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법정 「무소유」 중에서, 26쪽)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나오는 문장이다. 스님이 난초를 가꾸는 일은 집착임을 깨닫고 나서 무소유의 의미를 터득하여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을 다짐하는 대목이다. 새벽에 오랜만에 「무소유」를 읽으면서 새롭게 발견했다. 흔히 독자들은 「무소유」의 마지막 문단에 나오는 문장을 스님이 설파하는 무소유의 의미라고 받아들인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법정 「무소유」 중에서, 임의 발췌, 27쪽)

 

 

소유욕은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불편한 안대이다. 삶이 안정되고, 윤택할수록 투명한 안대를 쉽게 벗지 못한다. 소유욕이라는 안대 때문에 내 눈앞에 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싶어진다. 상대방이 가지고 싶은 걸 가져야 나와 상대방은 동등한 위치에 있고, 반면에 가지지 못한다면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다. 소유하게 되면 상대방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남들이 갖지 못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행위를 공개하면서 자랑한다. 소유하는 물건을 사진으로 찍고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함으로써 소유하는 행위 자체를 인정받는다. 그런데 우리는 소유욕이 많아지자 소유하는 행위를 상대방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상황에 집착한다. 상대방은 당신이 어떤 것을 가졌는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또 소유욕을 지나치게 인증사진으로 과시하는 당신의 행동은 누군가가 모방한다. 어떤 사람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소유하지 않는다면 그걸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고, 끝내 소유하고 만다. 만약에 소유하지 못한다면 상실감에 빠지게 되며 당신의 소유욕을 질투한다. 암세포가 증식하듯이 한 사람의 소유욕은 더 큰 소유욕으로 커진다. 심지어 당신의 소유욕은 서로 만나지 않은 상대방의 마음에 깊숙이 침투하기도 한다.

 

스님은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인용하면서 소유욕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간디는 소유를 범죄처럼 생각했다. 한정된 물건을 둘러싸고 모든 사람이 경쟁하게 되고, 상대방을 제거하려고 비열한 수단까지 동원한다. 한 사람이 포기하거나 사라져야만 원하는 물건을 소유할 수 있다. 소유 경쟁의 대열에 밀려 이탈하면 소유의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스스로 포기하면 된다. 그런데 소유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되는 결핍을 견디지 못해 소유하는 척하기 시작한다.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는 ‘짝퉁’을 소유하는 것을 마다치 않는다. 심지어 상대방의 소유욕을 인증하는 사진이나 기록마저 도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영화 <화차> 같은 내용이 가상현실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유명인이나 상대방의 소유욕에 질투하거나 갈망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사칭 행각은 범죄 행각이 될 수 있다. ‘SNS 사칭 현상’은 성공 가치를 좇는 현대인들의 욕구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자기 소유의 과욕을 범죄처럼 여기지 않는 왜곡된 소유 관념이 소유하는 행위로 속이는 범죄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SNS가 타인에게 ‘나의 소유욕 혹은 소유 상태’를 공개하는 공간이다 보니 남들에게 ‘보여주기’ 식 글을 올리다 보니 마냥 좋아 보이고, 소유욕을 분출하지 못하는 현실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자신의 삶으로 이입한다.
 
어디 물건만 소유하고 싶어 하는가. 이제는 사람도 소유하려 든다. 스님은 「무소유」에서 이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무소유」는 1971년에 쓰인 글임에도 불구하고, 점점 넘쳐나는 소유욕을 조절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집착을 제대로 지적한다. SNS은 남들에게 나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줄수록 활성화되는 가상공간이다. 그래서 SNS상에 나를 바라보는 친구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한 번도 대면하지 않은 사람도 SNS에서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들과의 교류 횟수가 많을수록 수많은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지만, 자신의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상대방의 정보도 쉽게 노출된다. 과도한 정보는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그런데도 100명, 1000명이 넘을 정도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마저 친구가 된다. 하루에 마우스 클릭 한 번 하면 친구 여러 명을 ‘소유’할 수 있다. 자신이 ‘소유’한 친구들의 명단을 공개함으로써 인맥 관계를 과시한다. 사람을 친구라는 이름으로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편안하고 흡족한 기분이 든다. 물건을 소유하기 위해선 상대방과 싸워야 하지만, SNS 친구를 소유하는 데 상대방과 다투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SNS 안에는 수만 명의 사람이 동시에 접속하므로 조금만 마음이 맞거나 말이 통하면 간단하게 친구를 맺는다.

