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7080세대라면 브룩 실즈를 절대로 모를 리가 없다. 1980년대 소피 마르소, 피비 케이츠와 함께 코딩 책받침 미녀 모델의 트로이카 중 한 명이었던 그녀에게 항상 ‘세기의 미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녀는 ‘세기의 여배우’가 되지 못했다. 대표작이라고 해봐야 <블루 라군> 정도. <블루 라군>에 출연하기 전에 찍었던 영화 <프리티 베이비>는 작품성보다는 작품에 대한 논란 때문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영화를 찍었던 당시 브룩의 나이는 열두 살. 브룩은 어린 창녀 바이올렛으로 등장한다. 1917년, 미국 뉴올리언스의 매음굴을 배경으로 전개되는데, 세상 물정 모르는 바이올렛은 그녀의 어머니(수잔 서랜든 분)처럼 창녀가 된다. 여기에 브룩이 올 누드로 등장해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야기 설정도 파격적이다. 어린 창녀가 400달러에 자신의 순결을 팔고, 아버지뻘 되는 남자와 결혼하여 한집에 산다. 이 남자는 창녀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판매하는 일을 했는데 바이올렛은 이 남자를 마음에 들어 한다. 물론, 남자도 소녀를 좋아한다. 가끔 남자는 바이올렛이 투정을 부리면 손찌검을 하지만, 인형처럼 예쁜 그녀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낸다. 그는 바이올렛을 찍은 사진만큼은 절대로 팔지 않는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바이올렛은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영화 개봉 당시 비도덕적이라는 이유로 종교계의 격심한 반발을 샀다. 특히 사진기 앞에서 브룩이 벌거벗은 채 자세를 취하는 장면 하나 때문에 그녀는 관능적인 롤리타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이 영화가 오늘날에 개봉되었으면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어 문제의 장면이 삭제되었을 것이다. 지금으로써는 이러한 장면은 문제가 될 소지가 많지만, 20세기 이전만 해도 소녀의 누드 사진은 누구나 볼 수 있는 흔한 이미지였다. 어린 소녀의 사진을 찍어서 혼자 간직하려는 영화 속 사진가의 모습에서 루이스 캐럴이 떠오른다.

 

 

 

 

 

 

 

 

 

 

 

 

 

 

 

 

 

 

루이스 캐럴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쓴 동화작가로 잘 알려졌다. 동화 속 앨리스의 실제 모델은 엘리스 리델. 이 소녀는 캐럴이 수학교수로 재직하던 옥스퍼드 대학 크라이스트 처치 학장인 헨리 리델의 딸이었다. 캐럴은 이 소녀를 즐겁게 하려고 동화 두 편을 집필하게 된다. 그는 말더듬 증세가 있어서 수줍음이 많은 성격인데도 재미있는 농담, 난센스 퀴즈, 짤막한 이야기 등을 준비하여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사진을 잘 찍었다. 캐럴은 영국에서 사진기를 잘 다루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 작가 조지 맥도널드 등 영국을 대표하는 명사들을 찍었을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의 모습도 많이 찍었다.

 

 

 

 

 

루이스 캐럴이 찍은 앨리스 리델의 사진

 

 

