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과 행복의 비밀》

(La Paix du Menage, 1830년, <인간 희극> 제1부 풍속 연구의 ‘사생활 장면’에 수록)

 

 

 

 

발자크가 글을 쓰던 19세기 전반의 프랑스 사회는 가장 긴박한 변화의 흐름에 직면해 있었다. 나폴레옹의 등장과 연이은 왕정복고라는 정치적 격변기 속에 귀족 사회는 붕괴하였고, 누구나 글을 읽을 줄 아는 부르주아와 노동자 계층이 등장했다. 이제는 영웅이 아니라 일반대중이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인식이 보편화하였다. 발자크는 당시 급변하는 사회 속의 복잡한 인간상과 환경을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서 <인간 희극>을 구상하게 된다. <인간 희극>은 프랑스 사회 풍속사의 전모를 보여주는 거대한 벽화다. 그래서 발자크의 소설에서 당대 사회에 공유된 대중의 정서를 읽을 수 있다.

 

《사랑과 행복의 비밀》(La Paix du Menage)의 원제는 ‘가정의 평화’다. <인간 희극> 제1부 풍속 연구 중 「사생활 장면」에 수록된 단편소설이다. 발자크의 초창기 작품에 속한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군과 맞선 바그람 전투에 승리하여 유럽 패권을 차지하기 시작한 1809년 이후이다. 이 시기는 나폴레옹의 절정기였다. 소설은 나폴레옹 전성기 시절을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발자크는 귀족들의 화려한 파티가 벌어지는 파리를 ‘완전히 취해버린 제국의 두뇌’라고 표현하면서 사치스러운 향락에 빠진 사회 풍조를 묘사했다. 그리고 군인에 열광하는 여자들의 모습을 '광적인 행동'이라고 썼다. 나폴레옹 전성기에 최고의 신랑감은 군인이었다.

 

군인을 그렇게 매력적인 존재로 만들었던 것은 무엇일까? 일찌감치 혼자 몸이 될 수 있다는 바람이었을까? 죽은 남편이 남겨 놓은 연금이었을까? 아니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는 소망이었을까? 가슴에 숨겨 둔 연정을 전쟁터에 묻겠다는 남자의 강한 의지 때문에, 여자들이 그렇게 군인에게 이끌렸던 것일까? 아니면 한 여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용기라는 매력으로 남자들의 그런 광적인 행동을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런 모든 이유가 복합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과 행복의 비밀》 중에서, 14쪽)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프랑스는 모든 국민이 병역 의무를 지는 국민 개병제를 채택했다. 징병제를 통해 종래의 10배인 200만 명 규모의 상비군을 키워냄으로써 프랑스는 ‘나폴레옹의 영광’을 맛볼 수 있었다.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는 군인에게 훈장과 연금이 지급되었다. 또한, 공을 세운 뒤에 전사한 군인의 가족도 국가가 주는 연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금전적 혜택 덕분에 군인을 선호하는 남자들이 늘어났고, 군인 출신의 귀족들은 상류사회에 당당하게 얼굴을 내밀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일등 신랑감의 조건도 달라졌다. 화려했던 나폴레옹의 시대는 저물고, 부르봉 왕조의 샤를 10세를 향한 민중의 불만이 7월 혁명을 알리는 불씨를 피웠다. 혁명으로 인해 복고 왕정은 무너지고, ‘시민왕’ 루이 필리프를 왕으로 맞이한 7월 왕정이 성립하면서 귀족 세력의 부귀영화는 막을 내렸다. 혁명의 주체인 부르주아, 즉 자본가 계급은 산업 자본주의 시대를 지배하는 기득권층이 되었다. 학력이 높고, 돈 잘 버는 상인자본가들이 일등 신랑감으로 급부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발자크 자신도 귀족이 되기를 원했다. 이 소설에 나오는 귀족들처럼 흥청망청 노는 것을 좋아했다. 책상에 앉아 펜을 잡기 시작하면 상류사회를 냉소하는 작가가 되었지만,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들고 밖으로 나가면 상류 사회에 편입하고 싶은 ‘귀족 발자크’(de Balzac)로 변신했다. 발자크 평전을 쓴 슈테판 츠바이크는 발자크를 돈과 신분을 차지하려고 귀족 미망인을 유혹하는 속물로 묘사했다. 그렇지만 작가의 이중적인 삶은 <인간 희극>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발자크는 《나귀 가죽》(문학동네, 2009)의 서문에서 작가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풍속과 성격에 친숙할 정도로 경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가라면 모름지기 한 권의 책을 쓰기 이전에 모든 성격을 면밀히 분석하고 모든 풍속을 겪어보며 지구 전체를 주유하고 모든 열정을 느껴보아야 한다. 혹은 정념의 나라, 풍속과 성격, 본성에 관한 일과 도덕에 관한 일, 이 모든 것이 그의 생각 속에 들어와야 한다. (《나귀 가죽》 서문 중에서, 17쪽)

 

상류 사회 진출을 노리기 위해서 파리로 몰려오는 젊은이들의 심정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부르주아들이 선호하는 유행문화도 잘 알았다. 《고리오 영감》의 라스티냐크처럼 맨몸으로 파리에 정착하여 성공하고 싶은 젊은이들은 발자크의 소설을 읽었다. 그들은 발자크의 소설에 나오는 세련된 부르주아들처럼 흉내를 냈고,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는 발자크의 비범한 관찰력은 사회의 풍경을 더욱 사실적으로 묘사하게 만들어준 윤활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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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8-09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파상의 벨아미도 그런 인물중 하나죠~ 상류층으로 진입하기 위해 미모를 파는~~ 옴므파탈~

사이러스님~ 계속 발자크로 유혹하고 계세요~~ 😆😆

cyrus 2015-08-10 21:42   좋아요 0 | URL
프랑스 근대문학을 요약하면 ‘스탕달, 발자크 → 플로베르 → 모파상, 에밀 졸라’로 이어져요. 발자크 전 작품을 다 읽으면 플로베르, 모파상, 졸라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요. ^^

stella.K 2015-08-09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내가 호강한다.
그렇지 않아도 발자크란 작가가 궁금했는데 이렇게 친절할 수가...!
작심하고 한 작가의 작품을 몰아서 읽을 줄 아는 네가
부럽기도 하고 기특하다.ㅋ

cyrus 2015-08-10 21:45   좋아요 0 | URL
예전에는 <고리오 영감>만 읽으면 발자크를 다 안다고 착각했어요. 인내심이 언제까지 갈지 잘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전작주의 독서를 해보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