 

소유 관념은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는 사실을 절대로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아무리 1000명의 SNS 친구를 소유하면 그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지나치게 관심을 끌게 되고, 자신의 분수를 잊은 채 소유욕을 분출한다. 친구가 아니라 원수가 된다. 마음껏 물건을 소유하는 친구의 삶을 부러워하고, 어느새 심각한 질투심으로 변질된다. 사소한 질투심은 관계를 파괴하는 범죄를 유발한다. 한 소녀는 SNS상 친구의 대학 수시 합격 소식을 접하고 이에 질투심을 느껴 해당 친구의 개인 정보를 몰래 수집하여 해당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입학 취소를 시킨 사건이 있었다. 두 사람은 3년 전에 싸이월드에서 처음 만났고, 서로 만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아무리 우리가 100세까지 살 수 있어도 한 번으로 주어진 인생은 빈손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너무나도 많은데 소유욕의 안대를 오래 쓰다보면 육신이 병든다. SNS에 접속하면 우리들의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넘치는데도 자꾸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이럴수록 집착은 심해지고, 우울한 분위기에 빠지기 쉽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꼴이다. 법정 스님은 크게 버릴수록 크게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스님처럼 외부 환경에 신경 쓰지 않을 용기가 있고, 정신적 자세가 올곧지 않는 이상, 집착을 야기하는 소유욕을 말끔히 비워내기 힘들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스님처럼 크게 버리는 사람이 될 수 없다. 하지만 하루 한 가지씩 버리는 것은 쉽다. 하루에 스팸메일이 몇 십 통씩 들어오는 이메일을 생각해보라. 하루에 받는 메일을 휴지통에 바로 버리면 메일함은 깨끗한 상태로 유지된다. 반면 하루에 들어오는 메일만 확인하고, 휴지통에 버리지 않으면 무수히 많은 메일이 남는다. 오늘 경험해 봐서 느낀건데 거의 2년 동안 메일함을 비우지 않으면 메일을 삭제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결국 크게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내 머릿속에 지배하는 소유욕이 어떤 게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면서 버려야 할 것을 정해본다. 하루에 한 가지 혹은 두세 가지도 괜찮다. 일단 매일 조금이나마 소유욕을 줄여보자. 나는 작년부터 지금까지 페이스북 계정에 있는 친구를 한 명씩 친구 관계를 끊고 있다. 지금 페이스북 친구 수는 10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사실 50명 넘은 수도 많다. 이 중에 절반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 죽을 때까지 책 소유욕을 줄이는 것은 힘들겠지만, 평생 만날 진짜 친구를 위해서 영혼 없는 친구들을 과감하게 보내기로 한다. 그러면 소유욕을 자극하는 환경을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들이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억지로 들이대는 것은 시간 낭비다. 일단 가까이 다가와 보고, 상대방이 나에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그냥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게 낫다.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 정도로 잘못한 행동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내가 먼저 친구 관계를 끊는 행위에 양해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 그 사람을 미워서 헤어지는 것이 아니잖은가. 서로 관계가 소원해지니까 어색해서 헤어지는 것이다. 서로 만나지 않고, 상대방의 안부에 관심이 없다면 ‘친구’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소유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내가 없어도 나보다 좋은 사람들 잘 만나 잘 살 수 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 이곳 북플의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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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02-25 0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마나 하나씩 버리기` 읽고는 실천하고 있어요. 옷, 신발, 가방, 화장품, 학용품, 그릇... 무궁무진합니다.
북플의 친구도 고민할 문제! 자칫 글이 많아 절친(?)의 글을 읽지 못하고 넘어갈때가 있어요.
야근이 많으시군요. 이런!

cyrus 2015-02-25 20:08   좋아요 0 | URL
북플로 만난 분들은 `이웃`이라고 표현해요. 사실 `친구`라고 부르기에는 상대방을 잘 모르는 점이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웃님들이 선호하는 책들을 확인하고, 왠만하면 이웃님의 글을 읽으려고 합니다. 제 독서 편력이 좁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