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스
어빈 웰시 지음, 김지선 옮김 / 단숨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우리는 우리 아닌 다른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자신을 증오한다.

더 나은 누군가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우리는 분노를 느낀다. (509쪽)

 

 

 

 

 Scene #1  혐오스러운 악질 경찰 브루스의 일생

 

여기 부패하고 타락한 경찰이 있다. 그는 술과 마약에 중독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지만 진급을 위해 동료들을 모함하고 위기로 몰아넣는 데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변태적 도색(桃色)은 이미 정도를 넘어 동료의 아내들에게까지 뻗쳐 있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망쳐 놓았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행복까지도 거리낌 없이 짓밟아 버리는 남자, ‘필스’(Filth, 오물)의 주인공 브루스 로버트슨은 동시대 인간 말종의 초상과도 같다.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독자들에게 브루스는 이해 불가한 주인공이다. 좀 모자라거나 괴짜스럽더라도 착하고 정의로운, 그래서 금방 애정을 갖게 되는 경찰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라이벌들을 이간질하고, 동료의 아내와 바람을 피우고, 처제와 은밀한 관계를 즐기고, 사건 해결을 위해 협박마저 일삼는 이 비도덕적인 삶이 브루스 자신은 멋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정작 사건 수사는 뒷전이고 진급 라이벌들에 대한 중상모략을 펼치고 그가 좋아하는 갈보들과의 난잡한 행위를 연출하는 장면을 본다면 혐오감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브루스의 계속되는 악질을 보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중간에 등장하는 기다란 촌충의 독백은 이미 악으로 피폐해진 브루스의 상태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촌충은 오직 브루스가 음식을 많이 먹기를 바란다. 브루스 못지않게 탐욕스럽다. 이미 부패할 대로 부패한 브루스의 타락한 몸과 마음을 숙주 삼아 살아간다. 촌충이 브루스의 탐욕을 먹고 자란다면, 브루스는 권력 상승을 위해 '경찰'이라는 명함을 앞세워 사회에 기생한다.

 

책을 펼치기 시작하기 전부터 무려 500페이지에 달하는 스코틀랜드 아니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인물의 삶을 끝까지 읽을 필요가 있을지 망설이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이미 타락한 인간상의 전형을 보여준 어빈 웰시의 대표작이자 데뷔작인 『트레인스포팅』의 원작과 영화를 본 사람이라도 이 충격적이고 더러운 묘사로 가득한 악질 경찰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망설일지도 모른다.

 

 

 

 Scene #2  권력을 위해 기생하는 탐욕덩어리

 

무엇이 브루스를 타락한 경찰이 되게 만들었는가? 성선설을 믿든 성악설을 믿든 고만고만한 영유아기의 인성을 비정상의 궤도로 밀쳐내는 것은 환경과 정신적 외상이라고 보는 것이 현대의 통념이다. 아버지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외면 받은 유년 시절 그리고 첫사랑을 죽음으로 몰았던 브루스의 경험은 그의 현재를 단단히 뒷받침한다. 분노를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자신 또한 약자를 무너뜨릴 수 있는 권력을 가지는 것이다. 어린 브루스는 자신이 받은 멸시와 폭력을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동시에 욕구 불만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삼기 시작했다. 즉, 세상에 대한 복수를 할 수 있고, 연약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바로 권력과 폭력이라고 믿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권력을 행하기에는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만다. 브루스는 그러한 자신이 원망하고 저주스러워 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없는 절망감에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 주변에 분노감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분노를 표출할 수 하기 위해서 권력으로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 경찰이 되는 것이었다. 다른 생물체의 몸속에서 먹이와 환경에 의존하여 기생생활을 하는 기생충처럼 이미 비뚤어져버린 심성으로 변한 브루스는 경찰 조직에 들어와 숨겨왔던 탐욕을 드러낸다.

 

곧 경위가 될 자리에 있어도 브루스의 탐욕은 멈출 수 없다. 촌충이 브루스에게 음식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도록 명령하듯이 탐욕과 집착은 브루스의 뇌를 지배했다. 브루스가 직접 고백하듯이 그는 자기 자신을 제어할 수 없어 약과 섹스에 탐닉하고 남을 괴롭히는 것으로 자신의 건재를 확인한다. 승진을 위한 권모술수 역시 아내와 딸을 되찾게 해 줄 것이라는 잘못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죄책감으로 인한 정신 분열은 점점 더 빈번하게 브루스를 옥죄어 오는데, 아픈 과거의 기억과 장면이 등장할수록 브루스에 대한 인간적 연민도 정점으로 치닫는다. 이윽고 가해지는 브루스에 대한 처벌들, 범죄자들에게 끌려가 린치를 당하고, 승진에 실패하며, 다른 남자와 가정을 꾸린 아내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어쩌면 충분히 가혹한 것이다.

