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생각에 관한 생각 -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생각의 반란!
대니얼 카너먼 지음, 이진원 옮김 / 김영사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과거를 이해한다는 착각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과신한다.
-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p 300) -
합리적 인간의 불편한 진실
춘추 전국 시대 초나라 때의 이야기이다.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었는데 한가운데쯤 왔을 때 칼을 물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는 바로 주머니칼을 꺼내서 배에 자국을 내어 빠뜨린 부분을 표시해 두었다. '떨어진 자리에 표시해 놓았으니 칼을 찾을 수 있겠지.' 그는 배가 언덕에 닿자마자 뱃전에 표시해 두었던 물속으로 뛰어 들었으나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여씨춘추』에서 유래된 '각주구검'(刻舟求劍)에 관한 일화다. 각주구검은 어리석고 미련하여 융통성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배를 타고 강에 나가서 칼이 빠져버린 위치를 확인하는 방법은 양쪽 강변의 지형 지물을 보는 것이다. 칼의 주인이 떨어뜨린 칼에만 몰두하지 않고 강변을 주목했더라면 이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융통성 없는 이 바보스러움을 우리는 반복하기도 한다. 그 바보스러움은 각주구검의 그것과 같이 시간성과 공간의 변화라는 점을 무시한 목적의 설정이라는 것이다.
시간성과 공간뿐만 아니라 숫자의 세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개미들이 투자를 할 때 기점이 되는 가격은 말할 나위 없이 매입가, 즉 본전이 된다. 그들은 항상 지금이 본전 대비 이익인지 손실인지를 따지고 든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 기준가가 바뀌기도 한다. 만약 주가가 상승해서 한 번 그 주식이 고점을 쳤다면 그 고점이 새로운 기준가로 변한다. 개미들은 주가가 그 고점에 갔을 때의 기분을 이미 느껴봤고 그 가격대를 또 다른 나의 본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증시가 조금이라도 주춤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면 시장에서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기 마련이다. 비관론이 만약 논리적이라고 판단되면 주식을 파는 것이 마땅한데, 개미들은 얼마 전에 경험했던 고점에 미련이 남아 지금 가격대에 팔기가 싫어 하는 경향을 보인다. 만약 지금 팔았다가 바로 주가가 반등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점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주가가 상승을 하다가 다시 하락하면 전 고점은 또 하나의 숫자로 각인이 되고 투자자들은 그 고점을 본전으로 여긴다. 그 숫자에 집착의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를 경제학 용어로 '기준점 편향'(Anchoring Bios, 닻내림 편향)이라고 말한다.
합리적이면서도 이성적인 사고를 지닌 인간은 왜 이처럼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인가? 과연 인간은 지구상에 유일한 합리적인 동물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이성과 직관, 두 가지 생각 시스템의 상호작용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의 모든 행동과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주는 생각을 크게 2가지로 구분한다. 직관을 뜻하는 시스템 1의 '빠르게 생각하기(fast thinking)'와 이성을 뜻하는 시스템 2의 '느리게 생각하기(slow thinking)'다. 달려드는 자동차를 피하는 동물적 감각의 순발력, 끔찍한 사진을 보자마자 저절로 인상이 찌그리게 되는 것처럼 완전히 자동적인 개념과 기억의 정신활동이 '빠르게 생각하기'이다. 반면 123 x 456의 문제처럼 머릿속에 즉시 떠오르지 않는 문제의 답, 복잡한 논리적 주장이 타당성이 있는지 확인할 때는 '느리게 생각하기'가 작용된다.
인간은 어떠한 의사결정을 하게 되면 두뇌 속에서 시스템 1과 시스템 2이 상호작용하게 된다. 예를 들면 냉장고 안에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가 보관되어 있다고 하자. 내가 냉장고 안에 있는 우유를 보는 순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시스템 1, 직관, 빠르게 생각하기가 만들어 낸 충동적인 인지 과정이다. 그러나 유통기한을 지난 우유를 마시게 되면 배탈이 날 수가 있다. 목이 마르다고 해서 기한이 지난 우유를 벌컥 들이마셔서는 안 된다. 기한 날짜를 먼저 확인하고 우유가 상했는지 유리잔에 부어 확인한다. 그래야만 복통의 괴로움을 면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 2, 즉 이성적으로 느리게 생각함으로써 행동을 통제한다.
휴리스틱(Heuristic)에 의한 사고의 오류
● 언론이 집중 조명한 비행기 추락 사고는 일시적으로 비행기의 안전에 대한 느낌을 바꿔 놓는다. 길가에서 불타는 자동차를 본 후 당신 머릿속에는 그 사고 장면이 잠시 동안 남아 있게 된다. 그리고 이제 세상은 당분간 훨씬 더 위험하게 느껴진다.
● 개인적 경험, 사진, 생생한 사례들은 타인에게 일어났던 사건이나 단순한 말 혹은 통계보다 훨씬 더 머릿속에 잘 떠오른다.
(p 190)
하지만 시스템 2에 의해 인간의 행동이 통제된다고 해서 이것이 곧바로 합리적인 의사결정과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시스템 2는 인지적 편안함이 느껴질 정도로 반복되고 낯익은 문제나 상황 앞에서는 나태해지고 회피적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럴 때 인간의 행동을 통제되어야 할 시스템 2는 평소보다 기능이 약해지고 시스템 1에 의해서 의사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잘 아는 것에 바탕을 두고 쉽게 단정해버리는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을 주의해야 한다. 두뇌는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정신적 단축을 선호한다. 애매모호한 자료나 대상은 자연스럽게 무시하거나 왜곡하게 된다.
