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 - 2013 제3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이재찬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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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낙타 한 마리가 나타났다 등에는 혹이 아닌 물주머니가 하나밖에 없는 낙타의 모습이었다 이런 낙타를 남들은 기형 낙타라고 불렀고 어떤 이들은 외등 낙타라고도 했다 낙타는 지금껏 사막을 걸어와 놓고도 도시가 사막이 되어가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모래가 되어버린 눈물을 흘리며 눈을 껌벅였다 수십년간 사막의 모래를 밟으며 낙타로 살았지만 이곳 도시의 모래는 한사코 밟지 말라고 했다 낙타는 도시의 모래에 충혈됐는지 잠이 들어서도 제대로 눈을 감지 못했다 눈을 껌벅일 때마다 눈에서 쇠붙이 소리가 났다 낙타는 잠이 들어서도 쉬지 못했다 사막이 되어버린 도시에는 집도 오아시스도 없다고 했다 자던 낙타가 잠에서 깨더니 어느 교회의 첨탑에 비친 십자가를 보며 북극성이라고 외치며 따라갔다 낙타는 이 도시에서 아직도 신화를 찾고 다녔나 보다 모래 위에 걷던 낙타는 자꾸 걸을 때마다 모래 속으로 빠져들어 가더니 끝내 사라지고 말았다 (중략)

 

 

- 김 산 ‘낙타 한 마리’ 중에서 (『상처 있는 나무는 아름답다』수록)

 

 

 

 

 

 ♣ 버거운 짐을 진 저 낙타 보소

 

 

 

 

 

 

 

송필  「실크로드」 2012년

 

 

여기 천근만근 무거운 돌덩이를 진 낙타가 있다. 우악스러울 정도로 커다란 바윗덩이는 낙타를 짓누를 법도 한데 의외로 낙타는 잘도 버틴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이 조각은 송필의 작품 「실크로드」이다.

 

작가는 커다란 짐을 이고 사막을 종단하는 낙타처럼 현대인도 무거운 돌덩이를 짊어지고, 삶을 어렵사리 영위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송필은 “때론 우리의 삶이 화려하고 빛나 보이지만, 진실이란 삶에 있어서 더없이 가혹하다”고 토로했다. 감당키 어려울 정도로 버거운 짐을 지고 번뇌하는 현대인을 위로하기 위해 작가는 이 묵직한 조각을 만들었다.

 

사막 극한의 환경을 나름 적응하는 낙타도 지치면 죽기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낙타들 중에는 사막의 열악한 환경 탓인지 간혹 비정한 낙타들이 있다고 한다. 이런 낙타들은 새끼를 낳고도 돌보지 않는다. 새끼가 굶주려 죽게 생겼는데도 젖은 물론이고 발로 차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한다. 어미에게 버림받은 새끼 낙타는 결국 불쌍하게도 죽고 만다.

 

 

 

 

 

 

이재찬의 소설 『펀치』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초반에도 ‘낙타’가 등장한다. 내신 5등급인 고등학교 3학년생 ‘나’, 방인영은 사막 한가운데서 낙타 한 마리 타고 건너고 있다. 모래 먼지는 오늘따라 나의 눈앞을 가리고, 매섭기만 하다. ‘미래를 꿈꾸라고 하면서 미래를 닫아 버린, 멍청한 어른들’의 잔소리처럼 낙타와 나의 숨통을 막히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낙타가 지쳐 보인다. ‘멍청한 어른들’의 말에 지쳐버린 나의 슬픈 족속이여. 너는 이승환의 노랫말에 나오는 ‘붉은 낙타’와 같다. 퍼렇게 온통 다 멍이 든 억지스런 온갖 기대와 뒤틀려진 희망들을 품고 살았지만 혼돈과 질주로만 가득한 터질듯한 머릿속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넓은 사막에는 오직 낙타와 ‘나’만 있을 뿐이다. 아무런 목적 없이 모래벌판을 걷다가 언젠가는 작열하는 햇빛 속으로 사리지고 말겠지.

 

 

 

 ♣ ‘꽃다운’ 나이는 없다

 

올해도 수능시험이 끝나기 무섭게 두 젊음이 세상을 등졌다. 언제나 그러했듯, 각종 언론들은 ‘꽃다운’ 나이의 두 입시생이 입시경쟁의 살벌한 시스템 속에서 피해자가 되었노라고 떠들어댔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도 수능에 비관하여 투신으로 생을 마감해 버린 두 소녀에 대한 애도를 아끼지 않았다. 아! 우리의 아이들이 꽃다운 나이에 이렇게 죽어가도 되는 것일까, 안타까워하면서. 오늘 수능 시험 등급컷과 채점 점수가 공개됐다. 또 다른 경쟁이 시작되었다. 자신의 수능 등급에 크게 실망하는 수험생들의 곡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 정말 그 아이들의 나이는 ‘꽃다운’ 나이인가? 초등학교, 아니 유아 시절부터 서서히 살인적인 교육열의 ‘매트릭스’에 갇혀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피 말라 가는 입시 경쟁으로 보내야 하는 그 아이들의 나이가 정말 꽃다운 시절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입시전쟁이라는 잔인한 홍역을 치르고 그네들이 안착하게 되는 대학이라는 곳은 또 어떠한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한 1년 정도 자유 아닌 자유를 만끽하고 나면 청춘이니 낭만이니 하는 말은 곧 사치에 불과하다는 현실인식에 압도되어, 그 ‘꽃다운’ 나이라 일컬어지는 시절의 젊음들은 고시촌으로, 영어 학원으로, 서둘러 달려간다.

