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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크라트 -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그 나머지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지음, 박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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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것이 세상이라고 하면 결국 세상은 한창 진행되고 있는 거대한 체스 게임이겠죠. 와,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제가 그 말들 중의 하나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말이 될 수만 있다면 졸이 되어도 상관없어요. 물론 여왕이 되는 것이 더 좋기는 하지만요.”

 

- 루이스 캐럴 『거울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북폴리오(235~236쪽) -

 

 

 

 

 Scene #1  붉은 여왕 효과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은 쉼 없이 뛰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항상 제자리다. 주변 세계도 함께 뛰고 있기 때문이다. 앨리스가 말한다. “우리나라에선 이렇게 빨리 뛰면 다른 곳에 도착해 있거든요.” 여왕이 말한다. “여기선 같은 자리를 지키려고 해도 죽어라고 뛰어야 해. 만약 다른 곳에 가고 싶다면 최소한 두 배 이상 빨리 뛰어야 한다고.” 이런 일화에서 비롯된 게 ‘붉은 여왕 효과’다. ‘붉은 여왕의 효과’는 어떤 대상이 변화하더라도 주변 환경이나 경쟁 대상이 더 빠르게 변화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뒤쳐지게 되는 원리를 의미한다.

 

무조건 빨리 뛰기를 원하는 붉은 여왕과 그녀의 빠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 채 뒤처지는 앨리스. 이 두 사람의 제자리걸음은 소설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붉은 여왕과 엘리스'처럼 두 블록으로 갈라지고 있고 인류는 제자리걸음 중이다.

 

'플루토노미(Plutonomy)와 그 나머지로.’ 플루토크라트는 부(富)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플루토스’와 권력을 의미하는 ‘크라토스’의 합성어로, 부와 권력을 다 가진 부유층을 이른다. 용어는 생소하지만, 이들은 세계 경제의 혁명적인 변화의 물결을 타고 그 정점에 오른 글로벌 슈퍼리치라고 볼 수 있다.

 

 

 

 Scene #2  0.1% 글로벌 슈퍼 엘리트, 플루토크라트

 

오늘날 0.1%의 부자들은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벌어들였을까? 현대 플루토크라트가 급속 성장한 배지는 기술혁명과 세계화다. 이 두 가지 힘이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정치적 요소와 결합해 산업혁명의 영향력과 규모에 필적할 만한 경제적 격변을 가져왔다.

 

이에 힘입어 미국과 서구 선진국은 19세기 말에 이어 두 번째 도금 시대를, 중국과 인도, 일부 개발도상국은 첫 번째 도금 시대를 맞는 ‘쌍둥이 도금 시대(Gilded Age)’가 도래했다. 이 두 도금 시대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신흥 시장의 산업화는 서구 국가들에 새로운 시장과 공급망을 제공하고, 서구의 신기술들은 개발도상국들의 도금 시대를 가속화하는 형국이다.

 

오늘날의 승자 독식 경제를 이 세계화와 기술혁명의 산물로 볼 수 있다. 한 분야에서 가장 성공한 이에게는 엄청난 보상이 주어지지만 2등이나 3등으로 밀려나면 경제적 보상은 현저히 줄어든다. 이른바 ‘슈퍼스타 효과’다. 자신이 만들어낸 가치로 과거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더 부유해진 고객, 더 많아진 소비자. 금융기관의 더 좋은 거래 조건 덕에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게 되는 구조다. 경제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인식하고 여기에 적응해 나가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엄청난 부를 벌어들일 기회임을 꿰뚫어본다.

 

1980ㆍ90년대 전 세계에 불어 닥친 민영화와 규제 완화, 무역 장벽 완화의 흐름은 기술과 지식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경제적으로 엄청난 기회를 제공했다. 또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 모바일과 무선 등 신기술혁명은 새로운 비즈니스 무대를 열어가며 새로운 부를 탄생시켰다. 즉 혁명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프리미엄이 슈퍼엘리트의 등장을 촉진시킨 것이다.

 

 

 

 Scene #3  '상위 0.1%', 그들이 사는 세상

 

일반인들이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0.1%의 부자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우리가 TV나 언론에서 보는 몇몇 억만장자들의 모습은 적어도 겉으로 볼 때는 대중친화적이다.

 

스티브 잡스는 신제품 발표 때마다 검정 터틀넥 티셔츠에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등장했고,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도 투자 설명회 때 후드 티를 입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 워런 버핏처럼 거액의 기부로 유명한 억만장자도 흔하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이들 또한 플루토크라트에 속한다. 대중매체와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세계적 억만장자들이 아프리카에 있는 개발도상국에 어마어마한 금액을 기부한다고 해도 '상위 0.1%'라는 아주 고귀한 수식어를 뗄 수 없다. 그들의 이름 앞에 '상위 0.1%'를 붙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어색하게 느껴진다.

