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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과자 - 나는 한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꿈꾼다
김규흔 지음 / Mid(엠아이디)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최근 들어 외국산 과자 판매점들을 찾아볼 수 있다. 과자점 내부에는 잘 정리된 다양한 수입 과자들이 진열장을 가득 채워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미국과 일본, 대만 등에서 생산된 과자와 젤리, 사탕은 한국 과자보다 가격이 싸고 종류가 다양하다. 수입 과자는 더 이상 해외여행 길에 친구와 가족들에게 주려고 사오는 선물이 아니라 흔한 간식거리가 되었다. 수입 과자 전문점이 늘어난 데에는 국산 과자가 ‘질소 과자’라는 안 좋은 인식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국산 과자는 그 값에 비해 용량은 터무니없이 적다는 것. 깐깐한 소비자는 수입 과자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런 탓에 수입 과자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수입 과자의 인기와 더불어 안전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일부 판매점은 국내 허가가 안 된 제품들을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않은 채 수입해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이런 제품들은 한글표시사항이 기재되어 있지 않아 유통기한을 알 수 없고 사고에 대해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 하지만 현재 수입 과자 중에는 한글이 표시되지 않은 채 버젓이 팔리고 있으며, 유통기한은 찾아볼 수 없다. 문제는 아이들이 식중독이나 알레르기 등 위험요인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질소를 사면 과자가 서비스로 받는 요즘 국내산 과자와 맛은 좋으나 왠지 먹기가 찝찝한 수입 과자. 만약에 당신은 어떤 과자를 선택할 것인가. 꼭 하나만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식욕이 앞서는 당신의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해주는 좋은 과자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한 과자’에 대한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놀랍게도 조상님들은 삼국시대부터 ‘안전한 과자’가 먹으면서 살았다. 그 과자가 바로 전통 한과다. 전통 한과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 요즘은 명절이나 제사 때 상에 오르는 정도로만 인식되었을 뿐이지 서양과자가 나오기 전만 해도 한과는 제사·혼례 등 집안 대소사의 상차림에 필수 품목으로 오르던 음식이자, 남녀노소 즐겨 먹었던 귀한 간식거리였다.
한과는 명절이면 비싸지는 다른 선물에 비해 가격변동도 적고 값도 적당한 데다 품격 또한 떨어지지 않는 편이다. 또 화학첨가물을 사용하지 않는 건강식품이라 먹는 이도 기분이 좋다. 주재료는 찹쌀, 쌀, 밀가루, 콩가루 등의 곡물과 꿀, 잣, 깨, 호두, 밤, 대추 등이 주를 이뤄 다른 과자에 비해 영양 면에서 우수하다. 장점이 많은 한과가 서양과자에 밀리게 된 요인 중 하나는 다른 음식에 비해 가장 손이 많이 간다는 점이다. 한과를 만드는 과정은 자식들을 위한 어머니의 정성이 아니면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된 작업이다. 예컨대, 찹쌀을 삭혀서 치고 말리는 과정, 말린 찹쌀을 기름에서 불어내는 과정 그리고 엿기름이나 떡으로 버무리는 과정 등을 거친다.
그런데 단점을 장점으로 잘 바꾼다면 한과도 서양과자 앞에 절대로 꿀리지 않는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 만큼 한과는 재료와 만드는 법에 따라 그 종류가 상당히 많다. 기본적인 한과의 종류만 해도 유밀과·정과·숙실과·다식·과편·엿강정 등이 있다. 지나치게 달고 화려한 데커레이션이 있는 서양과자에 익숙한 아이들은 무언가 2% 부족하게 느껴지는 한과의 담백한 맛에 실망한다. 그렇지만 한과의 진정한 맛은 정갈하면서도 지나치게 과하지 않은 고소함과 달콤함의 조화이다. 한과를 서늘한 곳이나 냉동 보관해서 오래 두고 먹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김규흔 대표가 만든 한과작품 '일월오봉도' (284쪽)
한 때 국민과자급 사랑을 받았던 한과는 이제 새로운 기회를 맞았다.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현대인들의 관심이 날로 커지면서, 전통 한과의 발전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특히 전통 한과 명인이자 신궁전통한과 김규흔 대표는 전통 한과를 대중화시키는데 누구보다 더 앞장서고 있다. 전통 한과가 외국에서 온 초콜릿의 파상공세를 받자 그는 발상을 전환, 초콜릿을 입힌 ‘초코유과’를 개발했다. 과거의 한과 업체는 영세한 수공업적 생산방식을 택했거나 효율적인 경영·마케팅 능력이 부족해서 한과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었다. 김 대표는 고객들의 변화하는 욕구를 읽었다. 아무리 전통 한과가 건강에 좋은 식품이라고 홍보해도 젊은 고객층은 찾지 않는다. 김 대표는 그들이 먼저 한과를 찾도록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최근 세계 시장 공략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현재 목표는 한과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올리는 것이다.
우리가 전통 한과를 많이 찾는다면 여러 가지 이점이 생긴다. 일단 한과가 건강식품으로서 뛰어난 가치가 있다는 것은 이미 증명했다. 부드러운 다식부터 아작아작 씹히는 강정에 이르기까지 한과가 주는 다양한 씹는 질감은 성장기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들의 건강한 턱 근육 형성에 도움을 준다. 많이 씹을수록 턱 근육의 자극으로 인해 대뇌피질에 전달돼 두뇌를 활성화한다. 유과는 찹쌀을 천연 발효시켜 만들어 김치나 된장같이 소화를 돕는 효소를 가지고 있어 위나 장의 기능을 돕는다. 칼로리가 낮기 때문에 다이어트 식품으로 적당하다.
몸에 좋고 우수한 건강식품이라는 인식이 확산한다면 한과 제조업이 활발해진다. 100% 농산물에 의존하는 한과의 특성상, 관련 농산물 계약재배 농가의 소득 안정성이 확보되는 효과가 있다. 한과 생산에 더없이 좋은 기반이 많아져야 제2, 제3의 김규흔이 나올 수 있고, 수많은 한과 제조법이 잊히지 않고 오랫동안 전해진다. 전통 한과 만들기가 무척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만으로 한과 제조를 무시하거나 세계 시장 진출의 꿈을 허무맹랑한 사업으로 보면 안 된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서양과자 마카롱은 만드는 재료와 방법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면서도 숙련된 수작업이 필요할 정도로 만드는 방법이 간단하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마카롱은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김 대표가 마카롱의 성공 사례를 교훈 삼아서 열심히 준비한다면 한과도 전통 먹을거리의 맥을 잇는 동시에 외국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한과는 옛 추억의 음식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음식으로의 자리매김을 꿈꾸고 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몰래 감춰 두었다가 어디선가 하나씩 꺼내주던 한과의 달보드레한 맛. 생각만 해도 담백하고 고소한 한과의 맛이 혀 전체를 휘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