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20대에 대한 갖가지 정의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는 20대가 어떤 세대인지에 대해 우리 사회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증거일 것이다.

 

그럼에도 공통점이 하나 있다. 20대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존재라고 그 누구도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88만원세대’도 그네들이 처한 경제적 고통으로 세대의 특성을 규정했으며, ‘20대XXX’론도 정치사회적 역할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한 채 개인적 관심사에만 몰두하는 20대들을 비아냥거릴 뿐이다. 20대 ‘청년학도’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다.

 

소설 『표백』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2011년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으로 장강명의 『표백』이 결정된 순간,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젊은 세대를 상징하는 ‘표백 세대’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어떤 것도 보탤 수도, 보탤 것도 없는 사회에서 단지 ‘표백’될 뿐이다. 그에 대한 극단적인 대응책으로 주인공들은 자살을 선택한다. 그것은 의도적이며 사회적인 자살이다. 표백 세대는 자살을 통해 세상에서 자신들을 완전히 지워버리면서 자신들의 상실감을 극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기성세대가 고달프지만 내일을 향한 희망을 품고 살았다면, 젊은 후배세대들은 안온하지만 희망 없는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는 절규인 셈이다.

 

암울한 미래에 별다른 희망을 갖지 않는 ‘나’는 아버지처럼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나는 대학 동기인 휘영, 후배 병권, 여자친구인 세연과 추윤영 등과 어울리며 대학생활을 끝내 간다. 이 중 몇 년 전부터 자살을 준비해온 세연은 친구들을 설득, 자신이 자살한 5년 후에 자살할 것을 다짐받는다. 각자의 위치에서 가장 성공했을 때 사회에 자신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살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세상이 아주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는 흰 그림이야. (중략) 그러니 우리도 세상의 획기적인 발전에 보탤 수 있는 게 없지. 참 완벽하고 시시한 세상이지 않니.” (77~78쪽)

 

 

과연 이 시대의 청춘들은 아무것도 보탤 수 없고 보탤 것도 없는 표백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시대가 낳은 청춘들의 슬픈 비망록 ‘표백’은 독자들에게 이 같은 물음을 남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작가의 물음에 대한 답변이 나오지 않는다. 아니, 지금의 세상이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완벽하다는 사회라는 점에서 20대들은 변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정도로 강하게 반론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표백』이 나온 지 3년도 채 안 되어 제2회 한국경제신문 청년신춘문예에 김의경의 『청춘 파산』이 당선되었다. 『표백』보다 제목이 인상적이면서 너무나 절망적인 느낌을 든다. 이제 청춘은 더 이상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산되었음을 보여준다.

 

김의경이 묘사한 파산 선고 받은 청춘의 모습은 예전에 ‘88만원 세대’와 더불어 20대의 현실을 어둡게 표현했던 ‘삼포(三抛) 세대’를 상기시킨다. 연애, 결혼, 출산. 이 세 가지를 포기하는 세대. 바늘구멍 같은 취업의 길, 불어나는 학자금 대출 빚, 치솟는 집값 등의 이유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 만다.

 

작가가 세상에 내놓은 첫 번째 작품인 만큼 『청춘 파산』은 자전적 성격이 짙은 소설이다. 인간 CCTV, 위장 손님, 두상 모델 등 발 닿는 곳마다 이어지는 지난날 아르바이트의 추억과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채권추심 서류, 사채업자들의 예측 불가능한 독촉 방식과 그들을 따돌리기 위한 주인공의 절박한 위장술에는 빚 독촉을 피해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아르바이트로 일관했던 작가의 한 시절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올해 나이 서른셋. 아르바이트라면 안 해 본 일이 없다. 하루에 세 번 취직하고 세 번 잘린 적도 있으니 이 정도면 알바 계의 고수. 그녀는 원하는 일자리를 얻을 수 없는 신용 불량자에다 개인 파산자다.

