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에 놓여 있다. 식량 원조는 거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지역 인구를 먹여 살리는 데 필요한 식량은 원조량의 5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사회학자 장 지글러는 저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기아의 실태와 그 배후의 원인을 아들과의 대화 형식으로 설명한다. 개발도상국의 빈곤문제는 그 자체가 매우 복잡한 사회적 현상으로서 구조적이고 다면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책의 제목처럼 왜 많은 사람이 굶주려야 하는가에 대해 다양한 사례와 해석을 내놓았다. 농사짓기 좋고 종족 갈등도 없는 소말리아가 기근으로 ‘시체의 산’을 이루는 건 군벌들의 다툼 때문이다. 구호단체 화물선이 정박할 항구는 전쟁통에 폐쇄됐거나 통행세를 요구하는 무장 세력으로 득실댄다. 선진국들은 개도국과 후진국에는 자유 시장논리를 강요하면서도 정작 자국 시장은 봉쇄하고, 자국 농민은 보조금 정책을 통해 보호하고 있다.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화는 소수의 다국적기업이 세계 농업 무역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결국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식량을 살 돈이 없어서 굶주리는 일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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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올해의 축구선수로 가봉 국적 공격수 피에르 오바메양이 선정되었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녹색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오바메양의 모습에 시종일관 시선을 떼지 못했지만, 머나먼 대륙 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것이 ‘세계화된’ 우리의 현실이다. 세계화는 이미 거부하기 어려운 현실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세계화로 인해 무한 경쟁 논리가 지구상의 모든 사람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침투되고 있다. 대부분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에서는 세계화를 ‘국경의 개념이 허물어져 세계가 하나의 열린 시장이 됨으로써 자본, 물자, 인력, 정보 등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현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전 세계가 자본주의라는 단일한 경제 체제로 통합됨으로써 자본이 전 지구를 대상으로 자유롭게 이윤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세계화의 본질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전 지구화’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세계화의 본질을 보여주기에는 2% 부족하다. 그 이유는 세계화라는 ‘자본주의의 빛’에 가려진 어두운 그늘에 대한 언급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세계화의 그늘인 기아 문제가 발생하게 된 이유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바람을 잔뜩 들이마신 우리 사회는 기아를 초래하는 원인을 알고도 침묵한다. 만일 경제 교과서에 ‘세계화의 원인이 다국적 기업의 탐욕’이라는 문장 한 줄만 보여도 뉴라이트 세력이 트집을 부릴 것이다. 기아 문제에 침묵하는 사회일수록 집단 전체에 ‘지적 마비’ 증세가 온다. 장 지글러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계 경제의 그늘을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은 ‘현실에 동떨어진 인간애’를 가지고 졸업한다. 그들의 호주머니에 결식아동의 하루 식사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돈이 있다 하더라도, 그보다는 스타벅스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이 더 유익이라는 판단이 오늘도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고 있는 이유가 된다.
세계화의 치부를 드러내는 자료는 넘쳐나는데, 주류경제학자들은 세계화가 얼마나 신나는 것인지 설명한다. 반세계화 운동을 비난하는 이들을 향해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말로 경제성장이 개발도상국의 빈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 적이 있었는가?” 이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계화 시대의 파국을 피부로 겪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기 쉽지 않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당장 요구되는 것은 세계화의 모순적인 이면에 대한 관심이다.
※ 서평대회 이벤트에 응모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