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미술의 주요 특징은 간단히 말해 꿈과 자연, 이상향이다. 낭만주의자들이 동경하는 이 모든 것은 지금 여기 없는 것이다. 아득하고 무한하며 끝닿을 데 없는 저 너머를 향해 있다. 윌리엄 터너(1775~1851)의 그림은 낭만주의의 이런 원형적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비, 증기, 속도」는 좀 더 각별해 보인다. 일단 제목에 ‘증기’, ‘속도’가 있는 것부터 근대적이다.

 

 

 

 

 

윌리엄 터너 「비, 증기, 속도」 1844년

 

 

화면을 아래와 위로 나눈다면, 아래는 땅을 보여주고 위는 하늘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리 분명하지는 않다. 자세히 보면, 오른편에 조그맣게 말이 끄는 마차가 보이고, 그 강물 위로 희미하게 조각배 한 척 지나간다. 기차는 몇 가지 색들이 교차하는 철길 위로 치닫듯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비와 기차는 붕 떠다니는 듯하다. 이 효과는 화면을 채우는 안개의 희뿌연 색채로 인해 더 실감 난다. 악조건의 기상에도 불구하고 질주 중인 기차의 속도감이 느껴진다. 어딘가에서 달려와 다시 어딘가로, 무한으로 기차는 달려간다. 기계의 힘, 그로 인한 가속도의 증가는 무한정 뻗어 갈 것이다.

 

여기에서 속도가 풍경을 압도하고, 기술(과학)이 자연(이상향)을 능가한다. 원래 무한성이나 신비는 자연의 속성이었지만, 이제 자연을 벗어나 기계 문명의 성격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기차는 산업화 이후 자연을 파괴하는 문명의 괴물을 암시하기도 한다. 낭만주의자들은 고대 신화나 중세 등 이미 가버린 시대를 갈망했지만, 터너가 갈망한 세계는 인간과 자연의 대립이 지양된 곳이다.

 

터너는 문명에 의해 잊힌 이상향의 은유물을 그림에 숨겨 넣었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토끼의 얼굴도 있다. 토끼는 순결함과 평화로움의 상징이다. 그래서 이상향에 사는 동물로 그려지는데 우리 조상들은 달을 늘 이상향으로 그렸고, 그 이상향에는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고 했다. 토끼가 어두운 밤 달나라에서 방아를 찧을 수 있는 것은 눈이 그만큼 밝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끼 눈을 명시(明視)라고 한다.

 

달에 토끼가 살고 있다고 믿으면서 눈이 밝은 분이라면 이 그림에 숨은 토끼를 찾을 수 있다. 터너가 그린 토끼는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무의식 속에 남아있는 이상향의 희미한 흔적인 것이다. 과거에도 현재도 인간은 변함없이 자연과 이상향을 동경한다.

 

 

 

 

* 터너가 숨겨 놓은 토끼의 얼굴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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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너가 숨긴 토끼의 얼굴은 기차가 지나가는 다리 아래에 있다.

단순한 착시에 의한 형상이라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실제로 미술 연구가들도 그림에 남아있는 토끼의 얼굴 형상에  

각자 나름대로 해석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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