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인류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 첫 번째 글 조각 : 序

 

 

인색함과 방탕함으로 인해 저들은 아름다운 세상을 잃고 저렇게 싸우니, 그게 어떤 것인지 꾸밈없이 말해 주마. 아들아, 행운에게 맡겨진 재화 때문에 인류는 그토록 아귀다툼을 하는데, 그 짧은 순간의 기만을 보아라. 달의 하늘 아래 있고 또 예전에도 있었던 그 모든 황금은, 이 피곤한 영혼들 중 누구도 편히 쉬게 하지 못할 것이다.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지옥 편』제7곡, 58쪽, 열린책들)

 

 

 

 

 ♣ 두 번째 글 조각 : 인디언이 곰을 사냥하는 방법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덫을 사용해 곰을 사냥했다고 한다. 커다란 돌덩이에 꿀을 바르고 나뭇가지에 밧줄로 메달아 놓으면 훌륭한 덫이 된다. 꿀을 바른 돌을 발견한 곰은 먹음직스러운 먹이로 생각하고 다가와 발길질을 하면서 돌덩이를 잡으려고 한다.

 

그러면 곰의 발길에 채인 돌덩이가 진자운동을 한다. 밀려갔던 돌덩이가 돌아올 때마다 곰을 때린다. 곰은 화가 나서 점점 더 세게 돌덩이를 때린다. 곰이 돌덩이를 세게 때리면 때릴수록 돌덩이는 더 큰 반동으로 곰을 후려친다. 마침내 곰은 나가떨어진다. 곰은 이 기묘한 폭력의 악순환을 중단시킬 방법을 생각해낼 줄 모른다. 그저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더욱 안달할 뿐이다.

 

만일 곰이 돌덩이 때리기를 중단하면 돌덩이도 움직임을 멈출 것이고 돌덩이가 일단 멈추면 곰은 그것이 밧줄에 매달려 있을 뿐 움직이지 않는 물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곰은 이빨로 밧줄을 잘라 돌덩이를 떨어뜨려 꿀을 핥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곰은 힘으로 자신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는 듯 행동할 때가 많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일단 힘으로 제압하려 든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 나오는 일화다.

 

 

 

 ♣ 세 번째 글 조각 : 가이아가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지구가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라면 그 이름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  영국의 저명한 대기학자인 제임스 러브록이 같이 산책을 하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윌리엄 골딩에게 물었다.  "가이아(Gaia)가 좋겠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이지."

 

지구가 하나의 생명체라는 가설, 즉 "가이아 이론"은 이렇게 해서 이름 붙여졌다. 1978년 제임스 러브록이 창시한 이 이론에 따르면 지구는 인간처럼 살아 있다고 본다. 외부 조건이 변하더라도 내부조건을 일정하게 유지함으로써 생물체가 살기에 적합하도록 능동적으로 환경을 조정하는 일종의 유기체가 지구라는 주장이다. 물론 기성 학계로부터는 이론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설로 보고 있다.

 

꼭 가이아 이론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그 연장선상에서 인간을 지구라는 생명체에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로 비유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대기오염 같은 환경파괴는 말할 것도 없고 농사 등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활동을 포함한 일체의 인간 활동이 지구라는 생명체에는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이들은 지진, 이상기후 등 인간에 해를 끼치는 자연재해야말로 병원체를 몰아내기 위한 지구의 자기방어활동이라고 말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신작 『제3인류』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가이아를 소환한다. 그런데 이야기 중간에 등장하는 가이아의 독백은 슬프고 분노에 차 있다. 지구상의 생명체에 대한 우월함에 사로잡힌 인류가 가이아에게 해를 끼치고 있으니까.

