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c와색깔있는책들' 공식 페이스북에서 퍼온 것이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에 대한 간윤의 청소년 유해매체물 선정에 대한 출판사의 반박 입장이다. 내용이 상당히 길다. 만화의 작품성과 예술성을 미리 알아보고 구입한 독자도 있겠지만 타당성 떨어지는 간윤의 결정 때문에 단지 야한 장면'을 얼마나 음란한지 알아보기 위해 구입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올거라 예상을 해본다. 이런 어쭙잖은 논란에 휘말려 책의 판매 부수가 늘어나는 것을 출판사 측은 탐탁스럽지 않을 것이다.    

 

 

 

 

 

 

1.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님들, 심의는 제대로 하셨나요?

 

간행물윤리위원회(이하 간윤)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산하 단체로, 전자출판물을 포함 거의 모든 간행물의 유해성을 심의하고 있습니다. 간윤이 이 업무를 수행하여 어떤 출판물을 ‘유해하다’고 판정하면 그 출판물은 출간과 유통 자체가 금지되며,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판정하면 19세 미만 구독불가인 '청소년 유해매체'가 되어 유통에 심각한 제약이 따르게 됩니다.

간윤이 맡은 일은 법에 의거하고 있으며, 따라서 법조문의 범위 안에서 심의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 것과 달리, 관련법은 생각보다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어떤 분이 얘기하신 것처럼 "노출 장면이 있으면 19금" 식이 아니에요. (청소년보호법 원문은 http://goo.gl/Ivioam 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만약 이 법이 아주 단순하고 깔끔하여 정말 기계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면, 간윤이 존재할 이유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음모를 노출하거나 언급하는 장면이 1회 이상이면 청소년 유해매체임” 식의 명확한 법 조항이 있다면, 그런 장면이 있는 소설이나 만화는 간단히 법에 의해 청소년 유해매체가 되어야겠죠. 심의위원들은 그냥 쓱 훑다가 그런 장면이 있으면 청소년 유해매체라고 선언하는 역할만 하면 됩니다. 이건 특별한 자격이 필요없어요. 눈만 잘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을 써도 됩니다. 하지만 문화상품이라는 게 그런 식의 '기계적 판단'으로 심의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전문가 집단이 법을 근거로 하여 법조문이 지적하는 문제를 지니고 있는 매체를, 강조하지만 장면이 아니라 매체를, 가려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간윤의 존재 자체가 법 조문의 기계적 적용을 피하기 위한 조치이며, 따라서 간윤은 법 조문들 각각과 전체가 보호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제대로 판별하여 작품 심의에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의의를 담고 있는 대표적인 법 조항이 사진 하단의 “문학적·예술적... 측면과 그 매체물의 특성을 고려”하라는 “청소년보호법 제9조 제2항”입니다.

 

그럼 간단히 정의해 특별한 서사문학이자 그림과 문자의 조합으로 특유의 예술성을 지닌 ‘만화’ 매체인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에 대한 청소년 유해매체 지정과 관련해 간윤이 적시한 법 조문들과 해당 장면들을 살펴볼까요? (여기서 모든 장면을 그림으로 보여드리지 못하는 점은 양해바랍니다. 인터넷에서 노출 장면을 업로드하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단속해서 그럴 수가 없어요. 장면을 분절적으로 보여드리는 건 작품 감상에도 악영향을 줄 뿐이고요.)

 

“심의결정 내역”에 따르면 “이 간행물은 외국 만화 번역물로, 스페인 내전으로 프랑스로 탈출, 제2차 세계대전때 레지스탕스 활동 후 종전과 함께 조국으로 귀국한 주인공이 프랑코 독재정권 등 유럽과 스페인의 격동적인 현대사를 온몸으로 맞이했던 자신의 아버지 일대기를 그린 내용으로,” (여기서 잠시 쉽시다. 무슨 문장이 이렇게 오류 투성이인지 타이핑도 어렵네요. “주인공이” “자신의 아버지 일대기를 그린 내용”이라고요?? 읽었는지 안읽었는지도 모호하지만, ‘심의’라는 중대한 일을 감당하시기에는 국어 글쓰기 실력이 참 부족하십니다. 이어서~ 각 항목에 매긴 번호는 글쓴이가 붙인 겁니다.) “-㉠성인 남성이 16세 여성 및 ㉡직업 여성과의 성행위와 ㉢남성이 여성의 엉덩이를 만지는 성추행, ㉣남녀 간의 성애 및 성행위 장면(93-94, 136, 142, 149-154면) 등을 묘사 수록.”한 게 문제가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장면들은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19조 제2항, 청소년보호법 제9조 제1항 제1호 제3호 및 동법 시행령 제9조 개별심의기준 나목 다목 라목 사목에 저촉.”된다고 합니다.

