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의 정의

 

 

 

 

 

 

 

 

 

 

 

 

 

 

 

 

 

국민 공통 기본 교육 과정으로서의 미술 교육은 다양한 미술 활동을 통하여 심미적 태도와 상상력, 창의력,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 주고, 미술 문화를 이해하며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전인적 인간을 육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

 

대입 논술 시험에 종종 예술, 특히 미술과 관련된 문제들이 출제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예·체능 과목이 수능 필수 과목이 아니기 때문에, 실기평가나 수행평가 점수에만 신경 쓸 뿐, 미술 이론에 관심도 없고, 접할 기회도 거의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미술, 음악, 체육 등의 과목을 내신 성적에서 제외하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라고 한다. 서열을 위한 점수 매기기가 아닌 서술형 평가를 도입하겠다는 시도는 일견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내신에서 제외되는 과목이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하다.

 

미술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예술’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을 간단히 정의해 둘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 예술은 ‘심리적 변화를 일으키는 형식들을 창조하려는 모든 시도들’로 정의된다. 이는 허버트 리드의 예술에 관한 정의를 약간 변형시킨 것이다. 그는 예술을 ‘(마음을) 기쁘게 하는 형식을 창조하려는 어떤 시도’로 정의하였다.

 

그러나 그의 정의에서 ‘기쁘게’라는 부분이 영 탐탁지 않다. 모든 예술이 마음을 기쁘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은 우리를 슬프게도 하고, 흥분시키기도 하며,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짜증나게도 한다. 예술을 이처럼 포괄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예술을 예술가 집단이나 평론가 집단의 전유물로 바라보는 매우 잘못된 관점을 바로 잡기 위해서다. 우리의 정의에 따르면,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공책이나 책상 위에 그리는 낙서들도 모두 예술이 될 수 있다. 아니, 미술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일상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도 미술이 될 수 있다.

 

 

 

 ♣ 예술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예술이 창조적 활동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텅 비어 있는 하얀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창조는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일종의 창조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마르셀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을 보라. 「샘」은 비평가들에게 지난 세기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그러나 샘은 일반인들에게는 매우 당혹스러운 작품이다.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에 불과해 보이기 때문이다.

 

 

 

 

 

 

 

 

 

 

 

 

 

 

1917년 뒤샹은 평범한 가게에서 구입한 소변기에 ‘R. 머트(R. mutt)'라는 이름을 서명해 뉴욕 독립미술가협회 전시회에 출품했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기성품(레디메이드)을 예술작품이라며 전시회에 출품한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명화로 꼽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비교해보자. 「모나리자」는 작가의 창작물로서 유일하며 깊은 예술적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샘」의 원형인 변기는 유일하지도 않고 작가의 창작물도 아니며 예술적 감성을 발견하기란 더욱 어렵다. 기성품에 변기 제조회사 이름을 대신해 자신의 사인을 넣는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예술품이 될 수 있을까? 동시대 사람들은 비웃었다. 기존 미술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는, 듣도 보도 못한 예술품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오늘날 비평가들에게 「샘」은 20세기 최고의 예술품이다.

 

이렇듯 예술가에게는 ‘역발상’과 ‘생각의 무한성’을 요구한다. 「샘」은 예술품의 의미를 재정의한 작품이다. 「샘」을 계기로 과거에는 예술품이라고 부르기 힘들었던 많은 작품이 예술품으로 불리게 됐다. 결국 뒤샹은 「샘」을 통해 예술의 범위를 광범위하게 확장한 셈이다. 미술사에 이만큼 강력한 영향을 끼친 인물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예술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예술'로 아는 경험의 범주는 매체나 생산수단이 아니라, 집단적 감각에 의해 정의된다.

 

 

 

그렇다면 뒤샹에게 예술품이란 무엇일까. 그는 예술품의 구성 요건을 예술품 밖에서 찾았으며 구체적으로 두 가지 요건을 제시했다. 첫째 작가가 예술품으로 선택ㆍ인정한 것으로, 둘째 올바른 장소와 맥락에 놓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샘」처럼 작가가 예술품으로 제시하고, 미술관 같은 전시 공간에 놓이면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뒤샹이 남성용 변기 같은 레디메이드를 통해서 진정 주장하려는 것은 사물의 성격과 내용이 가변적이며 환경과 맥락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보이며 아무렇게나 다루는 남성용 변기조차도 환경과 맥락에 따라 얼마든지 가치 있는 예술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뒤샹은 샘을 통해 예술품이든 작가든 모두 가변적이고 불완전한 존재임을 일깨운다. 이 같은 철학을 가진 뒤샹이 스스로 제시한 ‘예술품의 두 가지 요건’을 절대조건이라고 주장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뒤샹은 절대조건을 제시하고 싶은 게 아니라 예술품을 둘러싼 관념적인 여러 시각이 의심받지 않고 있는 당시 현실을 문제 삼은 것이다.

 

 

 

 ♣ 창조 그리고 예술에 대한 잘못된 편견

 

만약 우리가, 창조는 좁은 골방에 틀어박힌 초췌한 예술가들이 머리를 쥐어 뜯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위의 작품들은 작품이라고 불릴 수 없을 것이다. 저런 것쯤은 누구라도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 당장 주변에 있는 아무 물건이나 두 가지를 결합하여,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보자. 그 과정에 예술에 대한 우리의 정의가 고스란히 표현되고 있다. 그저 어떤 질료를 선택하여, 나름의 방식대로 배치하였다. 즉, 형식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여 예전에는 그저 '물건'에 불과했던 대상을 '작품'으로 창조해낸 것이다.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평범한 생활용품을 선택하여 전시함으로써 물건의 실용성은 사라지고 그저 ‘사물’로 돌아가는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예술가의 선택행위 즉, 아이디어인 것이다. 눈에 보이는 사물이나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는 수공적 기술의 재현행위가 아닌 선택한다는 정신적 행위가 예술가의 본질이라는 그의 이론은 기존미술에 도전하는 개념미술의 기초를 이루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버려진 폐품, 기계로 대량생산된 물체들을 그대로 작품에 사용하는 현대 개념미술가는 작품을 창조하는 대신 선택하는 사람인 것이다.

 

사람들은 현대미술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전시장의 작품들을 보며 이것도 작품인가 의아해한다. 그러나 우리 주위의 일상용품을 상식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저 의자, 병, 바퀴 등등일 뿐이지만 소변기조차도 일상적 사물로서의 인식을 단절하고 순수한 형태적 의미만으로 바라본다면 대칭적이며, 부드러운 곡선을 가졌고, 우아한 기하학적 오브제로 새로운 모습을 갖게 되는 것. 이것이 뒤샹이 우리에게 보여준 역발상의 미학이다.

 

이렇게 보면, 예술이란 예술가라고 '규정된'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없을지는 몰라도,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예술이 뭔가 대단한 것이라는 믿음이나 예술가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재능을 타고 난 사람들일 것이라는 믿음은 예술에 대한 편견이 낳은 일종의 신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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