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은 무엇인가? 모 방송국에서 남녀 각 연령별로 이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이 공부를 하지 못한 것이었다. 남자 10~40대, 여자 10~30대가 가장 후회하는 일로 압도적으로 공부를 꼽았다. 70대에 이르러서도 남녀 모두 무엇 하나라도 배우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학창 시절에 공부가 그렇게도 하기 싫고, 놀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 그러다가 나이가 점점 먹을수록 그때 하지 못했던 공부가 하고 싶어진다. 마음잡고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싶지만, 업무와 잦은 회식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많지 않다. 예전처럼 머리와 몸도 따라주지 않는다. 공부하면서 본 내용이 며칠 지나면 까맣게 잊어버리고, 노안 때문에 책의 활자를 읽기가 어려워진다.
평소에 공부와 담을 쌓은 사람은 다시 손에 펜을 쥐고, 책을 펴서 글자를 뚫어지게 봐도 학습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은 대개 고등학생 때까지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공부하던 습관에 익숙하다. 대학생부터 공부 환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제 어느 누구도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스스로 알아서 공부해야 한다. 교수님이 가르치는 학교 공부만 해서는 안 된다. 바늘구멍만큼 좁다는 취업의 문에 들어서기 위해 스펙이라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강의실에서의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술집이 아닌 도서관으로 간다. 그곳에서 토익, 자격증 공부를 한다. 학교생활 절반을 강의실 또는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한다.
20대까지만 해도 우리는 공부를 질리도록 한다. 10대는 입시 성적을 위해서, 20대 초중반은 취업을 위해서. 그러다가 30대에 직장을 얻게 되면 길고 길었던 공부 터널에서 탈출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직장인이 되어서도 공부는 멈출 수 없다. 고용과 노후에 불안을 느낀 직장인들이 안정된 전문직을 얻으려고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취업에 장기간 실패하거나 취업을 했더라도 적응하지 못한 채 인생역전을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셀러던트’가 등장했다. 그들은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공부에 미치라고 권한다. 우리는 공부 권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 공부 소리만 들어도 피곤하고 질린다.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평생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부 비법을 전수해 주는 등의 공부 관련 도서는 베스트셀러 코너의 단골손님이다. 또 흥미로운 점은 위에 게시된 사진의 책들은 한 출판사에서 발간된 시리즈물이 아닌 각각 다른 출판사에서 발행된 것이다.
책을 살펴보면 '10대 꿈을 위해 공부에 미쳐라'는 10대에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 그 이후의 삶이 달라진다며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비좁은 취업의 문에서 불안해하는 '88만원 세대' 20대들을 위한 자기계발서인 '20대 공부에 미쳐라', 직장인들이 익혀두면 좋은 실용적인 공부 기술을 쉽게 정리해 놓은 '30대 다시 공부에 미쳐라'도 포함됐다. '40대 공부 다시 시작하라'는 지식 사회와 고령화 사회의 추세에 따라 평생 학습의 관점에서 40세 이상 중년의 공부를 다뤘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무슨 일에 미친 사람처럼 끈질기게 집중하고 몰두해야 목표한 바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공부도 재미있어서 미친 사람처럼 집중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런데 우리는 공부가 너무 즐거워서 미쳤다기보다는 너무 많이 해서 미쳐버렸다. 그동안 남이 시키는 대로,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가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부도 즐겁게 느껴진다면 ‘진짜’ 공부를 할 수 있다. 늦게라도 공부의 재미를 알게 된다면 그때 시작해도 된다. 지난 주 SBS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소개된 82세 신문배달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진짜’ 공부가 무엇인지 보여줬다. 80세가 넘는 고령인데다가 한쪽 손이 불편한 상태 속에서도 지난 35년을 한결같이 10시간동안 신문배달을 해왔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신문배달 일로 버는 월급 90만 원의 3분의 1 가량을 책 구매하는데 쓸 정도로 독서광이다. 할아버지가 구입하고 읽은 책만 해도 2000권 넘는다. 할아버지에게 신문 배달은 생계의 수단보다는 속죄의 과정이다. 술로 인해 멀어진 가족들과 이혼 후 아내에 대한 죄책감으로 지금까지 신문배달을 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쓸데없이 청춘을 낭비한 과거를 잊고 할아버지는 새롭게 삶을 시작하는데 그를 일으켜 세운 준 것이 책이었고, 할아버지를 움직이게 만든 힘의 근원은 공부였다. 할아버지는 정신이 가난하지 않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공부를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 생각한다. 그래서 학교를 떠난 지금도 혼자 공부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싫증이 난다. 내가 궁금했던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10대부터 은퇴하는 40대까지 시험과 승진을 위해서 공부한다. 이러니 공부에 대한 압박감은 나이가 들어서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공부하는 태도를 신체 활동으로 비유하자면, 쉬지도 못하고 계속 뜀박질하는 상태다. 호흡이 더욱 가빠지고, 몸은 지쳐간다. 특정 기간 안에 좋은 성적을 얻고, 승진하기 위해서 부랴부랴 공부를 시작한다. 무턱대고 너무나 많은 양을 공부하다가 힘들어서 중도에 포기해버린다. 우리는 무엇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너무나 급하게 공부를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공부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지식을 완전히 습득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오히려 공부를 쉬엄쉬엄 하는 것을 게으른 방법이며 능력을 발전하는데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짜 공부는 깊은 호흡을 들어 마실 수 있는 상태처럼 되어야 한다. 교육학자 사이토 다카시는 ‘삶의 호흡이 깊어지는 공부’를 할 것을 주문한다. 사이토는 10년 전 큰 병을 앓은 뒤 ‘공부’를 삶의 방향으로 삼게 됐다고 한다. 당시 인생이라는 마라톤이 중간에 예고도 없이 끝날 수 있음을 실감한 그는 후회 없이 충실하게 보냈다고 느꼈던 시간을 떠올려봤다. 좋은 책을 다 읽은 날, 공부 재미에 완벽히 몰입했을 때 충만한 행복감을 느꼈음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더 즐거운 공부’를 하기로 결심한다.
호흡이 길어지는 공부란 철학, 사학과 같은 인문학, 물리학, 수학, 음악, 미술 등 순수 학문을 공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깊이 있게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공부의 수준과 목표는 각자 자유롭게 정해도 되고, 단지 교양을 쌓는 공부여도 좋다.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 그 자체가 목적인 공부를 하는 것이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 중에서, 62쪽)
‘삶의 호흡이 깊어지는 공부’는 인생을 풍요롭고 여유롭게 만든다. 일과 삶, 미래를 통찰하는 법을 일깨워 준다. 매일 꾸준히 많은 시간을 공부하는 것보다 하루에 30분씩이라도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시작해야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오래 공부할 수 있으며 평생 공부를 가까이 하면서 살 수 있다.
공자는 ‘논어’ 학이편에서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라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배운 대로 실천하는 것이 즐거움의 한 길임을 일러주고 있다. ‘진짜’ 공부는 일단 즐거워야 한다. 오랫동안 몸에 배인 ‘가짜’ 공부와 관련된 안 좋은 기억과 습관을 깨끗이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그동안 우리의 뇌를 죄어온 잘못된 사슬을 풀지 못하면 영영 공부의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