 

인주의 아르바이트 인생은 엄마의 사업 부도와 함께 시작됐다. 신용카드는커녕 한 달에 30만 원 이상은 써 본 적도 없건만 자고 일어나니 빚더미 위. 귀신같이 알고 직장으로 몰려드는 사채업자들 탓에 웬만한 일자리는 엄두도 못 내던 그녀는 아르바이트 인생, 즉 프리터 족이 되어 간다. 불행 중 다행으로 파산 신청이 받아들여져 억울하게 상속받은 빚의 그늘에서 벗어나는가 싶던 찰나, 이상한 공문서들이 날아들기 시작한다.

 

“저는 현재 직장을 구하지 못한 취업준비생입니다. 최정현은 제가 얹혀살고 있는 친구 집에 압류를 하여 가구와 가전제품에 딱지를 붙였고, 또 친구에게 전화하여 돈을 갚으라고 괴롭히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나중에 취업이 된다고 해도 계속 괴롭힘을 당할 걸 생각하면 차라리 취업 준비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불안합니다. 이러한 저의 사정을 참작하시어서 귀 법원의 채권압류 및 집행취소 신청을 허락하여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62쪽)

 

빚이 대물림 되어 갈 길 바쁜 청춘의 발목을 잡는 세상. 작가는 쳇바퀴처럼 돌기만하는 아르바이트 인생과 법 관련 전문용어로 가득한-아직 빚 독촉에 시달리는 경험을 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머리 아픈-수많은 공문서의 기록을 통해 파산당한 청춘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장강명의 소설처럼 어려운 시절을 겪는 청춘을 등장인물로 설정하고 있지만, 세상을 대응하는 인물의 방식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장강명은 절망적 처지 그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일련의 과정을 묘사함으로써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반면 김의경은 숨 막힐 정도로 절박한 청춘의 현실을 묘사하면서도 운명의 횡포에 휘둘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길을 만들어 가는 주인공의 의지가 사채업자의 빚 독촉보다 끈질기게 그려냈다. ‘표백 세대’는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 나머지 무기력에 빠진 울분과 저항을 부각시켰다면 ‘파산 세대’는 맨몸으로 현실의 벽을 스스로 뚫고 가려는 분투의 의지가 돋보인다. 김의경의 당선 소감에서 언급된 표현대로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 사람은 운명에 저항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운명에 저항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파산 시대의 청춘을 위로하는 메시지가 된다. 『청춘 파산』의 주인공 인주는 자신을 괴롭히는 빚쟁이들과 맞서기 위해서 혼자 채무, 파산과 관련된 법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회생절차’를 밟는다.

 

다만, 운명에 저항하는 인주의 모습을 보면 여전히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에게 빚을 잔뜩 안긴 기성세대를 믿지 못한 채 혼자 회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주의 모습은 더욱 힘겨운 현실을 상기시켜 줄 뿐이다. 작가는 인주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 청춘이 겪은 어두운 현실을 공유하는데 성공했으나 과연 이것을 작가의 의도대로 희망적인 위로 차원으로 독자들이 공감했는지 의문이다. 빚갚는데 신경 쓰다보면 연애며 결혼은 언제 할 수 있을까. 취업은 제대로 할 수 있을라나. ‘빚에 시달리더라도 같이 시달리면 좀 나을 거야’(365쪽)라는 위로를 받으면서 인주가 개인회생을 위한 진술서를 쓰는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결론을 보면서 앞으로 더 고생해야 하는 청춘의 가시밭길이 불현듯이 떠오른다. 

 

작가들은 심사평에서 『청춘 파산』은 ‘프리터의 삶은 힘겨운 현실’임을 상기시킨 대목이 좋다고 썼으나, 이미 힘겨운 현실을 다 겪어 본 젊은 독자 입장에서는 썩 좋아할 만한 대목은 아닐 것이다. 소설이 오랫동안 아파왔던 독자, 특히 오늘날의 청춘의 환부를 다시 찌른 격이다.  ‘88만원 세대’, ‘삼포 세대’ 거기에 불행한 우리들에게 위로의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등장했던 슬로건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등 우리 현실을 반영한 또 다른 청춘의 이름이 나왔으나 문제의식만 부각될 뿐이지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전하지 못한 채 겉돌고 있다. 이제 이러한 내용의 소설도 더 이상 청춘에게 어떠한 위로도, 해결 방안을 모색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래나 저래나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은 뭐하나 마음 편할 일 없고 아픈 상처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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