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1 영웅은 팜므 파탈을 좋아해
남자는 생존경쟁에서 이겨 스스로 권력을 만들어낼 정도로 강하지만 남자에게도 약점은 있다. 바로 아름다운 여인이다.
역사를 보면 미인에게 빠져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파괴하는 영웅이 많이 있다. 다른 이가 보기에는 그 여자가 사랑할 가치가 없다 해도 남자는 한 번 사랑에 빠져들면 자기 자신을 끝도 없는 나락 속으로 던져 넣는다. 영웅은 미인과의 밀월이 끝나는 순간 모든 환상에서 벗어나 자신이 예상하지 않았던 삶의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소진시켜 버릴망정 미인에게서 절대로 빠져나오지 못한다.
적장을 이기기 위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성을 보내 유혹함으로써 싸움에서 이길 수도 있다. 계략이 필요한 것은 전쟁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렇다. 미인계를 쓰면 실패할 확률이 적기 때문에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인계는 최고의 싸움 기술이다.
남자라는 속성은 언제든지 시도 때도 없이 미인을 사랑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남자는 시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미인을 보면 생식본능에 의해 유혹하고 싶어 하고 여자는 현실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남자의 외모나 나이는 중요하지 않고 남자의 능력을 사랑한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달랑 정자 한 개이기 때문에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정자만 받으면 생존에서 이길 수 있다. 그래서 남자를 사랑하지 않아도 남자를 유혹할 수 있는 것이다.
Scene #2 사랑을 위해 남자의 목을 친 살로메
팜므 파탈의 대표적인 인물인 살로메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헤롯왕의 의붓딸이다. 살로메는 헤롯왕이 베푸는 만찬에서 매혹적인 춤을 추고 그 춤에 반한 헤롯왕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하지만 그녀는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한다.
오브리 비어즐리 「절정」 1894년
하지만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와 삽화가 오브리 비어즐리는 성서의 이야기를 에로틱하면서도 더 잔혹하게 탈바꿈시켰다. 희곡 《살로메》에서는 살로메가 세례 요한을 사랑하지만 세례 요한은 그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 복수심에 불탄 살로메는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헤롯왕을 유혹하고 그 대가로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한다. 비어즐리가 묘사한 살로메는 세례 요한의 목을 들고 사랑의 절정을 느끼고 있다. 사랑할 수 없다면 그를 죽여 영원히 자기 것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그녀의 집념이다.
이 이야기는 마태복음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지만 신약성서 그 어디를 뒤져보아도 ‘살로메’란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성서에는 다만 ‘헤로디아의 딸’이라고만 나와 있으며 실제 내용도 일반적인 문학 작품들과 다르다. 성서에는, 요한의 처형을 사주한 것은 살로메가 아닌 살로메의 어머니 헤로디아다. 헤로디아는 당시 요한이 남편과 이혼하고 그 이복형과 재혼한 자신을 비난한 데 앙심을 품고 딸을 내세워 이와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적혀 있다.
귀스타브 모로 「헤롯왕 앞에서 춤을 추는 살로메」 1876년
와일드 이전에도 살로메는 여러 예술가들의 관능적인 경외의 대상이었다. 루벤스, 뒤러, 모로와 같은 화가들이 그녀의 자태를 화폭에 표현하고자 노력했고, 플로베르, 하이네, 말라르메 등은 글로써 그녀가 저지른 치명적인 유혹을 증명하고자 했다.
파블로 피카소 「살로메」 1905년
현대미술에서 절대로 빠지지 않는 피카소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가 오페라로 초연되었던 1905년에 피카소는 자신의 친구이자 시인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살로메의 춤을 데생으로 묘사했다. 피카소가 그린 살로메는 수원 문화의 전당에서 열리는 피카소 재단 설립 25주년 기념 특별 기획전 ‘피카소, 고향으로부터의 방문’에 가면 볼 수 있다. (6월 18일까지 전시)
세례 요한이 다시 한 번 웃을 수만 있다면
임금님 이 소녀는 세라핀보다 더 아리땁게 춤을 추겠어요
어머니 말씀해 주세요 백작부인의 옷을 입고
태자를 옆에 두고 어이 그리 슬퍼하시는지
(중략)
우리 모두 함께 가요 저기 오점배열(五點排列) 나무 아래로
임금님의 귀여운 광대여 울음을 거두어라
네 인두(人頭) 지팡이 던져 두고 이 머리를 받들고 춤을 추어라
손대지 마세요 어머니 그의 이마는 벌써 차갑습니다
임금님이 앞장을 서주시고 창병들이여 뒤따라 걸어오라
우리는 구덩이를 파고 그를 거기 묻으리라
우리는 꽃을 심고 둥글게 둥글레 춤을 추리라
(아폴리네르 ‘살로메’ 중에서 / 『알코올』열린책들, 107쪽)
비록 채색되지 않은 미완의 스케치로 남아 있으나 피카소는 살로메를 더욱 외설적인 요부로 묘사했다. 오히려 귀스타브 모로가 묘사한 살로메의 춤이 정적이며 고요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와일드의 묘사대로 모로의 살로메는 속살이 비치는 화려하고 투명한 옷을 하나씩 하나씩 벗으면서 춤을 추는 스트립쇼를 헤롯왕 앞에서 선보인다.
반면 피카소의 살로메는 헤롯 왕과 헤로디아가 보는 앞에서 완전히 알몸이 되어 춤을 춘다. 다리를 훤히 들어 올리는 동작으로 보아 살로메는 격정적인 자신의 춤에 무아지경에 이른 것 같다. 헤로디아는 자신의 남편을 유혹하는 듯한 딸의 춤이 못마땅한 나머지 고개를 돌리고 만다.
