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맞은 미래 - 당신의 정자가 위협받고 있다
테오 콜본 / 사이언스북스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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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중략)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중략)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중에서)

 

 

봄. 이 말은 향기로운 꽃향기가 진동하고, 생동감이 넘치던 시간을 잃은 지 오래다. ‘호숫가에 사초(死草)는 시들고, 새들도 노래하지 않는데.’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전, 영국의 시인 키츠는 이상화보다 먼저 봄은 우리가 생각했던 희망의 계절이 아니었음을 예언했던 것일까? 그 이전부터 봄에는 지저귀던 새가 사라지고, 꽃과 풀은 시들어가고 있다. 그래도 이상화가 노래한 것처럼 ‘지금은 남의 땅’이라서 그렇지 ‘온몸에 햇살을 받고 /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걸어갈 수 있는 싱그러운 봄이었다. 지금은 빼앗긴 들도 아닌데 봄이 없다. 레이첼 카슨이 말한 침묵했던 봄의 흔적마저도 없다.

 

『도둑맞은 미래』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속편이다. 우리가 지금 미래를 도둑맞고 있다는 엄청나고도 끔찍한 현실을 발견하게 되는 출발지는 다름 아닌 실험실이었다. 인공 화학물질의 위험한 사실을 알기까지 플라스틱을 만드는 기업들의 집요한 은폐와 압력은 그 옛날 레이첼 카슨을 미치광이라고 비웃던 거대 화학회사들과 똑같다.

 

20세기 중후반 들어 세계 곳곳의 생태계에서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자연 현상들이 하나둘 보고되기 시작했다. 수컷의 생식기능 이상, 새끼들의 원인모를 죽음, 개체 수의 급작스런 감소, 행동 이상. 지역도 다양했다. 미국 영국 덴마크 지중해 일본 할 것 없이 공업화가 절정을 향해 치닫는 곳이면 예외 없이 생태계에 무언가 중대한 결함이 발생하고 있다는 불길한 징후가 드러났다. 『도둑맞은 미래』에 등장하는 과학자들은 플라스틱이 편리한 석유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살인 독극물임을 고발하고 있다.

 

이 불길한 징조의 조각들을 퍼즐처럼 맞춰보던 과학자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이런 ‘생태계의 반란’이 화학물질과 농약 등에 의해 빚어지고 있다는 증거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이 조각들이 지금 인류가 당면한 3대 환경문제 중 하나인 ‘환경호르몬’이라는 퍼즐 그림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불과 수년 전의 일이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데 따른 보복이며 인간의 생태계 파괴에 대한 자연의 보복이 시작되었다.

 

자연의 섭리란 무엇인가. 45억 년이라는 지구의 기나긴 역사에서 지구의 모든 생물체가 생겨나고 살아남아서 계속 번식하며 생존을 이어간다는 것이 바로 자연의 섭리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상호보완적이며 먹이사슬의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엄청나게 긴 세월 동안 사라져 버리고 다시 생겨난 많은 생명체가 있지만, 인간의 과욕으로 만들어진 인공 물질 때문에 오늘날과 같이 무서운 속도로 종의 절멸이 진행된 적은 없었다.

 

우리가 생활에 다소 편리하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사용해 왔던 여러 가지 항생물질, 합성호르몬제 등은 그 역사가 100년이 안 된다. 이들의 화학적 구조는 생체 호르몬과 비슷하다. 몸속에서 진짜처럼 작용하면서 생식기능 이상, 면역기능 저하,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 성비균형의 파괴, 유방암 전립선암 등을 유발한다. 각종 캔, 컵라면 용기, 플라스틱 우유병과 장난감, 식품포장용 랩에서도 검출된다. 일상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심각성을 자각하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주의를 소홀히 하기 마련이다.

 

비유컨대, 인간이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생체 구조와 기능을 설계하는 것이 유전자라면 호르몬은 그 유전자에 새겨진 악보를 소리로 재생하는 실질적인 연주자인 셈이다. 바로 그 호르몬이 물·공기·음식 따위를 통해 들어온 독성 화학물질에 의해 교란되는 바람에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오늘날 현대문명은 침략하고 착취할 다른 지역이나 대상조차 없어져 버렸다. 현대문명을 떠받들고 있는 자원도 모두 고갈되어 가고 있다. 게다가 수많은 화학물질을 지상으로 바다로 쏟아낸 결과 인간은 심각한 환경호르몬 질병에 노출되었다. 이제는 물을 비롯한 모든 음식물조차 농약과 화학물질과 호르몬제와 항생제 등에 뒤범벅으로 오염되어 먹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봄의 전령인 제비, 강바닥의 송사리가 살고,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흙’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우리네 바람이다. 이제는 그러한 일이 점점 멀어지고 있어서 더욱 안타깝다. 봄은 누군가에게 빼앗겨서 우리 곁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봄을 빼앗아 쫓아냈다.

 

환경호르몬의 존재는 시간이 지나면 아마도 까맣게 사람들 뇌리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한철이 지난 뒤에 사람들에게 환경호르몬을 아느냐고 물으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몸에 좋지 않은 화학물질이라는 걸 알면서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각종 환경호르몬 이상 증세와 듣도 보도 못한 신종 병에 걸려 멸종을 향해 ‘맹목비행’을 하고 있다. ‘지구’라는 비행기 안에는 환경호르몬의 위험성을 찾기 위해 창문을 힐끗대는 과학자들과 ‘오만’의 색안경을 쓴 우리가 느긋하게 앉아 있다.

 

환경호르몬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나 변화가 주는 고통은 느리지만 확실히 다가오고 있다. 이것은 미래를 위한 생존의 문제이다.

 

탈무드에는 ‘물고기를 주어라. 한 끼를 먹을 것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어라. 평생을 먹을 것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이제는 ‘물고기가 번성할 수 있는 봄을 만들어 주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와 네 자손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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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3-11-28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런 책이 있었군요.
환경호르몬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는 사실을 환경스페셜을 보고 알았어요.
그 전엔 그저 문제라는 것만 알았지, 그게 구체적으로 왜 문제인지는 몰랐거든요.
환경호르몬이 주로 남성 생식기능을 공격하고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어요.

한번 읽고 싶은데, 분위기가 어째 어려워 보이는 군요.
일단은 찜해둡니다.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cyrus 2013-11-28 19:04   좋아요 0 | URL
환경호르몬의 심각성을 먼저 파악하고, 본격적으로 널리 알리게 된 최초의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문이나 내용에서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의 연장선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내용이 주로 전문적이라서 일반 독자가 읽기에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카슨의 책 다음으로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유도하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환경호르몬에 의한 사례가 많이 나오는 편입니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지 14년이나 되었지만, 언젠가는 이 책도 <침묵의 봄>과 더불어서 환경 문제에 대한 고전으로 오랫동안 읽혀졌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