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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정복자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사이언스 클래식 23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최재천 감수 / 사이언스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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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화가 폴 고갱은 1987년 타이티의 풍경과 사람들을 표현하면서 위와 같은 문장으로 그림 제목을 대신했다. 눈 앞을 가득 채우는 사람과 풍경의 모습을 매일같이 지켜보면서, 그것들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궁금했을 터다.

 

『지구의 정복자』 저자 에드워드 윌슨도 같은 질문을 품었다. 그는 고갱과 똑같은 질문을 던진데 그치지 않고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저자는 책 속에서 유전학, 신경과학, 진화생물학, 사회심리학, 역사학을 모두 동원해 인류가 어디서 시작했는지를 설명했다.

 

이 책은 인류 진화를 다뤘다. 저자는 6천만년 전에 지구 정복을 완수한 개미와 같은 사회성 곤충과 인류의 삶을 비교하면서 지구가 어떻게 시작됐고, 이 과정에서 인류를 어떻게 문명을 만들어냈는지를 설명한다.

 

개미는 여왕개미와 그를 돕는 일개미, 병정개미가 모여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맡은 바 역할을 수행한다. 외부 적이 등장해 개미의 집터를 공격하려고 하면, 일개미는 집을 지키기 위해 떼를 지어 적을 공격한다. 이 과정에서 일개미는 자손을 남기기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저자는 개미를 예로 들며, 이기적인 행동만으로는 인류 문명을 만들 수 없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집단을 배려하는 마음과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서로 협력해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고 발전해 나갈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인간 유전자의 ‘이기적 본능’이 아닌 ‘이타적 본능’이 인간 진화와 문명에 핵심으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진화를 다룬 이와 비슷한 책은 과거에도 있었다. 과학자 리처드 도킨슨이 쓴 『이기적 유전자』다. 도킨슨은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이 유전자가 만들어낸 기계라고 정의하며,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기 위해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고 설명했다. 문명을 만들고, 진화를 하는 이유는 모두 자신의 자손을 퍼뜨리려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시작됐다고 본 셈이다.

 

유전자는 자신을 퍼뜨릴 가능성이 높은 경우의 수를 선택한다. 그래서 도킨스의 이론을 ‘혈연선택이론’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어 물에 빠진 두 아이가 있다. 한 아이는 사촌, 다른 하나는 팔촌이라면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사촌을 구한다. 사촌의 경우가 자신과 공유하는 유전자의 수가 훨씬 많을 테니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혈연선택이론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이 이론은 이미 진화론계의 정설로 자리 잡았다. 이 이론에 따르면 유전자는 극히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앞서 예처럼 유전자가 복제가 용이한 유전친화적 상황만을 선호한다면 유전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이기적인 선택만을 할 수 있다. 유전자 개념에서 인간을 이해한다면 이기적인 유전자를 지닌 인간이 이타적인 선택을 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 인간의 이타적 행위조차도 유전자 복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이기적 선택의 발로인 것이다.

 

사실 윌슨 또한 혈연선택이론이 주류로 자리 잡는 데 많은 공을 세운 학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책인 『지구의 정복자』에서 현대 진화 생물학계의 주류 이론이자 도킨슨이 주장한 ‘혈연선택 이론’에 반기를 들었다. 혈연선택 이론에 기반한 이기적 유전자 이론은 사회성 생물의 진화와 이타성의 진화, 헙력의 진화를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개미와 꿀벌의 삶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혈연선택을 버리고 이타적 집단의 생존확률이 높다고 주장하는 ‘집단선택이론’으로 돌아선 것이다. 윌슨에게 있어 이타적 공동체와 이를 가능케 하는 ‘진사회성’의 유무야말로 인간 진화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다. 진화를 이기적 기제로만 설명한다면 공동체를 설명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알다시피 공동체를 떠받치는 기반에는 이타적 행위들이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에 있어서 원로급으로 추앙받는 윌슨으로서는 인간이 지닌 ‘진정한 이타심’에 대한 믿음을 끝내 떨쳐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대안으로 집단 선택과 개체 선택이 상호 작용하는 ‘다수준 선택이론’을 제안했다. 그는 "이기적인 본능만 유전자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이타적 본능도 유전자 안에 함께 존재한다”라고 주장한다.

 

80세가 넘은 윌슨은 자신의 학문적 기반을 전복시켰다. 적지 않은 고령의 나이임에도 그는 연구와 대중을 위한 강연 중심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오랜 학자의 삶을 되돌아보고 마무리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르렀다. 지금도 윌슨은 연구논문과 집필에 몰두하고 있겠지만, 논란이 멈추고 있지 않은 이 책이 위대한 원로 진화론자의 유작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윌슨이 그동안 주장했던 이론과 관점을 버린다는 것은 그의 학문적 커리어를 감안한다면 대단한 용기라고 볼 수 있다. 그가 쌓아온 학문적 업적의 기반에는 혈연선택이론이 있었고 이를 버린다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그의 학자로서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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