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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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소매상'으로 돌아온 유시민, 환영합니다!

 

2년 전에 KBS 1라디오 프로그램인 ‘열린토론’은 방송 2000회를 맞아 전국 성인남녀 1천여 명을 대상으로 토론을 가장 잘할 것 같은 정치인이 누군지 전화설문을 한 적이 있었다. 1위는 바로 유시민 전 의원이었다. 응답자의 12.3%가 유 전 의원을 꼽았다. 유 전 의원은 ‘직업으로서의 정치’ 생활을 청산하고 예전의 ‘지식소매상’으로서 돌아왔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를 많이 기억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개혁정책의 상징, 보건복지부 장관, 통진당 공동대표. 통진당 구당권파와 신당권파 간 힘겨루기에 치이고 만신창이가 된 그가 공동대표직을 내려놓고 탈당을 선언했을 때 대부분 사람은 정치생활의 근간으로서 추진해왔던 야권 진보연대의 꿈이 허무하게 물거품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분으로 꺾였던 연대의 날개가 다시 한 번 화려하게 펼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통진당에서 나온 신당권파와 함께 ‘진보정의당’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시작했을 때 이미 ‘진보’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너무나도 냉담했다. 그러나 자신의 트위터에 단 7줄의 글만 가지고 정계를 은퇴한다고 선언할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정계 은퇴 선언한 지 1년 뒤, 유 전 의원은 정말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그동안 걸어왔던 인생길을 반추했다. 시위에 참여했던 대학생 시절부터 지식소매상으로서의 활동을 거쳐 ‘직업으로서의 정치’ 생활까지 예사롭지 않았던 삶의 이력을 책 한 권에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런데 글의 내용은 과거형인데 반해 책의 제목은 미래형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책은 단순히 사진 앨범을 들춰보는 것처럼 과거의 서사만 들려주는 것이 아니다. 지난날의 시간을 성찰하면서 이제 막 본격적으로 접어들기 시작한 삶의 후반기를 어떻게 살 것인지 자신만의 인생철학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유 전 의원이 전쟁터와 같은 정치판에서 나와 글쟁이로 돌아와준 것에 대해서 격하게 환영해주고 싶다. 정계 입문 전에 탄탄하고 논리적인 문장의 글쓰기로 이름을 날렸던 ‘지식소매상’ 글쟁이답게 필력은 여전하다. 하지만 글쓰기의 방식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전작 때 선보였던 글쓰기와는 다르게 유 전 의원은 산전수전 겪었던 인생사를 통해 자신의 개인적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지식을 인용, 가공해서 유창하게 풀어냈던 이전의 글쓰기가 이 책의 전체 중에서 반을 차지한다고 보면 된다. 나머지는 자신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 사실 그는 책 머리말에서 오랫동안 고집했던 글쓰기에 약간의 변화를 주느라 적잖이 어려움을 겪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번에 쓴 책이 지금까지 썼던 책 중에서 힘들었으며 글쓰기만큼은 정치적 자기 검열을 철저히 했다고 한다. 시작부터 독자와 좀 더 가까이 소통하려는 그의 ‘내려놓음’이 돋보인다.

 

 

 

 "저는 원래 사나운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조국 서울대 교수는 ‘직업 정치인’ 유시민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치고 나가는 감각이 좋습니다. 그 점에서 ‘엉덩이’가 무거운 민주당의 386 정치인보다 낫죠. 그리고 그는 권력의 속성, 정치라는 ‘게임’의 법칙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어요. ‘마키아벨리’적인 재능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유시민에게는 품성에 대한 ‘낙인’이 있습니다. 이 ‘낙인’은 그가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을 예를 갖추지 않고 야멸치게 비판하면서 생긴 것이죠.

 

(조국, 『진보집권플랜』오마이북, 2010, 277쪽)

 

그렇다면 ‘지식소매상’ 유시민은 ‘직업 정치인’ 유시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자신의 냉철한 모습에 대해서 억울하다고 말한다. 감히 이렇게 표현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변(辯)은 재미있다. 본인의 가십을 위트 넘치게 '개그'로 승화시켜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는 '내려놓음'을 보여준다.  

 

「개그콘서트」의 ‘희극 여배우’를 흉내내서 말해 본다. “저는 원래 사나운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사실 조용하고 수줍은 편입니다.” 미디어에서만 나를 본 사람들은 아마 비웃을 것이다. 당신이 사납지 않다고? 그렇다. 나는 사납지 않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는 나도 모르게 분노가 치민다. 그 분노를 감추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패할 때가 많다. 분노를 억누르는 데 겨우 성공하는 경우에는 나도 모르게 냉소적으로 변한다. 내 안에 내가 아닌 누군가 있는 것만 같다. 이게 뭐지?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아포리아, 2013, 108~109쪽)

 

토론 진행 경험이 있어서 유 전 의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친정이나 다름없던 TV 토론 방송 프로그램에 패널로 참가한 적이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향하는 시민논객의 반박 의사를 논리적으로 재반박함으로써 주장 의지를 꺾이게 하였는데 이 장면은 ‘토론 잘하는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다시 한 번 부각시켜줬다. 상대방의 견해를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동시에 자신의 견해를 상대방으로 하여금 동의하게 하기 위해서는 냉철한 이성이 묻어 나 있는 화술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유 전 의원의 토론식 화술은 정치판에서 다른 의원을 설득하거나 그 의견을 반박했을 때 크게 먹혔을지 몰라도 정치 인맥 관계에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김영준 민통당 전 최고위원은 유 전 의원을 가리켜 “저렇게 옳은 소리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재주는 어디서 배웠을까.”라고 말할 정도이니 과거 유 전 의원은 정계에서는 ‘상남자’(?)로 통했다고 할 수 있다. 유시민 안에 있는 '누군가'는 바로 중요한 상황에 냉철하게 승부를 걸 줄 알고, 부조리한 상황 앞에서 분노할 줄 아는 '상남자' 유시민인 것이다.

