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와이어스  「핀란드 인」 1969년

 

 

적막하기 이를 데 없는 텅 빈 공간에 외로이 앉거나 서서 저 멀리 아득한 곳에 시선을 보내고 있는 부동의 인물이 앤드루 와이어스(1917~2009)의 그림이 지닌 공통된 표상이다. 「핀란드 인」도 그러한 작품 중의 하나에 속한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포착한 듯한 세세한 인물의 표정과 자태, 잠시 일손을 멈추고 있는 순간의 꾸미지 않은 차림새와 용모, 자연스러움이 눈에 잡힐 만큼 선연히 그려진 극세필의 필치에서 인물의 숨소리마저 들리는 듯하다.

 

벗겨진 이마와 민머리, 귀밑의 짧은 흰 머리칼 몇 올과 하얀 눈썹,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굴곡을 이룬 주름살, 그을린 피부 빛과 반점, 저 멀리 아득한 곳을 향해 주시하고 있는 시선, 어떤 설명할 수 없는 그리움과 외로움에 젖어 있는 눈빛. 화폭 속의 '고독'이 가슴으로 밀려온다. 주시하고 있는 저 시선의 아득함, 건조한 공기와 투명한 빛, 텅 빈 공간의 고요, 꾸밈없는 황량한 분위기 속의 인물은 미국의 풍광과 땅의 표정에 다름없는 이미지이다.

 

 

 

 

앤드루 와이어스  「Field Hand」 1985년

 

 

와이어스는 펜실베이니아 주 채즈퍼드에서 출생한 후 평생 동안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자기 고향마을의 하찮은 정경과 인물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돌아보며 낱낱이 그려 왔다. 그는 미국의 정경과 일상생활을 사실적인 화법으로 묘사하여 땅을 터하고 사는 삶의 가치를 주장하고 지킨 ‘미국 정경주의’ 화가답게, 특히 지방주의 그룹의 대표 작가로서의 삶을 실천하였다. 지방의 작은 도시나 마을을 찬미하여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향수어린 욕구에서, 미국 중서부와 서남부지방의 삶과 풍경을 주로 그렸다. 

 

건조한 공기, 따가운 햇살,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의 아득하고 아득한 인적 없는 땅. 그 주체할 수 없는 광막함을 바라보면서 이 지상에 보잘 것 없이 존재하는 한 외로운 나그네로서의 '고독'이 가슴 저리게 느껴진다. ‘아득함’과 ‘덧없음’. 이 교차되는 가운데 피어오르는 명징한 ‘고독함’이야말로 와이어스가 그림으로 말하고자 한 메시지라고 보고 싶다.

 

 

 

 

 

앤드루 와이어스  「Wind from the Sea」 1947년

 

 

그 한없이 투명한 명징함으로 하여 마침내 작가는 허공과 같은 무아(無我)가 되고 무화(無化)된 나머지 온통 전체를 포용하여 그 자체로 될 수밖에 없는, 둘이 아닌 경지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만나는 이웃사람들의 평소의 모습들, 허물어진 농막, 버려진 하찮은 물건, 빈 들녘, 바람결에 일렁이는 창문의 커튼 등 그야말로 존재하는 주변의 모든 것이 그의 분신으로, 작품의 소재가 된다.

 

그는 자신이 전통적인 의미의 사실주의자임을 부정하고 평소에 ‘나는 내 생각대로 그리는 순수한 추상주의자’라고 주장했다. 그림 속의 인물은 그의 마을에 있는 이웃사람으로 핀란드에서 온 이민자인 조지 에릭숀이다. 한 때는 필라델피아의 조선소에서 일을 한 적이 있고 채석장에서 석공으로 오래 일했으며 지붕에서 떨어져 등을 다친 뒤부터 일을 못하고 있지만 대단히 강건한 의지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늦게 결혼하여 이 작품을 그릴 당시 열다섯 살의 예쁜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은 와이어스 작품의 모델이 되어 인물과 누드화까지 그리게 해주었다.

 

 

               

 

 

우연하게도 이 핀란드 인의 얼굴 위로 영화 <가을의 전설>에 나오는 인디언 원스텝이 떠올랐다. 그가 지켜보고 회상한 미국 서부 몬타나 주의 대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진 러드로우 일가의 파란만장한 가족사. 가슴 아픈 사랑과 이별 그리고 죽음에 대한 장대한 스케일의 드라마. 특히 슬프고도 장엄한 영화 OST인 James Horner의 'Off to War'가 와이어스의 그림과 묘하게 어울린다. 그 음악의 흐름 속에서 아득함과 덧없음과 고독함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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