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정치가이자 뛰어난 문인이었던 키케로는 ‘책 없는 방 안은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고 말했다. 르느와르의 그림 「책 읽는 여인」을 보고 있으면 나는 그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책을 읽을 때 육체에 영혼이 깃든다’고. 독서를 하고 있는 여인의 빛나는 얼굴은 그녀의 삶 속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생기 있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 같다. 이 여인의 모습을 보면 독서를 통해 간접 경험을 함으로써 자신의 세상을 넓히고 인격을 높인다는 상투적인 이야기를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그러나 모두가 예찬할 것 같은 독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특히 의외로 철학자들 모두가 독서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경우 책을 구성하는 문자 자체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의 대화편 『파이드로스』를 보면 문자의 고안에 대한 신화가 하나 나온다. 이집트의 신은 수, 기하학, 천문학에 이어 문자를 고안한 후 왕에게 보여준다. 왕이 문자의 용도를 묻자 신은 인간을 더 지혜롭게 만들며 인간의 기억력을 향상시켜 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왕은 “인간은 문자와 글에 대한 믿음 때문에 외부의 기호에만 의존하고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스스로의 힘으로 기억해 내거나 상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래서 이 대화편에서 나오는 소크라테스는 책이 아닌 상대방과 서로 적절히 논박하며 진행되는 살아있는 대화만이 진정한 지식을 가르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플라톤의 저작이 모두 대화편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학설도 있다. 서술 형태로 대화하는 방식을 취해 글로 씌어진 말의 약점을 조금이나마 보완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철학이라는 것은 글로써 서술된 것이 아니라 행위와 탐구 과정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런 면에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나오는 언명은 주목할 만하다. “나는 게으름을 피우며 책을 읽는 자를 미워한다. 독자를 아는 자는 독자를 위해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한 줄의 글을 읽을 때도 눈으로 훑고 지나쳐 갈 일이 아니라 글쓴이의 정수를 캐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된다는 의미이다. 수박 겉핥기라는 속담처럼 독서를 할 때 행간의 뜻보다는 표면적 의미만 읽고 있는 게 아닌지 반성해볼 일이다.

 

쇼펜하우어 역시 책에 대해서 그렇게 긍정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그는 “책은 어디까지나 실재하는 세계의 재현이고 모방일 뿐이다.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이와 같은 재현에 필요한 거울이 먼지 하나 없이 완벽하게 깨끗한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라고 해 플라톤과 유사한 입장을 보였다.

 

플라톤은 세상의 사물을 참 존재인 이데아를 모방한 불완전한 실재로 봤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는 책은 이데아에서 2단계나 떨어진 그림자 같은 것에 불과했다. 마찬가지로 책은 쇼펜하우어에게도 실재 자체가 아니라 흠 있는 모방이었다.책을 통한 지식의 습득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은 동양에도 있었다.

 

 

 

 

 

 

 

 

 

 

 

 

 

 

 

 

명대의 철학자 진헌장의 경우 매일 독서에만 집중해 자는 것과 먹는 것을 잊고 도를 추구했으나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그는 책을 통한 공부를 버리고 정좌한 후 사색만 죽어라고 해 마침내 ‘이르는 곳마다 천리를 체인한다’는 학설을 터득하게 됐다.

 

 

 

 

 

 

 

 

 

 

 

 

 

 

 

 

 

태워버려야할 책이라는 뜻의 『분서』라는 제목의 책을 지은 명대의 유학자 이지는 인간의 본성을 아이들의 마음인 ‘동심’으로 파악하면서 “학자들이 책을 많이 읽고 도리를 알아서 오히려 동심을 저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유가의 경전들을 멍청한 제자들이 스승의 말을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한 채로 적어놓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사상가로서 남녀평등론을 주장하고 틀에 박힌 해석만 하는 유학자들을 비판한 이지는 결국 정치적 박해로 투옥당하자 자살하고 말았다.

 

이런 철학자들은 독서 자체를 거부하기보다는 책에 담긴 내용을 곱씹어 보는 일 없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비판했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고 뉴턴의 중력이론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해 보완된 것처럼 전통만 신봉했다면 학문의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대부분의 철학자가 독서를 중요시했고 책을 수집하는 일을 사랑했다.

 

책은 이렇게 사람들을 일깨우는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이에게는 탄압의 대상이기도 했다.대부분의 독재자들은 지배의 편의성 때문에 대중이 문맹이길 원하지만 피지배자들이 한번 익힌 읽기 능력은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검열을 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익히 알고 있는 진시황의 분서갱유 사태부터 시작해 칠레의 피노체트 군사정권이 자유를 호소하고 권위에 도전한다는 이유로 『돈키호테』를 금서 목록에 올린 것까지 검열은 권력이 있는 곳에는 어디서든 존재했다. 심지어 민주 군대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한국의 국방부도 금서 목록을 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철학에서 책은 더 이상 해석 대상의 모든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는다.철학에서 쓰고 있는 ‘텍스트’라는 말은 책뿐만 아니라 예술이나 꿈, 문학 등도 포함된다. 해석학의 경우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면 어떤 형태이든 텍스트로 보기 때문에 넓게 생각한다면 이 세계 전체가 텍스트이며 발생하는 모든 일이 텍스트다. 모든 세계의 현상에서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 해석학의 중점 사항으로 바뀐 것이다.

 

 

 

 

 

 

 

 

 

 

또한 하나의 텍스트를 가지고 해석의 다양성이 어디까지 허용될지도 문제가 된다. 하나의 현상에 대해서 수많은 해석이 가능하다고 할 때 해석의 한계는 어디인지도 논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해석에도 한계가 있어 너무 자의성 짙은 해석을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움베르토 에코가 있는가 하면 오독조차 텍스트를 풍부하게 한다며 모든 해석의 지평을 열어놓는 철학자도 있다.

 

텍스트는 우리에게 한 가지 길만 열어놓는 것이 아니다. 같은 책을 읽고도 사람마다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수많은 해석이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책은 하나의 세상이며 세상도 하나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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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01-25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많은 해석이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음악도 하나의 세상이며 세상도 하나의 음악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쇼펜하우어와 니체도 책뿐 아니라 음악과 예술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사실이 떠오르네요.

책을 마음껏 읽기 위해 아예 자신의 성에 틀어박혔던 몽테뉴조차 '책과 너무 가까이 지내는 일'을 늘 경계했던 인물이었지요.

* * *

책은 재미있다. 그러나 책과 너무 가깝게 지내다가 우리에게 최선의 부분인 쾌활성과 건강을 잃고 만다면,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저버리자. 나는 책을 읽는 결과가 이러한 손실을 보충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몽테뉴)

cyrus 2014-01-25 23:02   좋아요 1 | URL
저도 나름 책을 엄청 좋아하는 성격인데 독서에 관심 높은 사람 아니면 책 이야기를 잘 안해요. 요즘은 책 밖으로 나와 주변에 접할 수 있는 문화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특히 전시회 관람은 책에 인쇄된 그림을 보면서 생기는 느낌과 전혀 다르더군요. 그리고 너무 책에만 푹 빠져 있으면 좋은 벗을 잃기 마련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