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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식탁 - 우리는 식탁 앞에서 하루 세 번 배신당한다
마이클 모스 지음, 최가영 옮김 / 명진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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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초콜릿의 노예가 된 아이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작가 로알드 달은 어린아이처럼 단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한개만 먹으면 코스요리를 맛볼 수 있는 풍선껌이나 녹지 않는 아이스크림, 민트로 이루어진 풀밭은 군것질거리에 애틋해하는 철없는 사람만이 생각해낼 수 있다. 아마도 로알드 달은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에서 살고 싶었을 것이다. 초콜릿과 캔디가 넘쳐나고, 공장의 주인이 창조자처럼 군림하며, 심술궂은 아이들을 마음대로 혼내줄 수 있는.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웡카 초콜릿'. 도대체 그 많은 초콜릿을 누가 어떻게 만드는지 20년 동안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초콜릿의 마술사 윌리 웡카는 그 비밀 공장을 견학하고, 평생 먹을 초콜릿을 얻을 수 있는 황금티켓 5장을 전 세계에 배포한다. 5명 중에서 후계자를 선택하기 위해. 착하고 속 깊은 찰리를 빼고 황금티켓을 거머쥔 아이들은 저마다 욕심을 부리다 중도에서 무시무시한 벌을 받고 탈락한다.

첫 번째 탈락자는 게걸스럽게 초콜릿을 탐하던 먹보 아우구스투스. 그는 초콜릿으로 따끈하게 녹여 만든 강물을 통째로 들이마실 정도로 언제나 초콜릿을 입에 달고 산다. 권장할 만한 인격을 갖추지 못한 그는 초콜릿을 즐기는 대신 초콜릿의 노예가 되는 비참한 꼴을 당한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말할 것도 없이 ‘초콜릿’이다. 이 초콜릿에는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매력적인 함의가 있다. 우선 초콜릿의 맛을 생각해 보라. 물론 달지만, 어딘지 쌉쌀한 뒷맛도 난다. 이 영화 속 초콜릿은, 단맛과 쓴맛처럼 두 개의 상반된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다.
먼저 단맛에 해당하는 긍정적인 의미는 ‘동심’과 ‘꿈’이다. 웡카는 초콜릿을 통해 동심과 꿈을 키워 왔다. 반대로 쓴맛에 해당하는 부정적인 의미는 ‘탐욕’이다. 온통 초콜릿으로 이뤄진 꿈의 장소 초콜릿 공장. 그러나 남보다 더 많이 먹으려 하거나(아우구스투스), 남을 무조건 이기려 하거나(바이올렛), 원하는 건 뭐든 소유하려 하거나(버루카), 잘난 체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마이크) 마음을 가진 아이들은 벌을 받는다.
결국 이야기는 초콜릿이라는 귀중한 자원을 인간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다루느냐에 따라 완전히 상반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교훈을 들려준다. 동심을 품은 사람에게 초콜릿은 그 자체로 ‘달콤한 행복’이지만, 탐욕으로 가득 찬 사람에게 초콜릿은 ‘자멸의 지름길’일 뿐이다.
♣ ‘맛의 삼각형’(Taste triangle), 단맛·소금·지방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로알드 달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아우구스투스처럼 초콜릿의 맛에 중독된 아이들은 갈수록 늘어난다. 아이들의 욕심을 절제하는 윌리 윙카처럼 착한 초콜릿 공장주는 그저 이야기 속의 가공인물일 뿐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단맛의 노예가 되고 있다. 단 음식의 지나친 섭취가 건강에 안 좋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단맛에 탐닉하게 되는 걸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유독 단 음식을 찾는 사람이 있다. 단맛이 일종의 쾌감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맛에 익숙해지면 더 강한 단맛을 찾게 된다. 예전에 비해 설탕 섭취량이 크게 증가한 원인은 가공과정 중 설탕이 첨가된 식품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탄산음료가 설탕의 가장 큰 공급원이 되고 있고 에너지음료도 설탕의 함량이 높은 편이다. 말 그대로 우리는 단맛에 중독되어 있다. 초코 쿠키의 대명사로 꼽히는 ‘오레오’ 쿠키가 코카인만큼 중독성이 강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점은 우리는 단맛이 나는 초콜릿뿐만 아니라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의 조작된 맛에도 중독되어 있다. 누구나 가공식품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알지만, 쉽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데다 맛도 좋기 때문에 즐겨 찾는다. 그동안 우리는 맛 좋고 간편한 가공식품을 먹을 수 있어서 뱃속 시계의 작동을 멈출 수 있었지만, 혀는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가공식품의 맛에 길들이고 말았다.