 

 

 

 "어떻게 내려놓을 것인가". '내려놓음'의 진수를 보여주다

 

이 책을 읽어나갈수록 유 전 의원의 솔직담백한 고백은 흥미로울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거부감이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대학 시절 사회주의 사상을 공부했지만, 사회주의자가 아니라고 밝힌 내용과 유물론의 철학적 가치를 설명하는 대목이 눈에 띈다. “유시민도 피를 속일 수 없는 종북이었어.” ‘젊은 보수’를 자처하고 종북 진보를 비판하는 젊은 청년 독자라면 이 내용을 근거로 들면서 이 책을 자기 합리화의 변명을 모아 놓은 산물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요즘 ‘종북’이라는 오명 때문에 ‘진보’의 참된 의미가 씨알도 안 먹히는 세상인 만큼 자기 검열의 옷을 크게 벗은 유 전 의원의 글은 오독의 여지가 있다. 누군가는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번에 나온 책이 자신의 종북 이미지를 탈피하는 동시에 정계 복귀를 노리는 의도적인 글쓰기가 아니냐고.

 

‘종북’이라면 분노의 치를 떠는 내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오독의 유형이 실제로 있다면 그것은 난센스라고 여기고 싶다. 유 전 의원이 독일에서의 생활을 통해서 배운 '진보'와 요즘 우리나라에 자주 거론되는(특히 통진당) '진보'의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다. 표독스러우면서 싸가지 없는 진보적 정치인 유시민이 기억나는 독자는 이 책을 읽기 전에 반드시 자신의 감정부터 정치적 자기 검열을 거칠 것을 권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외향적으로 보이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뿐 상대방의 내면에 담겨 있는 가치와 행복에는 관심을 두려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언가의 실적에 집착하고, 자신의 성과를 포장하기에 바쁘기도 하다. 이러하다 보니 어느 순간엔가 우리는 ‘내려놓음’과 겸손의 여유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유 전 의원의 손아래 누이는 그를 ‘유쾌한 남자’라는 별명을 지어줬다고 한다. 지나치게 심각해지는일 없이 세상의 변화에 잘 적응하면서 사는 그의 성격에서 비롯된 별명이다. 알고 보면 그는 버들나무 이파리처럼 바람의 거친 세기에 유연하게 탈 줄 아는 '버들낭군' 유(柳, 버들 류)시민이었다.

 

완벽주의자가 들고 다니는 사전에는 ‘실패’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실패를 거부하므로 언제 실패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모든 것이 완벽해야 직성이 풀린다. 반면 최적주의자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현실 세계에는 어느 정도의 실패와 슬픔이 불가피하며 성공은 실제로 달성 가능한 기준에 따라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 결과 실패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불안감을 덜어내며 삶을 좀 더 즐기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현실의 한계와 제약을 인정하므로 실제로 달성 가능한 목표를 정하여, 그 결과 성공하고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그러기에 완벽하지도 않고 완벽할 수도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국가도, 조직도 유한한 존재며 우리가 하고 있고 맡은 일과 자리도 유한하다. 그러기에 그 유한성을 인식하고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여 최선을 다하면서 절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언제든지 미련 없이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비움으로 인해서 오히려 자유로워질 수 있는 내면의 자신감을 갖추는 것이 더욱 아름답고 가치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유쾌한 남자’ 유시민은 후자의 인간상에 잘 어울린다.

 

나는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몰두할 수 있는 놀이에 빠져들고 싶다. 더 뜨겁게 사랑하고 더 깊게 사랑받고 싶다. 그렇게 일하고 놀고 사랑하면서,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을 누리고 싶다. 그래야 인생의 마지막 날에도 내 삶에 대해 황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아포리아, 2013, 62쪽)

 

진정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방법에는 정답은 없다. 그러나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내야 한다. 정답을 찾기 위해서는 경험의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어봐야 한다. 이러한 삶의 과정을 잘 견뎌내는 사람이 바로 최적주의자다.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 비울 수 있다는 것처럼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것도 드물다. 무언가를 이루어야 하고, 무언가를 지켜야 하고, 무언가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자신을 구속하고 집착하게 하고 여유가 없게 만든다. 오히려 내려놓음으로써 그리고 비움으로써 우리는 더 큰 행복과 진정한 세상의 승자가 될 수 있다. 누군가가 유시민을 사회적 약자들이 잘 먹고 잘 살면서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는 세상을 만드는 데 실패한 정치인이라고 말할지라도 그는 ‘내가 원하는 삶’을 찾아 살고 있는 진정한 세상의 승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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