 

“인간들이 이렇게 깊이 파고들어 올 때는 언제나 똑같은 이유가 있어. 내 석유를 퍼 올리려는 것이지. 이 물질은 바로... 나의 피, 나에게 없으면 안 되는 검은 피이다. 저들이 그 사실을 알아주면 좋으련만. (중략) 대개의 경우 저들은 매번 똑같은 이유로 그것(석유)을 내게서 훔쳐간다. 목적은 그저 분주하게 움직이는 데 사용하기 위함이다. 대개의 경우 저들의 목표는 저희의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29쪽)

 

정식적으로 소설가가 되기 전부터 과학소설을 탐독했던 베르베르는 ‘명탐정 셜록 홈즈’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의 추리 작가 코난 도일의 선구적인 SF 소설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도일 SF’의 홈스라고나 할 챌린저 교수가 등장하는 ‘지구가 비명을 질렀을 때’라는 단편이 있다. 이 소설은 지구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상정한다.

 

챌린저 교수가 시추기로 지구의 지각을 뚫고 마침내 지하 13.2㎞의 ‘속살’을 찔러대자 지구가 무시무시한 비명을 지른다는 얘기. 러브록이 주창한 이른바 ‘가이아 이론’과 유사한 설정이다. 그러나 가이아 이론이 발표된 게 1979년이고 도일의 단편은 1928년에 나왔으니까 50년이나 시대를 앞선 작품이다.

 

지구는 인간의 생리현상과 비슷하게 살아 숨쉰다. 체온(대기)과 허파(아마존 유역 등 삼림지대), 피와 수분(바다, 강) 그리고 신체(암석, 흙)를 지니고 숨 쉬며 살아온 생명체다. 인류의 눈 먼 탐욕 때문에 지금 가이아는 고통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좀 가혹한 얘기지만 인간이 개발이나 산업화 등의 명분으로 지구에 어떤 일을 해왔는지 돌이켜보면 그럴 법도 하다. 어쨌든 이 논리를 확대하면 화산폭발, 지진, 홍수 등 인간에게는 재앙인 자연재해는 지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유해 세균’을 털어내는 자기 정화작용이라고 할 만하다. 실제로 자연재해는 과거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인간의 잘못에 대한 신의 분노로 믿어졌거니와 가이아 이론은 이를 생명체 지구의 분노로 바꿔놓은 셈이다.

 

하지만 인류는 가이아의 비명을 듣지 못한다. 그녀가 흐르는 ‘자기 정화’와 우리를 향하는 분노가 담긴 눈물의 의미를 모르는 건 당연하다. 그동안 참고 쌓아왔던 가이아의 분노는 우리에게 경고한다. 슈퍼 태풍 ‘하이옌’이 휩쓸고 지나간 필리핀의 상황을 지켜본 전 세계 사람들은 지구가 주는 경고의 무서움을 느꼈을 것이다. 허나 가이아의 비명을 직접 듣기 위해 ‘신성한 소통’을 시도하려는 오로르(『제3인류』에 등장하는 여주인공)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또다시 잊을 것이 분명하다.

 

 

 

 ♣ 네 번째 글 조각 : 이야기에 심어 놓은 '가능성의 나무' 

 

베르베르는 데뷔작『개미』부터 『타나타노트』『뇌』『신』과 같은 두 권 이상 분량을 뽑는 장편뿐만 아니라 단편도 집필했다. 그는 이야기를 빠르게 지어내는 능력을 유지하고 싶어서 매일 저녁 한 시간을 할애하여 단편소설을 썼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럼으로써 오전 내내 ‘두꺼운 소설’을 쓰는 데서 오는 긴장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 단편은 단순히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부차적인 장르가 아니다. 『개미』부터 지금까지 발표한 모든 소설과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읽어 본, 나름 ‘베르베르’의 팬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독자라면 단편과 백과사전에서 보여준 무한한 상상력이 장편으로 연장된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이라는 친숙한 소재에 ‘만약...’으로 시작하는 낯선 상상력의 옷을 입히고, 진지한 성찰까지 더해져 장편으로 재등장하는데 독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려준 전작에 보여준 상상력을 환기시켜 준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보자. 베르베르가 선보이는 전개방식대로 과거로 돌아가 기억해보는 것이다. 2002년은 월드컵으로 한반도는 붉은 함성이 가득했지만, 그 때도 베르베르의 인기는 식지 않았으니 이 때 나온 첫 단편 모음집이 『나무』다.

