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지저분한 내용이 있는 글이다. 아니, 애초에 이 글을 안 보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소개될 내용을 미리 알리겠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독자의 비위를 불편하게 만드는 지저분한 장면이 몇 개 나온다. 다음에 소개될 두 개의 장면은 비평가들을 당혹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율리시스》를 최악의 작품이라고 평가했던 비평가들의 눈에는 우스꽝스럽고도 엉뚱한 소설 속 장면이 이야기 전개와 전혀 상관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의식의 흐름 기법을 따르는 소설의 구조를 생각한다면 조이스가 단순히 독자에게 웃음을 유발하려고 이런 장면을 삽입하지 않았으리라.

 

《율리시스》 4장 ‘칼립소’는 레오폴드 블룸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다. 오전 11시에 친구 디그넘의 장례식을 참석하기 전까지 레오폴드가 겪게 되는 일상적인 상황과 내면 의식을 보여준다. 레오폴드는 외로움 타는 중년 남성이다. 가수인 아내 몰리 블룸과 같이 살고 있지만, 아내는 동료 가수인 블레이제스 보일런을 좋아한다. 레오폴드는 시장에 아침밥을 준비하기 위한 재료를 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편지 두 통과 엽서 한 통을 발견한다. 편지 한 통과 엽서는 아내에게서 온 것인데 발신인이 보일런이다. 나머지 편지 한 통은 블룸의 딸이 보낸 것이다. 레오폴드는 편지를 읽다가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하필이면 그 날 오후에 보일런이 몰리를 만나려고 집으로 찾아올 예정이다. 레오폴드는 아내와 보일런이 밀회하는 상상을 한다. 아내와 보일런의 관계는 레오폴드의 내면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레오폴드가 어디를 가든, 무슨 어떤 일을 하던 아내와 보일런에 대한 고민을 지우지 못한다. 레오폴드는 아내의 불륜을 알고 있어도 괜히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칼립소’는 레오폴드의 외로운 상황을 보여주는 심각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우스꽝스럽게 끝이 난다. 레오폴드는 식사를 마친 뒤에 화장실에 들어가서 날짜가 지난 잡지를 읽으면서 볼일을 본다. 그러는 와중에 그의 머릿속은 아내 걱정이 아닌 엉뚱하게도 단편소설을 쓰는 모습을 상상한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다 보고 난 후에 목욕탕으로 향한다.

 

 

그는 화장실의 흠 있는 문을 발로 차서 열었다. 장례식을 위해 바지를 더럽히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좋아. 그는 낮은 이마 서까래 아래로 머리를 숙이면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조금 열어둔 채, 썩은 석회며 묵은 거미줄 냄새 속에서, 그는 허리띠를 풀었다. 앉기 전에 그는 벽의 빈틈을 통하여 이웃 창문을 엿보았다. 임금님은 그의 회계실(會計室)에 있었다. 아무도 없군.
변기에 웅크리고 앉아 그는 주간지를 펴서, 맨 무릎 위에 그의 페이지를 펼쳐 놓았다. (중략) 조용히 그는 읽어 나갔다. 스스로를 힘을 주면서, 첫째 단을, 그리고 굴복하면서 그러나 티면서, 둘째 단을 읽기 시작했다. 반쯤 와서, 그의 최후의 저항에 버티며, 어제 있었던 약간의 변비증이 완전히 가시도록 계속 끈기 있게 읽으면서, 그가 읽자, 그의 창자가 조용히 후련하게 되었다. 지나치게 커서 치질이 재발하지 않아야 할 텐데. 아니야, 됐어. 그래. 아하! 변비증. 카스카라 사그라다 한 알을. 인생도 이랬으면. 단편소설은 그를 감동하거나 자극하지는 않았으나 뭔가 민감하고 청초한 것이었다. 지금은 무엇이든지 인쇄를 하지. 별반 기사거리가 없는 계절. 그는 계속 읽었다. 자신이 풍겨 오르는 냄새 위에 조용히 앉은 채.

