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1  먹고 마시고 섹스하는 거인들 이야기

 

 

 

 

 

 

 

 

 

 

 

 

 

 

 

 

프랑수아 라블레의 소설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은 먹고 마시고 섹스하고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거인의 이야기다. 주인공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자신이 얼마나 많이 먹을 수 있는지 자랑하고, 배변 후 뒤를 닦는 수십 가지 과정을 설명하기도 한다. 팡타그뤼엘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암소 1만7913마리가 징발됐다. 거인 가르강튀아와 그의 아들 팡타그뤼엘의 모험 이야기는 원래 프랑스의 민담에서 유래한다. 두 거인은 낯선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가는 곳 마다 비축된 식량들을 모조리 먹어치우면서 환상적인 모험을 펼친다.

 

라블레의 작품은 지금도 고전도서 목록에 포함될 정도로 서양문학사에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라블레에 생소한 독자는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을 한 권의 책을 일컫는 제목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사실은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두 작품을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통상적으로 라블레를 언급할 때 이 두 작품을 한 권의 제목처럼 부른다. 『팡타그뤼엘』 이 1532년에 발표되었고, 1534년(혹은 1535년이라는 설도 있음)에 속편격으로 『가르강튀아』가 나왔다. 라블레가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을 집필했을 당시에 작가 미상의 대중소설 『가르강튀아 연대기』가 큰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 각지에 떠돌면서 유행하던 일종의 구전소설을 라블레는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로 새롭게 재구성했다. 거인족 이야기 덕분에 라블레는 무명 의사에서 일약 인기 작가로 급부상했다. 

 

국내에 유일한 완역본은 대산세계문학총서 35번으로 나온 ‘문학과 지성사’ 판이다. 사실 이 책이 번역되기 전까지만 해도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은 서양문학사 한 페이지에 적힌 작품명에 불과했다. 유럽에서는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소개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1970년대 을유문화사에서 세계문학전집에 출간된 적이 있었으나 절판되었고, 2004년에 문학과 지성사 세계문학전집 작품으로 나오기 전까지 재번역이 되지 않았다.

 

 

 

 Scene #2  신에서 인간으로    

 

사실 라블레의 작품을 편안한 마음(?)으로 읽기가 쉽지 않다. 역사적 배경 없이 읽으면 작품의 매력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가 선정한 필독고전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읽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라블레를 읽기 위해서는 먼저 프랑스 르네상스 문학과 작가의 생애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르네상스’라 하면 우리는 가장 먼저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떠오른다. 일반적으로 르네상스는 인간이 가진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시기였다. 그래서 신이 아닌 인간이 문화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 가톨릭 세력이 지배하던 중세에는 감히 표현할 수 없었던 인간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다시 살아난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문화는 진원지인 이탈리아에서 시작해서 독일, 프랑스, 북유럽 등지에서도 전파되었다.

 

그러나 르네상스라고 해서 다 똑같은 건 아니다. 지역마다 유행하는 르네상스에도 추구하는 정신이나 표현 양식에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현실에 대한 자각이 고대의 재인식에서 시작하였다면, 북유럽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처럼 고대 문화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자기 주변의 생활에 대한 관찰로 출발한다. 르네상스가 가톨릭 중심의 중세를 한 단계 뛰어넘은 시기였고, 경제 성장에 힘입어 성장한 메디치 가 덕분에 예술가들이 든든한 후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교황의 힘은 막강했다. 이때까지도 종교화는 르네상스 화가들이 즐겨 그렸으며 화가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교회의 후원도 무시할 수 없었다. 반면 북유럽은 구교로 대표되는 가톨릭과 신교인 칼뱅파 사이에서 종교적 갈등으로 심화되고 있었고, 거기에 독일의 마르틴 루터도 가톨릭을 정면으로 비난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칼뱅과 루터로 대표되는 신교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확신 속에 교황의 권위와 성직의 위계를 무너뜨리는 새로운 신앙을 추구했다.

