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나온 러브크래프트 전집(총 4권)은 출판사 혹은 역자가 정한 작품성의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1권은 러브크래트프를 처음 읽는 독자들을 위해서 가장 핵심적인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데이곤」 「니알라토텝」 「크툴루의 부름」 「네크로노미콘의 역사」 「인스머스의 그림자」 등) 2권은 러브크래프트의 후기 대표작들, 3권은 환상소설  그리고 4권은 주제를 분류하기 어려운 다양한 작품들로 수록되었다. 4권에 수록된 작품 수가 다른 책에 비해 많다.

 

2, 3권도 훌륭한 러브크래프트의 대표작들이 한 권당 두 편 이상 들어 있다. 각 권에 수록된 대표작들을 꼽아보면 2권의 「우주에서 온 색채」 「광기의 산맥」 , 3권의 「랜돌프 카터의 진술」 「미지의 카다스를 향한 몽환의 추적」 「찰스 덱스터 워드의 사례」가 있다. 이런 구성 때문에 4권은 앞에 나온 책들에 비해 국내 독자들의 반응이 미미하다. 짧은 분량 위주의 소설들이 많은 데다가 늦게 출간되는 바람에 이미 1, 2권을 읽은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그렇다면 외면받은 4권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은 없을까? 전집을 읽기 시작하기 전에 나름 고민을 해본 결과, 집필 연도순으로 읽어보기로 했다. 위키피디아를 참고하면서 전집에 있는 모든 작품들을 집필 연도순으로 정리했다. 러브크래프트는 초기 때 쓴 작품을 몇 년 지나서 《위어드 테일즈》과 같은 잡지에 발표했다. 발표 연도순으로 정리하면 작품 목록 계보가 무척 복잡해진다. 분류 작업을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분류 기준을 집필 연도로 정했다. 의외로 4권에 수록된 작품 대다수가 러브크래트프의 초기작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1권에 수록된 「누가 블레이크를 죽였는가」는 러브크래프트가 죽기 한 달 전에 발표한 최후의 작품이다.

 

 

 

 

 

 

 

나처럼 이렇게 읽었다고 해서 누구나 다 만족스러운 러브크래프트 독서를 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 않는다. 총 4권의 책을 이 작품 저 작품 번갈아가면서 읽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다. 특히 전집 세트를 사지 않은 독자들은 이런 시도를 할 수가 없다. 이런 독서법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냥 별종 책덕후의 등신 같지만 멋있는 독서로 생각했으면 한다. 이 방법보다는 4권을 먼저 읽고 나머지는 차례대로 읽는 것이 낫다. 4권을 먼저 읽어도 1, 2, 3권에 있는 작품들의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 다만, 4권은 작품이 시작하기 전에 역자가 정리한 ‘작가 노트’가 없으므로 러브크래프트 독서를 처음 시작하는 독자가 4권을 먼저 읽으면 크툴루나 네크로노미콘의 실체 등을 자세하게 이해하는 데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고음 비올와 알토 비올

(사진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비올라 연주 자세

(사진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마지막으로 러브크래프트 전집에 있는 오역과 교정이 필요한 문장을 지적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겠다. 1권에 있는 「에리히 잔의 선율」에서 악마의 힘에 사로잡힌 에리히 잔을 바이올린 연주자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원문에서 에리히 잔은 비올(viol)이라는 현악기의 연주자다. 「에리히 잔의 선율」은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일곱 번째 책인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현대문학, 2014년)에도 수록되어 있는데(제목은 ‘에리히 잔의 연주’) 여기서는 원문 그대로 비올 연주자로 올바르게 번역했다.

 

 

 

 

 

 

 

 

 

 

 

 

 

 

 

비올은 바이올린보다 앞선 시기에 나온 오래된 현악기인데 비올라(viola)와 다르다. 비올은 바이올린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콘트라베이스나 첼로처럼 옆으로 세워서 연주한다. 반면에 비올라 연주 방법은 바이올린과 비슷하다. 역자는 원문에 있는 ‘viol’을 바이올린과 비슷한 ‘viola’로 착각했을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악기의 역사 하나, 비올은 바이올린의 등장으로 악기로서의 역할이 잊혀진 악기다. 둘, 비올라는 바이올린과 함께 등장했다.

