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1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 정치사상  

 

니콜로 마키아벨리만큼 엇갈리는 평가를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는 정치사상가는 없다. 어떤 사람은 마키아벨리를 정치적 사기꾼, 냉소주의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자비한 권력사용을 옹호한 사람으로 혹평한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를 ‘근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문을 연 선구자’, ‘이탈리아의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친 사상가’로 높이 평가하는 상반된 시각도 동시에 존재한다. 어떤 편에 서든 마키아벨리는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적 저작을 남긴 서양인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사상사에 있어서 마키아벨리의 공적은 정치영역이 윤리나 종교 등 다른 영역과 구분된다. 나아가 정치행위가 종교적 규율이나 도덕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주장함으로써 현실주의 정치사상을 대변한 데 있다. 오늘날의 정치에서도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적 통찰은 의연히 관철되고 있다.

 

비합리적인 것이 합리적인 것에 대해, 사악한 행위가 선한 행위에 대해 승리하는 것이 정치세계다. 『군주론』을 통해 그 비정한 격류 속에서, 오히려 합리적인 것과 선한 행위를 보호하기 위해 현실주의 정치사상을 전개하는 마키아벨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Scene #2  비르투, 역량 혹은 자질?

 

 

 

 

 

 

 

 

 

 

 

 

 

 

 

 

작년은 『군주론』이 쓰인 지 5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군주론』 출간 50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에서도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재조명되었다. 올해도 마키아벨리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5월에 진보학계의 대부로 불리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마키아벨리의 정치철학적 도전과 성취’라는 제목으로 한국어판 서문을 썼고, 그의 제자 후마니타스 출판사 박상훈 대표가 번역을 맡았다. 최근에 동양 고전을 현대화시키는 작업에 몰두해온 신동준 21세기정경연구소장도 『군주론』 번역에 가세했다. 신 소장의 은사인 故 김영국의 『마키아벨리와 군주론』(서울대학교출판부, 1995년)을 새롭게 손질을 본 개정판이다.

 

 

 

 

 

 

 

 

 

 

 

 

 

 

 

 

 

 

신동준의 번역본을 포함한다면 이탈리어어 원문을 가깝게 『군주론』 은 총 3권이다. 나머지 2권은 강정인, 김경희 공역의 『군주론』(까치글방, 2008년)박상섭의 『군주론』(서울대학교출판부, 2013년)이다. 그러나 신 소장은 두 권의 번역본에 문제점을 제기한다. 『군주론』의 중요 개념인 ‘비르투’(Virtu)와 ‘포르투나’(Fortuna)를 다양한 의미로 번역하는 바람에 독자에게 혼동을 줄 수 있다. 신동준은 이 두 개념을 한 가지 의미로 통일시켜 ‘비르투’를 ‘자질’, ‘포르투나’를 ‘운’이라고 번역했다.

 

반면 강정인은 ‘비르투’를 ‘역량’이라고 번역했다. 하지만 각 장마다 언급되는 ‘비르투’를 역량 이외에도 다른 용어로 번역한 곳이 보인다.

 

시라쿠사의 왕이 되었던 시칠리아의 아가토클레스는 평민 출신으로, 그것도 아주 미천하고 영락한 가문의 태생이었습니다. 그는 도공(陶工)의 아들로서 항상 방탕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악행에도 불구하고 심신의 기백(Virtu)이 넘쳤기 때문에 군대에 들어가서 모든 단계를 거쳐서 결국은 시라쿠사 군대의 사령관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강정인 번역 『군주론』 제8장 중에서, 60~61쪽)

 

동료 시민을 죽이고, 친구를 배신하고, 신의가 없이 처신하고, 무자비하고, 반종교적인 것을 덕(Virtu)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강정인 번역 『군주론』 제8장 중에서, 62쪽)

 

그들은 그들의 용맹(Virtu)을 포기하고 이탈리아의 전쟁 관습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강정인 번역 『군주론』 제12장 중에서, 89쪽)

 

로마 제국에서 나온 활력(Virtu)을 고트 족이 흡수했던 것입니다. (강정인 번역 『군주론』 제13장 중에서, 98쪽)

 

강정인은 마키아벨리가 ‘비르투’를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도 문맥에 따라 ‘기백’, ‘덕’, ‘용맹’, ‘활력’으로 번역했다. 박상섭과 박상훈은 ‘비르투’의 의미를 언급하면서 발음 표기 그대로 옮겼다. 후자의 번역 방식이 개념의 의미를 더욱 헷갈리게 만든다. 특히 박상훈은 ‘포르투나’를 ‘운명’, ‘운명의 힘’, ‘운명의 여신’으로 옮겼고, 원어의 느낌을 살려야 하는 부분에는 ‘포르투나’로 표현했다.

 

마키아벨리 전공자도 ‘비르투’를 우리나라 말로 간단하게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마키아벨리 비전공자인 신동준은 ‘비르투’와 ‘포르투나’를 과감하게 한 가지 의미로 통일되게 번역하는 시도를 했다. ‘비르투’와 ‘포르투나’는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서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다양하게 해석될 수도 있고, 왜곡될 우려가 있다. 앞으로도 ‘비르투’와 그 밖의 개념(‘포르투나’, 네체시타(Necessita, 강정인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절대 내지 무조건적인 필요성’과 ‘조건부적인 필요성’으로 파악했다))을 둘러싼 번역 논쟁이 예상된다.