 

글로벌 신흥 갑부들이 점점 더 부유해질수록 더 폐쇄적이고 갈수록 일반인과 동떨어진 세계에서 산다. 그리고 그들의 기부 활동은 정부에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특권이다. 그러나 선한 목적이 있는 갑부들의 선행 활동을 비난하자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문제는 일부 신흥 갑부들이 폐쇄적으로 뭉치면서 다른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무시하고 무관심한 태도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그들은 부당한 오해와 억압에 시달리고 있으며 자신들의 이익이 결국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또 다른 나라 동료 부자와 공동체를 이뤄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드러낸다. 파이는 커졌지만 슈퍼엘리트들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큰 조각을 차지하는 셈이다.

 

 

 

 Scene #4  플루토크라트의 성벽이 높다하되 상위 1% 세상 아래 차단된 장벽이로다

 

2011년 가을에 시작된 반(反) 월가 시위는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플루토노미에 대한 저항이었다. 금융기관의 부도덕성에 대해 경종을 울린 것은 물론 빈부 격차 심화라는 신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전 세계로 번져나갔던 시위 물결은 1년도 채 안 돼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에 대한 분노는 전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미국은 1%의, 1%에 의한, 1%를 위한 사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미국 사회의 양극화를 이렇게 꼬집었다. 그는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이라 는 민주주의 정신과 '기회의 땅'을 내세운 미국이 현재 그들이 비웃던 유럽보다 못한 기회 박탈의 땅이 됐다고 지적했다. 스티글리츠가 산출한 계산법에 따르면 미국의 상위 1%가 소유하고 있는 국가 전체의 부는 40%에 이른다. 특히 상위층의 재산 구성을 보면 금융자산의 절반 가까이를 노동이 아닌 금융자산을 통해 획득하고 있다.

 

미국의 양극화 문제가 월가시위로 본격적으로 표면화됐지만 한국도 양극화의 논란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에서도 동일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회양극화이 심화될수록 슈퍼 리치의 영향력 또한 날로 높아져만 가고 있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의 백만장자는 5년 내로 지금보다 79%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 한국의 상위 10% 이내 부자들의 다수가 강남에 몰려 그들만의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기고 있으며 경제위기 속에서도 소득은 크게 높아지고 있다.

 

누군가 엄청난 부를 거머쥐는 데에 정부가 한몫 거들기도 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하다. 누가 부를 얻을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플루토크라트들이 정부의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이유다.

 

세계화와 기술혁명이 가져다준 단맛을 맛본 이들 가운데 일부는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는 파국 속에서도 오히려 중산층의 연봉이 지나치게 높다고 보며, 금융위기도 분수에 맞지 않게 처신한 중산층에게 있다고 본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부자증세 도입에 강력하게 반대하기도 한다.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있는 플루토크라트가 있다면, 그 세상의 나머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세상의 나머지들'은 상위 1% 부자들의 성공습관을 쫓고 있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상위 1%'에 진입할 수 있을 거라는 장밋빛 희망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세상의 나머지들'은 제자리걸음 중이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 오르고 또 오르면 오르지 못할 까닭이 없건데 /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 뫼만 높다 하더라 (泰山雖高是亦山 登登不已有何難 世人不肯勞身力 只道山高不可攀, 양사언)

 

누구나 쉬지 않고 노력을 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하는 근면의 교훈은 우리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현실에서 적용되는 것만은 아니다. 플루토크라트가 만들어 낸 멋지고 화려한 성벽은 너무나 높기 만하고,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계층상승의 사다리'는 걷어차고 있다. 플루토크라트의 성벽이 높다하되 상위 1% 세상 아래 차단된 장벽이다. '세상의 나머지들'이 그들을 따라 오는데 너무나도 버겁기만 하다. 여왕이 될 수만 있다면 그들은 빈곤한 졸이 되어도 상관없다고 여긴다. 발 빠르게 뛰고 있는 붉은 여왕을 따라잡지 못해 제자리에만 맴돌 수밖에 없는 앨리스처럼 말이다.

 

세상의 변화에 재빠르게 따라가고 부의 축적에 급급한 나머지 너무나도 동떨어진 세상에 헤매는 '붉은 여왕', 그리고 플루토크라트와 미처 따라가지 못해 뒤처지는 순진한 엘리스가 되고 만 '나머지들'. 결국, 이 세상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간의 경제적 격차가 벌어지는 양극화 게임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거대한 체스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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