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굴 - 영화 [퇴마 : 무녀굴] 원작 소설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7
신진오 지음 / 황금가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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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만들어 낸 동굴은 거대하고 음습하다. 깊숙한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세월의 깊이와 두께를 실감해 보는 시간 여행이다. 물과 시간이 만나 수만 년을 사랑하며 다투며 빚어낸 형상들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다. 찰나의 즐거움과 힘겨움의 되풀이에 지친 몸과 마음은 잠시나마 경건해지고 서늘해지고 오싹해진다. 동굴은 ‘미지의 세계’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미지의 세계’는 ‘공포’다. 공포는 인간 심리의 원형 중 하나. 어쩌면 수정란 시절부터 유전자 속에 있던 그 무엇일지 모른다. 자궁을 떠나는 신생아의 울음이 첫 공포며 낳고 자라는 중에 우리는 수많은 미지의 세계를 경험한다. 인류는 위협이 닥치면 맞서 싸우거나 도망치든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서 대처하도록 진화해왔다. 우리 신체는 위협을 감지하는 순간 아드레날린이 솟구쳐 혈관 구석구석 퍼져나가면서 심장박동과 호흡이 빨라지고 혈압이 치솟는다. 이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두려움이다. 싸우거나 도망치는 데 적합하게 근육 등 신체의 주요 기관을 준비시키는 과정으로 심리학에서는 이를 투쟁-도피 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이라고 부른다. 공포증(phobia)은 어떤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매우 강력한 비합리적 두려움을 느끼는 증상인데 종류가 다양하다. 동굴 같은 어두컴컴한 공간을 견디지 못하거나 뱀, 거미 같은 특정 동물에 기겁하는 동물 공포증도 있다.

 

 

 

 

 

 

공포영화는 이런 인간의 심리를 자극하는 상술의 극치다. 공포가 결국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하면서 늑대인간이나 흡혈귀, 프랑켄슈타인으로 대치시켰다. 신진오의 첫 장편 공포소설 《무녀굴》을 원작으로 한 영화 <퇴마: 무녀굴>(8월 20일 개봉 예정)은 적어도 형식면에서 꽤 새로운 작품이다. 기존 공포 영화의 법칙에 순응하면서 동굴, 뱀, 무당, 퇴마 등의 소재들로 공포를 유발한다. 소설은 시작부터 독자의 긴장감을 올려준다. 동굴은 알 수 없을 아늑함과 어떤 신비함까지 안겨주는 곳이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면 신비함의 요소인 그 어둠이 공포 요소로 돌변한다. 거기에 인간의 목숨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악귀까지 있다면! 산악자전거 동호회 팀이 김녕사굴에 들어갈 때부터 보는 독자의 신경은 곤두선다. 공포영화의 시작은 항상 이런 장면이다. 등장인물들은 김녕사굴과 관련된 무서운 설화와 소문을 무시한 채 겁 없이 어두운 굴 안으로 들어간다. ‘왜 굳이 저런 곳에 들어가려고 할까’라는 생각과 함께 말리고 싶어진다.

 

뱀은 인간의 생명, 가정, 마을, 그리고 나라의 수호신이다. 사람들이 뱀을 신으로 섬기는 것은 뱀이 공포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공포의 대상을 잘 섬겨야 그가 인간을 해치지 않고, 나아가 인간을 잘 지켜줄 것이라고 옛사람들은 생각했다. 호랑이를 신으로 섬기는 것과 같은 원리다. 《무녀굴》의 배경이자 중심 소재인 제주 김녕사굴에 가면 뱀이 공포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설화를 들을 수 있다. 옛날에 이 동굴에 커다란 뱀이 살고 있었다. 주민들은 이 뱀에게 매년 처녀 한 명씩을 바치며 큰 굿을 하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질병이 돌고 흉년이 들었다. 그런데 양반들은 처녀를 내놓지 않았기에 매년 서민 가정의 처녀만 희생되었다. 조선 중종 때 서련(徐憐)이라는 사람이 판관으로 부임해 왔다. 신임 판관이 굿하는 날 현장으로 갔다. 처녀를 바치고 굿을 하니 과연 큰 뱀이 나타났다. 판관은 뱀을 죽이는 데 성공했다. 심방(제주도 무당)은 판관에게 어서 빨리 관아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였다. 거의 관아에 이르렀을 때 한 군졸이 ‘핏빛 비가 옵니다.’라고 외쳤다. 판관은 군졸이 외치는 소리에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판관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 주민들은 서련의 죽음이 죽은 뱀의 복수라고 생각했다.