 

 

 

 Scene #3  혼동하기 쉬운 메디치 가 사람들

 

그리고 신동준은 강정인과 박상섭은『군주론』의 헌정대상을 잘못 소개하는 오류를 범했음을 지적했다. 원래 마키아벨리는 공직에 복귀하기 위해서 느무르의 공작 줄리아노 디 로렌초 데 메디치(1479~1516)에게 헌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느무르의 공작이 1516년에 급사하는 바람에 헌정대상이 권력을 이어받은 교황 레오 10세의 조카인 우르비노의 공작 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1492~1519, ‘소(小) 로렌초’ 또는 ‘로렌초 2세’라고 부름)가 되었다.

 

그런데 강정인은 줄리아노 데 메디치를 마키아벨리가 원래『군주론』을 헌정할 대상이라고 썼다(『군주론』 인명 해설, 198쪽). 하지만 줄리아노 데 메디치(1453~1478)는 ‘위대한 로렌초’(Lorenzo Il Magnifico, 로렌초 일 마니피코)라고 불린 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1449~1492)의 동생이다.

 

메디치 가문은 15~16세기 이탈리아, 특히 피렌체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시민 가문이었고, 대대로 이어지는 엄청난 가계도는 피렌체의 역사와 연관성이 깊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가를 중심으로 한 『피렌체사』를 집필하기도 했다.

 

 

 

 Scene #4  다양한 판본으로 남아있는 『군주론』 

 

『군주론』원문은 다양한 판본이 존재한다. 마키아벨리가 사망하고 난 뒤에 출간된 『군주론』은 원본에 많이 수정된 내용이다. 그동안 마키아벨리 연구가들은 원본에 가까운 『군주론』 원고를 찾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옮겨 쓴 필사본들도 참고했는데 그 가운데 19개 정도가 원본에 가깝다는 결론이 나올 정도다. 이러한 텍스트를 중심으로 다양한 판본이 나오게 되었는데 내용에 차이가 있다.

 

강정인과 박상섭은 현재 『군주론』의 최종결정판으로 평가받는 ‘잉글레제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마찬가지로 신동준 역시 잉글레제본을 선택했지만, 강정인의 ‘잉글레제본’과 차이가 있다. 강정인은 1995년에 나온 잉글레제본을, 신동준은 10년 후에 나온 2005년 잉글레제본을 참고했다. 그밖에도 강정인은 영어 본으로 퀜틴 스키너와 러셀 프라이스가 편집한 책을 선택했는데 이탈리아어 원문에 어긋나는 오역이 있다는 단점으로 인해 예전에 비해 많이 읽히지 않는다. 박상훈은 이탈리어 본으로 ‘마조니․카젤라본’을, 영어 본으로  ‘마조니․카젤라본’와 ‘잉글레제본’의 내용을 수용한 코넬본을 선택했다.

 

지금까지 강정인, 박상섭, 박상훈 그리고 신동준의 『군주론』 번역의 차이점을 정리했다. 그렇다고 어느 번역본이 가장 믿을만한 판본이라고 선택할 수 없다. 사실 이탈리아어로 구성된 다양한 판본들마저도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 판가름하기가 어렵다. 내용상 미묘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 소개된 네 권의 『군주론』도 마찬가지다.

 

 

 

 Scene #5  최고의 번역은 없다

 

『군주론』를 읽기 위해서는 주요 개념을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마키아벨리가 『군주론』를 집필하게 된 이탈리아의 역사적 배경 그리고 책에서 언급되는 수많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전반적인 내용의 흐름을 파악할 수 없다. 가장 좋은『군주론』의 구성 방식은 1) 이탈리아 역사 개관 2) 『군주론』용어해설 3) 마키아벨리의 생애 및 사상 요약 4) 『군주론』에 등장하는 인물 열전 그리고 마지막으로 외세의 침입에 잦고, 지방 국가로 분열된 15세기 이탈리아 지도까지 이 다섯 가지 요소가 완벽하게 갖춰져야 한다. 마키아벨리가 친구 프란체스코 베토리에게 보낸 서한까지도 부록으로 실려 있는 것도 좋다. 이 서한은 『군주론』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문헌자료이다. 네 권의 『군주론』은 기본 구성 방식을 다 갖추고 있고, 각각 역자들마다 특색 있는 생각이 드러나 있는 훌륭한 번역본들이다. 만약에 두 세 개 이상이 빠져 있다면 마키아벨리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번역본이라고 말할 수 없다.

 

『군주론』 원본이 100% 보존된 판본이 발견되지 않겠지만, 『군주론』에 관한 고증과 연구는 멈추지 않을 것이며『군주론』 이탈리아어 본이 새롭게 나올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마키아벨리에 대한 학계와 대중의 관심이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서는 외국의 최신 연구 결과와 개정판을 토대로 새로운 완역 결정판이 계속 나와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의 통일을 열망하는 마음으로 『군주론』를 완성했다. 글을 쓰는 내내 외세의 침입과 내전을 거듭하면서 지리멸렬해가는 조국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나라를 통일시킬 수 있는 강력한 군주의 등장을 염원했다. 결국 이탈리아는 1861년에 완벽하게 통일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탈리아 통일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있다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최대한 원본에 가깝도록 복원되는 작업일 것이다. 과연 다양한 언어와 수십 개 넘는 판본들로 나누어진 『군주론』을 단 한 권으로 정리된 결정판으로 새롭게 나올 수 있을 것인가. 당분간 몇 년 동안은『군주론』완역 결정판을 펴낼 강력한 연구자의 등장을 기다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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