 

앞서 말했듯 법조문에 근거하여 판단한 것인 만큼 문제가 된 장면 각각은 적시된 법조문 중 하나라도 해당되어야 합니다. 또한 매체 특성을 고려하는 것 역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인 남성이 16세 여성과 성행위를 한 장면(93~94면)은, 서사 상 또한 문학적으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렇게 묘사될 필요가 있는 장면인 거죠. 이건 그냥 성행위도 아니고 굳이 '16세'가 강조될 필요도 없습니다.(참고로 이 장면의 배경은 1930~40년대입니다.) 남녀가 격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다 언덕에서 굴러떨어지는 장면이라 보는 게 전체적 맥락에서 온당한 해석입니다. 굴러떨어지는 건 보기보다 굉장히 중요한데요, 앞서 주인공 안토니오가 친구 바실리오와 나무로 만든 자동차를 타고 달리다 차가 부서지는 장면, 노년기에 친구와 휠체어를 달리다 역시 굴러떨어지는 장면, 또한 결정적으로 생을 마치는 낙하 등과 함께 안토니오의 몇 안 되는 행복한 시간을 그려낸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 속에서 행복은 늘 낙하의 이미지를 수반하거든요.(작품의 원제가 "비행의 기술"입니다.) 이건 나보코프의 "롤리타"와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속 성애 장면들과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는 문학적이고 만화적인 장치인 거예요.

 

㉡직업 여성과의 성행위 장면(136면)의 경우는 아주 짧게 안토니오의 고뇌를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단 두 컷으로 처리된 이 장면은 서사적으로는 ㉢에서 논할 장면들의 맥락과 닿아있으며, 안토니오의 정서를 드러내고 프랑코주의 치하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해당 장면에서 안토니오가 바로 그 행위를 후회하고 있으며, 작품이 "매춘 행위"를 긍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칸 속 독백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창녀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쾌락만을 주니까… 하지만 그녀들의 벗은 모습도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마치 죄를 짓는 듯한 느낌이었다…"

 

㉢은 다시 논하기로 하고 ㉣남녀 간의 성애 및 성행위 장면을 살펴봅시다. 적시된 페이지를 감안할 때 여기 포함될 수 있는 장면은 이미 논한 ㉠과 ㉡을 제외하면, 부부 간의 성행위 및 안토니오와 콘차의 불륜 장면입니다.(142, 150-154면) 부부 간의 성행위는 단 세 컷인데요. 이 장면들은 전혀 음란하게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노출도 거의 없고요. 안토니오의 아내 페트라는 성관계를 좋아하지 않거든요. 이 장면은 바로 그것을 드러냅니다. 안토니오는 결혼을 했음에도 욕구불만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직장 동료 앙헬의 아내인 콘차와 안토니오의 불륜 장면은 이 작품에서 이례적으로 길고 육감적으로 처리된 장면입니다. 안토니오의 당시 상황에 대한 불만과 윤리적 타락을 드러내는 장면인데요, 이를 통해 안토니오의 욕구불만이 얼마나 심각한지가 설명됩니다. 동시에 콘차의 벌거벗은 몸이 여러 컷에서 다뤄지는 건 친구 앙헬이 콘차를 구타해왔다는 것을 콘차의 몸에 가득한 멍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이 이후로는 더이상 불륜 장면이 없습니다. 안토니오가 스스로 콘차와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윤리적 결단을 내리거든요. 어쨌거나 이 부분은 분명 장면만 보면 야합니다. 하지만 역시 "롤리타"와 "상실의 시대" 속 야한 장면 정도입니다. 글쓴이는 이런 작품들이 몇몇 장면들 때문에 '청소년 유해매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매체적인 또한 예술적이고 문학적인 특성을 감안한다면요. 이 작품들이 아니라면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도 이 장면 때문에 '청소년 유해매체'가 되어야 하지는 않을 것이고요.(형평성과 관련한 문제는 또 다른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지금부터가 정말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림도 함께 붙인 “㉢남성이 여성의 엉덩이를 만지는 성추행” 장면을 다뤄 봅시다. 이 장면 어떠세요? 149쪽만 보면 "성추행을 묘사”한 게 맞을 겁니다. 그런데 154쪽을 보면요? 주인공 안토니오가 다른 남자(앙헬)의 성추행을 저지하는 장면을 묘사한 거 아닌가요? 이게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19조 제2항: “음란한 내용을 노골적으로 묘사하여 사회의 건전한 성도덕을 뚜렷이 해치는 것”에 해당하나요? 아니면 사진 속에 노란색으로 표시한 다른 법 조문들 중 하나라도 해당하나요? 여러분이 법의 눈으로 이 그림을 성추행 묘사로 볼 수 있는지 한번 생각해 봐 주시기 바랍니다.