위에서 소개한 두 가지 사례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가용성 휴리스틱이 만들어 낸 편향이다. 이것을 가용성 편향이라고 한다. 비행기 추락 사고에 관한 뉴스를 접하고 난 후부터 비행기에 탑승하는 것보다는 기차나 배를 타는 것을 더 선호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가용성 편향이 만들어 낸 잘못된 생각일 뿐이다. 실제로 교통수단의 사고발생 빈도 수에 대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비행기보다는 우리가 자주 타는 자동차의 사고 발생이 높다고 한다. 가용성 편향의 착각에 빠지게 되면 실증적인 통계자료마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직관의 함정에 빠지는 인간
그렇다면 통계자료를 완벽히 분석하고 이해하면 가용성 휴리스틱의 오류를 벗어날 수 있을까? 완벽한 대안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것 또한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 형성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통계자료와 같은 과거의 기록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게 된다면 하나의 기준과 틀로 이루어진 정합적인 사고로 형성된다. 의사결정자는 어떠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데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근거의 자료를 이해하고 있다는 확신만 가지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수많은 상황 및 사회문제들은 우연에 가까울 때가 많다. 그런데 인간의 생각은 작은 실마리를 토대로 반복되는 패턴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세상은 기승전결이 뚜렷한 하나의 이야기처럼 규칙적이면서도 정함성을 갖고 돌아가지 않는다. 지난번에 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하면 잘될 것이라는 맹점에 빠지게 되는게 이것을 '정당성의 착각'라고 한다. 이러한 심리적 오류는 분석적인 의사결정 성향이 강한 기업의 CEO들에게 많이 볼 수 있다. 분석적이고도 논리적인 사고를 지향한다는 CEO마저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시스템 1의 직관에 의해 생각의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일부 CEO들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정합적인 과거만을 이해함으로써 미래를 예측하고 운의 역할을 무시한다. 그리고 아는 업무에만 집중하게 되어 지나치게 자신의 믿음을 과신하는 초낙관주의 성향에 빠지게 된다.
시스템 1의 직관의 기능과 관련된 인간의 오류적 판단 경향은 '전망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대니얼 카너먼과 故 아모스 트버스키의 공동 연구에 의해 밝혀졌으며 2002년에 심리학자 카너먼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안겨 주었던 이론이다. 우리는 의사결정을 하게 되면 이익보다도 손실에 더욱 민감하고 손실을 회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앞에서 소개했던 '기준점 편향'에다가 위협을 기회로 여기는 낙관적인 사고까지 어울린다면 종종 자신에게 유리한 이익을 거부하게 되는 모순적인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매몰비용으로 상당한 손실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손실 규모가 더욱 확대될 정도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 개발 사업을 오랫동안 매달렸던 영국와 프랑스의 경우가 전망 이론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콩코드 효과)
합리주의자들이여, 익숙한 생각의 지배에서 벗어나라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고 그래서 기억하는 동물이며 결국 후회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큰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잘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말이야 쉽지 합리적인 인간이라도 올바른 결과를 위한, 옳은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 '잘' 생각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구상 유일한 합리적인 동물'이라는 명예로운 훈장을 내려놓아하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가 않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범하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습관을 제대로 이해하고 훈련만 한다면 완벽한 해답에 도달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쉽게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실행할 수 있다. '생각'에 의해 작동하는 사고방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만큼 현명한 선택을 할 가능성은 한층 높아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익숙함과의 결별'이 중요하다. 이미 주어진 정보와 지식만을 가지고 의견을 보강하는 쪽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보다는 외부 환경으로부터 들어오는 새로운 정보에 의도적으로 개방하고 수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최대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들을 활용하여 문제 예측의 시나리오를 만든다. 이러한 시나리오에는 예측하지 못하는 불확실성의 정보도 포함되기 때문에 판단의 오류에 의한 손실을 줄일 수 있다.
모든 성공은 최면이요 마약이다. 언제든 반복될 수 있고 어디서든 통할 것만 같다. 모 통신사 광고 카피처럼 '생각대로' 하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불확실성, 경쟁이 있는 사회에서 우리가 바라는대로 쉽게 생기지 않는다. 변화 빠른 시절에 과거의 성공 그리고 정보와 지식들은 그야말로 과거일 뿐이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를 바꾸는데 성공한 창조적 소수가 그 성공으로 인해 교만해져서 남의 말에 귀를 막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다 판단력을 잃게 되는 것을 '휴브리스'(hubris)라고 불렀다. '합리적인 동물' 인간은 자기 과신, 지나친 오만에서 비롯되는 실패를 경험해야 했다. 그렇기에 카너먼은 이 책을 통해 세상을 합리적으로만 보려고 하는 합리주의자들에게 경고보다는 충언에 가까운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비합리적인 판단을 하게 되는 모순된 행위에 대해서 스스로 되돌아보고 인식할 것을 권하고 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우리 스스로 존재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겸손과 지혜가 필요해야 할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완벽하고 합리적인 동물'이라는 오랜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었던 이 익숙한 생각부터 결별하는 것이 최우선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