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 결정적 1%, 사소하지만 치명적 허점을 공략하라
리처드 H. 탈러 지음, 박세연 옮김 / 리더스북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0321/pimg_7365531661387231.png)
칠흑 같은 밤, 철수와 영희는 전봇대 밑에서 마주쳤다. 두 사람 다 쓰레기를 몰래 버리다가 들키고 만 것이다. 서로 뻘쭘한 상황.
철수 : "영희야, 뭐 하니?"
영희 : (싱긋 웃으면서) "신경 꺼!"
멋쩍은 미소와 함께 둘은 황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이들은 관청에서 다시 마주쳤다. 어느 사람이 두 사람이 전봇대에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제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격자의 제보만으로 철수와 영희의 소행을 확증할 수 없었다.
철수와 영희는 각자 다른 방에서 심문을 받았다. 관청 직원이 두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동일한 제안을 한다. “둘 다 자백하면 벌금을 처한다. 만일 당신이 스스로 죄상을 고백하고, 상대 쪽이 버티면 당신은 포상금을 받고, 상대 쪽은 벌금의 두 배를 내야 한다. 당신이 버티고 상대 쪽만 자백하면 당연히 상벌은 반대다. 둘 다 자백하지 않으면 별수 없이 무죄 방면이다.”
두 사람 다 손해 받지 않기 위한 최상의 전략은 자백이다. 영희가 버틴다면 철수는 자백하는 것이 유리하다. 왜냐하면, 같이 버티면 그냥 벌금을 면할 수 있지만, 자백하면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자백하는 게 유리하다. 영희가 자백할 때도 철수는 버티기보다는 자백하는 것이 낫다. 자백하면 기본 벌금만 내면 되지만, 버텼다간 철수 혼자 벌금 폭탄을 맞는다. 바보가 아닌 이상 영희도 철수와 같은 선택을 한다. 따라서 두 사람 모두 자백하고, 벌금을 낸다. 철수와 영희에게 가장 좋은 선택은 둘 다 끝까지 침묵하여 벌금을 피하는 것이지만, 결국 죄형을 고백하고 만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다. 최선의 개인적 선택들이 최악의 집단적 결과를 빚은 것이다. 철수와 영희의 행동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그러나 바로 그 ‘합리성’ 때문에 공멸에 이른다. 생각할수록 참 아이러니한 일 아닌가.
주류 경제학의 기본 전제가 합리적 인간(Econ)이다. 하지만 실제로도 앞의 사례에서 보듯이 현실은 이를 사정없이 배반한다. 과연 이 합리성은 전제될 만한 가정인가. 경제학은 이 같은 도전을 수없이 받아왔다. 이러한 인간의 실제적 경제 행위를 설명하려고 노력한 심리학자들이 있다. 허버트 사이먼이 선구적으로 시작한 이후 아모스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이 이를 크게 발전시켰다. 허버트 사이먼에 의하면 인간은 효용의 극대화를 추구하려고 노력하지만, 선택에 필요한 정보의 제한성과 분석 역량의 한계 때문에 완벽한 선택과 판단을 하지 못한다. 신이 아닌 보통 인간은 제한된 합리성을 추구할 뿐이다. 경제학에서 전제하는 것처럼 이론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먹구구 방식으로 판단한다. 경제의 선택이론에 심리학을 접목한 행동경제학은 주류경제학의 허점을 강력히 파고들었다.
《넛지》의 공동 저자이자 경제학자인 로버트 탈러는 자신의 삶 절반을 행동경제학과 함께 지냈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믿는 어른(주류경제학의 ‘Econ’)들에게 무시 받았던 꼬마(행동경제학)가 어엿한 ‘인간’으로 성장해서 마침내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을 한 편의 자서전처럼 기록했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원제: Misbehaving)은 《넛지》의 프리퀄(prequel)이라고 보면 된다. 만일 행동경제학이 구축되지 않았으면 《넛지》의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도 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저자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전하는 서문에서 이 책이 자서전이 아니라고 힘주면서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학자들의 삶이 다 재미있는 건 아니다. 저자가 행동경제학과 관련된 재미있는 사연들을 언급하려고 노력했지만, 어떤 내용은 좀 지루하다. 독자들은 바쁘다. 책을 끝까지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 행동경제학 이론에 관한 간략한 설명만 듣고 싶은 독자들은 학문의 담벼락 안에서 살아가는 학자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의미심장한 충고를 한다. 책을 읽다가 더 이상 재미있지 않으면 책을 덮으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것 또한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잘못된 행동’이 된다.
‘잘못된 행동’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의 멍청한 철수를 다시 소환해 보자.
여러분 우리 큰 목소리로 철수를 불러볼까요?
(철수야!)
잘 안 들려요. 다시 한 번 더 크게!
(철수야!)
철수 있다!
철수가 자신이 구입한 책을 자랑한다. 그 책은 바로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이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의 정가는 2만 2천 원이다. 적지 않은 금액이다. 독서광으로 알려진 철수는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이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철수는 이 책을 다 읽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런 책 한 권쯤 읽어줘야 사람들이 자신을 똑똑한 사람으로 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철수는 자비로 구입한 책을 안 읽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0321/pimg_7365531661387233.png)
그러나 <철수의 생각>은 어리석었다.
이미 지불한 후 되찾을 수 없게 된 비용을 ‘매몰비용(sunk cost)’이라고 한다. 철수의 매몰 비용은 책의 구입비다. 주류 경제학은 의사 결정을 할 때 미래의 비용과 편익만을 고려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가르친다. 매몰비용은 의사 결정 시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쉽게 말해 ‘과거를 후회해도 신경 쓰지 말라’는 뜻이다. 이런 뒤틀린 인식은 합리적 인간(Econ)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욕구와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명백한 오류가 눈앞에 드러나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반증으로 굳어질 때까지 계속된다. 아무리 철수가 자신을 ‘상식파’라고 말해도 중요한 선택 앞에서는 바보가 된다. 이 책을 끝까지 안 읽고, 알라딘 중고서점에 파는 일이 상식적으로 이해되는 선택이다.
경제이론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가정과 추상화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론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하다. 그걸 또 완전하다고 믿는 인간은 합리성에 만든 함정에 쉽게 빠져버린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바보 같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왔고 그것을 느낀 다음에야 뒷북을 친다. 경제학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성을 통한 의식적 견제와 관찰이 중요하다. 내가 믿고 있던 지식에 발등 찍힐 수 있다. 자만심과 고집에 빠지지 말고 현재까지의 손실과 장래의 승산을 냉정히 저울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