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의 7가지 상상력 프로젝트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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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섹시, 멸치, 오빠, 앙!

 

 

 

 

tvN SNL 코리아 시즌 4 13회 '진중건의 토론배틀' & '위캔업뎃'

 (SNL 크루 출연: 진중권)

 

 

진중권은 8년 전에 쓴 책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머리말에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의 미래가 공산주의가 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예언은 틀렸지만 노동이 유희가 될 것이다. 그 자신에게는 이 말이 맞았고 예언이 그대로 적중되었다. 저술행위를 생계로 삼는 진중권에게 글쓰기는 고뇌의 산물이 아니라 즐거운 유희니까. 최근 방송을 통해 연기 노동의 유희를 몸소 보여줬다. 남을 설득하고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전공을 마음껏 펼쳤던 백분 토론은 아니다. 19세 미만 관람 불가 등급이 붙을 정도로 성인 코미디를 지향하는 라이브 쇼 ‘SNL(Saturday Night Live) 코리아’에 크루(crew, 게스트)로 출연하여 숨겨두었던 연기 실력(?)을 펼쳤다.

 

 

 

 

 

 

진중권처럼 행사하는 '가짜 진중권' 진중건(김원해 역)은 “뽀로로와 크롱은 친구”라는 7살짜리 어린이(김슬기 분)의 말에 “악어와 펭귄은 먹이사슬에서 상하관계다. 어떻게 둘이 친구가 될 수 있느냐”며 논리적으로 따져 물었다. 그러자 여기서 진짜 진중권이 등장한다. 그는 ‘짝퉁’ 진중권에게 “누가 내 허락도 없이 내 흉내를 내고 다니냐”며 정색했다. 이어 그는 “지금 아이를 데리고 뭐하는 것이냐 이건 아이에게 지적 폭력이다. 아이에게는 눈높이를 맞춰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짝퉁을 나무라면서 쫓아냈다. 그러나 진중권도 “뽀로로와 크롱은 친구가 될 수 없다”며 칸트와 데카르트를 인용해 7살 어린이를 울리고 만다. 또 다른 코너에서는 한 때 자신과 SNS에서 설전을 벌였던 낸시 랭 특유의 인사말(섹시, 큐티, 키티, 앙!)을 패러디해 능청스럽게 연기한다. ‘섹시, 멸치, 오빠, 앙!’

 

생방송이 나간 이후 진중권은 무대 오르기 전부터 화장실을 열 번 갔다 올 정도로 많이 긴장했다고 밝혔다. 이 날 같이 크루로 출연했던 홍석천은 자신의 트위터에 진중권의 연기가 좋다고 칭찬했으며 '장난기 많은 소년' 같다면서 진중권과 같이 찍은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

 

 

 

 ♣ 어린이의 마음으로 상상력 발휘하기

 

오래 전부터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끊임없이 우리 사회는 강조했다. 현대 혹은 미래 사회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발상의 전환, 새로운 아이디어 등이 모두 상상력과 연관된다. 영화, 소설, 인터넷 등을 판타지가 점령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상상력에서 비롯된 ‘생산품’들이 사회 곳곳으로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상상력은 우리가 학교에서 지식을 배우는 것처럼 어떤 과정을 통해, 혹은 누구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중권은 “그것처럼 쉬운 것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가 제시한 쉬운 방법은 ‘어린아이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잠시 어린 아이였을 때로 돌아가 보자. 어린 아이였을 때 우리는 어땠는가. 아무런 구애 없이 온갖 상상을 할 수 있었다. 보는 것마다 호기심이 생겼고 호기심에서 파생된 상상력이 두뇌의 날개가 되어 전혀 구속받지 않고 훨훨 날았다. 상상력 없이는 놀이도 불가능했다. 나 자신은 지구인도 되었다가 외계인도 되면서 목소리를 바꿔가며 혼자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야말로 다양한 상상력을 동원해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틀에 박힌 교육을 받고 사유마저 일정한 방식에 길든 성인이 된 지금은 어린 시절의 활발했던 상상력을 단지 유치한 유희에 불과하다고 치부한다. 성인 입장에서 어린 시절로의 회귀는 ‘퇴행’이나 다름없다. 그러한 생각들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어린이 되기’는 퇴행이 아니라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한 상상력으로의 복귀나 마찬가지이다.

 

상상력의 모습을 심각한 모습으로 형상화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놀이와 작품에서 하나하나 찾아가면 된다. 특히 아이들의 유쾌하고 천진난만함이 녹아 있는 놀이들에서 특히 그와 같은 상상력의 뿌리를 더듬어 간다. 가령 주사위 놀이에서 혼돈과 우연의 상상력을, 숨바꼭질 놀이에서 불연속인 세상의 또 다른 모습을 창조해 낸다. 진중권은 '코디미 연기'라는 색다른 놀이에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창조했다.

