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은 죽지 않는다 - 종이책의 미래를 짊어진 서점 장인들의 분투기
이시바시 다케후미 지음, 백원근 옮김 / 시대의창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동네 서점에 대한 아련한 추억

 

스위스의 소설가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그레고리우스가 한 책방으로 들어가 포르투갈어로 된 책 한 권을 집어 든다. 중년의 서점 주인이 그 옆으로 오더니 “포르투갈어를 할 줄 아세요?”라고 묻는다. 주인공이 모른다고 하자 “그럼 번역을 해드릴까요?”하며 서문을 읽어준다. 주인공은 그 문장들에 매혹되어 포르투갈어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책을 갖게 되고, 마침내 책의 저자를 추적하고 싶은 마음에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탄다. 서점 주인이 읽어준 책 한 권 때문에, 예순을 앞둔 사람이 그제까지 유지해왔던 생활 방식을 버리고 일종의 모험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저 정도로 극적이진 않지만, 내게도 내 일생에 큰 영향을 준 동네 서점 하나가 있다. 중학교 1학년이던 나는 그때까지 부모님이 사준 세계문학전집류 외엔 다른 책을 읽은 경험이 거의 없었기에 스스로 책을 고를 줄도 몰랐다. 그날 나는 처음 내 돈으로 책을 살 작정이었다. 뭘 골라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있는 내게 책방 주인이 걸어와 추천한 책이 정재승 교수의 <과학 콘서트>였다. 처음으로 굳어 있던 생각의 시선을 과학의 세계 쪽으로 향하게 만든 의미 있는 책이었다.

 

동네 서점들의 폐업 위기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엔 그런 소식이 부쩍 잦다. 그때마다 가슴이 내려앉는 건, 동네 서점에서만 얻을 수 있는 귀한 독서 체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쾌적한 환경과 합리적인 시스템의 대형서점이 지금보다 더욱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도 그들은 결코 줄 수 없는 작지만 빛나는 2%의 그 무엇. 사상 최악의 출판 위기라는 지금 그 무엇이 더욱 애타게 그립다.

 

누군가는 책의 몰락을 말한다. 출판 불경기가 극심하고 책 읽는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만든 책은 팔리지 않고 서점은 문을 닫는다. 이러다가 책의 운명이 영영 소멸해가는 것이 아닐까 걱정한다. 하지만 절대로 그럴 일은 생기지 않는다. 출판사가 망해도 책은 죽지 않고 서점이 문을 닫아도 책은 살아남는다. 다만 바람직하고 다양한 책이 살지 못하고 잘 팔리는 책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 애서점가들이 말하는 책 알리는 비결 

 

그렇다면 동네 서점도 살리고, 팔리지 않는 좋은 책이 살아남아 고객에게 반응을 줄 최고의 방법이 있을까?

 

그 해답은 일본의 출판 전문 주간지 편집장을 지내고 있는 이시바시 다케후미가 만난 소형 서점 운영자들의 비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 <서점은 죽지 않는다>에서 등장하는 여덟 명의 서점 사람들이 책을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신조는 같다. 책 제목처럼 ‘서점은 죽지 않는다’라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고객들에게 좋은 책 한 권을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소통하려는 그들은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책 한 권을 알리기 위해 서점을 지키고 있을 진정한 ‘애서점가’(愛書店家)다.

 

그래도 종이 만지는 일은 언제나 몸부림이다. 운명적으로 팔리지 않는 책을 서가 한쪽 구석으로 옮기는 검열에 시달리는 일이며, 자본에 한없이 부대끼는 일이다. 그러나 힘들다고 해서 종이를 만지고 소개하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이들에게 책은 소비재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사와야 서점의 점장으로 활동했던 이토 기요히코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런 일들은 하던 시대는 끝났다.’ 눈앞의 판매량에 따른 수익을 좇아 베스트셀러나 화재의 신간만 찾아 진열하는 과거의 모습을 단절한 것이다. 이제는 책을 멀리하는 고객들의 냉담한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지 못하는 낡고 고집스러운 판매 전략이다. 과거의 서점들은 일방적인 판매의 이윤목적 달성에만 관심을 뒀기 때문에 고객이 선호하는 책의 종류나 독서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했다.

