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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ㅣ 펭귄클래식 43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Scene #1 산타클로스와 스크루지
도시의 외곽에 위치한 교회에서 울린 단 한 번의 종소리가 얼어붙은 강을 타고 마을에 들어선다. 시간을 굽는 빵가게를 지나 차가운 손을 비비며 꽃을 파는 여인을 위로하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자를 스친다. 도시를 울리는 청명한 종소리가 있는 시간,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떨어지는 눈송이보다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크리스마스이브다. 남루한 옷차림의 과일장수가 열손가락만으로도 계산되는 수입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지나가던 부랑자에게 사과 하나 건네 줄 수 있는 날, 당장 집에 먹을 것이 없더라도 따뜻한 난로가 마음을 달아오르게 하는 날, 다리 밑에서 구걸을 하던 거지의 주머니가 가득 채워질 만한 날이다.
이런 날, 스노우볼 같은 지구에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의 눈송이가 한 사내만은 그저 스쳐지나간다. 그 앞에서는 종소리도, 눈송이도 힘없이 사라질 뿐이다. 평생 크리스마스 캐럴을 단 한 번도 부르지 않을 것 같은 스크루지 영감. 그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들떠있는 당신을 노려보며 말한다.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떠들고 다니는 놈들은 모조리 푸딩과 함께 푹푹 끊여 버려야 해.”
크리스마스를 맞으면서 으레 화제에 오르는 캐릭터가 산타클로스와 스크루지다. 산타는 착하고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해주는 데 반해 스크루지는 인색한 성격이라는 점에서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선행의 주인공인 산타 할아버지는 현실 세계에선 존재하지 않는 동화속의 인물일 뿐이다. 오히려 이기적이며 탐욕스런 스크루지 영감이 우리들 모습에 훨씬 더 가깝다면 가까울 것이다.
Scene #2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 먼저 저 스크루지에게 돌을 던져라
스크루지를 보면 말 한 번 걸면 짜증 섞인 욕설이 나올듯한 욕쟁이 할아버지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성격이 괴팍하다는 이유만으로 스크루지를 욕하지 말자. 디킨스가 묘사하는 스크루지는 인색하고 욕심스러울망정 남에게 그렇게 해악을 끼치지는 않는다. 젊어서부터 어렵게 모은 돈이기에 아끼면서 지내는 모습이 너무 지나쳐 사랑과 인정이 메마른 구두쇠의 화신처럼 비쳐질 따름이다. 자기 집이나 상점에서도 추위를 겨우 이겨낼 만큼만 석탄을 때는 정도다.
조금 달리 바라본다면 그렇게 비난을 받을 만한 부류는 아니라는 얘기다. 자신을 위해 흥청망청 쓰는 것도 아니고 씀씀이를 줄여가며 재산을 지키려 드는 데야 누구라도 나무랄 수 없다.
그는 우리보다 열심히 일했고 우리보다 검소했으며 우리보다 열심히 세금을 냈다. 그의 검은 옷차림과 주름 가득한 얼굴을 보면 그 돈을 다 어디에 숨겨놓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보다 부지런히 살며 돈을 모았다. 말투와 표정을 제외하면 검은 옷을 입은 그는 성직자와 같은 금욕적인 생활을 해왔다. 가족을 떠나 홀로 지내는 성직자의 모습을 떠올리자면, 혈육도 무시하고 자기만의 공간에 갇혀 사는 스크루지는 자기만의 세계에서 자기만의 규칙을 지키고 사는 또 하나의 성직자와도 같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정이 메마르는 고독의 그늘에 갇힌 현대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물론 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기 상점에서 일하는 점원의 급료를 자꾸 깎으려 든다거나 이웃을 돕는 데 인색하다는 점이 그것이다. 하지만 직원들의 월급을 기꺼이 더 얹어주려는 기업주가 드물고, 불우이웃 돕기에 대부분 등한하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그는 어디까지나 평균적인 캐릭터일 따름이다. 지금의 일반적인 가치관으로 그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궁금스런 까닭이다.
