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인문학 - 우리 시대 청춘을 위한 진실한 대답
정지우 지음 / 이경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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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여가수의 눈물

 

 

 

 

 

요즘 주말에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 중에 '이야기 쇼 두드림'을 꼬박 챙겨 보고 있다. 대중들이 추앙하고 있는 멘토들이 출연하여 젊은 시청자에게 인생의 참된 화법을 전하는 '교양 반 버라이어티 반' 프로그램이다. 어제 '이야기 쇼 두드림'에서는 영화배우 배두나와 가수 포미닛의 현아, 소현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방송에 출연하는 게스트들은 자신이 그동안 살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지난 날 삶의 이력들 그리고 수많은 인생의 고민들을 허심탄회하게 소개하기도 하는데 그 중에 가수 현아의 눈물 어린 고백이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는다.

 

현아는 젋은 팬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인기 아아돌 그룹에 소속된 가수이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내가 알기로는 20세도 채 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어른 못지 않게 성숙미가 우러나오는 춤 실력으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지만 본인에게는 대중들이 자신에게 향하는 인기와 끝없는 관심이 심적으로 부담스럽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으며 앞으로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15살 때부터 가수로 데뷔하여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또래 친구들이 누리지 못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어린 소녀는 또래 친구에 비해 너무 이를 정도로 '어른의 사회'에 발을 내딛었고 치열하게 달리기만 했던 자신의 삶이 마주하게 될 불투명한 미래가 두려웠던 것이다.

 

 

 

 방황하는 대한민국 청춘들의 현주소

 

우석훈 박사의 『88만원 세대』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회는 '청춘 담론'이 끊임없이 화두되고

청춘, 즉 불안정한 미래에 시달려아하는 사회적으로 불행한 '88만원 세대'들이 좀 더 나은 삶을 모색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대안들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 '이야기 쇼 두드림'과 같이 젊은 세대들의 아픔과 고민를 들어주고 이를 치유해주고 그에 대한 삶의 해답을 제공해주는 대중적인 '멘토'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청춘들의 불안과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대중서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랭크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청춘들은 여전히 '방황 중'이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은 인생 선배를 붙잡고 이런 질문들을 쏟아낸다.
안철수, 김제동, 이외수, 박경철 등 우리 사회에는 젊은 세대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어만져 줄 수 있는'멘토'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다양한 삶의 해답을 제공해주고 있다. 대중적 멘토들이 젊은 세대들이 겪고 있는 내적 고민을 감성적으로 공감해주고 두둔해주는 것까지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확실하게 올바른 삶으로 이끌어 나 갈 수 있는 실질적인 구제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든 젋은 세대들이 멘토들이 제시한 삶의 해답을 적용하기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점이 있다. 기성세대들이 젊은 세대들을 위해 도움을 주고자하는 삶의 해답들이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지표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젊은 세대들의 진로 설정에 커다란 혼란을 주게 된다. 삶의 여유마저 없는 젊은 세대들에게 혹자의 멘토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지금의 삶을 즐겨라'고 말하는 반면에 또 다른 멘토는 '아무리 힘들어도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현실을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과연 젋은 세대들은 어느 멘토의 말을 따라야 하는가.

 

 

 

 

 

잉여는 단순히 아무것도 할 일 없는 팔자 좋은 백수를 뜻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속에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와 불안이 있다. 분명 남부럽지 않은 청춘을 보내고 싶은 열정이 한편으로 있지만, 무엇을 하든 간에 취직이나 현실적인 성공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모두 '쓸모없는 짓' 취급을 받는다.  (pp 19)

 

 

현실 속에 방황하는 청춘들(여기서부터는 우리나라 '젋은 88만원 세대'를 총칭하는 말로 사용하겠다)은 이러지도 못 하고, 저러지도 못 하는 진퇴양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청춘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음악을 한다거나 세계 곳곳에 여행을 하는 등 다양한 문화로부터 누릴 수 있는 삶의 즐거움을 맛 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기성세대들은 자식들이 빨리 취직을 해서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 사회는 성공하는 삶의 기준으로 대학교, 그것도 명문대라고 불리우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대학은 학생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학문의 장소라기보다는 취업을 준비하기 위한 취업 양성 기관으로 되어버렸다. 대학에서 동아리 생활을 하기보다는 도서관에 눌러 앉아 토익 및 각종 자격증, 수험서를 보는 청춘들이 많아졌다. 어쩔 수 없다. 열심히 공부하는 길만이 성공하는 삶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에... 

 

'음악은 무슨... 공부나 해!' , '해외 여행은 네가 성공해서 돈 많이 벌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어'  

 

비단 어른들의 끊임없는 눈치만 그런 게 아니다. 너무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다가는 정작 취업이라는 성공적인 미래의 목표에 뒤늦게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청춘들 역시 스스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거나 머릿속에 하고 싶은 게 떠올려도 현실적 제약상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방황의 시간 속에서 청춘들은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어디에 나가서도 쓸모 없는 '잉여 청춘'으로 전락하고 만다.