 

브루스와 같은 악한의 행위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뉠 것이다. 하나는 그가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 쓰레기’라는 것인데 대다수 보통 사람의 감정적 반응이 이것이다. 이에 반해 그가 악행을 저지르게 된 상황적 요인이 있을 것이란 입장이 맞선다. 악행을 용서하는 것과는 별개로 악행의 원인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개인적 또는 집단적 행동, 특히 악행의 주요 원인은 증오심, 기질과 같은 심리적인 것인가, 아니면 그가 처한 특수한 상황 또는 사회적 구조인가라는 질문으로 달리 표현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전자의 입장이 훨씬 속 편할지 모른다. 그저 나하곤 전혀 별개의 나쁜 놈, ‘인간 쓰레기’로 규정하면 끝이니까. 그러나 이런 해석은 반복되는 인간의 잔혹한 행동들,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다.

 

 

 

 Scene #3  더 많이 불편하고, 아파하시라

 

“악한 일은 스스로 하는 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못한 데에서 나온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커다란 악을 저지를 수 있다.”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브루스는 사나운 악마는 아니다. 생각이 이상할 뿐, 치유하지 못한 유년기의 상처를 안고 살다가 감정 조절을 주체하지 못하는 ‘거악(巨惡)’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미 근본적으로 잘못된 오류의 희생자일 뿐이다. 이렇듯 모든 악행은 인간의 악마적 속성이 아니라 사고력의 결여에서 나온다. 아렌트가 만난 아이히만은 히틀러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으로 뭉쳐진 기계적인 인간이었다면, 어빈 웰시가 만들어 낸 가상인물 브루스는 유혹, 본능, 상념과의 갈등에 정신이 게을러져 술과 코카인 그리고 악질에 의존하게 되는 ‘악의 평범성’에 쉽게 지배당하는 허약한 인간이다.

 

그가 악하게 만든 또 다른 요인에는 권력의 환상에 도취된 이상주의적 열정도 한몫하고 있다. 브루스에게 ‘사건’은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이다. 진급을 위해 물불 안 가리고, 진급 경쟁자들을 견제하며 성과를 얻어낸다. 진급을 위한 성과에 눈이 먼 나머지, 사건 해결에 유리하도록 거짓말과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이상주의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상주의자란 자신의 이상을 삶을 통해 실천하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이상을 위해서라면 어떤 사람이라도 희생시킬 각오가 된 사람이었다.” 이처럼 브루스의 왜곡된 이상주의적 열정은 관념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였고, 그것도 과격한 실천이다. 그러니까 브루스는 난데없이 나타난 악마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규칙과 명령과 ‘주어진 이상’에 맞추려고 집착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옛말에 사필귀정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예견했던 대로 브루스는 용서와 구원을 받지 못한 채 몰락한다. 드디어 '인간 쓰레기'가 스스로 이 세상에 사라지게 되어서 속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미풍양속에 위배되는 존재는 마땅히 처벌받고,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 브루스도 법의 손길을 피해갈 수 없다. 그러나 브루스는 법의 손길에 포위되는 대신에 죽음의 신이 뻗친 손길이 자신의 목숨을 거두기를 원했다.

 

장면 하나하나 불편해질 수밖에 없는 악질로 가득한 500여 페이지를 참고 견뎌 읽어도, 여전히 불편하다. 왜 그럴까. 브루스는 불행하게도 자신의 도덕성과 정신을 거의 회복불능 정도로 파괴시킨 '인간 쓰레기'를 복수하지 못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죽기 전에 자신의 유년 시절에 자신과 첫사랑을 모욕한, 어디선가 평범하게 살지도 모르는 속이 시커먼 그들을 죽이든, 협박하든, 욕설을 하던 간에 똑같이 악랄한 방식으로 복수를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비록 용서치 못하는 범죄 행위라도 이 소설을 읽는 독자는 악이 또 다른 악을 응징하는 안티 히어로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필스』를 끝까지 단숨에 읽었는데도 불편하고, 결말에 불만스럽다.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 나왔는데도 무언가 개운치 않고, 찜찜한 느낌이 든다. 브루스는 심신을 망가뜨리는 약(藥, 코카인)을 해서 악해진 것이다. 그는 애초부터 폭력에 연약한 사람이라서 어쩔 수 없이 악한 '괴물'으로 변하고 말았다. 일부 독자들 중에는 여전히 브루스를 절대로 용서와 구원받을 수 없는 '인간 쓰레기'라고 손가락질해도 좋다. 무수한 악질로 가득찬 500페이지를 단숨에 끝까지 참고 읽을 수 있다면 더 많이 불편하고 아파해야 한다. 그의 일대기를 보면서 더 많이 불편하게 느끼고 몸속에 촌충이 꿈틀거려 위장을 괴롭힐 때마다 생기는 통증처럼 아프고 찜찜하게 느낀 독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작가 어빈 웰시는 상당히 고마워했을 것이다.

 

 

 

P.s 24시간 악질을 펼치는 주인공을 다룬 이야기답게 입에 담기 어려운 음란한 단어, 온갖 비속어가 줄줄이 나온다. 책의 분량도 적은 편도 아닌데 정신이 해로울 정도로 실감나게(?) 비속어 하나하나 번역한 역자의 노고에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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