 

비록 매체를 대상으로 한 법을 장면을 중심으로 적용하는 간윤의 판단을 비판하다 보니 이 글도 장면 중심으로 서술되었지만, 바로 그걸 통해서 간윤이 정말 심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게 드러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 장면을 간윤이 음란성에 해당하는 항목으로 적시했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여기서 간윤 심의위원들이 전체내용을 보지 않았다는 게 드러나거든요.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에 따르면 "심의위원 중 최소한 2명 이상이 해당 매체물의 전체 내용을 파악한 후 심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전체 내용을 파악했다면, 이 장면을 성추행 묘사로 판단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이게 그에 해당한다면, 성추행을 막기 위한 어떤 작품의 어떤 상황 묘사도 ‘성추행 묘사’가 되어버릴 테니까요. 이 대목을 성추행으로 판단했다는 건 “전체 내용을 파악”하지 않고 149쪽만 보았다거나, 154쪽의우측 컷은 무시하고 좌측 컷만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간윤 위원님 중 최소 2명이 법을 어기고 심의한 셈이잖아요. 다른 대목들은 백번 양보해서 해석의 차이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손 쳐도, 이건... 정말 명백히 문제가 있습니다.

 

“간행물윤리위원회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균형된 심의를 통해 건전한 출판문화 조성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또한 이를 위해 진정성과 열정을 가지고 정직과 청렴을 기치로 삼아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겠습니다.”

 

홈페이지 소개글에 있는 간윤 이근배 위원장 님의 말씀입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법 조항에도 없는 '기계적' 판단으로 예술성과 문학성이 있는 작품 속에서 일부 장면만을 문제 삼는 '내용중심주의'를 버리고 전체적인 맥락을 두루 살펴서 심의해 주셨으면 합니다. 일부 야하다고 할만한 내용이 있었음에도, 이 작품을 읽고 리뷰 써주신 분들에게는 그 장면들이 문제되지 않았는데, 그건 작품을 작품으로 읽었기 때문일 겁니다. 부디 위원님들도, 바쁘시겠지만, 작품은 작품으로 읽어주세요. 야한 장면만 찾아 보는 건, 이제 그만하실 때도 되지 않았나요? 법 시행령에서도 이렇게 적시하고 있잖습니까! "심사위원 중 최소한 2명 이상이 해당 매체물의 전체 내용을 파악한 후 심의할 것"

 

 

- 다음 글에서는 제도 자체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이런 질문을 던져 볼 예정입니다. "'청소년 유해매체'라서 19금인가요, 19금이어서 '청소년 유해매체'인가요?""19금이라면서 왜 성인의 접근권도 제한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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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8-07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간행위의 행위는 그냥 병맛이지요.그냥 자기 밥그릇 챙기기위해서 하는 행동같습니다.이걸보니 아주 오래전에 백투더퓨쳐란 영화가 근친상간을 연상시킨다면서 국내에 상영불가를 하려고 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생가나네요ㅡ.ㅡ

cyrus 2013-08-12 23:28   좋아요 0 | URL
간윤의 백두터퓨처 태클, 코미디네요. 재밌어요ㅎㅎㅎ 타임머신 원리의 문제점이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부모 중 한 사람과 사랑하게 된다면 미래가 꼬일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근친상간 연상은 너무 나갔네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