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펭귄클래식 15
프란츠 카프카 지음,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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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291] 심판

 

 

 

 

카프카의 『소송』은 줄거리가 비교적 간단하지만 그의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난해하다. 주인공 요제프 K가 자신의 서른 살 생일 아침 돌연 죄명도 모른 채 낯모르는 사나이들에게 체포된다. 무언지도 모르는 소송 때문에 1년 동안 동분서주 고민하다가 서른한 번째 생일 전날 밤 처형된다는 이야기다. 그 역시 카프카 작품의 주인공답게 느닷없는 사건 속에 던져져 당황해하고, 자신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상황 속을 맴돌다가 영문도 모르고 사라져간다.

 

K는 누군가의 무고라 짐작할 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모른다. 신부, 감독관, 변호사, 판사 모두 무죄를 주장하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화가 티토렐리만이 그가 아무 죄도 없음을 확인해 주지만 도움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가 피고를 도와주는 방법은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을 수 없음을 명백히 알려주어 피고가 헛된 희망을 버리고 절망을 확인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카프카 소설이 ‘우리 존재의 원상을 현실의 언어로 형상화한 것’이라는 본질적인 해석은 논외로 하고 소설의 피상적인 얼개를 이루는 법의 세계만을 보자. 어떤 계기로든 복잡한 법의 구조에 얽혀 들어가 본 사람은 그 권위적인 미로의 세계에서 K와 같은 심정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더구나 다른 사람의 무고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야 할 경우라면 그 괴로움과 답답함을 말로 다할 수 없다.

 

카뮈는 이 난해한 소설이 위대한 이유를 “모든 것을 제시하고 아무 것도 확증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K는 자신의 무죄를 우리 독자들 앞에 제시하지만, 우리는 그걸 지켜볼 수밖에 없다. 우리도 어느새 K가 되어 무죄를 확증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보게 된다. 그러나 결말에 이르러도 끝내 찾을 수가 없게 되고, 요제프 K처럼 좌절하고 만다. 알 수 없는 괴한들에게 처형당하는, K의 황당한 최후는 카프카 본인 스스로 비유했던 ‘막다른 골목’에 마주치는 운명과 닮아 있다.

 

그렇다면 『소송』은 독자에게 영원히 ‘멘붕’을 선사해주는, 난해한 소설로 남게 되는 것일까? 과연 카프카를 읽은 독자는 그가 만들어 놓은 ‘막다른 골목’을 뚫을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도 『소송』에 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K를 거대한 관료주의에 희생된 현대인으로 보기도 하면, 카프카의 친구 막스 브로트는 감시인과 사형 집행인들을 나치스 친위대원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면 K는 나치스 친위대원들에 의해 강제로 체포되는 유대인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K를 둘러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독자와 카프카 관련 연구가들은 수수께끼 같은 텍스트를 해석했다. 그러나 K가 무슨 죄목으로 소송에 휘말렸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춘 해석을 찾기가 보기 드문 편이다. 『소송』 읽기의 핵심은 바로 K는 죄가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다. 만약에 K가 진짜 죄가 없다면 그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미지의 범인을 찾아내야 한다. 혹자는 K를 죽인 괴한을 범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이런 해석을 염두하고 글을 쓴 것이 아니다.

 

 

 

 

댄 애리얼리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청림출판)

 

일단, K가 정말 무죄인지 증명해야 한다. 과연 그는 억울한 누명에 희생된 불행한 인물일까? K는 정말 억울한 최후를 맞는 인물인 것은 틀림없다. 복잡한 소송에 인생이 꼬이게 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개 같은’ 죽음을 맞는다. 그뿐만 아니다. K의 죽음이 더욱 비극적이고 불행한 이유는 K 본인은 분명 죄를 저지르고 있음에도 죽을 때까지 ‘무죄’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이 빠져 들기 쉬운 ‘인지부하’(cognitive load)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그것이 갈 길 바쁜 K의 발목을 잡았다.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K, 그는 대형은행 부장이다. 상당한 양의 은행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데, 이 와중에 소송 문제가 방해된다. 잠시 은행 업무를 내려놓고 소송 진행에 집중하고 싶지만 휴가 신청할 여유가 없다. K는 고민한다. 은행 업무를 계속 진행할 것인가 아니면 이 말도 안 되는 소송 준비에 몰입할 것인가? 죄가 없는데 소송을 준비한다는 건 시간 낭비다. 그리고 자신의 업무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소송 때문에 휴가를 낸 사실이 은행 내부에 알려지게 되면 결국 죄가 있음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과 같다. 은행 동료들뿐만 아니라 그가 담당하는 고객들의 귀에까지 황당한 소송 사건이 알려지면 K는 더욱 난처하다.

 

오랜 고민 끝에 K는 휴가를 내지 않고도 소송에 대비하는 방법을 찾게 된다. 그가 담당하는 고객 중 한 사람인 제조업자가 소송 준비에 도움 줄 수 있는 화가 티토렐리를 소개시켜줬기 때문이다. 제조업자의 은밀한 제안은 K에게 이득이다. 자신을 둘러싼 소송에 관한 소문이 은행 전체에 퍼지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인 것이다. K는 당장 화가를 만나기 위해서 ‘급히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다는 변명을 둘러댄다. 자신과의 상담을 기다리고 있던 세 명의 손님을 돌려보냈다.

