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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공식 - 우리의 관계, 미래, 사랑까지 수량화하는 알고리즘의 세계
루크 도멜 지음, 노승영 옮김 / 반니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Scene #1 별 걸 다 시간 지키는 남자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는 시간과의 끊임없는 싸움의 이야기다. 내기에 이기기 위해서 이른 시일 안에 세계를 한 바퀴 돌아야 하는 모험은 세계문학사에서 처음으로 시간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소설이다. 국제 표준시가 도입됨으로써 시간을 자기 뜻대로 계획하고 조절할 수 있었다.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근본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인다. 『수량화 혁명』(심산, 2005년)의 저자 알프레드 W. 크로스비의 분석을 빌리자면 19세기 유럽은 수량화와 시각화라는 두 가지 사고방식으로 자리잡아간다. 실재를 설명하는 세계관이 질적 모델에서 양적 모델로 바뀐다.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 실천과 인식을 셀 수 있는 수량으로 시각화한다.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는 자신의 삶을 양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려는 근대인의 모습이다.
그는 하인 파스파르투에게 정확성과 규칙성을 요구한다. 면도용 물은 무조건 섭씨 30도여야 한다. 29도의 물을 가져온 하인을 해고한 뒤에 후임자로 파스파르투를 결정했다. 포그의 일과표는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시간이 꼼꼼하게 규정되어 있다.
그(파스파투르)는 자기 방 시계 위에 쪽지 한 장이 붙어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일과표였다. 필리어스 포그 씨가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침 8시부터 혁신 클럽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는 11시 반까지 하인이 해야 할 일이 조목조목 적혀 있다. 8시 23분에 차와 토스트, 9시 37분에 면도용 더운 물, 10시 20분 전에 머리 손질 등등. (『80일간의 세계일주』 중에서, 김석희 역, 열림원)
이뿐만 아니다. 포그는 바지, 조끼, 재킷 그리고 구두에 일일이 번호를 매겨 출납부에 기록했다. 계절과 특정 상황에 따라 맞는 옷을 입고, 구두를 신었다. 어느 모임에 가면 무조건 1번 재킷, 13번 바지를 입고, 25번 구두를 신는 것이다.
Scene #2 알고리즘이 당신의 쌍둥이를 만든다
정보기술 전문지 ‘와이어드’의 편집자 게리 울프와 케빈 켈러는 ‘숫자를 통한 자기 이해’를 강조하는 ‘자기 수량화(Quantified Self) 운동’을 주장했다. 자신의 삶을 수량화하여 숫자로 측정하는 것. 두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자기 수량화 운동을 몸소 실천한 인물은 필리어스 포그였다. 그는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동작까지 숫자로 측정하고 점검하는 최초의 ‘셀퍼’(Selfer)인 것이다.
인간은 모든 것을 숫자로 측정하는 것을 좋아했다. 최초의 셀퍼 포그가 사는 방식은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다윈의 사촌 아우 프랜시스 골턴은 따분한 감정을 측정하려고 했다. 일명 꼼지락 측정법. 상대방과 대화를 하면서 꼼지락거리는 행위 횟수로 따분한 정도를 수치로 표현했다. 자주 몸을 꼼지락거릴수록 따분함 지수는 높았다.
혹자는 모든 것을 수량화하려는 인류의 역사를 우습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미 수량화된 방법에 익숙해졌고, 우리는 거기에 맞춰 살고 있다. 컴퓨터 관련 자격증 시험을 본 경험이 있는 독자는 안다. 컴퓨터 알고리즘을 문제를 공부한 적이 있을 것이다. 문제의 해결 방법을 만들기 위해 수집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분류하고 정리하려면 최적화된 알고리즘이 필요하다. 문제 해결에 적합한 모델과 절차를 얻게 되면, 컴퓨터 프로그램의 형태로 표현해 컴퓨터가 실행한다. 알고리즘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에게나 필요한 특별한 공식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만물의 공식’이기도 하다.
내비게이션이 최단 경로를 찾는 것도 알고리즘의 힘이요 인터넷 검색을 최대한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알고리즘 덕분이다.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소셜 네트워크에도 알고리즘의 원리가 작동되고 있다. 당신이 방금까지 구매를 망설이던 상품이 페이스북 광고란에 떠서 놀란 적이 있는가? 페이스북은 쿠키 분석을 통해 당신이 어느 사이트를 돌아다녔는지 모두 알고 있다. 또 페이스북은 복잡한 관계추적을 통해 당신의 첫사랑과 빚쟁이들에게 당신을 끊임없이 추천하고 있다.