 

여기에 수록된 이야기 중에 ‘가능성의 나무’라는 제목의 단편이 있다. 이제 막 베르베르의 문학적 상상력에 입문한 독자라면 그것의 원천들을 모은 총합이라 할 수 있는 『나무』를 읽어 볼 것을 권한다. 『나무』를 읽었는데 그 이야기가 어떤 내용인지 기억이 안 난다고? 그러면 다시 읽어 보라. 특히『제3인류』1권을 읽기 시작하지 전에 읽으면 흥미로운 독서를 체험할 수 있다.

 

‘만약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면’ ‘만약 어떤 고기를 먹는 사람들 모두가 그 고기 때문에 똑 같은 질병에 감염된다면’ ‘만약 우리 뇌를 컴퓨터에 직접 접속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면’등등 꿈에서 ‘만약…’으로 시작되는 글귀가 적힌 잎사귀가 달린 나무를 보았다. 나무가 자라 가지와 잎이 퍼져나가면서 ‘만약…’이 이루어지는 미래를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베르베르의 상상력을 듬뿍 먹고 자란 ‘가능성의 나무’이다.

 

그런 가능성의 나무가 있다면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폭력이 방지되고, 다음 세대의 행복이 보장될 것이다. ‘가능성의 나무’는 컴퓨터에 설치된 프로그램의 이름이기도 하다. 상상의 컴퓨터는 인간의 미래에 대한 가정을 입력해서 인간 사회의 나아갈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낙관적인 꿈은 상징하고 있다.

 

 

 

 

 

M. C. 에셔 「뫼비우스의 띠 II (불개미)」 1963년

 

‘과거’와 ‘미래’의 경계가 없는 ‘가능성의 나무’ 위에

호기심 많고 상상력이 넘치는 베르베르의 개미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다

 

 

‘가능성의 나무’는 절대로 시들어서 죽지 않는다. 영원불멸하다. 인간이 자유롭게 무한한 상상력을 펼쳐나가는 것처럼 이것을 영양분으로 기반을 둔 나무는 계속 자란다. 말 그대로 무한성의 나무이기도 하다. ‘가능성의 나무’가 있는 시간은 고정적이지 않다. 유동적이며 연속적이다. 10년 전 과거 때 생각한 가능성이 우리 눈앞에 현실로 이루어지고, 지금 10년 후의 모습을 예상한 미래의 가능성은 새로운 ‘현실’로 전환된다. 무한한 ‘가능성의 나무’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과거’와 ‘미래’의 구분 경계가 무의미하다. ‘무한대(∞)’를 뜻하는 기호처럼 말이다.

 

 

 

 

 

 

베르베르는 ‘가능성의 나무’를 시간과 장소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타임머신처럼 자신의 이야기에 한 그루씩 심어 놓는다. 두 번째 단편 모음집인 『파라다이스』(1권 ‘내일 여자들은’)에서 잠깐 언급되며 미래를 볼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나오는『카산드라의 거울』에도 나온다. 『제3인류』에서는 좀 더 과학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이름으로 독자와 재회한다. 나탈리아 오비츠 대령의 휴대용 컴퓨터에는 ‘미래로 가는 일곱 가지 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상상력을 토대로 인류에게 가능한 진화의 일곱 가지 모습을 담고 있다. 여기서도 작가는 자신의 영감을 준 문학적 상상력의 대선배를 오마주하고, 예전에 발표한 소설의 핵심 코드를 슬그머니 삽입했다.

 

세 번째 길인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로봇의 등장을 경고하는 내용은 공상과학 소설의 한 획을 그은 카렐 차페크의 『로봇』을, 네 번째 길인 ‘우주의 식민지화’에서 거대 우주선 ‘우주 나비 2호’가 언급되는데 인류의 미래를 위해 제작된 동명의 거대 우주 범선이 나오는 『파피용』을 연상시킨다. (프랑스 어 ‘Papillon’은 ‘나비’라는 뜻이다)

 

 

 

 ♣ 모자이크를 마무리 짓는 다섯 번째 글 조각 :

   과연 우리는 다음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제3인류』에 펼쳐지는 인류의 모든 지식이 버무려진 삼라만상은 독자들의 눈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정보가 아니다. 독자에 의해 능동적인 의미가 부여되는 객체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가 전하는 이야기 속에는 동물과 곤충에 대한 과학적 정보는 물론이고, 그것을 통해 느끼는 작가의 철학, 가치관, 인간의 오묘함과 형이상학적 사고 등 다양한 것들이 담겨 있다.

