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문학의전당 시인선 28
문인수 지음 / 문학의전당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그리움은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게 만드는 마음의 중력이다. 잠시나마 떨어져 있을 땐 기다림이 있고, 그것도 참을 수 없을 때는 어디든지 찾아갈 수 있다. 목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을 땐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전하면 되고, 속삭이는 감정을 편지에 담아 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고 싶어도 기다려도 볼 수 없는, 느낄 수도 없는 사람이 없다면 그리움이란 더욱 애절하다. 특히 어머니는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이다. 문인수 시인의 제2시집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의 대상들을 한자리에 모아 엮은 소중한 창고와 같다. 그것은 진솔하면서도 견고한 서정으로 드러난다.

 

 

먼 수풀은 따뜻하고 부드러워요.

새들은 왜 건너건너 날아가고 있나요.

 

강 건너로 가서 살고 싶어요 어머니.

 

얘야, 내 귓속에 들여다 보아라

 

찬바람 드나드는 갈대숲 말이냐 추운 저

새소리 말이냐 얘야.

 

(「겨울 강변에서」, 13쪽)

 

 

고단한 현실에 저항하는 힘은 ‘어머니’로부터 나온다. 어머니는 자식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젖 먹여 인간 되게 키워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불멸의 힘을 가지고 있다. 여러 편의 시에서 어머니는 좌절과 절망 속에 빠진 시인의 자아를 끌어올려 주고 있다. 그녀의 구원으로 인해 시인의 삶은 살아볼 만하다. 삶의 아픔을 치유할 방법을 모성에서 찾는다.

 

 

  오랜만에 고향엘 다녀왔다.

 

  대구에 가면 이런 거 흔하고 흔합니다 헐하고 헐합니다 하고 말렸으나 어머니는, 나도 많이 늙었다 오래는 더 못 살겠다 하시면서, 무우말랭이며 머위나물 매운 풋고추 같은 걸 자꾸 챙겨 주셨다. 이만큼 전송 나오시다가 또 쫓아들어가 다른 거 한 보퉁이 들고 나오셨다.

  무릎 앞에다가 이것들을 끌려놓고 깊이 냄새를 맡는다 어느덧, 여름밤 천지에 가득하고 그윽한 먼 별 빛,

 

  긴 바람의 젖을 물고 나는...

 

 

(「젖」, 20쪽)

 

 

이 세상 모든 어머니는 아무리 퍼내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 정의 샘물을 가지고 산다. 자식을 위하는 일이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은 열정에 타오르기도 한다. 그런 탓에 혼자 힘으로는 일어설 힘을 잃은 의족이 필요한 자식도 생긴다. 그들은 자신을 지탱해줄 받침목을 잃고서야 넘쳐나는 사랑에 눈을 뜨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가슴 속에 외로움의 잡초만 무수히 키우고 사는 어머니를 보면서도 따뜻한 정감의 눈길 한 번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일을 바쁜 탓으로 돌려 핑계 대고 싶어 한다.

 

고향은 떠나왔기에 그리운 향수의 공간이요,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에 풍요로운 서사의 공간이다. 동시에 언젠가는 죽어서 되돌아가야 할 영혼의 귀착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향은 ‘존재의 집’이다. 시인의 가슴 한구석에는 언제나 마음이 되돌아가 안기는 고향이 있고, 시를 통해 그리움으로 글썽이는 희미한 기억들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가을이 되었네.

담쟁이 이파리들이 뚝 뚝 뚝 듣네.

 

고향에게 미안하네.

 

그동안

사방 헤매었던 길들이 그루터기 쪽으로

내게로 다 흘러들면서

나도 이제 지하수처럼 한 줄기 깊이 흐르네

 

밤 어두울수록 이리 눈물 닿아 좋은 곳.

 

 

(「고향에게 미안하네」, 45쪽)

 

 

 

인류는 오랫동안 두 가지 상반된 꿈을 마음속에 품어 왔다. ‘고향’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꿈과 ‘미지의 세계’를 향해 훌쩍 떠나고자 하는 꿈이 있다. 전자가 없다면 방랑과 방황에 지쳐 길을 잃게 될 것이며, 후자가 없다면 현실에 안주한 채 무기력한 삶을 지속하게 될지도 모른다. 고향과 미지의 세계를 향한 갈망은 우리 삶에 팽팽한 긴장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이 긴장을 잃어버렸다. 삶이 지속하는 한 사유의 항해도 지속하여야 한다.

 

  길이 막히거든 노숙을 해봐라.

 

  달빛 아래

  나무의 낯선낯선 이파리들이 눈앞을 저어 가면서 가장 먼 별들이 귓전으로 가슴으로 스며 내리면서 풀벌레 소리들 번져 에워싸면서

  그대 겨드랑이에다가 하염없이 짜넣는

  그 달빛이 무엇이 되는지

 

  팔 벌리고 누우면 허수아비 같고

  돌아누우면 좀 춥고

  몸 웅크리면 섬같이 되어서

 

  날고 싶을 것이다.

 

  달빛 아래

  그 어디로 길이 열리는지

  먼 타관으로 가서 노숙을 해봐라.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81쪽)

 

 

사유의 항해 끝에는 늘 집, 고향이 있고,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로 돌아간다. 그래서 노숙은 종국에는 회귀의 과정으로 귀결된다. 깊고 따뜻한 대상에의 시선과 쉽고 편한 언어로 맑고 순하게 써내려간 시들은 편편이 흘러내리며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주고 정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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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5-17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즈넉한 일요일 저녁에 가만히 읽을수록 참 좋군요. 시도 님의 리뷰도. 담아갑니다. ^^

cyrus 2015-05-18 22:3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