 

기성세대들의 냉담한 반응은 청춘들의 말 못하는 고민과 고독을 심화시켜주었다. 이러한 고민과 고독에서 비롯된 심적 고통, 즉 청춘이라면 겪게 되는 삼중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스마트폰과 SNS였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해 네트워크적 관계망이 형성되어 이제는 가상 공간에서도 인맥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가상 공간에서 맺어지고 만나는 인간 관계를 통해 청춘들은 서로 간의 아품을 공유하고 치유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또한 일시적으로 고통을 잊게 해줄 뿐이다. 청춘들은 그 곳에서도 공허한 고독감을 채워보려고 해보지만 힘든 현실을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한 회피의 행위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청춘들이 고독함을 벗어나기 위해서 가상 세계에서의 탐닉으로만 빠지는 것은 아니다. 상대 이성을 만나 '연애'를 경험함으로써 사랑의 감정으로 외로움을 채울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의 '연애'는 단순히 사랑하는 감정으로 엮어지는 참된 인적 관계가 아닌 그저 고독과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쾌락을 추구하는 피상적인 관계가 되어버렸다. 특히 연애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태솔로'는 더욱 사회적으로 고립감을 갖게 되는 열등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연애, 결혼, 출산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삼포 세대'들에게 우리 사회는 짝을 찾아 연해하도록 권하고 있다. 청춘들에게 현실 속에서의 연애 또한 결국 실현 불가능한 '환상'인 것이다.

 

 

 

 현대 사회 속에서 원자화된 청춘 그리고 자아적 분열감

 

앞에서 간략하게 언급된 방황하는 청춘들의 현주소는 현실감을 상실한 채 자신 스스로 '원자화'(Atomization)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쉽게 말하자면, 현대 사회의 청춘은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상호 소통할 수 있는 '사회적 존재'를 거부하는 대신에 그저 자신만의 꿈과 열정을 실현하기 위해서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이러한 삶을 통해서 자기만족을 얻고자 한다.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 얼핏 들어보면 '개성적인 삶'을 추구할 줄 아는 청춘의 모습으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원자화된 청춘'들이 믿고 있는 자기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 열정, 욕망 그리고 자기만족에는 '타자'(The other)가 개입해서 만들어진 허구적인 인식에 불과하다. 여기서 문제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삶에 '타자' 그리고 '타자'가 만들어 낸 주입된 욕망을 좇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구조의식이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말 소수만이 타자와 구별되는 개성이 뚜렷한 삶을 살아갈 뿐 청춘들 그 누구도 자신만의 삶을 선택하는 이가 많지 않다. 청춘들이 과감하게 '개성적인 삶'을 선택한다면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낮아지게 되며 길거리에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은 여자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 속에 살아가는 청춘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그리고 고유한 개인의 삶을 추구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하고 있는 '획일화'된 삶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자의식의 착각은 자신을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분리되는 '개별자'가 되어 스스로 소외감을 갖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타자'아 구별되는 삶을 추구하면서도 '타자'로부터의 시선과 의식을 받기를 내심 갈망하게 되는, 혼란스럽고도 분열된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삶에 염두하는 인생'이 아닌 '삶을 우위하는 인생'을 살자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지우의 『청춘인문학』은 현대사회 속에 방황하는 청춘들을 위해 인문학적 사유를 통해서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제목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철학자들의 사상을 곁들여 인용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삶의 해답을 찾고자 하는 나 같은 청춘의 독자들에게는 '인문학'이라고 해서 읽기 전부터 지레 겁 먹을 필요는 없다. 다만, 청춘을 위한 인문서적보다는 청춘을 위한 자기계발서에 익숙한 젋은 독자들에게는 저자의 인문학적 통찰에서 비롯된 사유적 과정이 만들어 낸 문장들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책만 가지고 더 나은 삶을 위한 올바른 정답을 찾을 수 있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저자가 인도하는 사유적 과정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그러한 과정 끝에 도달하게 된 해답의 귀착점이 자신의 삶과 적합한 지 따져볼 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저자가 청춘의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의 삶'에 염두하는 인생을 살기보다는 '삶을 우위하는 인생'을 살아갈 것을 권하고 있다. 지나치게 삶을 염두하는 인생은 사회가 만들어 낸 주입된 욕망을 고집할 뿐이며 오직 '성공의 목표'에 집착하는 수동적인 삶의 태도이다. '삶을 우위하는 인생'은 삶의 행위를 스스로 선택할 줄 알며 선택에 대한 삶의 결과에 온전히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동적인 삶의 태도이다. 이러한 삶의 태도를 통해 청춘은 외부로부터 침범한 욕망의 환상들이 만들어 낸 '삶의 거품'들을 구분할 수 있으며 이것 또흔 스스로 조절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사는 세상이 대체 어떤 세상인가를 알고 있어야 하며 주체적으로 삶 자체를 탐구하고, 고민하고, 느껴보려는 자신만의 공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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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2-05-14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난도 씨보다 좀 더 어린,이제 40에 접어든 이들은 야! 우리도 괴롭다! 하고 소리를 빽 지르는 책을 내세우는군요.제목은 그래서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확실히 40대 후반인 김난도 연배와는 좀 다르더라고요. 김난도 씨는 어찌되었든 젊은이를 위로하려고 하는데 이제 40이 된 이들은 청춘들과 서로 손가락질하며 싸우려 드니 이거야 원...

cyrus 2012-05-17 16:28   좋아요 0 | URL
최근에 책 검색하다가 노자님이 언급하신 책 봤어요.
요즘 사회는 젋은 세대뿐만 아니라 기성 세대들도 힘들고 슬프게(술푸게)
할 정도로 힘들어진 거 같아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젋은 세대들에게 무조건 가르칠려고 하거나 부정적인 시선으로 손가락질하는
이들을 제외하면 40을 맞게 된 기성세대들도 나름의 고충, 고민이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