 

이러한 종교 갈등은 종교 개혁으로 이어지게 된다. 종교 개혁은 유럽에 피바람이 불 정도로 격렬했고 유럽 지도를 달라지게 만들 정도로 르네상스 다음으로 이어진 큰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리고 예술가들의 마음 또한 달라지게 할 정도로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제는 신을 바라보고 추앙했던 종교화가 아닌 새롭게 자신의 세력을 넓혀나가는 신흥 상인 또는 민중의 취향을 반영한 예술로 변화를 맞는다.

 

라블레가 활동했던 프랑스도 새로운 문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 당시 프랑스는 프랑수아 1세가 신교도를 탄압하고 있었다. 이런 혼란한 시기 속에 엄격하고 보수적인 교도의 수도사였던 라블레는 위마니슴(humanisme, 인간중심주의)에 심취하고 있었다.

 

중세적 금욕과 규율에 맞추는 삶에 진저리를 치고 있던 민중들은 신이 나오는 성스러운 이야기보다 인간의 정신을 지향하는 이야기를 선호했다. 그래서 『가르강튀아 연대기』와 같은 대중소설이 유행했고, 현란한 탐닉과 방종, 그리고 이단에 가까운 그로테스크한 문화에 열광했다. 라블레의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은 그런 민중의 취향을 정확히 반영한 소설이다.

 

 

 

 Scene #3  팡타그뤼엘리슴으로 충만한 책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거인들은 먹고, 마시고, 섹스하는 데 열중하는 쾌락주의자에 가깝다. 금욕을 강조하는 가톨릭 사상에 위배되는 행동이다. 그뿐만 아니다. 도덕적이면서도 종교적 교화가 있어야 할 내용에 음담패설이 가득하다. 거인들은 일상적 현실이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환상 속에 놓여 있고 거칠고 천한 우스개 농담을 인문정신에 입각한 교양을 드러내는 행동처럼 생각한다. 이런 소설을 민중들이 킥킥 웃으면서 읽고 있으니 가톨릭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고 분노가 치밀 수밖에 없다. 일단 소설 내용이 가톨릭 사상에 맞지 않고, 외설스럽다. 게다가 가톨릭을 해학적으로 비판하고 풍자한다. 그것도 수도원 출신이라는 사람이 상당히 이단적인 내용의 글을 썼다. 신교와의 갈등이 커져만 가는 상황 속에 민중들이 이런 소설을 즐겨 읽는다면 구교 가톨릭 입장에서는 절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형국이었다. 결국, 라블레의 작품은 금서로 지정되었다.

 

훗날 라블레는 교황으로부터 사면을 받았지만 위대한 작품은 여전히 금서의 감옥에 갇혀야 했다. 그래도 그는 운이 좋은 편이다. 이단죄에 몰려 종교 재판을 받은 적이 없다. 출판업자이자 위마니스트였던 라블레의 친구가 이단죄로 화형당할 정도였으니 교회로부터 미움을 받았을 법한데 용케 살아남았다. 그리고 재취업도 성공했다. 사면 이후에 수도원에 복귀해 의사로 다시 일하게 되었다.

 

라블레는 먹고 즐기고, 음란한 거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중세적 질서와 사고에 정면으로 도전하고자 하였다. 라블레의 ‘그로테스크한 리얼리즘’은 중세적 지배에 대한 휴머니즘적 반역을 주도하는 것이었다. 『가르강튀아』의 시작을 알리는 첫 페이지에 보면 이 작품을 ‘팡타그뤼엘리슴으로 충만한 책’이라고 가리키고 있다. ‘팡타그뤼엘리슴’이란 작중 인물 팡타그뤼엘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말 그대로 팡타그뤼엘의 성격과 가치관을 반영한 사상으로 라블레가 직접 만든 조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팡타그뤼엘리슴’은 좋은 음식을 잘 먹고, 육체적 만족을 추구하는 건강한 삶이다. 일반 사람보다 아주 더 많은 양의 음식과 술을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거인들의 모습을 보면 지나친 폭식과 탐식에 가깝지만, 그래도 이들의 행동은 종교적 규율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자유롭다. 그동안 너무 틀에만 박힌 엄격한 종교에 갇혀있던 민중들은 이런 거인들의 삶을 갈망했을 것이다. 그러한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정신적 탈출구로 라블레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Scene #4  라블레와 브뢰헬  

