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에서 대금업자 샤일록은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항해 중인 안토니오의 상선 대신 그의 가슴살 1파운드를 담보로 잡는다. 해적이 들끓던 16세기, 무역선이 못 돌아오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었다. 뱃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한 동인(動因)은 ‘원금의 수백 배에 이르는 고수익’이었다. 투자가들은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여럿이 돈을 모아 자본금을 마련하곤 했다. 이것이 주식회사의 시작이다.

 

 

 

 

 

이익 앞에서 투자가들은 초인적 용기를 보여 준다. 이를 조지프 슘페터는 ‘기업가 정신’이라 했고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야성적 충동’이라고 불렀다. 야성적 충동은 케인스가 경기변동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만들어 낸 말이다. 케인스는 “투자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업가의 직감에 의존해 결정되며 투자의 이 같은 불안정성 때문에 경기가 변동한다”고 설명했다. 불확실성을 감수하는 기업가의 직감이 바로 야성적 충동이다.

 

 

 

 

 

기업가의 야성적 충동이 잘 발휘되면 좋겠지만 그렇다고해서 불확실한 상황 속에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무작정 투자를 감행한다는 건 쉽지 않다. 오히려 무모한 투자는 외환위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2001년 레몬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던 조지 애커로프 교수와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되는 로버트 쉴러 예일대 경제학 교수는 공동 출간한 『야성적 충동』에서 금융위기로 파탄 난 세계 경제를 비유하는데 ‘험프티 덤프티’를 사용했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달걀이다. 영국 자장가에 나오는 원래 고집불통에 유식한 체를 잘하는 캐릭터로 소설에 등장하는 험프티 덤프티는 높은 담장 위에 위태로운 자세로 앉아 있다가 떨어져 깨져 버리는 인물이다. 험프티 덤프티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담장 위에 앉아 있지만, 권위 의식과 자만심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야성적 충동』의 저자들은 현재의 금융 위기도 지나친 자신감 때문이었다며 금융 시장의 달걀은 이미 깨져버렸다고 진단했다. 이들은 "애초에 험프티 덤프티가 세계의 작동 방식에 대해 정확한 시각을 가졌더라면 담장에서 떨어지지 않았을 것처럼 사람들이 경제의 진정한 작동 방식을 깨달았더라면 자산을 구매할 때 좀 더 신중했을 것이며 결국 경제는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케인즈가 맨 처음에 ‘야성적 충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는 경제적 상황 또한 무관하지 않다. 1930년대 대공황도 ‘야성적 충동’에 의해 설명이 가능하다. 시장의 낙관론에 도취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과열 상태로 돌진한 시장은 결국 거품이 꺼지면서 자신감을 상실하고 극도의 침체를 경험했다. 지나친 오만과 자신감과 같은 야성적 충동은 또 한 번 경제를 큰 위기로 빠뜨릴 수 있는 것이다.

 

야성적 충동으로 인해 이미 깨진 ‘경제’라는 달걀을 원상 복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새로운 달걀로 교체해야 한다. 어떻게 교체해야 하는가? 조지 애커로프와 로버트 쉴러는 최선의 방법은 정부의 개입이라 결론짓는다. 그리고 그 개입은 언제나 야성적 충동이라는 인간의 본질적 속성을 최우선의 요인으로 파악한 후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누군가 나서서 적절히 관리할 수밖에 없다. 현재로선 정부밖에 없는 것 같다. 앞으로 다가올 시장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 인식의 교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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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10-17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글 잘 익고 갑니다.그나저나 경제이야기에 베니스의 상인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을 함께 쓰시다니 내공이 대단하심니당^^

cyrus 2013-10-17 21:29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잘 지내시죠? 오랜만입니다. '험프티 덤프티' 이야기는 로버트 쉴러의 <야성적 충동>에 인용되어 있어요. 그냥 잘 아는 이야기가 있길래 다시 한 번 기억해볼 겸 글로 정리해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