그러나 그가 어린 소녀의 누드를 찍은 사진 몇 점이 사람들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당시 캐럴은 보수적인 기독교 가치를 강조했던 빅토리아 시대에 살고 있었다. 이 시대에 누드 자체를 사진으로 찍는 행위는 공포와 혼란 그 자체였다. 너무 지나치게 점잖은 태도를 유지했던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신체 부위를 함부로 노출하는 것을 부도덕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캐럴은 사회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녀의 누드를 마음껏 찍었다. 성인 남녀의 누드 사진만 아니면 되었다. 성(性)을 부끄러워하던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어린 남녀의 누드 사진은 인정했다. 어린 소녀의 누드 사진이 있는 연하장이나 엽서가 만들어졌다. 옷을 입지 않은 아이들의 모습에서 에로티시즘과 상관없는 순수한 육체의 아름다움으로 봤기 때문이다. 캐럴을 포함한 기독교 신자들은 아이를 성별이 없는 순수한 신의 피조물로 인식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캐럴이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소아성애자’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캐럴의 삶을 잘 모르면 이런 오해를 할 수도 있다. 캐럴은 어린 소녀의 사진을 단지 판매를 위한 목적으로 찍지 않았다. 그리고 사진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고 누드 사진의 원본 필름을 모두 없애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캐럴의 사진 작업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사진술이 널리 보급되었어도 누드 사진에 대한 반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성적 욕구를 드러내는 것을 금지했던 빅토리아 시대 특정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선정적인 포르노 사진이 암묵적으로 유통되었고, 이 사진을 구매하는 고객 대부분은 여자들 앞에서 점잖은 태도를 보였던 남자들이었다. 사진가와 여성 모델이 서로 사랑하는 관계임을 증명하는 사진까지 나오게 되면서 한동안 사진가는 여성 누드를 마음껏 볼 수 있는 천박한 직업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때 사진은 미술처럼 하나의 예술 장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진을 못 미더운 몇몇 사람들은 캐럴이 어린 소녀, 그것도 누드를 찍는 모습을 수상하게 여겼다. 사소한 오해는 더 큰 오해로 커진다. 캐럴의 일대기를 연구한 학자들은 앨리스 리델을 캐럴이 짝사랑하는 대상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리델과 주고받은 캐럴의 편지만으로 캐럴이 그녀를 좋아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캐럴은 앨리스 리델뿐만 아니라 서로 알고 지내는 소녀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캐럴은 억울하다. 그는 단지 귀여운 소녀의 모습이 좋아서 사진을 찍었다. 자신 스스로 육체적으로 깨끗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캐럴의 순수한 사진 작업에 딴죽을 걸었다. 펠릭스 나다르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물 사진의 대가라면, 여기에 맞서 영국은 캐럴을 내세워도 된다. 어린 소녀의 누드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이름이 사진 역사에서 제외하는 것은 속 좁은 평가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정상적으로 찍은 사진을 선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더 이상하다. 알고 보면 순진하고 고결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야한 것에 더 밝히는 경우가 있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벌거벗은 고대 그리스 여신상을 ‘예술’로 찬양했지만, 실제 인간의 벌거벗은 모습을 극도로 싫어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누드를 ‘예술’이라는 고귀한 이름으로 포장하여 즐김으로써 간접적으로 성적 욕구를 풀 수 있었다. 빅토리아 여왕이 지배했던 19세기 영국은 야한 것이 좋다고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이상한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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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5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15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디언밥 2015-09-15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잼있어요!! 전부 몰랐던 얘기들.. 특히 소녀 누드사진이 연하장이나 엽서로 만들어지는 시대라니.. 띠용..

cyrus 2015-09-16 13:20   좋아요 0 | URL
사진의 역사를 소개한 책을 읽다가 저도 처음 알았어요. 그전에는 루이스 캐럴이 어린이 사진을 찍은 이유를 좋지 않게 여겼는데, 오해를 풀 수 있었습니다. ^^

stella.K 2015-09-16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때 브룩실즈 정말 예뼜지. 그런데 크면서 별로더군.
게다가 무슨 거인병에 걸렸다고도 했는데.
성장이 멈추지 않는 병. 그래서 키가 190이넘는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어. 요즘은 뭐하고 사는지?
저 시대에 정말 세 사람이 미녀 트로이카라고 난리였는데...
동시대 사람으로 우리나라에 누가 있었더라...?
김혜수, 이상아, 이미연쯤이 되려나?ㅋㅋ

cyrus 2015-09-16 18:14   좋아요 0 | URL
브룩이 말단비대증에 걸려서 한동안 투병 생활을 했어요. ‘거인병’과 비슷해요. 그리고 출산 이후에 극심한 우울증에도 시달렸다고 해요. 성인이 되어서도 간간히 영화에 출연했는데, 과거의 리즈 시절로 되돌아가기에는 많이 늦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