 

(김종건 역, 169~170쪽)

 

 

서양 문화에서 화장실은 뭔가 음침하고 불결한 장소이다. 이렇다 보니 비평가들은 주인공이 볼일을 보는 장면이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 그를 후원해준 에즈라 파운드도 이 장면에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소설 속 화장실은 아주 특별한 장소다. 아내에 대한 레오폴드의 상념이 일시적으로 해소된다. 레오폴드는 소설을 집필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아내에 대한 걱정을 잊는다. 우리나라 절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고 한다.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이다. 화장실의 의미를 이처럼 적절하게 표현한 말도 없다. 레오폴드의 입장에서는 화장실이 잠시나마 근심을 잊을 수 있는 안락한 장소다. 조이스는 화장실을 불결하고 폐쇄된 장소가 아닌 안락한 장소로 변환하면서 기존의 인식을 뒤엎는 발상을 선보였다.

 

11장 ‘세이렌’에서도 레오폴드는 아내 걱정에 불안감을 느낀다. 이 장은 특이하게도 노랫말이 많이 등장한다. 레오폴드가 만나는 인물들은 노래를 부르는데 음악이 레오폴드의 정서에 영향을 준다. 레오폴드는 세이렌의 노래를 들으면서 위험한 유혹을 이겨내는 오디세우스와 동일하다. 어수선한 의식 상태인 와중에서도 조이스는 이야기 후반부에 재미있는 장면을 또 한 번 연출한다. 레오폴드는 뱃속에 가스가 차오르고 있음을 느낀다. 조금 있으면 방귀가 나오려고 한다. 거리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 때문에 방귀를 시원하게 뀌지 못한다. 안 그래도 주변에 흐르는 노랫소리에 거슬리는데 이제는 뱃속의 장이 레오폴드를 예민하게 만든다.

 

 

블룸(꽃)은 가스가 뱃속에서 빙글 뱅글 도는 것을 느꼈다.
그놈의 사이다가 가스성(性)이었던 모양: 역시 변비를. 가만있자. 루벤 J가(家) 근처 우체국 1실링 8페니 너무. 배의 가스를 제거하자. 그리크가(家)로 몸을 살짝 피하자. 만날 약속을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걸. 대기 속에 한층 자유롭게. 음악.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거다.

 

(김종건 역, 536쪽)

 

 

결국, 레오폴드는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는 틈을 타 시원하게 가스를 배출한다. 하나의 광대한 음악처럼 진행된 11장의 이야기는 레오폴드의 방귀 소리와 함께 장엄하게 끝이 난다.

 

 

프흐, 오오, 프르프르.
“지상(地上)의 만족들.” 뒤에는 아무도 없군. 그녀는 지나갔다. “그때에 그런데 그때 가서야.” 전차 크란 크란 크란. 좋은 기회. 들어오고 있다. 크란들크란크란. 확실히 버건디 때문이야. 그래. 하나, 둘. “나의 비명(碑名)을.” 카라아아아아아. “쓰여지게 하라. 나는”
프르프흐르프흐흐.
“끝났도다.”

 

(김종건 역, 541쪽, * 버건디 : 프랑스 브르고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적포도주)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지독하게 어려우면서도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소설이다. 여기에 소개된 장면들은 단순한 해프닝 이상의 의미를 지닌 조이스 자신의 문학관을 반영한다. 그는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서사 형식이 더 이상 새롭지 않다고 보았다. 그는 레오폴드 블룸 또는 스티븐 디덜러스  내세워서 ‘자아’가 지각할 수 있는 것을 자유롭게 말하려고 했다. 그 과정에 주인공의 심리 상태에 개입하는 갖가지 외부 자극을 어떻게 수용하고 저항하며 또는 소화해 내는지가 리드미컬하게 이어진다. 심리적 불안은 신체적 긴장을 동반한다. 신체적 긴장을 이완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원초적인 것은 ‘배설’이다. 대소변을 배설한 직후 편안한 기분이 드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 감정 패턴이다. 레오폴드에게 ‘배설’은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억눌렸던 상처나 감정을 분출하는 카타르시스 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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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8-29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제임스 조이스 할배는 생리학에도 도통했나 보다.
율리시즈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니...!
네 말마따나 지독히 어려우면서도 우스꽝스러운가 보다.ㅋ

cyrus 2015-08-29 20:50   좋아요 0 | URL
<율리시스>가 정말 재미없는 소설인데도 끝까지 참고 읽으면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씩 나와요. 그 장면을 해석하는 것도 재미있고요. 소설이 양파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