 

 

 

 

 

 

 

 

 

 

종교를 풍자하고, 해학이 넘치는 라블레의 작품은 피터르 브뢰헬의 그림과 비교하면 상당한 유사점이 발견된다. 라블레와 브뢰헐. 이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종교 갈등이 극심했던 시기에 태어났고, 각자 작가와 화가로 활동했다. 브뢰헬도 신교를 옹호했는데 엄격한 분위기의 기독교 종교화 대신 민중의 삶을 담은 해학적인 그림을 그렸다. 라블레는 소설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전해 내려오는 속담이나 그리스 비극 작가의 작품 속에 나오는 문장들을 인용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비틀어 표현함으로써 기독교를 우스꽝스럽게 비판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말 한 마디를 속담으로 인용해서 표현하는데 당시 유행하던 인문주의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동시에 현실과 동떨어진 채 학문에 집착하는 현학적인 당대 지식인들을 풍자하고 있다.

 

 

 

 

 

피터르 브뢰헬  「플랑드르 속담」  1559년

 

 

라블레가 속담을 세상을 풍자하는 언어적 도구였다면, 브뢰헬은 회화적 도구였다. 브뢰헬도 속담을 인용한 그림을 그렸는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플랑드르 속담」이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기만을 꼬집는 총 85가지 이상의 속담들이 하나의 시골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상 풍경처럼 표현했다.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속담을 표현하는 군상의 모습이 정상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우스꽝스럽다.

 

라블레의 소설과 브뢰헬의 그림에 관한 또 다른 공통점은 바로 ‘놀이’다. 『가르강튀아』 제22장은 가르강튀아가 즐겨하는 놀이가 목록 형태로 열거되는 내용이다. 가르강튀아에게 ‘놀이’는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희적 행위이다. 책에서 언급되는 놀이 종류만 해도 무려 217개나 된다. 페이지만 해도 10장에 이른다. 지금도 일부 놀이는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민속놀이로 알려져 있다. 놀이 종류 목록의 일부를 소개해본다.

 

 

 

 

 

피터르 브뢰헬  「아이들의 놀이」  1560년

 

 

네 장 플러시, 다른 무늬 카드 모으기, 패 따오기, 뺏어먹기, 패 버리기, 1백 점 내기, 피아노, 불쌍한 년 만들기, 불평분자, 용병 도박, 오쟁이를 진 서방, 몰아주기, 타로, 고문하기, 팽이 돌리기, 주사위 놀이, 체스, 목말 타기, 제비뽑기, 패가망신, 구슬치기, 공놀이, 올빼미 소리 내기, 술래잡기, 바보에게 똥가루 던지기, 불에서 쇠 꺼내기, 귀 꼬집기, 잔디 볼링, 똥 던지기, 수도사 놀이, 다시 벌리고 거꾸로 서기, 아홉 개의 손 놀이, 여왕 놀이. (110~119쪽)

 

 

 

브뢰헬은 「아이들의 놀이」라는 그림에서 80여 가지의 놀이 종류를 그렸다. 「아이들의 놀이」에 나오는 아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영혼이 없는 듯한 모습이다. 놀이를 즐기는 기쁜 표정이라기보다는 놀이 행위에 익숙해져 전혀 기쁘지 않는, 한편으로 지루하게 여기는 것 같다. 브뢰헬의 그림은 지금도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데 놀이 행위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묘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라블레가 가르강튀아의 놀이 목록을 작성한 이유가 지나치게 놀이에 열중하는 자세를 경계하는 교훈적 의미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문학적 장치일 수도 있다. 즐겁게 노는 것도 좋지만, 학문 수양을 외면한 채 노는데 정신에 빠지는 태도는 ‘건강한 쾌락’을 위한 삶이라고 볼 수 없다. 그것은 ‘중독’에 가깝다.