 

4권의 「사냥개」에 있는 문장이다. 계속 읽을수록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내가 읽은 책은 올해 찍은 1판 5쇄이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의 고독한 집은 우리가 짐작할 수 없는 특질을 지닌 악의 품은 존재의 더불어 살았다. (286~287쪽)

 

 

 

 

- 작품 목록 (참고도서: 황금가지 판본. 집필 연도순으로 정리했고, ‘Writ’는 ‘Date Written'의 줄임말이다. 작품명 앞에 있는 숫자는 전집 권수)

 

4 동굴 속의 짐승 ※ The Beast in the Cave (Writ 1904~1905년)
4 연금술사 ※ The Alchemist (Writ 1908년)
4 무덤 ※ The Tomb (Writ 1917년)
1 데이곤 ※ Dagon (Writ 1917년)
4 새뮤얼 존슨 박사를 회상하며
※ A Reminiscence of Dr. Samuel Johnson (Writ 1917년)
3 북극성 ※ Polaris (Writ 1918년)
3 잠의 장벽 너머 ※ Beyond the Wall of Sleep (Writ 1919년)
4 기억 ※ Memory (Writ 1919년)
4 올드 벅스 ※ (Writ 1919년)
4 후안 로메로의 전이 ※ The Transition of Juan Romero (Writ 1919년)
4 화이트 호 ※ The White Ship (Writ 1919년)
4 사나스에 찾아온 운명 ※ The Doom that Came to Sarnath (Writ 1919년)
3 랜돌프 카터의 진술 ※ The Statement of Randolph Carter (Writ 1919년)
4 거리 ※ The Street (Writ 1919년)
4 무서운 노인 ※ The Terrible Old Man (Writ 1920년)
3 울타르의 고양이 ※ The Cats of Ulthar (Writ 1920년)
4 올리브 나무 ※ The Tree (Writ 1920년)
4 셀레파이스 ※ Celephaïs (Writ 1920년)
2 저 너머에서 ※ From Beyond (Writ 1920년)
4 신전 ※ The Temple (Writ 1920년)
1 니알라토텝 ※ Nyarlathotep (Writ 1920년)
1 그 집에 있는 그림 ※ The Picture in the House (Writ 1920년)
4 고(故) 아서 저민과 그 가족에 관한 사실
※ Facts Concerning the Late Arthur Jermyn and His Family (Writ 1920년)
4 이름 없는 도시 ※ The Nameless City (Writ 1921년)
4 이라논의 열망 ※ The Quest of Iranon (Writ 1921년)
4 달의 습지 ※ The Moon-Bog (Writ 1921년)
4 망각으로부터 ※ Ex Oblivione (Writ 1920~1921년)
4 또 다른 신들 ※ The Other Gods (Writ 1921년)
4 아웃사이더 ※ The Outsider (Writ 1921년)
1 에리히 잔의 선율 ※ The Music of Erich Zann (Writ 1921년)
3 히프노스 ※ Hypnos (Writ 1922년)
4 달이 가져온 것 ※ What the Moon Brings (Writ 1922년)
4 아자토스 ※ Azathoth (Writ 1922년)
1 허버트 웨스트-리애니메이터 ※ Herbert West–Reanimator (Writ 1921~1922년)
4 사냥개 ※ The Hound (Writ 1922년)
4 잠재된 공포 ※ The Lurking Fear (Writ 1922년)
1 벽속의 쥐 ※ The Rats in the Walls (Writ 1923년)
4 형언 할 수 없는 것 ※ The Unnamable (Writ 1923년)
4 축제 ※ The Festival (Writ 1923년)
2 금단의 저택 ※ The Shunned House (Writ 1924년)
4 레드 훅의 공포 ※ The Horror at Red Hook (Writ 1925년)
4 그 ※ He (Writ 1925년)
4 시체 안치소에서 ※ In the Vault (Writ 1925년)
2 냉기 ※ Cool Air (Writ 1926년)
1 크툴루의 부름 ※ The Call of Cthulhu (Writ 1926년)
1 픽맨의 모델 ※ Pickman's Model (Writ 1926년)
4 안개 속 절벽의 기묘한 집 ※ The Strange High House in the Mist (Writ 1926년)
3 실버 키 ※ The Silver Key (Writ 1926년)
3 미지의 카다스를 향한 몽환의 추적
※ The Dream-Quest of Unknown Kadath (Writ 1926~1927년)
3 찰스 덱스터 워드의 사례 ※ The Case of Charles Dexter Ward (Writ 1927년)
2 우주에서 온 색채 ※ The Colour Out of Space (Writ 1927년)
4 후손 ※ The Descendant (Writ 1927년)
4 토박이들 ※ The Very Old Folk (Writ 1927년)
1 네크로노미콘의 역사 ※ History of the Necronomicon (Writ 1927년)
1 더니치 호러 ※ The Dunwich Horror (Writ 1928년)
4 이비드 ※ Ibid (Writ 1928년)
3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 ※ The Whisperer in Darkness (Writ 1930년)
2 광기의 산맥 ※ At the Mountains of Madness (Writ 1931년)
1 인스머스의 그림자 ※ The Shadow Over Innsmouth (Writ 1931년)
4 위치 하우스에서의 꿈 ※ The Dreams in the Witch House (Writ 1932년)
3 실버 키의 관문을 지나서
※ Through the Gates of the Silver Key (Writ 1932~1933년)
1 현관 앞에 있는 것 ※ The Thing on the Doorstep (Writ 1933년)
4 어떤 책 ※ The Book (Writ 1933년)
4 사악한 성직자 ※ The Evil Clergyman (Writ 1933년)
2 시간의 그림자 ※ The Shadow Out of Time (Writ 1934~1935년)
1 누가 블레이크를 죽였는가 ※ The Haunter of the Dark (Writ 1935년)