 

사굴의 저주는 50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끔찍한 운명의 비밀을 간직한 금주의 목숨을 노린다. 정신과 의사이자 퇴마사 진명이 강력한 영력을 가진 악귀의 위협에 혼자서 맞선다. 깊은 원한이 맺힌 악귀의 눈을 마주치는 순간,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 진명과 금주 일행의 주변 사람들은 악귀의 공격을 받아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고, 결국에 끔찍한 죽음을 맞이한다. 악귀는 여러 사람의 몸에 빙의하여 극단의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아주 영리하면서도, 아주 잔인하다. 악귀의 위협 범위에 벗어나는 안전지대마저도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 진행되고, 이를 지켜보는 독자의 방심을 틈타 악귀는 천천히 다가오다가 갑자기 기습해 온다. 악귀의 등장은 독자의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사실 소설의 플롯은 날씬하지 않다. 뱀 신앙과 무녀 의식을 이해해야 이야기의 급박한 전개를 쫓아갈 수 있다. 진명과 금주가 악귀의 위협을 피하면서 사굴의 저주와 관련된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이 조금 느슨하게 보일 수 있다. 과연 이 전개 과정을 영화에서는 어떻게 그려질 것인가. 독자에게 생소할 수 있는 뱀 신앙과 무녀 의식을 문자로 설명하는 것과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을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독자는 작가나 편집자의 주를 참고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반면에 이미지와 음성으로 이루어진 영상은 워낙에 순식간에 지나가므로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관객들이 저주와 관련된 연결고리들(뱀 신앙, 무녀 의식 여기에 소설의 후반부에 언급되는 제주 4.3 사건까지)을 놓칠 수 있다. 여러 가지 소재가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를 김휘 감독이 어떻게 재현했을지 무척 궁금하면서도 기대된다. 무엇보다도 원작을 본 독자가 제일 많이 기대하는 영화 속 장면이 진명의 퇴마 의식일 것이다. 여기서 진명이 악귀의 저항을 온몸으로 치열하게 막는 장면과 살점이 뜯겨나가고, 선혈에 뒤덮인 희생자들을 묘사한 장면이 압권이다.

 

원작에 진명의 조수가 여성으로 등장하는데, 영화에서는 남자로 등장한다. 이름도 ‘지선’에서 ‘지광’으로 바꿨다. 아마도 주인공들의 성비 불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인물 성별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영화에서 지선이 지광으로 성전환(?)한 것에 환영한다. 원작에서 진명의 여자 조수는 샤워하는 도중에 악귀의 공격을 받아 빙의하게 되는데, 불필요한 클리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포영화에 꼭 한 번씩은 벌거벗은 상태의 여자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영화 속 벌거벗은 여성은 공포의 존재 앞에 두려워하고, 손쉽게 희생당하는 약자가 된다. 여성을 약한 존재로 바라보는 남성의 시각이 투영된 장면을, 그것도 결말을 향해가고 있는 이야기 후반에 나온 것이 생뚱맞게 느껴진다. 작가는 원래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의 꿈이었기에 그의 소설을 읽으면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생생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공포영화의 진부한 기법을 너무 따르는 소설작법이 작가의 발전을 막는 걸림돌로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소설 하나만으로 될성부른 한국 공포문학 작가의 탄생을 확신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신진오 작가의 문학적 행보를 계속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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