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연대기 - 현대 물리학이 말하는 시간의 모든 것
애덤 프랭크 지음, 고은주 옮김 / 에이도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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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향해 나는 화살을 쏘았다.
화살은 땅에 떨어졌으나 간 곳을 몰랐다.
너무도 빨리 날아가 버려
눈으로도 그 화살을 따를 수 없었다.

 

(롱펠로우 「화살과 노래」 중에서)

 

 

인간은 살면서 무수한 시간의 화살을 허공에 날리는 숙명을 타고난듯하다. 어떤 화살은 목표물에 접근도 못했고, 어떤 화살은 아직도 날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인간이 재단한 시간의 흐름이 어떤 의미를 지니겠는가. 꽤 오랜 시간을 지난 뒤에서야 태초의 인간이 처음으로 쏜 시간의 화살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가슴 속에 있었다. 대다수 학자들은 “시간을 발견한 것이야말로 인류 최대의 업적”이라고 말한다. 시간의 발견으로 비로소 과학, 철학, 종교가 생겼고 이를 통해 인류는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시간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누구도 알지 못한다. 초기 기독교도들을 시험에 들게 한 문제는 다름 아닌 시간의 창조였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시간 속에서 창조했을까, 아니면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공간과 시간의 모체를 먼저 창조했을까. 여러 세기 동안 지속한 이 논쟁의 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과학자, 철학자들도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그러는 동안에 인간이 그토록 정체를 알고 싶었던 시간은 얄밉게도 계속 흘러만 갔다. 이처럼 시간은 일상성과 더불어 추상성을 함께 갖고 있어서 흥미로우면서도 까다로운 주제이다. 매일 시간 맞춰 일어나고,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며, 약속 시간에 늦었다고 헐레벌떡 뛰어가면서도, 우리가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인간은 우주의 광대한 시간 운행 속에서 작은 생명체로 살아간다. 밤과 낮의 교차에 따라 일하고 쉬고, 거대한 우주적 시간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 우리가 해마다 먹는 이 나이란 것도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을 말한다. 이렇듯 인간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은 일치한다.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우리는 시간과 우주와의 연결고리 속에 살아왔다. 구석기인들은 시간을 거대한 우주 안에서 찾았다. 이때부터 태초 우주의 모습을 묘사한 고대 신화를 통해 우주의 생성과 진화를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우주론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우주론은 우주의 창조와 진화, 미래의 운명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천문학이 대부분의 우주론을 다뤘다. 우주론의 역사는 대부분 천문학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천문학의 등장은 시간의 역사와 거의 같다. 바로 밤과 낮의 구분을 인식하는 순간, 그것이 바로 천문학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도 미스터리한 기계의 정체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으나, 고대 그리스인들이 달과 행성의 움직임을 측정하기 위해 안티키테라 메커니즘을 이용했을 것이라고 고고학자들은 주장한다. 

 

 

우리는 혼돈의 우주에 사는 것이 아니다. 간결한 수식으로 우주의 구조와 물질과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수학적인 ‘조화의 우주’에 살고 있다. 우주(세상)의 근본물질을 탐구한 수많은 그리스 자연철학자들 가운데 정교한 모델을 만드는 데 가장 부합되는 주장이 피타고라스학파다. ‘세상은 수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신념은 지금은 엉뚱해 보일지라도 이 단순하면서도 신비스러운 원리 덕분에 본격적으로 삶의 질서를 분명하게 정해주는 우주론의 틀이 조금씩 만들어져가기 시작했다. 인류는 수와 기하학에 매료되었고, 플라톤도 진짜 현실은 우주 자체가 수학적인 원리로 설계되었다고 인식했다. 이러한 영향의 결과로 달력과 안티키테라 메커니즘이 등장할 수 있었다. 초창기에 나온 달력은 세금 징수 시기나 축제의 시기를 알렸고, 안티키테라 메커니즘은 정밀한 천문시계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중세 암흑시대를 거치면서 천문학은 빛을 발하지 못했다. 16세기가 되어서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나왔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고정불변의 우주모델이었다.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의 연결고리가 잠시 끊어지게 되었고, 우주는 종교로 포섭되었다. 암흑시대는 과학자마저 우주모델을 함부로 논하다가 이단으로 오해받을 수 있었다. 하늘의 주기에 따라 삶을 살았던 패턴은 점점 잊히기 시작하고, 시간의 역할도 미미해져만 갔다. 역설적이게도 우주의 시간을 신의 영역으로 재단했던 종교인들은 우주의 질서에 따른 시간에 맞춰 살았다. 수도승들은 수도원의 성무일과에 따라 하루를 보냈다.