 

 

 

 '자기풍자'의 조커로 분한 논객

 

진중권은 변희재와의 '사망유희' 이후로 SNS 활동을 제외한 공개적 활동이 뜸할 정도로 그동안 '아웃사이더'로 지내왔다. 그러다가 마침 오랜만에 출연한 방송이 토론 프로그램이 아닌 코미디 버라이어티 쇼를 선택했다. 'SNL 코리아'가 자신을 개그 소재로 희화화했다는 이유로 프로그램 출연자와 방송 관계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선포한 변희재는 진중권의 출연이 자신 덕분이라고 트위터에 밝혔다. 그러자 진중권은 트위터로 변희재의 주장을 반박했다. SNL 출연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오가던 얘기였으며 이번 SNL 출연이 유쾌했다고 소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유희를 즐길 줄 아는 경험자답게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풍자는 마지막은 자기풍자죠. 그것이 풍자의 완성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비웃고 마지막에 자기 자신을 비웃는 여유…. 아무튼 오늘 기분 좋게 망가져 봤습니다"

 

오늘날 조커(joker)라고 하면 고담 시를 혼란에 빠뜨리는 영화 <배트맨>의 악당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조커의 유래를 되돌아보면 오늘날의 부정적 이미지와는 전혀 딴 판이다. 중세에 조커는 '광우'(狂愚), 즉 한 마디로 말하면 미친 바보였다. 지혜로움의 상징이기도 했다. 오히려 똑똑한 척 하는 현자보다 한 수 위 볼 줄 알며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진짜 어리석은 자들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말한다. '그대의 생각에 약간의 광기를 섞으라. 알맞게 헛소리를 함은 즐겁도다." (58쪽) 

 

 

 

 

 

앙투안 와토  「피에로 질」 1718~1719년

 

 

경외의 대상이었던 광우는 본격적으로 '이성'의 햇빛이 세상을 비추기 시작하는 합리주의의 근대에 들어서면서 '병원'이라는 이름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 때부터 광우는 진짜 '미친 바보'가 되어버린 것이다. 비록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전락했지만 그들은 '이성'의 눈부신 햇빛이 지배하는 현실을 떠나지 않았다. 연극 무대에 볼 수 있는 '광대', 즉 피에로가 되어 이성의 현실에 재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예술가들로부터 다시 한 번 경외의 대상이 된다.

 

 

 

 

“피에로의 변신에서 시대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고전주의 시대에 피에로는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그 시대에 피에로는 아둔하고 천박하고 상스러운 존재였다. 낭만주의 시대에 상황은 돌변한다. 피에로가 예술적 영웅이 되는 것이다. 이성의 독재에 맞섰던 낭만주의 이후 예술은 광기와 연결되어 외려 창조성의 근원으로 간주된다. 게다가 피에로의 웃음 뒤에 감추어진 저 멜랑콜리. 우울증은 예부터 창조적 천재의 기질이 아니었던가. 고전주의가 무너지고 모더니즘이 탄생하던 시기에 발자크, 보들레르, 조르주 상드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드뷔로의 팬터마임에 열광했다. (중략) 왜 그랬을까. 그들은 그 광대에게서 사회 속에서 사회 밖으로 추방된 현대 예술가의 존재를 보았던 것이다.” (62쪽)

 

 

 

뒤샹은 화장실 변기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서 전시회에 출품했다. 백남준은 피아노를 부수고 요셉 보이스의 넥타이를 가위로 자르는 기행(奇行)을 하나의 예술 행위로 선보였다. 이처럼 ‘현대미술’이라고 지칭하는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미친 바보’ 광대처럼 활동한다. 그리고 한 번씩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전달하는 예술적 조커이기도 하다. 아도르노는 “아이들이 광대에게서 느끼는 공감은 예술에서 느끼는 공감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어리석으면서도 문화적 충격을 선사하는 현대예술의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어리석음’이 인정받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코미디 버라이어티 쇼에서 발연기를 한 진중권을 보라. 논리정연하고 날카로운 논객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다. 어리석을 정도로 연기를 썩 잘 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그가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에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숙적 논객과 그 밖의 안티 팬들은 연기를 한 진중권을 어리석다고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진중권은 자신이 강조했던 놀이 그리고 상상력의 미학적 가치를 직접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것도 ‘방송 연기’라는 색다른 노동을 함으로써. 심지어 자신의 논객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유발하게 만들어 자기풍자의 개그로 변용시켰다. 초라하고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선보여서 관객 앞에서 자신을 망가뜨리는 광대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논객으로서의 자신의 인지도를 단지 ‘개그 소재’로 희화, 변용된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누구와는 다른 모습이다. 그 사람이야말로 현명하고 똑똑한 척하는 진짜 어리석은 자가 아닐까.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고린도 전서> 3장 18절, 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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