이 정도에 놀라선 안 된다. 거대한 알고리즘 세계의 20%만 봤을 뿐이다. 이프아이다이(IfIDie)과 데스소셜(DeadSocial)이라는 앱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녹음된 페이스북 예약 메시지를 사후에 가족이나 친구에게 보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서비스가 활성화된다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사랑하는 가족들이 다 모인 뒤에 유언할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리브스온(LivesOn)이라는 앱은 당신이 과거에 남긴 소셜 네트워크 게시물을 추려내어 분석한 뒤에 이와 비슷한 주제의 게시물을 대신 올려준다. 리브스온은 당신의 취향과 선호도, 심지어 문체까지 학습하는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져 있다. 리브스온을 만든 개발자의 포부가 살짝 무섭게 느껴진다. “리브스온 서비스의 목표는 쌍둥이가 되는 것입니다.” (『만물의 공식』 중에서, 118쪽) 알고리즘은 얼마든지 당신의 쌍둥이를 만들 수 있다.
Scene #3 우리가 알고리즘을 만드는가 아니면 알고리즘이 우리를 만드는가?
더 정확한 검색, 더 똑똑한 스마트폰과 사물 인터넷을 구현해 줄 새로운 알고리즘이 개발되고 있다. 똑똑한 알고리즘이 미래의 생활을 주도할 것이다. 이제는 인간 두뇌의 시뮬레이션을 기반으로 한 알고리즘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당신이 자는 사이에 새로운 정보기술, 아니 그 기술을 구현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알고리즘이 나온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의 공격으로 무너진 영국 하원 의사당의 재건 공사가 진행되었을 때, 당시 총리였던 처칠은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건물을 짓고, 그 뒤에 건물이 우리를 짓습니다.”(『만물의 공식』에서 인용, 59쪽) 알고리즘의 힘이 커진 지금, 우리는 알고리즘을 만들고, 그 뒤에 알고리즘이 우리를 만든다. 심지어 알고리즘은 당신의 배우자를 결정한다. 짝을 찾아주는 중매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은 ‘디지털 중매쟁이’다. 당신의 이상형이나 성격을 알고리즘이 분석하여 가장 잘 어울릴만한 짝을 소개한다. 이를 묘사한 2장의 제목이 재미있게도 ‘컴생연분’(컴퓨터+천생연분)이다.
알고리즘 덕분에 우리 삶은 편리해졌다. 복잡하게 머리 쓰는 일은 알고리즘에 맡겨도 된다. 알고리즘이 한 번 오류가 나면 세상은 감당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프로그램 알고리즘 오류로 종종 일어나는 대형 금융사고가 그렇다. 우리가 수학문제를 푸는데 공식 하나 잘못 쓰면 잘 풀리지 않는다거나 엉뚱한 답이 나오는 것처럼. 그런데 지금 우리가 알고리즘을 만드는지, 아니면 알고리즘이 우리를 만드는지 인식해야 할 때다. 세상의 모든 것을 수량화하는 알고리즘의 힘이 신기함을 넘어서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알고리즘에 의해 짜인 프로그램은 우리 삶을 통제한다. 구글의 ‘인간 분석팀’은 직원들의 행복을 수량화하는데 직원에 관한 모든 정보를 수집, 분석한다. 아마존의 물류 창고에서 일하는 제품 운반원은 포켓용 컴퓨터를 몸에 달고 일을 해야 한다. 이 포켓용 컴퓨터는 직원에게 제품 운반을 지시하기도 하며 직원의 실시간 움직임을 조사한다. 거대한 크기의 물류 창고에서 제품을 쉽게 옮기기 위한 최단 경로를 조사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구글과 아마존의 알고리즘 정책은 테일러리즘에 가깝다. 노동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테일러리즘은 노동자를 기계처럼 인식하여 통제하는 문제점이 있다.
알고리즘은 정말 ‘만물의 공식’이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심지어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우리가 누군가에게 감시받고 있다는 것과 같다. 그런데 우리는 전혀 이런 알고리즘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 힘을 눈으로 보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알고리즘이 우리 삶에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마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정보와 현실이 알고리즘에 의해 분류되어 검열된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인간의 편견은 단지 두뇌의 장난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는 알고리즘이 악용된다면 엄청난 위력을 가진 무기 혹은 우리를 감시하는 ‘빅 브라더’가 될 수도 있다.
『80일간의 세계일주』의 파스파르투는 집착에 가까운 ‘셀퍼’이자 주인인 포그의 일상을 엄청 좋아한다. 그런 삶이 무척 피곤한 일인지 모르는 채 말이다. 주인이 왜 그런 특이한 생활을 고수하는지 의심하지도 않는다. 이런 파스파르투의 태도는 인간의 삶을 대신해주는 만물의 공식 알고리즘에 지배된 우리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알고리즘을 거부할 수 없는 노릇이다. 『만물의 공식』의 저자 루크 도멜은 우리가 알고리즘에 대해 더 많이 알기를 제안한다. 알고리즘이 만든 세상을 알아야 우리에게 부닥치는 상황들이 정당하고 윤리적인지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