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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 - 중국 최고 석학 장치청 교수의 건강 고전 명강의 ㅣ 장치청의 중국 고전 강해
장치청 지음, 오수현 옮김, 정창현 감수 / 판미동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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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과 캡슐을 이용해 환자의 병변을 찾아 수술하는 기법이 등장하는 등 서양 의학의 발전이 눈부신데도 아직도 한방 치료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과학 시대가 전개되고 있는데도 한의학을 찾는 사람이 많은 첫째 이유는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기반으로 하는 서양 의학의 효과에 한계를 느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인체의 기능 현상을 연구하는 한의학을 대안으로 찾기 때문이다. 둘째는 마취 수술로 인한 부작용, 특정 약물의 내성 축적 부작용에 의한 피해를 두려워하고 거부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스트레스와 환경호르몬 식품첨가물 농약 등 각종 인공 유해물질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 자연 친화적인 한의학을 찾는 것이다. 서양 의학은 해부학적 생리학 개념에 따라 인체를 연구한다. 이에 비해 한의학은 기의 흐름과 조화를 중시한다.
총체적인 한의학 이론인 ‘소문’과 침구학의 비조로 꼽히는 ‘영추’로 구성된 황제내경은 천지자연의 기와 인체의 기의 조화를 모색하는 한의학 최고의 고전이다. 질병을 치료하는 것 못지않게 병이 들지 않게 하는 양생을 최고 목표로 삼는다. 황제라는 이름이 책 이름에 보이듯, 안의 내용이 대체로 황제와 그의 스승들의 문답 형식을 띠고 있다. 내경이라는 말은 생명의 핵심 또는 의학의 핵심을 담은 경전이라는 뜻이다. 사람은 정(精), 기(氣), 신(神)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싱명을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기와 신은 에너지적인 생명력을 말하며, 정은 인간의 생명력이 구현된 형체를 구성하는 물질적인 요소다. 정신기는 따로따로가 아니다. 인위적인 나눔일 뿐 상호의존적인 관계에서 성립된다.
한의학에서는 인간을 소우주라고 한다. 즉,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여 인간의 생체리듬도 변화해 간다는 것이다. 자연의 흐름 중 가장 주기적이고 구체적인 것이 계절의 변화와 낮과 밤의 순환이다. 음양오행 이론도 여기에서 나온다. 한마디로 음양이란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다. 하늘은 양이고, 땅은 음이다. 낮은 양이고, 밤은 음이다. 남자는 양이요, 여자는 음이다. 기(氣)는 양이요 혈(血)은 음이다. 이렇게 어떤 사물이든 간에 상대적으로 우주 간에 존재하며 여기에서 또 음과 양의 양면으로 나누어진다. 우주 만물이 음양과 오행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 음양오행의 상대성에서 서로가 균형을 유지하지 못할 때 우주 만물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며 소우주인 우리 인체에는 질병이 생긴다. 옛날에는 계절과 주야의 변화에 인간은 직접 영향을 받았기에, 자연 변화에 순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문명화된 오늘날은 계절 변화에 대한 순응은 많이 퇴색됐다. 하지만 거대한 우주의 변화 속에 인간은 반드시 영향을 받게 돼 있어 이를 따라가지 않을 경우 현대적 계절병이 발생하게 된다.
황제내경에서는 ‘춘하양양, 추동양음(春夏養陽 秋冬養陰)’이라는 말이 있다. 이 구절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봄과 여름에 양기를 돕는다면 가을과 겨울에 음기를 돕는다는 뜻이라고 본다. 반대로 해석하는 입장은 봄과 여름에 양기를, 가을과 겨울에 음기를 억제한다고 말한다. 결국, 이 말은 자신의 체질에 맞는 양생법을 선택하여 계절의 변화에 순응해 살 것을 강조한다. 봄은 만물이 위로 솟아 자라나는 따뜻한 계절이고, 여름은 꽃을 피워 영화를 누리는 뜨거운 계절이다. 가을은 결실을 보고 식물의 진액이 뿌리로 내려가 모이는 계절이고, 겨울은 뿌리에 응집되어 봄날을 기약하는 추운 계절이다. 각 계절에 맞춘 것이 한의학 양생의 기본 이론이다.