가공식품 기업들은 윌리 윙카의 초콜릿 공장이 될 수 없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소금, 설탕, 지방의 물리적 형태와 구조에 손을 댔고, 우리의 뇌와 혀는 그들이 만든 단맛, 짠맛, 기름진 지방의 유혹에 벗어날 수 없었다. 소금은 가공방식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을 정도로 흔한 조미료인데다가 처음 한 입 베어 문 순간 혀끝을 짜릿하게 만든다. 지방은 칼로리가 가장 높으며, 많이 먹어도 몸에 특별한 증상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음식을 손에서 놓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유도한다.
세계를 움직이는 세 가지의 권력 유착 관계를 ‘철의 삼각형’(Iron triangle)이 있다면, 식품 기업들 사이에서는 모든 소비자들의 맛에 영향을 미치는 ‘맛의 삼각형’(Taste triangle)이 있다. 다르지만 서로 비슷한 이 세 가지 맛을 통해 가공식품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리게 만들어 맛보도록 견고한 카르텔을 작동했다. 우리 소비자들은 이런 가공식품 기업의 교묘한 속임수와 거짓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식품기업들은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써가며 건강식품, 기능식품, 유기농식품이라는 이름으로 소비자를 속여 왔다. 미량의 건강 성분을 넣은 뒤 설탕 덩어리와 다름없는 제품을 건강식품으로 팔거나,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기능 식품을 비싸게 판매해 폭리를 취한다. 켈로그, 네슬레 등은 어린이 간식이나 어린이 식사용 제품을 내놓고 있지만 실체는 설탕범벅 과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소비자가 꼭 알아야 할 정보는 감추고, 허위·과대광고가 많은 것도 이들 업체의 특징이다.
예컨대 켈로그는 어린이에게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학교에 재정을 지원하는 일종의 마케팅 행사를 한 적이 있었다. 행사를 통해 켈로그 '착한 기업' 이미지를 내세웠지만, 사실은 설탕범벅 시리얼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어린이들이 즐겨 먹는 아침 식사’라는 이미지를 강조했다. 설탕 과다 섭취의 문제점을 알며 자녀들에게 설탕을 많이 먹는 걸 원치 않는 부모님들은 켈로그의 마케팅을 선호했다. 겉으로는 영양 교육에 발 벗고 나선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자사 제품을 쏟아내 어린이 소비자의 입맛을 길들이려는 의도인 셈이다. 대다수 소비자들은 이미지 마케팅을 활용한 식품기업들의 눈속임에 속아 넘어가고 있다. 분별력이 부족한 아이들에게는 더욱 큰 피해로 다가올 수 있다.
♣ 누구에게도 유익하지 않은 맛의 싸움
집에서 먹는 밥이 최고다?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이 통념을 신봉하지 마라. 가공식품이 식재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상 우리 몸은 유해 물질로 그득할 뿐이다. 실로 슈퍼마켓 진열대마다 가공식품이 넘쳐난다. 무심코 카트에 담는 이것들에는 몸에 필요한 칼슘, 무기질, 비타민 등 필수영양소 대신 소금, 설탕, 지방 등이 가득하다. 그러니 아무리 아이와 가족 건강을 위해 가공식품으로 만든 음식이 놓인 식탁을 엎는 들 소용없는 일이다.
지금도 가공식품 기업 산하 연구소에서는 맛의 중독성을 높이기 위해 흰 가운 입은 연구자들이 실험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식품에 대한 소비자의 반발에 소금, 설탕, 지방 중 어느 하나에 비난 여론이 집중될 때마다 문제가 된 성분을 빼고 다른 성분을 그만큼 더 넣는다. 좋은 성분 하나만 강조함으로써 소비자가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게 하는 전술이다. 이들은 시정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소비자 보호단체의 공세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다. 소비자에게 식품을 많이 팔리고 이익을 얻기 위한 기업과 건강에 좋은 영양분이 가득한 맛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소비자들 간의 갈등은 오랫동안 이어지겠지만 그 어느 누구에게도 유익하지 않은 맛의 싸움일 뿐이다.
러시아의 시인 뿌쉬낀은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고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찾아 온다고 썼다. 허나 그동안 먹어왔던 가공식품이 우리의 맛을 속일지라도 노여움과 분노의 감정으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가공식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게 된 이상, ‘맛의 삼각형’에 중독된 입맛을 고치는 일만 남았다. 설탕, 소금, 지방을 많이 찾는 식탁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 스스로 ‘윌리 윙카’가 되어야 한다. 미각을 죄어왔던 ‘맛의 삼각형’을 파괴해야 한다. 우리를 유혹하는 가공식품 광고의 허상을 파악하고, 불편하더라도 가공식품 위주의 식습관을 줄여야 할 것이다. 식탐의 나날 참고 견디면, 건강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