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책에는 없는 20가지 의학 이야기 - 현직 의사가 쓴 생활 속 질병과 의학의 역사
박지욱 지음 / 시공사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80년대까지만 해도 남자라면 누구나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잘랐다. 심지어 여학생들도 단발머리를 자르기 위해 이발소를 찾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90년대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여학생은 물론이고 남자들도 하나둘 이발소를 떠나 미용실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발소에 50대 이상 남자들만 온다. 이발소 손님이 팍 줄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또 하나 있다. 손님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수입도 줄게 되자 퇴폐 영업소로 변질한 이발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퇴폐 이발소 때문에 이발소 전체의 이미지가 좋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 손을 잡고 왔던 아버지들이, 머리를 깎으러 왔던 학생들마저 떠나기 시작했다. 흰색, 적색, 청색 사선 무늬가 있는 원통형 사인 볼은 이발소를 상징하는 표시다. 불법 퇴폐 이발소도 이 표시를 사용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발소 사인 볼이 남성 손님을 유혹하는 용도가 되고 말았다. 2006년 한국이용사회중앙회는 이발소만 사인 볼을 사용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에 건의한 적도 있다. 한때 사인 볼이 두 개씩 돌아가는 이발소가 불법 퇴폐업소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발소 사인 볼은 국제 공통의 기호인 만큼 무분별한 사용을 규제해야 한다.

 

예전에 이발소 삼색 사인 볼이 프랑스 혁명에 목숨을 바친 어느 이발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프랑스 국기는 청색, 백색, 적색 순으로 이루어진 삼색기다. 이 국기는 프랑스 혁명 시절에 만들어졌다. 사인 볼의 정확한 유래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과 이발소 삼색 사인 볼은 전혀 관계가 없다. 진짜 유래를 알고 싶으면 프랑스 혁명사가 아니라 의학의 역사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이발사는 가위뿐만 아니라 칼도 잘 다룬다. 면도칼은 남자 손님의 수염을 다듬을 때 사용된다. 중세의 이발사들은 칼을 능숙하게 다루는 실력이 있어서 머리 깎는 일 이외에 다른 일을 했다. 이때 당시 인체 해부는 기독교 윤리에 어긋난 금기 행위였다. 학생들에게 신체 내부 구조를 가르쳐야 할 대학 의학교수들도 자신의 손에 피 묻히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인체를 해부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이발사다. 중세의 이발사들은 ‘투잡’을 뛰었다. 그러나 의학교수들은 시체를 해부하는 일을 담당하는 이발사를 조수급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천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시체를 해부했다. 오류투성이로 가득한 인체 해부 지식을 바로잡은 베살리우스(1514~1564)는 자신이 직접 해부를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친 의과대학 교수였다. 베살리우스 이전에 해부를 담당했던 무명의 이발사들은 의학사에 길이 남을 역할을 했다. 이발사들이 라틴 어를 쓰고 읽을 줄 몰라서 그렇지 대학교수들보다 신체 기관의 위치를 정확히 알았고, 환자의 상처를 능숙하게 치료했다.

 

 

 

 

 

사진 출처: TV 지식용어 - 시사Ya (링크)

 

 

 

비록 그들은 대학에서 천대받은 존재였으나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한 외과 수술 기술을 잊지 않았다. 실전 감각이 남아있는 이발사들은 곪은 상처에 있는 고름을 제거하고, 방혈(防血)을 했다. 그때는 방혈을 정기적으로 하면 건강이 좋아진다고 믿던 시절이었다. 이발사는 방혈 침으로 환자의 팔뚝에 있는 정맥을 찔러 피를 뽑았다. 1540년 프랑스의 메야나킬이라는 이발사 겸 의사가 처음으로 삼색 사인 볼을 만들어 이발소 문 앞에 내걸었다. 흰색은 붕대, 적색은 동맥, 청색은 정맥을 뜻한다. 긴급 환자들이 쉽고 빨리 알아볼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다. 외과의사조합이 이발사 조합에 분리되면서 이발사는 머리 깎는 일만 했다. 삼색 사인 볼은 자연스럽게 이발소를 상징하는 기호가 되었다.

 

《역사책에는 없는 20가지 의학 이야기》라는 책에서도 이발소 삼색 사인 볼의 유래를 설명했다. 그런데 저자의 설명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문제의 대목을 살펴보자.

 

 

사용한 붕대들은 잘 빨아서 빨래걸이에 널어 말리는데, 바람이 휙 하고 불면 붉은 피가 묻은, 아니 이미 갈색으로 변했을 피가 묻은 하얀 리넨 붕대들이 어지럽게 빙빙 돌기도 했을 것이다. 마치 지금 우리가 이발소 앞에서 만나는 삼색등처럼 말이다. 이제야 제대로 알았다. 이발소 삼색등은 방혈시술을 상징하고, 방혈은 이발사-서전(surgeon)의 특기였다는 것을. 그리고 수술실 앞이 아니라 이발소 앞에 삼색등이 남은 이유가 서전이 동업자인 이발사를 배신하고 떠나면서 내버려두고 왔기 때문이란 것을. (45~46쪽)

 

 