그가 숭배하는 돈, 그것만 바라보며 벽에 똥칠하지 않고도 먹은 욕을 명줄삼아 오래오래 살 스타일이다. 이 규칙적인 인간 스크루지는 그래서 독자들이 잊고 있거나 알면서도 스스로 묵인했던 인색한 인심에 자극을 줄 수 있다. 아무리 좋게 보려 죽을힘을 다해 애를 써도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의 심술궂은 시선 속에서는 그를 조롱하며 바라보는 우리도 멍청하고 방탕한 광대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Scene #3 없는 산타를 기다리는 ‘어른 아이’ 스크루지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어렸을 때 동화로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스크루지가 개과천선하는 이야기의 과정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스크루지는 세 명의 유령을 만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여행하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행복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따뜻한 이유는 디킨스가 크리스마스에 끼워 넣어 억지로라도 만들려는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잘'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는 내 것을 나누며 선을 베풀어 모두가 행복해야 의미가 있다는, 식상하지만 인류가 이뤄내야 마땅할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메시지가 잘 전달되는 요인으로는 비교효과를 들 수 있다. 돈 많은 구두쇠 스크루지의 외로운 크리스마스이브와, 돈 없는 가족의 따뜻한 크리스마스이브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흡사 비교체험 극과 극을 보여준다. 스크루지의 비참한 죽음 이후 아무 의미 없어진 그의 구두쇠 노릇과 사람들의 비아냥거림은 한 인간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현실 사회의 문제점은 스크루지에 있다기보다 선물을 받기만을 내심 바라면서 오지도 않을 산타에 기대려는 분위기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생활이 고단할수록,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수록 선물 보따리를 둘러멘 산타의 출현을 기다리는 마음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기다리다 지쳐 잠들었다가 눈을 뜨고는 끝내 산타가 오지 않은 데 실망하고 마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처지다. 우리는 우습게도 세상에도 없는 산타는 잘 기다리면서도 정작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법을 몰라 세상을 원망하면서 고독을 삼키는 ‘어른 아이’ 스크루지가 되어 있다.
어린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크리스마스에 산타로부터 선물을 받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으며, 설혹 받은 경우라 해도 가난한 집 아이들은 부잣집 친구들에 비해 선물이 초라하고 보잘것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깨닫고 있다. 그나마 산타가 방문해 주었다는 자체만으로도 들뜬 나머지 다시 이듬해를 기대하면서 차츰 동화의 세계에서 벗어났던 기억을 대부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더욱이 화려한 차림의 산타들이 각종 상품을 선전하는 광고를 보면 이제 산타는 동화 속의 인물이기보다 장삿속을 위한 세일즈 도구로 전락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산타가 등장하는 요란한 크리스마스 행사들이 도리어 빈부격차를 느끼게 하고 동심을 멍들게 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더 나아가 산타의 이름으로 선행을 베푼다면서 은근히 제 실속만 차리려는 사람들도 전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Scene #4 오늘의 스크루지는 언제나 외롭다
우리는 스크루지의 여행을 통해 외톨이로 지내게 될 수밖에 없었던 그의 환경을 만난다. 스크루지는 언제나 외로웠고 고독했다. 가난은 그에게 한평생의 짐이 됐다. 어린 시절, 누군가 그에게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선물했다면, 마음을 위로하는 크리스마스를 만들어줬다면 어쩌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돈보다 마음이라는 이 유치한 원리를 그가 진정으로 깨닫기에 환경은 너무 열악했다. 혹시 그의 변화가 효과 있는 이유를 스크루지의 재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린이 독자를 위한 축약본이 아닌 진짜 원작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그가 가난해서 물질을 베풀지 못하더라도 스크루지의 각성은 의미를 지닌다. 남을 도울 수 있는 능력과 그 양을 떠나 황폐한 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스크루지의 고지식한 인간성이 훨씬 더 돋보이는 것은 그런 때문이다. 자신을 찾아온 유령의 안내로 과거와 미래 세계를 두루 둘러본 그는 자신의 인색함을 깨닫고 선뜻 거액의 자선 기부금을 내놓기도 하지 않는가.
혹시 자신이 스크루지와 비슷하다면 각자 스스로의 미래를 생각해보길 바란다. 단 하루라도 좋다. 특히 바로 이맘때. 오늘 크리스마스이브와 그 다음날인 크리스마스 아무 날이어도 상관없다. 어리석은 우리들이 제정신을 차리기 위해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들이 우리를 위해 즐겁게 찾아온다면 정말 고맙겠지만, 유령이 무서워서 싫어한다면 어른의 눈으로 진짜 어른 스크루지를 다시 만나 보라. 마음을 즐겁게 만드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을 수 없지만, 디킨스가 크리스마스의 참된 의미를 잊고 있는 독자들을 위해 만든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주위에 스크루지 영감이 있다면 그들에게 끊임없는 손길을 내밀어 온정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출간된 지 올해 170주년이 되었다. 소설 속 스크루지는 행복한 삶을 살았지만,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스크루지는 언제나 외롭다. 그 날이 크리스마스라 할지라도. 우리의 스크루지들이 마음을 활짝 열어젖히고 모두 즐거운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맞는다면 더없이 좋으련만. 내 옆의 스크루지가 행복해야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