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박태원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5
박태원 지음, 천정환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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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지나는 사람의 발걸음은 보폭을 가늠하기엔 너무 빠르고, 감정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한 낯빛들. 어쩌다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흘낏 내 눈을 의심하는 눈빛을 보낸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어폰을 귀에 꽂았거나 핸드폰에 정신을 쏟고 있는 사람들이다.

 

도시의 방관자가 되어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며 탐색하는 것. 구보가 오늘의 도시를 걷고 있었더라면 관찰자의 시선을 일상의 또 다른 재미로 즐겼을 것이다. 소설가 구보는 아무런 목적 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나날을 보낸다. 스물여섯 살인데 장가를 가지 않았으며 가족으로는 어머니와 조카, 형수뿐이다. 구보 씨가 부양해야하는 가족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무엇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또 동경엘 건너가 공부하고 온 아들이, 일자리가 없다는 사실에 믿지 못하지만 별 타박은 하지 않는다.

 

구보는 집을 나와 천변 길을 따라 광교를 향하여 걸어간다. 한낮의 거리에서 격렬한 두통을 느낀 구보는 무조건 전차를 탔다가 1년 전 소개받았던 여성을 우연히 본다. 소개받은 후로 연락을 하지 못하고 바보처럼 지내는 자신을 자학하기도 하다, 조선은행 앞에서 내려 장곡천정으로 향한다.

 

다방에 들어가 가배차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다 일어서서 골동품 가게를 경영하는 친구를 찾아간다. 친구는 방금 나갔다는 점원의 얘기를 듣는다. 할 수 없이 다시 걷는다. 그러다 금전적으로 출세한 친구를 만나 다방으로 끌려간다. 출세한 친구의 옆에는 예쁜 여자가 앉아있었다. 그 여자를 보며 ‘분명 황금과 육체를 바꿨을 것이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다시 조선은행 앞에까지 간 구보는 친구를 만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논하는 등 담화를 나누다가 친구가 급한 약속이 있어 잠시 헤어졌다 다시 만난다. 다시 만난 둘은 대창옥에서 식사를 하고, 과거 연애하였던 여성에 관하여 생각한다.

 

다시 친구와 술집에 간 구보는 술집 여종업원을 보면서 상념에 젖는다. 어느 날, 상복을 입은 여성이 ‘여급 대모집’이라고 적힌 광고를 보다가 자신의 나이를 한탄하며 돌아서던 장면이다. 구보는 생각한다. ‘여기 이 여자들과 그 아낙네 중 누가 더 행복할까?’ 새벽 2시,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차와 술과 여자, 거리의 풍경을 실컷 구경하며 만감이 교차하던 구보는 ‘생활인으로서 좋은 소설을 쓰리라’ 다짐하면서 집으로 향한다.

 

어찌 보면 시시껄렁한 이야기다. 소설 쓰는 청년이 하루 종일 거리를 헤매다 술 마시고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무슨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겠는가 싶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몇몇의 낯선 어휘를 제외하면 이 소설의 배경은 오늘이라고 해도 믿겠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가까운 과거의 소설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근대의 풍경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근대는 온갖 물질문명의 세례 속에서 마치 축복처럼 다가왔었다. 그러나 근대의 메커니즘이 언제나 밝은 면을 지녔던 것만은 아니다. 합리적이고 잘 구획된 인공적인 공간은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세련되어 보이지만 불행히도 근대인은 철저히 분할된 공간 속에,그리고 꽉 짜인 시간표 속에 종속된 채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런 까닭에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었고 결국 불신과 불안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다.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근대의 기획은 분명히 신화와 미신이 지배하는 봉건사회로부터 인류를 한 차원 진보하게 만들었다. 무질서하고 지저분하며 음험한 자연세계를 규칙과 질서를 통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근대 도시로 만들어 낸 것이다.

 

문제는 합리와 효율을 높이고, 보편성을 추구하다 보면 어느 새 각자가 지닌 본래의 고유성을 상실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비단 인간만이 아니다. 공간이나 시간도 모두 그 고유한 특수성을 잃고 보편적인 단위로 환산되고 만다. 근대의 보편적 기획은 자칫 획일화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고, 그 지점에서 주체와 타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눠 타자를 소외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나'와 차이를 지닌 사람과는 소통하지 않으려는 편견은 결과적으로 현대인들을 소통 부재의 삶으로 내몰리게 한 것이다.

 

모더니즘은 원래 현실을 추상화한다는 개념에서 나왔다. 리얼리즘 문학은 현실 세계를 재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면, 모더니즘 문학은 인간의 정서를 중시 여기면서 언어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모더니즘은 근대 산업 사회에서의 개인이 느끼는 상실감과 소외감을 드러낸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드러내고자 한 것은 그 당시의 소설가 구보를 통해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철저히 외면당하거나 무기력한 상태로 방관자적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는 개인의 소외 문제라는 것이다.

 

구보 씨는 ‘산책자’가 되어 서울의 거리를 걷고 있다. 전차와 재즈, 최신 유행의 모던 걸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하수구 시설이 되지 않아 똥냄새가 넘쳐나고, 골목 안에는 ‘문맹’의 어머니들이 돈 벌고 들어오는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 아들은 아무리 소설을 써도 돈이 되지 않는다. 한 가족을 벌어먹여 살리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원고료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신문사로, 총독부 청사로 구직활동을 벌여보지만 역부족이다. 그래서 무조건 거리로 나서 보는 것이다.

 

허나 어쩌란 말인가. 돈이 있어야 장가를 가고, 멋있는 여자를 들일 텐데. 이게 소설가 구보 씨의 한탄 섞인 독백이었다. ‘하지만 예쁜 여자는 못 얻어도 좋다. 생활인으로 돌아가 소설을 쓰리라’는 다짐을 잊지 않는다. 그에게 막장드라마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던 것이다. 막장드라마는 자본 앞에 자존심을 던져버린 마스터베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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