저자의 생각은 그럴듯하다. 방혈시술에 쓰면서 생긴 피 묻은 붕대가 바람에 의해서 돌아가면 이발소 사인 볼의 흰색과 적색으로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파란색의 의미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삼색 사인 볼이 방혈시술을 상징하는 기호라는 건 틀림없다. 그러나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려면 흰색, 적색, 청색의 정확한 의미를 꼭 언급했어야 했다. 이발사의 유래를 설명할 때 이 내용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책에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그리고 저자는 삼색 볼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국제적 기호라는 사실 또한 알려주지 않았다. 삼색 볼을 내걸고 의사가 하는 일까지 겸한 이발소의 등장에 정규 의과대학 코스를 밝은 의사들은 탐탁지 않았다. 의사 흉내 내는 이발사들이 늘어나자 자신들 밥그릇이 뺏길까 봐 걱정되었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그래서 의사들 사이에서 외과의사와 이발소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을 것이다. 역할이 분리되는 과정에 이발사 일을 그만두고 정식으로 서전, 즉 의사가 되려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그런 사람들을 ‘배신’으로 보는 저자의 표현이 내용을 재미있게 하려고 썼다 해도 편협하게 해석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저자의 사고방식대로라면 의사들은 외과 업무에 완전히 손을 뗀 이발사들이 삼색 사인 볼을 고집하는 것에 반발했어야 한다. 이발소가 삼색등을 사용하는 이유가 과거의 영광에 대한 이발소의 자부심으로도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여느 대학교수들보다 월등한 외과 실력을 갖췄던 시절이 있었다. 의학의 역사를 논할 때 이발사들의 역할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의사를 겸한 이발사들의 존재를 그저 돌팔이로 취급하면서 지대한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과거에 그들을 향한 차별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발사가 의사로 전환하는 일을 ‘배신’의 의미로 나쁘게만 볼 수 없다. 

 

《역사책에는 없는 20가지 의학 이야기》는 의사들도 잘 모르는 의학의 뒷이야기들을 현직 의사가 정리한 책이다. 이발소 삼색 사인 볼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당뇨병, 보툴리눔 독소의 위험성 등 우리가 살면서 만날 수 있는 질병들도 소개했다. 의학과 관련 없지만, 외국인 최초로 국립묘지에 안장된 영국 의사 스코필드 이야기 같은 감동적인 글도 있다. 책의 편집 구성이 아쉽다. 책에 ‘아시나요?’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짧은 글은 저자의 주석이 되어주고, 이보다 더 긴 내용은 특정 용어를 부연 설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런 글들이 본문 중간에 끼어 있어서 본문을 읽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짧은 내용의 주석은 본문 밑에, 긴 내용의 부연 설명에는 ‘아시나요?’ 제목을 붙여 20가지의 이야기 후미에 배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딴죽 걸기

 

* ‘화약에서 그라비아까지’라는 제목의 글은 니트로글리세린(nitroglycerine)에 대한 내용이다. 폭약의 재료이자 혈관 확장을 위한 약으로도 쓰이는 이 물질을 흔히 ‘니트로글리세린’으로 부른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식 명칭으로 ‘나이트로글리세린’이 있다. 전자는 세계표준인 IUPAC에 근거한 대한화학회 명명법을 따른 것이며, 후자는 국립국어원이 규정한 단어다.  둘 다 사용해도 된다.

 

* “인체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다빈치, 라파엘, 도나텔로, 미켈란젤로로 대표되는 화가들도 해부학을 익혔다.” (151~152쪽, 이 네 사람은 <닌자 거북이> 캐릭터 명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그렇다 보니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유명 화가 세 사람 때문인지 도나텔로를 화가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가 도제 시절에 습작으로 그림 몇 점 남겼어도 이것만 가지고 전문 화가로 규정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도나텔로는 정식으로 조각 제작 교육을 받은 조각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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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6-01-05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어렴풋이 알기로는 이발사 투잡과 이발소 상징 기호의 최초는 스페인인데... 아닌가요?^^

cyrus 2016-01-05 20:59   좋아요 1 | URL
삼색 등이 정식으로 나오기 전에 스페인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 이발사들은 외과 수술을 겸한 일을 했습니다. 삼색 등을 처음 만든 사람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 검색하면 찾을 수 있는데 그 내용을 언급한 문헌은 찾지 못했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01-05 21:04   좋아요 0 | URL
대체 전 어느 책에서 봤는지 ㅠㅠ

cyrus 2016-01-05 21:05   좋아요 1 | URL
혹시 책제목을 아신다면 알려주세요.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는 믿을 수가 없거든요. ^^

북다이제스터 2016-01-05 21:07   좋아요 1 | URL
넵, 책 제목 꼭 생각해 내어 말씀 드리겠습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6-01-05 21:26   좋아요 0 | URL
방금 생각난건데요. 스페인 도시 배경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때문에 제 착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근거 없는 불명확한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ㅠ

해피북 2016-01-06 0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발사가 해부도 했었다니 참 신기한 일이네요. 또 이발소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던 삼색 사인볼에도 의미가 숨어있다니 ㅎ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6-01-06 16:37   좋아요 0 | URL
긴 글을 재미있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transient-guest 2016-01-06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중학교 때까지는 이발소를 다녔습니다만. 여기서도 나이든 분들이나 barber shop을 갑니다. 대부분 스타일리스트를 표방하는 곳이나 저가형 체인미용실로 가구요. 포악했지만, 스탈을 따지던 옛스러운 시절엔, 좀 나가는 남자라면 오전에 barber shop에 들러서 머리를 하고 면도를 했지요.ㅎㅎ

cyrus 2016-01-06 16:42   좋아요 0 | URL
이발소 아저씨들은 남자 손님만 오면 항상 일정한 헤어스타일로 머리를 다듬어요. 그래서 학생들 입장에서는 이발소 가는 날이 부담스러워요. 자기가 원하는 헤어스타일이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