 

 

 


댓글(9)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라디바 2014-12-02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저도 전집이 다 있는데 단편마다 호불호가 좀 갈리더군요~ 이런 친절한 안내 감사합니다. 처음 에리히 잔의 선율을 읽었을 때의 공포가 떠오르네요. 우주적 공포. 아무 것도 아닌 심연에 대한 두려움에 소름이.

cyrus 2014-12-02 13:48   좋아요 0 | URL
제가 처음에 1권만 구입해서 읽었을 땐 정말 흥미진진했어요. ‘에리히 잔의 선율’도 인상 깊었고요. 도서정가제 도입 전날에 반값할인으로 전집 세트를 장만했어요. 전집 세트로 구입해야 4권까지 독서의 흐름이 안 끊으면서 쭉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cyrus 2014-12-02 14:05   좋아요 0 | URL
아! 그리고 러브크래프트 외전편 5, 6권도 곧 나온답니다. 러브크래프트의 습작이랑 러브크래프트에 영향을 준 작가들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더군요. 이번 주에 출간될 거라고 출판사 페이스북에서 확인했는데, 조금 늦네요.

보슬비 2014-12-02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러브크래프트를 읽는다면 cyrus님께서 알려주시는 방법대로 따라하고 싶어요. ^^

cyrus 2014-12-02 21:27   좋아요 0 | URL
꼭 전집 세트로 읽으셔야 합니다. 한 번 읽으면 계속 읽고 싶어져서 재미있습니다. ^^

그라디바 2014-12-02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5,6권이라니. 기대됩니다! 그나저나 반값에 풀렸었다니 초큼 슬프네요 ㅋㅋ

cyrus 2014-12-02 21:29   좋아요 0 | URL
저는 도서정가제 반값할인 때 책을 많이 사지 않았어요. 정말 꼭 사야할 책이 있으면 살 생각이었는데 마침 러브크래프트 전집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탁월한 구입인 것 같습니다. ^^

보슬비 2016-07-11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읽고 있는데, 2년이 지나서 최근 20쇄판을 구입해서인지 `바이올린`이 `비올`로 번역되었어요. cyrus님 글을 보고 수정한게 아닐까요? ㅎㅎ

그런데 cyrus님 말씀하신 순서가 아닌 그냥 정주행중입니다. ^-^

cyrus 2016-07-12 16:35   좋아요 0 | URL
제가 이 글을 블로그에 올린 후에 황금가지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비슷한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때 관리자가 오류를 고치겠다고 댓글로 답변했습니다. 고쳐져서 다행입니다. ^^

정주행으로 읽는 게 편합니다. 저처럼 읽으면 피곤해져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