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신곡』 지옥편에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중세 이탈리아에서 실제 일어났던 정략결혼을 배경으로 한 비극의 주인공은 프란체스카와 파올로.

 

프란체스카는 라벤나의 귀족 귀도 다 폴렌타의 딸이다. 그녀는 첫눈에 반한 말라테스타 가문의 차남 파올로를 연모하면서도 두 가문의 이익을 원하는 어른들의 속임수에 의해 리미니의 귀족 잔초토 말라텐스타와 결혼하게 되었다. 그런데 잔초토는 불구의 몸(추남인데다가 절름발이)이었고, 그래서 결혼식장에 동생 파올로를 내보냈는데 신부 프란체스카는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

 

 

 

 

앵그르 「파올로와 프란체스코」 1819년

 

 

형수와 시동생이 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오랜 시간 애써 숨기고 있었다. 키스 장면이 묘사된 책을 우연히 함께 읽다 자석처럼 이끌린 단 한 번의 키스로 사랑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잔초토에게 발각되어 두 사람은 죽음을 당하였다. 그 이후 간음한 죄로 비참하게 살해되어 애욕의 죄를 범한 영혼들이 형벌을 받는 지옥의 제2원(신곡 속의 지옥은 9층으로 나뉘어졌는데 각 층은 죄질에 따라 구별된다)의 살을 에는 칼바람 속에서 서로를 끌어안은 채 떠돌게 된다.

 

 

 

 

 

아리 쉐퍼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앞에 나타난 파올로와 프란체스코의 영혼」 1855년

 

사랑은 우리를 하나의 죽음으로 이끌었지요.

(단테 『신곡』 지옥편 5곡, 민음사, 55쪽)

 

 

망령들의 애절한 사연을 들은 단테는 이 지극한 사랑에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을 느끼며 절절하고 비길 데 없는 시구절로 기구한 연인들의 사랑을 묘사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이후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문학, 음악, 회화 등의 소재가 되었다.

 

 

 

 

 

오귀스트 로댕 「키스」 1889년경 

 

 

그중에서도 조각가 로댕의 작품 ‘키스’는 긴 시간 지켜만 보던 연인들이 첫 키스를 통해 서로에 대한 감정을 깨닫는 순간을, 대담한 움직임과 표현적인 감각을 통해 주변 공간마저 빛이 넘치듯 묘사했다. ‘영혼과 영혼은 연인의 입술 위에서 만난다’는 말을 이 이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진실이라고 수없이 다짐하는 말보다도 더 많은 마음을 보여주는 감추어진 표정 같은 이 낭만적인 로댕의 작품 ‘키스’는 우리가 지나온 청춘의 신기루 같았던 시간의 흔적 속, 아찔한 현기증 같았던 첫사랑, 첫 키스. 그 기억의 실체화이다.

 

히포크라테스가 ‘태어났다 커지고 괴롭히다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한 질병처럼 다루기 힘든 열병이었던 첫사랑은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때로는 지우지 못할 상흔으로 남아 있게 마련이다. 돌이켜 보면 청춘은 사랑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시간의 풍화작용 속에서 우리는 세상과 부딪히면서 그 강렬한 사랑의 울림들은 잠잠해진다. 프란체스코와 파올로의 사랑이 절절히 마음에 와 닿았던 시절은 가고 사랑의 이야기들은 이제 마치 다른 세상을 엿보는 것처럼 낯설며 영화나 문학이라는 오래된 코드를 통해서만이 말할 수 있는 비실제적인 것이 되었다.

 

사랑이 없는 삶은 시들하다. 마음속에 간직한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고스란히 빈집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주받은 혼령이 되어 사랑하는 이와 함께 떠돌고 있는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사랑은 슬픔이자 축복이며, 만나려는 갈망과 만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서로 입술을 맞대고 있는 로댕의 ‘키스’는 되돌려 받을 수 없다면 훔쳐보기라도 하고 싶은 우리들의 잃어버린 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