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땅, 죽음의 땅, 유령마을. 어느덧 3년째가 된 일본 원전 사고 지역을 표현한 말이다. 도저히 불과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어져 버린 곳,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부에서 일어난 지진은 예상치 못한 비극을 불러왔다. 지진에 이은 쓰나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방사능이 대량 유출된 것이다.

 

아비규환이던 당시에 대한 기억도 어느새 제3자들은 잊어가고 있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잊혀져가는 기억 속에서 3자인 우리는 스스로를 자위한다. '자연이 입힌 상처는 치유되기 마련이다'라면서.

 

하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과 상처도 있다. 바로 인간의 오만이 남긴 상처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함을 자랑하던 일본 원자력 발전의 몰락과 함께 이 지역을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으로 만들었다. 앞으로 몇십 년이 걸릴 지 모르는 자연의 재생을 그저 바라만 보게 만들었다. 이미 후쿠시마 원전 반경 20㎞는 인간이 정한 '죽음의 땅'이 돼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점차 흐릿해져 가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남의 나라 일, 남의 지역 일이라며 우리들 대부분은 스스로를 달랜다. 아프지 않게 달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의 '죽음'이 속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년이란 시간 동안 간간이 들려 온 백혈병 환자 발생 소식도 더 이상 충격적이지는 않다. 인간이 살아 있음에 우리는 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망각의 귀퉁이에 버려진 동물들에게 현세의 지옥과도 같은 그 곳은 현재진행형이다. 얼마 있으면 풀리겠지 싶던 긴급 대피령에 남겨 두고 온 반려동물과 가축들은 하릴없이 주인을 기다리며 죽음과 대면해 왔다. 그들의 소외, 굶주림은 오만한 인간이 만든 자화상이다.

 

쓰나미가 뭔지, 방사능 수치가 뭔지도 모르는 동물들은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 채 죽어가야 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20km 내에 거주하는 시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려 사람들은 마을을 모두 떠났다. 동물을 돌볼 이가 없다는 의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지진과 쓰나미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동물들이 굶어죽거나 먹이를 찾아 떠돌며 야생화되었다.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죽거나 떠도는 동물들. 죄 없는 생명들의 이 비참함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떠도는 동물 중에 살아남은 수가 몇이나 될까? 아마도 죽음의 땅에서 오지도 않는 가족을 기다리다가 굶어 죽었을 것이다.

 

 

 

 

 

쓰나미에 온 가족이 쓸려나간 가운데 개 한마리가 살아남았다.

카메라에 잡혔다.

조용한 바다를 배경으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무엇인가 말하고 싶다고, 그 눈은 말한다.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좌로 다시 우로 돌린다.

 

누구일까, 개로 하여금 하고 싶은 말을 못하게 하는 그는.

또 사람한테 개의 말을 들을 능력을 갖지 못하게 한 그는.

 

- 신경림 「누구일까」-

 

 

죽음의 땅을 목격한 시인은 말한다. 이런 끔찍한 지옥을 만들어낸 그들은 누구일까. 시인의 질문 속에는 참혹하게 죽어가는 작은 생명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 배어 있다. 눈에 눈물이 고인 채 고개를 돌리기만 하는 개의 모습은 스페인 화가 고야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프란시스코 고야 「개」 1820~1823년 

 

고야가 그린 ‘검은 그림’ 연작의 한 작품인 「개」는 천진한 무방비함의 초상이다. 화가는 광대한 배경에 몹시 조그만 개 한 마리를 떨어뜨려놓았다. 창백한 황색 허공과 암갈색 바닥은, 형체와 스케일을 헤아릴 수 없어 더욱 위압적이다. 개의 네 다리를 집어삼킨 어둠은 쓰나미에 불어난 진흙 같기도 하다. 사방을 둘러봐도 개를 구해줄 지푸라기 하나 없다. 순종의 표시로 귀를 뒤로 젖힌 개가 주시하는 오른쪽 허공에는 어렴풋한 음영이 보인다. 개가 그토록 기다리던 주인일까. 아니면 가엾은 생명에 차가운 손길을 내밀려는 죽음의 신일까. 희미한 음영의 정체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다. 개의 눈빛을 보라. 원망도 호소도 없다. 그저 영문을 모른 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채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면서.

 

죽을 때까지 죽음을 들여다보며 붓질했던 고야는 쓰나미처럼 덮쳐오는 거대한 멸망의 공포 앞에서 텅 빈 눈동자를 힐끔거리는 개의 대가리를 그렸다. 200여 년 전 그린 그 개의 모습은 인간이 만든 재앙이 덮친 후쿠시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고야는 개의 가엾은 눈망울을 그린 것이 아니다. 죽음의 땅을 만들게 한 장본인, 바로 오만한 인류의 모습을 보고 있는 개의 눈망울을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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