올바른 양생을 위해서는 사계절의 기후와 주위 환경만 맞추는 것이 아니다. 정신수련, 음식과 기거의 조절도 중시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이 생체 리듬이다. 리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음악에서도 리듬이 중요하지만, 건강을 유지하려면 리듬을 타야 한다. 인체는 스위치를 누르면 언제나 똑같이 작동하는 기계가 아니다. 여러 악기의 음이 조화를 이루듯 각 장기가 서로 협응하고, 리듬을 유지해야 건강이 확보될 수 있다.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급격하게 변하고, 식사 시간이 들쭉날쭉해지면 생체 리듬이 흔들린다.
병이 나지 않게 미리 막고 천수를 누리게 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변화에 맞춘 생활을 하는 것이다. 황제내경에 여름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며, 겨울엔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계절별로 잠자는 시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해가 뜨면 양기가 충만해져 활동하는데 알맞고, 해가 떨어지면 음기가 강해져 몸의 움직임을 줄이고 휴식을 취하는 게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계절별 수면 리듬의 변화는 눈부신 조명 불빛과 스마트폰이란 문명의 혜택을 받기 전엔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해지고 두 세 시간 정도 있으면 자고, 먼동이 틀 때 즈음에 일어나는 것이 일상적인 생활 리듬이었다. 자연과 인간 또한 우주 삼라만상과의 원활하고 조화로운 심신 생활을 통해서 건강을 지키는 것이 황제내경의 양생법이다. 자연의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한의학은 또 장부의 작동 원리인 물질의 속성을 목, 화, 토, 금, 수 등 5가지 오행으로 구분하고 서로 돕는 상생과 서로 대립하는 상극으로 나눠 질병의 발생을 이해한다. 또 칠정(七情)을 인간의 기본 감정으로 규정하고 정신 상태에 따른 질환의 발생을 설명한다. 모든 병은 막혀서 온다고도 했다. 무형의 생명력이 유형의 조직체에 잘 출입하면 정상, 출입이 잘 안 되면 병, 영 출입을 못할 정도로 막혀서 빠져 나가버리면 죽음이다. 막히는 원인을 찾아보면 다치는 것 말고는 기후, 음식, 기거, 마음뿐이다. 그래서 같은 병이라 해도 원인을 잘 살펴서 치료를 다르게 해야 한다. 따라서 한의학은 일관된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학문적 특성을 내재하고 있음에도 서양 의학이 해부학적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질환의 원인을 파악하고 진단 치료하는 데 여전히 유용한 이점을 안고 있다.
황제내경을 이해한다면 인간의 몸이 자연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사람이 자연과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을 둘러싼 여러 가지 조건을 우리는 환경이라고 표현하지만, 자연과 사람이 하나라는 측면에서 볼 때 서로 어우러진 상태일 뿐이다.
오늘날에는 의식주의 수준은 높아졌지만 정신이 복잡해졌다. 그래서 마음으로 인한 병이 많다. 스트레스로 인해서 생기는 병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며 알아도 평소에 원인을 제거하거나 증상을 해소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천 년 전 한의학의 원전인 황제내경 소문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염담무욕, 합동어도(恬淡無欲, 合同於道).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운다면 우주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뜻이. 우주와 일체되는 궁극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몸을 해롭게 하는 것을 피하고 마음을 편안하고 담담하게 해서 잡념을 비우고 없애면 생명력이 온몸에 꽉 차서 지켜줄 것이니 병이 생길 수가 없다. 이렇게 몸을 보전하는 바른 생활을 강조하면 삶이 단조롭게 되고 재미가 없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건강을 잃은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건강을 잃으면 몸과 마음이 고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