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방
정호승
너는 나를 끌고
인천국제공항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너는 나를 비행기에 싣고
시나이반도 위를 신나게 날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너는 나를 카이로공항에서 다시 만나
이리저리 끌고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피라미드 안 좁은 통로를 헤매고 다니거나
람세스 2세의 미라를 슬픈 눈으로 들여다보거나
사막에서 하룻밤 찬란한 별들을 바라보며 추위에 떨다가
질질 나를 끌고 다시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러나 나는 너와 함께 가지 않는다
거듭거듭 말하지만 평생 나는 너의 것이 아니다
나는 나 혼자 갈 뿐
너는 너 혼자 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