 

그뿐이랴. 소위 명문대라 일컬어지는 곳에 진입하지 못한 젊음들은 평생 천형처럼 붙어 다닐 ‘비명문대생’이라는 딱지 때문에 극심한 열패감에 허덕일 것이다. 그네들의 대부분은 일찌감치 자기 분수를 깨닫고 ‘낮은 데로 임할’ 것이며, 그런 삶의 길을 거부한 젊음들은 또다시 살벌한 입시전쟁터로 자신의 몸을 던질 것이다. 그중 몇몇은 뒤늦은 ‘승전보’를 알리며 명문대생이라는 훈장을 달고 움츠렸던 어깨를 펴겠지만, 나머지들은 또다시 패배의식만을 가득 안은 채 제자리로 돌아와야 할 것이고, 그렇게 다시 돌아온 캠퍼스에서도 그들은 그저 조용히 고개 숙이고 다니며 ‘돌아온 탕자’라는 자의식에 괴로워해야 할 것이다.

 

이런 황량한 사막의 한가운데 서 있는 그들에게서, 어른들은 도대체 무슨 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이 나라의 아이들은 다만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을 건너서 허상으로만 존재하는 신기루를 향해야 하는 낙타의 운명을 강요받았을 뿐이다.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운명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는데, 그런 그들을 향해 어른들은 무슨 낯으로 ‘꽃다운 나이’라 일컫는 것일까.

 

『펀치』에 등장하는 고등학교 3학년 주인공 방인영의 모습을 보면 ‘꽃다운 나이’라는 멋진 표현에 어울리지 않는다. 아니, 자격이 없다고 봐야 한다.  방인영은 자본주의 계급 사회의 논리를 폐부 깊숙이 체득하고 있다. 5등급은 내신 성적과 모의고사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머리에서 외모까지 5등급은 영원히 따라다닐 꼬리표다. 그녀는 멍청한 어른들’의 한국 사회를 매우 직설적으로 공격하고 비꼰다. 그리고 예민한 감성은 쌓일수록 극단적인 감정으로 변하고, 무시무시한 펀치 한 방 날릴 준비를 한다.

 

교회에 헌신적이며 딸의 인생을 제 뜻대로 끌어가고자 다그치는 엄마,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을 위해 법조문을 연구하고 세 치 혀를 놀리는 아버지, 학생들을 공부하는 기계로 여기는 학교 모두가 못마땅하다. 참다못해 들고일어난다. 조금 과격한 방식이다. 부모를 죽여서 자유와 독립을 얻기로 한 것이다. 방인영에게 ‘살인’은 단순히 부모에 대한 무시무시한 증오를 풀기 위한 감정의 배출이 아니다. ‘멍청한 어른들’이 만들고 강요하는 사회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잘못된 비상구다. 영원히 닫힐 줄 알았던 비상구를 열게 만든 열쇠가 바로 부모에게 향하는 흉기였다. 그녀는 이러한 사회가 낙인 찍어주는 무능력한 ‘탕자’가 되길 두려웠고, 원치 않았던 것이다.

 

 

 

 ♣ 죄 없는 자, 그녀에게 돌을 던져라

 

독일 극작가 발터 하젠클레퍼의 『아들』이라는 희곡에 보면 의사인 아버지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헌신한다. 저축해 놓은 돈조차 없으면서 비싼 과외수업을 시켰다. 하지만 웬걸. 대학입시에 실패해 재수를 거듭하며 아들은 빗나간다. 어느 날 아들은 심하게 대든다. “아버지가 바라는 권력과 재력을 다 가질 수 있는 직업을 강요하지 말라!”고. 그리곤 아버지 가슴에 권총을 겨눈다.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숨진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살인'과 '가족'이라는 단어 사이의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가족 간 살인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가정은 사랑의 공동체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상처를 많이 주고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많은 집단이다. 이러한 집단 환경에 길들일수록 마음의 상처는 사회에 나가서도 쉽게 치유할 수 없다. 고통을 그대로 안고 간다. 이것을 치유하지 못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피해 같은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돈’, ‘성적’, 그리고 경쟁을 강요하는, 인간성 없는 황량한 사막 같은 사회에서 비정한 젊은 낙타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지겨운 것을 참으며 사는 사람을 낙타에 비유했다. 등짐을 가득 지고 메마른 사막을 지나는 낙타처럼 부담과 의무에 매여 사는 비주체적 인간을 일컫기 위해서다. 니체는 낙타를 경멸하면서 사자처럼 살라고 했다. 부모든 신이든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명령에 따라 사는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와 창발성에 따라 사자처럼 살라고 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낙타로 키우면서 사자처럼 살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늠름하고 올바른 사자가 아닌 애정에 굶주린 난폭한 사자로 키우고 있다. 언젠가는 그 사자는 자신을 키운 부모를 향해 날카로운 엄니와 송곳을 내밀지도 모른다.