 

라블레의 작품은 과도한 속담 인용, 과장된 묘사 그리고 프랑스어를 모르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장난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국내 독자들이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작품 중간에 나오는 암호 같은 시와 난해한 문장 등과 같이 여전히 의미가 불분명한 내용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국내 독자들을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단어도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똥’이다. 거인들은 잘 먹고 잘 마시는 인물이라 배변도 좋은 편이다. 그래서 대화 도중에 똥과 관련된 표현도 능청스럽게 해댄다. 다음 인용한 문장은 똥 누는 사람을 주제로 가르강튀아가 만든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똥 누는 자,
설사하는 자,
방귀 뀌는 자,
똥 묻은 자,
빠져나온
똥덩어리를
우리에게
뒤덮는다.
더럽고,
냄새나고,
뚝뚝 떨어지는,
만일 너의
벌어진
모든 구멍을
떠나기 전에 닦지 않으면
성 앙투안의 불길이 너를 태워버리리라!

 

 

(79~80쪽)

 

 

라블레는 작품 속에 비판하고 싶은 대상을 ‘똥’과 연관시키는 문장으로 비꼬아 표현한다. 『팡타그뤼엘』 서문에 ‘똥싸개 비서관’(270쪽)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이 나오는데 교황 밑에 일하는 비서관을 가리킨다. 그들은 무척 방탕한 생활로 악명 놓았다고 한다. ‘똥싸개 비서관’은 불어로 ‘crotenotair’인데 ‘똥’(crotte)과 ‘와작와작 씹어먹다’(croquer)를 결합시킨 말장난이다. 이처럼 라블레는 똥을 누는 행위를 인물의 무능한 성격을 희화화하는데 사용했다. 이런 상스러운 표현은 허세 넘치고 지위 높으신 가톨릭 교인들의 혈압 올리는데 성공했고, 그들로부터 억압받던 신교도나 민중들은 무척 통쾌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우리가 사회지배층에게 “엿 먹어라!”하고 욕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도 엿은 달콤해서 먹을 수 있지, 똥은...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다. 

 

 

 

 

 

 

 

 

 

 

 

 

 

 

 

 

거인들이 ‘똥’을 부끄럼 없이 언급하는 장면에 대해서 분변증에 속하는 증세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분변증은 똥과 배설에 집착하는 정신병이다. 그러나 라블레가 분변증에 속하는 증세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 해석하는 것은 금물이다. 진중권의 표현을 빌리자면 라블레 작품 속에 언급되는 ‘똥’에 관한 표현은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문학적 현상’에 가깝다고 본다. 엄격하고 부정부패가 심한 가톨릭이 지배했던 사회에 대한 분노와 피로감을 배설하는 카타르시스를 상징할 수도 있다.

 

 

 

 

 

피터르 브뢰헬  「교수대 위의 까치」  1568년

 

 

브뢰헬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교수대 위의 까치」 는 흉흉한 세상 속에서도 저항 정신을 잃지 않는 민중의 건강한 의지가 드러나고 있다. 교수대는 신교도나 지배 세력에 저항하는 민중을 처형하는데 사용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교수대 앞에 있는 마을 사람들은 서로 손 잡고 춤추는데 정신이 없다. 죽음 따위야 두렵지 않다는 의연한 자세를 의미한다. 그들에게 춤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세력에 대한 두려움마저도 잊게 만든다.

 

 

 

 

 

춤추는 군중을 기준으로 왼쪽 구석에 살펴보면 음습한 그늘에 한 남자가 웅크린 채 앉아 있다. 남자의 자세만 보더라도 우리는 그가 똥을 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똥을 누는 남자도 교수대가 두렵지 않다. 오히려 지배세력의 강압적인 태도(교수대)를 우습게 여기고,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저항한다. 그것은 바로 교수대 앞에 당당하게 똥을 눈다. “에라이, 똥이나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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