 

『제3인류』 는 소설이 아니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삼라만상의 백과사전’이다. 인간의 판단이란 자신에게는 절대적일 수 있지만 전체적 관점에서는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려고 하는 것 또한 이와 같은 ‘시간/지식’의 상대성과 절대성이다. 『파라다이스』의 부제대로『제3인류』의 세계는 ‘있을 법한 미래, 있을 법한 과거’ 그리고 ‘있을 법한 지식’이 공존한다. 우리는 이러한 기준을 통해 '가능성의 나무'를 살피고 가꿀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두 권 분량으로 압축된 흥미진진한 상상력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쫓기에는 『제3인류』가 주는 독서의 무게감은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가이아는 자신의 보존을 위해서 계속 불어나는 인류 급증 현상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산아 제한 등과 같은 예방적 억제를 하지 않는 이상, 인류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력 또한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인구론』이라는 책에서 인구의 증가를 억제하지 않으면 인류는 치명적인 파멸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한 멜서스의 생각(있을 법한 과거)과 유사한다. 비록 오늘날의 세계는 맬서스의 예측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왔다. 그의 생각은 빗나간 예언이었으며 틀린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되돌아보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이유로 과거에 ‘공상의 예언’으로 치부되고, 폐기되었던 생각과 상상력은 수십 년이 지나서야 현실로 등장하는 선례가 많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2013년이 아닌,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미래에 멜서스의 예언이 적중할 수도 있다(있을 법한 미래). 아무리 기술과 과학이 나날이 발전해도 인류의 과욕 때문에 몸살 앓는 지구의 중병이 심해진다면 대규모 식량 부족 사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파라다이스』에는 만일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지구의 50억 인구가 목숨을 잃고 20억이 살아남을 거라는 상상이 쓰여 있다. 이번 슈퍼 태풍의 위력을 보면서 사람들은 아무리 현대 문명의 과학이 발달해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보잘것없는 인간의 겸허함을 배운다. 하지만 그 시간들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는 종은 어느새 자신들의 존재의 덧없음을 망각하기 시작한다.  『제3인류』에 나오는 삼라만상은 크게 보면 인류 스스로 자초한 멸망이 만들어 낸 거대한 파노라마다. 하물며 남북한 간의 싸움부터 시작해서 종교적 차이와 갈등으로 서로 심장에 총을 겨누는 종고 전쟁까지 말할 것도 없다. 모든 싸움의 불씨인 종교와 광신적 국가주의가 없어진다면 이 세상에 파라다이스가 올까? 지구상에서 인간끼리의 전쟁이 종식된다 해도,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자연재해의 무서움은 우리에게 내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과 공포를 안겨준다. 언제 우리의 오늘이 끝장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오늘을 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카산드라의 거울』에서 미래를 보는 카산드라 카첸버그가 재판을 받는 중에 아기 검사의 말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지구는 우리의 부모들이 물려준 것이 아니다. 지구는 우리의 아이들이 빌려준 것이다!” 과연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가능성의 나무’를 많이 심는다고 해서 우리의 지구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 수 있을지 예측하고 최소한 다음 세대들에게 우리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깨끗한 지구의 오염을 중단할 수 있을까?

 

베르베르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를 ‘인류 전체의 폐경기’라고 비유한 적이 있었다.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결혼과 가족의 무게는 희박해지고, 믿고 기대며 살아야 할 식량도, 마음도, 정신도 고갈이 나고 있는 형편이다. 앞으로 우리는 가이아의 복수를 극복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슈퍼 태풍보다 강도가 센 자연의 복수를 만날 수 있다. 과학 기술에 점점 의존하는 인류는 오만해져만 간다.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달콤한 꿀에 집착하여 탐욕에 눈이 먼 곰처럼 폭력을 믿는다. 오만하고 어리석은 우리 인간들이여, 가이아의 복수가 두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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