앙리 툴루즈 드 로트렉 「잔 아브릴」 1893년
살로메의 동작은 얼핏 프랑스의 춤 캉캉이 연상된다. 다리를 높이 차올리며 둥글게 둥글게 춤을 추리라. 아폴리네르와 피카소는 살로메 이야기는 공통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살로메의 시대적 배경을 벗어난 것이다. 유대 왕국에 ‘백작부인’, ‘광대’가 있을 수가 없다. 아직은 화려하면서도 퇴폐적인 세기말의 미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래서 피카소의 살로메는 로트렉이 즐겨 그렸던 캉캉 춤을 추는 술집 여자와 비슷하다. 로트렉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제 막 본격적으로 화가가 되기 위해서 무명의 젊은 피카소가 파리에 정착했을 때 로트렉의 그림을 연구하기도 했다.
피카소는 살로메 이야기에서 가장 많이 표현된 살로메의 춤과 목이 잘린 요한의 이미지를 한 컷에 담았다. 그래도 이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언 춤을 추고 있는 살로메다. 자신이 광기에 미쳐 집착했던 요한의 목이 쟁반에 담아 있는데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오직 춤에 도취되어 있을 뿐이다.
이후 여러 작가 및 화가들의 입을 거친 이 처형 사건에서 ‘살로메’라는 이름은 당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제푸스의 저서에 처음 등장한다. 하지만 요제푸스조차 요한의 처형에는 살로메나 헤로디아나 모두 관계가 없으며 다만 민중의 폭동을 우려한 헤로데 왕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고 적고 있다. 어쨌거나 이는 당시 민중의 지도자였던 요한이 집권자의 손에 처형된 정치적 사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집권자의 아내와 딸이 아름다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요한은 정치적인 희생물이 아닌 여성의 관능적인 매혹과 편집증적인 욕망에 의한 희생양으로 탈바꿈되어버리고 말았다.
실상 살로메(Salome)는 유태계 여성 사이에서 흔한 이름 중 하나이다. 히브리어로 ‘평화’를 뜻하는 ‘샬롬’(Salome)이란 단어가 자신에게 매혹되지 않는 남자의 목을 베어 잔인하게 복수를 하는 팜므 파탈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것 자체가 실은 아이러니인 셈이다.
Scene #3 복수를 위해 남자의 목을 친 아르테미시아
오늘날에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팜므 파탈’은 끊임없이 재생산되지만,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를 뛰어넘는 매혹적이면서도 잔인한 팜므 파탈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래도 피를 부를 정도로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살로메의 향기가 느껴지는 캐릭터를 고르라면 최근 개봉한 영화 《300: 제국의 부활》의 에바 그린일 것이다.
영화는 전작처럼 목이 뽑히고 팔이 잘리는 섬뜩한 장면들이 넘쳐나지만 그럼에도 에바 그린만 보인다. 그녀가 분한 페르시아의 속국, 카리아의 여왕 아르테미시아는 의붓아버지에게 세례자 요한의 목을 요구한 살로메만큼이나 아찔하고 도발적이다. 그녀가 왕의 인정을 받기 위해 적군의 목을 양손에 들고 선물로 바치는 장면 또한 살로메의 이미지와 흡사하다. 유혹적인 몸매와 고혹적인 눈빛을 가졌지만 적을 희롱하고 아무렇지 않게 그의 목을 따 입을 맞춘다. 망설임 없는 에바 그린의 연기력은 독이 든 성배 같은 아르테미시아의 팜므 파탈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수많은 페르시아 함대를 지휘하는 카리스마 있는 여장군이면서도 크세르크세스를 잔혹함의 끝을 보여주는 복수의 화신으로 만든다. 그리고 적을 제거하기 위해서 미인계를 쓰는 대담함을 보여준다.
특히 아르테미시아가 적장인 그리스의 장군 테미스토클레스를 유혹하려고 전투신을 방불케 하는 정사신은 영화 최고의 명장면이다. 상대를 전투에서 굴복시키려고 하는 의지가 엿보이는 격렬한 섹스에다가 에바 그린의 팬 서비스(?)을 볼 수 있으니까.
다리우스 3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를 테미스토클레스가 죽였다면 평화가 유지될 수 있을 거라고 영화에서는 살라미스 해전의 서막을 언급했지만, 아르테미시아가 없었다면 순진한 페르시아 왕자는 크세르크세스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르테미시스의 광기가 살로메의 그 광기와 차이점이 있다면 크세르크세스와 마찬가지로 그리스 군에게 목숨을 잃은 가족의 복수를 위한 것이다. 아르테미시스는 어린 시절, 자신이 보는 눈앞에서 가족이 그리스 병사들에게 잔인하게 몰살당했고, 포로가 되어 강제로 성적 노리개가 되어 빈사 상태로 길바닥에 버려지게 된다. 그녀는 깨달았을 것이다. 강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남자로 가득한 세상에 맞서고 지배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고 끝내 페르시아 함대의 지휘관에 오르게 된다.
아름다운 여자에게 가장 약한 존재는 남자다. 남자는 아름다운 여자만 보면 사랑하고 싶은 본능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남자는 아름다운 여자와의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여자가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과 맞설 수 없었다. 그래서 여자는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세상을 쥐고 흔드는 남자를 유혹하는 기술을 터득했다. 교미 후에 수컷을 잡아먹는 사마귀처럼 남자에게 치명적인 독을 내뿜는 팜므 파탈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아르테미시아와 살로메처럼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일일 수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