 

K의 머리로는 몸이 고단할수록 업무가 중요하다는 걸 안다. 그러나 자신의 무죄를 확실하게 증명하고 싶은 ‘감정의 유혹’ 때문에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소송을 준비한다. 깊고 정교한 생각을 담당하는 뇌가 바쁘게 일하고 있을수록 인간은 감정의 이끌림에 저항하기가 어려진다는 게 '인지부하'의 핵심이다. 착하게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이 소소하게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스스로 높은 도덕성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지치고 고갈된 상황에 놓이면 덜 도덕적인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K는 변호사 훌트의 간병인 레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에로틱한 관계를 맺게 되는데 레니가 소송을 해결하기 위한 조력자로 나섰기 때문이었다. K는 이들을 진정한 조력자라기보다는 자신이 처한 복잡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소송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만들기 위해 뇌물과 매수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행동들은 분명 자신은 죄가 없다고 떳떳하게 밝혔던 사람이 모두 저지른 것이다.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이득과 손실을 따져 부정행위를 할지 말지 결정할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난 착하게 살아왔으니까 이 정도 거짓말은 괜찮아'라며 자기 합리화에 빠져 속임수를 쓰게 된다. K도 마찬가지다. 무죄라고 주장했던 K가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자기 합리화’ 때문이었다. “나는 죄가 없어!” 소송과 관여된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K의 무죄 주장은 도덕적 판단 능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올가미가 되고 말았다. 그런 올가미가 얼굴에 씌운 K는  스스로 높은 도덕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에 빠졌다. 자신의 부정행위에 어떠한 죄의식도 느끼지 못한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 법정의 모든 발언 뒤에는, 그러니까 제 경우로 보면 체포와 오늘의 심리 배후에는 어떤 커다란 조직이 있습니다. 이 거대한 조직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고한 사람을 체포하고, 그들에게 무의미하고 또 제 경우처럼 대개는 아무 성과도 없는 소송을 벌이는 데에 있습니다. 모든 게 이처럼 무의미한데 어떻게 관리들의 극심한 부패를 피할 수 있겠습니까? 감시인들은 체포된 사람들의 소유물을 맡아두는 창고 이야기를 했는데, 전 그곳을 한번 보고 싶습니다. 체포된 사람들이 애써 모은 재산이 도둑 같은 창고 직원들한테 도둑질당하거나 아니면 그곳에서 썩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67~68쪽, 발췌 요약)

 

 

소설 초반부에 첫 재판을 받을 때만 해도, K는 법조인의 부패와 무능함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자신의 무죄임을 정당하게 밝히려는 정의로운 인물이었다. 그러나 소송 사건이 간단하게 마무리되지 못하고, 장기화될수록 K의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만 갔다. 게다가 자신의 무죄를 절대적으로 믿어주는 든든한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 진짜 죄가 없는 K는 아이러니하게도 무고죄를 벗어나는 과정에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죄를 범하고 만다. 한순간에 K는 합법적 절차를 거부하는 죄를 저질렀다.

 

K는 소송 진행이 길어질수록 자신에 대한 판결이 더욱 불리해질 것임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모르기에 K는 자신이 결백하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것이 K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무죄를 인정하기를 바랐다. 법원의 판사가 아닌 엉뚱한 사람에게. 화가 티토렐리만이 유일하게 K의 무죄를 확신하지만 그것은 법적 효력이 없다. 그저 죄가 있는지 없는지 물어본 화가의 질문에 무기력한 K는 잠시 동안 자신을 죄어온 ‘소송’에서 벗어난 것처럼 기쁨을 느낀다.

 

 

“당신은 죄가 없나요?”
“네.”
K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는 게 정말 기뻤다. 특히 그것이 사적인 개인을 상대로 하는, 그러니까 어떠한 책임도 뒤따르지 않는 것이라서 더욱 기뻤다. 그에게 그렇게 노골적으로 물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기쁨을 만끽하려고 그는 덧붙여 말했다. “나는 완전히 결백해요.” (191~192쪽)

 

 

죄를 저지른 K가 처형당하는 것은 결국 인과응보에 가까운 예정된 결말일지도 모른다. K가 부당한 소송에 맞서기 위해, 그리고 진짜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저지른 사소한 부정행위들. 지금까지 K의 행동이 무고한 사람을 억압하고 무의미한 재판을 연 거대 관료 조직에 저항하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K는 거대 관료 조직에 희생된 무력한 존재라기보다는 자신이 비판했던 관료 조직의 습성에 지배되어 스스로 파멸하는 존재이다. 성과 없고, 무의미한 소송에 집착할수록 K는 이미 범죄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완전 결백’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막히고 말았다. 그곳을 탈출하지 못한 채 끔찍한 최후를 맞는다.

 

도스또예프스끼“우리 모두는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고 말했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카프카의 『소송』에서 나왔다. 부정행위를 하면서 스스로 선량하다고 착각하는 요제프 K. 그는 자신이 그런대로 착한 사람이라 믿으며 이 정도 속임수는 괜찮다고 스스로 합리화하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강도에게 빼앗긴 새 외투를 찾기 위해 밤마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는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영혼처럼 법원 주위에 떠돌며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는 요제프 K의 영혼을 만나 볼 수 있다. 오늘도 K는 그곳에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완전히 결백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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