 

동네 서점은 비교적 집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길 가다가 편안한 마음에 방문해서 종이책을 음미할 수 있는 안락한 휴식처가 될 수도 있다.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켜 가장 효과적인 방향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서점의 역할이 필요하다.

 

 

 

 ♣ 책 읽어주기 100회 도전

 

이하라 아트숍을 운영하는 이하라 마마코의 사례가 지역 동네 서점이 존속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이하라 아트숍은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서점에 불과하다. 남녀노소 지역 주민은 이곳을 방문하는데 책을 사기 위해서 오는 건 아니다. 서점은 책뿐만 아니라 아이스크림도 판다. 책장이 아니라 냉장고로 향하는 손님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이하라는 책 대신에 아이스크림을 사더라도 눈치를 주지 않는다.

 

이하라는 어린이 책 전시 판매회를 홍보하기 위해서 본인이 직접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명 ‘책 읽어주기 100회 도전’. 가게 출입구에서 그림책을 읽는 것이다. 진지하게 소리 내어 책을 읽는 이하라의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지나가는 길을 멈추고 그녀의 낭독을 듣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하라는 책의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홍보 방법이라고 말한다.

 

독서 행위를 몸소 보여줌으로써 손님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것. 단순히 책을 더 많이 팔릴 수 있는 판매 전략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동네 서점에게는 좋은 책을 널리 알리려는 열정을, 주민들에게는 열독(熱讀)의 중요성을 각인시켜 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특히 독서를 많이 해야 할 어린이들이 직접 이하라의 ‘책 읽어주기’ 행사에 참여한다면 금상첨화다.

 

즐거운 놀이는 아이의 언어적, 인지적, 사회성 발달을 촉진한다. 이때 아이의 몸에서는 자연스레 엔도르핀이 나오고 아이들은 기분이 좋아짐을 느끼게 된다. 책을 소리 내서 읽는 행위를 하나의 즐거운 놀이로 만들어 아이의 성장과 지적 발달을 도모할 수 있다.

 

그리고 ‘책 읽어주기’는 시각 및 지적 장애인들에게 실제적인 독서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들은 신체장애 등의 이유로 일반적인 독서활동에 제약을 받는 편이다. 공공기관으로부터 화면 낭독 및 확대 S/W, 독서확대기, 점자정보단말기 등의 통신 보조기가 지원되고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 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동네 서점이 이들의 눈과 귀 그리고 입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새로운 복지 서비스 제공자가 되어 서점의 역할이 재조명된다. 꾸준한 참여가 이루어진다면 지식정보 취약계층을 위한 낭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볼런티어리딩’(volunteereading)으로 발전할 수 있다. 육성을 통한 도서 낭독은 장애인들의 독서 능력과 사색의 범위가 성장하고, 책을 통해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서점의 미래를 만드는 것은 바로 한 사람

 

이시바시는 말한다. 서점의 미래를 다시 한 번 만드는 것은 바로 한 사람이다. 말은 간단하지만,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어렵다. 하지만 책의 존재는 건실하여서 한 사람 한 사람 책을 읽게 하는 독서 문화를 만든다면 실현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 책을 읽어야 한다. 미국의 철학자 에머슨은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라고 말했다. 독서에는 혼자 읽고 이해하고 느끼는 개인 독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읽고 공유하는 독서, 즉 ‘소셜 리딩(Social Reading)’이 있다. 같은 책을 읽고 타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환경과 맥락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고, 그 안에서 내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지 생각하는 과정을 모두 담고 있다. 같은 책을 함께 읽음으로써 주민은 서점 존재의 중요성을, 동네 서점은 주민이 원하는 독서의 유형을 알 수 있다. 동네 서점과 지역 주민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화합의 장이 마련된다면 동네 서점과 독서의 중요성이 무관심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