 

“자연과 자연의 법칙은 어둠에 숨겨져 있었네. 신이 말하길, ‘뉴턴이 있어라!’ 그러자 모든 것이 광명이었으니.”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가 만든 뉴턴의 묘비명처럼 신은 어두운 곳에 숨겨진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의 연결고리를 다시 한 번 이어줄 구원자를 이 세상에 보내줬다. 뉴턴은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의 개념에 기반을 둔 고전 물리학을 완성했다. 뉴턴의 등장으로 절대 시간을 지닌 시계가 세상을 변화시켰다. 하지만 뉴턴은 자신을 신이 특별히 임명해준 ‘자연의 대제사장’이라고 여겼다. 그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주인공을 불러들인 이유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완벽한 무대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뉴턴이 직접 짠 우주론의 숨겨진 진짜 주인공은 신이었다.

 

뉴턴의 우주론을 진짜 과학의 무대로 옮겨 새롭게 각색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다. 그가 다시 꾸민 우주론의 무대에 신을 하차시켰고, 대신 다양한 속도와 다양한 체계 속에서 흐르는 시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아인슈타인은 절대성의 권위를 부여한 뉴턴의 발상을 뒤엎고, 절대적 지배구조를 없앴다. 아인슈타인 우주론의 무대에서 시간은 상대적 운행에 따라 좌우된다. 그동안 인류가 세상을 피부로 느끼는 데 있어서 너무나도 생소했던 동시성은 물리학의 핵심이 되었다.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등장으로 시간의 실체에 대한 구체적 접근이 시작된다. 시간도 공간과 동일한 물리적 차원의 하나이며 따라서 시간과 공간은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닌 서로 연결된 차원이라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거대한 우주에서는 절대시간이란 없다. 다만 상대적 시간만 있을 뿐이다.

 

현재 우리가 아는 과학적 지식에 의하면 ‘아무 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폭발로 우주가 생겼다’는 설명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우주의 탄생을 설명하는 빅뱅(Big Bang) 이론에서 빅뱅은 폭죽의 의미다. 밤하늘 불꽃놀이를 볼 때 한 점에서 ‘펑’ 소리와 함께 불꽃이 퍼져 나가듯 우주도 그렇게 생겨났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빅뱅 전에는 무엇이 있었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면 ‘시간과 공간도 없는 진공’이라는 것이 답이다. 하지만 이런 상상은 과학자들이 그렇게 비유해 온 것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 데 불과하다. 빅뱅 이론이 우주에 단 한 가지 공간밖에 존재하지 않음을 가정하고 있을진대 하나의 공간에서 모든 점이 서로에 대해 똑같은 속도로 멀어져 가는 장면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빅뱅의 순간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편의상 그렇게 상상해왔을 뿐이다. 시간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한 여러 가지 우주론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후예들은 지금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의 연결고리를 계속 찾는 중이다.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의 연결고리는 아주 가깝고도 먼 우리 안의 원초적 본능이다. 고대인들은 시간의 큰 단위에 관심을 가지고 삶을 넓은 시야로 바라보았던 반면, 우리는 시간의 작은 단위인 분과 초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늘 무언가에 쫓기느라 삶을 충분히 느끼지도 못하고, 그것에 적응할 준비만 하다가 어영부영 세월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서두르느라 사랑이나 기다림, 신뢰, 결속 같은 소중한 가치들을 희생시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만날 달고 사는 시간이 무엇이며 언제부터 또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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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2-27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도이야기라는 책에서 크로노미터에 반했었죠. 시간이란게 참 신기해요. 정말로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단지 개념같기도 하고 말이죠.

cyrus 2015-03-01 09:4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시간 개념이 발견되는 과정의 역사를 보면 대단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