 

방인영은 자유로운 ‘붉은 낙타’가 되지 못했다. 냉소와 증오로 가득 찬 사자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죄에 반성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천연덕스럽게 평상시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노래에 듣기만 할 뿐이다. 그녀의 삶을 위로해줄 위안거리는 오직 에이미의 음악만이 유일하다.

 

그녀의 살인은 용납할 수 없는 범죄지만, 자신의 자유를 억압하는 부모를 쓰러뜨리는 사자가 되었어도 그녀를 용서하거나, 따뜻한 손길을 건네줄 사람은 없었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꽂은 채 그녀는 스스로 세상과 단절할 것이다.

 

우리는 이 소설의 결말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 소설을 심사한 박상원 소설가의 말처럼 ‘잘 썼다’라고 표현해서 독자의 감성 앞에 휘두르는 예리한 문장을 칭찬해줘야 할까? 아니면, 독기 서린 젊은 살인자에게 돌을 던져야 하는 걸까?

 

이재찬의 소설을 읽고 난 뒤에 어떻게든 생각하는 건 독자의 자유다. 그러나 방인영에게 돌을 던질 준비는 하지 말자. 뭐, 이 소설을 읽고 벌써 돌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다고? 잠시 손에 쥐고 있는 돌을 내려놓고 곰곰이 생각해보라. 그 다음에 성서 속 유명한 구절을 떠올려 보라. 죄 없는 자는 그녀에게 돌을 던져라.

 

우리는 방인영에게 돌을 던질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린 낙타를 사자로 키우게 만들도록 성공을 강요하고, 경쟁을 부추긴 ‘멍청한 어른들’이니까. 또 방인영의 살인 동기와 과정을 두 눈 똑똑히 지켜봤다. 그녀의 분노를 키우게 만든 일차적인 원인에다가 살인 방조죄 추가. 우리는 작가 특유의 속도감 있는 이야기 전개에 푹 빠져 있다 보면 어느새 그녀의 공범자가 되어 있다.

 

시간이 서서히 흘러가면 어른들은 망각이라는 편리한 장치 덕을 톡톡히 보며 또다시 이 살벌한 ‘계급투쟁’ 전선에서 자신의 자식만은 승자가 되기를 은근히 고대할 것이다. 이 땅의 어른들이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이러한 절망적인 행태에 어떠한 실질적인 변화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으면서 그저 1년에 몇 번씩 악어의 눈물이나 흘릴 생각이라면, 이제 그 아이들에게 ‘꽃다운’이라는 수식어는 붙여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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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3-11-27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젯밤에 한글공부 하다가 욱 해서 아이참! 이건 좀 알아야지! 소리를 버럭 질러서 딸아이의 커다란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게 한 범인으로서 정말 이 글을 읽고 부끄럽기 그지 없네요.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에 겨우 한글을 뗐지만 그래도 부족한 것 하나 없었는데- 사이러스님 글 읽고 반성 또 반성. 오늘은 즐겁게 한글공부를 해야겠습니다.

또 하나, 서울대 나온 전 애인이 제가 서울대 출신이 아니란 걸 알고 입을 삐죽거리며 공부 안 하고 날라리처럼 놀았구만- 하여 미친년처럼 게거품 물며 정신교육 좀 받아야겠노라고 지랄 떨었던 기억도. 근데 사이러스님 최근 알라딘에서 읽은 리뷰 중에 가히 으뜸인걸요. 서울 언제 오세요? 술 한잔 해요.

cyrus 2013-11-27 20:26   좋아요 0 | URL
한글은 가르치려고 하기보다는 자주 대화를 해보면 저절로 늘지 않을까요? 물론 가르칠 땐 확실히 가르쳐야죠. 제가 미혼이라서 잘 모르지만, 어렸을 때 울엄니도 한글이든 무슨 공부든 무조건 혼내면서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쳤던 기억이 나서.. 너무 심하게 다그치는 교육은 별로라고 생각해요. 아이에게는 상처받고, 엄마 입장에서는 홧병 생기고.. ㅎㅎㅎ 12월에 서울 갈 일이 생겼어요. 이번에 진짜 얼굴 봐요. 조만간 연락할께요 ^_^

수이 2013-11-27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화 안 내고 한글공부했어 ㅋㅋㅋ 스파르타식 나도 싫다 했는데 내 성향은 스파르타식인가봐 ㅠㅠ 12월에 봐! 이번엔 꼭 미리 연락하구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