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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ㅣ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공부에 목마른 더벅머리 소년, 정(情)을 그리워한 노학자
인연은 바람처럼 스쳐지나간다는 말이 있다. 스쳐지나가는 찰나적 만남은 한때의 마주침이라 기억도 나지 않는 만남에 불과하다. 그래서 한 번 맺어진 인연이 사람의 명이 다할 때까지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은 쉽지 않을뿐더러 그 만남으로 인해 인생 전체가 확 달라지게 되는 삶이 연출될 수도 있는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것도 있다. 사실 우연한 만남이 운명을 바꾸는 기적으로 바뀌는 경우도 많으며 한 사람의 인생 자체를 넘어서 역사의 흐름 한 줄기를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들어가게 할 수 도 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만나 생각지도 못한 관계로 발전하는 만남, 그런 만남은 정말 운명을 바꾸는 만남이다. 오랜 기간의 만남은 인연의 폭과 골을 넓고 깊게 만든다. 그런 만남의 인연(因緣)은 아름다운 연인(戀人)으로 바뀐다.
비록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다산 정약용과 그의 제자 황상의 만남은 우연의 만남으로 인해서 맺어인 인연이 평생동안 서로를 의지해주는 사제로 이어지게 된 극적이면서도 대단한 관계이다. 역사에서 '만약~했더라면'으로 시작하는 가정법이 있기 마련이다. 만약에 정다산이 강진으로 유배되지 않은 채 조정 내에서 승승장구한 학자로서의 삶을 유지했다면 지금까지도 불가사의한 업적으로 평가되는 강진에서 이룩한 학문적 성과물들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단 정다산의 학문 업적에만 손실을 얻는 건 아니다. 진실되게 한결같이 자신을 믿고 따르는 훌륭한 제자 한 명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1802년, 전남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기 시작했던 정다산은 외인이나 다름 없었다. 저 멀리 한양에 살고 있는 부인 그리고 그의 아들들이 너무나고 보고 싶었고 그리웠다. 그가 좋아하는 학문 수양과 시작(詩作)만으로도 관계의 정(情)이 결핍된 자신의 감정을 추스릴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처지에서 비롯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주막집에 작은 서당을 열어 그 곳 마을에 사는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서당에 모여든 아이들 중에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까막눈들도 있었지만 정다산은 친절하게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글공부를 시켰따. 서당에 공부하는 아이들 무리 중에는 지방 관아의 하급관리 아전의 아들이었던 열다섯 살 더벅머리 소년도 있었다.
어느 날, 서당에서 공부를 마친 아이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정다산은 그 더벅머리 소년을 따로 불러 서당에 남도록 했다. 그러자 소년은 스승과 단 둘이 있는 상황 때문인지 긴장감이 역력했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스승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니, 질문이라기보다는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억눌린 감정들을 뱉어내는 듯한 고민에 가까웠다. 그러자 정다산은 친절하게 소년의 고민을 들어주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 선생님! 그런데 제게 세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꼭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합니다. 저 같은 아이도 정말 공부할 수 있나요?
- 그렇구나. 내 이야기를 들어보렴, 배우는 사람은 보통 세 가지 큰 문제가 있다. 너는 그 세 가지 중 하나도 없구나.
- 그것이 무엇입니까?
- 첫째는 민첩하게 금세 외우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가르치면 한 번만 읽고도 바로 외우지. 정작 문제는 제 머리를 믿고 대충 소홀히 넘어가는 데 있다.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하지. 둘째, 예리하게 글을 잘 짓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질문의 의도와 문제의 핵심을 금세 파악해낸다. 바로 알아듣고 글을 빨리 짓는 것은 좋은데, 다만 재주를 못 이겨 들떠 날리는 게 문제다. 자꾸 튀려고만 하고, 진중하고 듬직한 맛이 없다. 셋째, 깨달음이 재빠른 것이다. 대번에 깨닫지만 투철하지 않고 대충 하고 마니까 오래가지 못한다.
- 정 민『삶을 바꾼 만남』pp 34~35 -
정다산은 소년의 고민과 그에 대한 답변을 글로 남겼다. 글의 제목을 '삼근계'(三勤戒)라고 지었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다산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글이었다. 소년은 스승이 써준 글이 적힌 종이 한 장을 받으면서 감격했다. 이 한 번의 가르침 그리고 스승이 제자에게 건내준 종이 한 장이 더벅머리 소년이었던 황상의 인생을 한 번에 뒤바꿔놓게 되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오직 황상의 인생 자체에만 커다란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다. 황상이라는 정직한 제자 한 명을 두게 된 정다산은 18년 동안의 유배 생활에서의 외로움을 달래 줄 수 있는 동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정신적 부족함들을 채워줄 수 있는 일생 일대에 있어서 중요한 만남이었다.
'제자바보' 정다산, '스승바보' 황상
정다산과 황상, 두 사제의 교류 관계는 정다산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황상은 스승의 가르침을 죽을 때까지 실천했을 정도로 정말 대단한 점은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이들의 관계가 우직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다. 요즘 젋은 세대들이 인터넷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신조어 중에 '~바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딸바보'라는 용어는'딸을 바라보는'의 준말. 즉 자신의 딸을 각별히 아끼는 아버지를 뜻한다. '딸' 대신에 특별히 사랑하거나 아끼는 사람을 대상을 붙여서 사용하기도 한다.
정다산은 항상 황상에게 편지를 보낼 정도로 각별히 아꼈고, 황상은 스승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려고 했던 유일한 제자였다. 말 그대로 정다산은 '제자바보'였고, 황상은 '스승바보'인 것이다.
정다산과 황상의 돈독한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몇 가지 일화가 전해내려오고 있다. 황상은 18살에 장가를 가게 되었다. 장가들어 신혼의 재미에 빠진 황상이 그동안 부지런하게 이어져 온 학문 수양에 점점 소홀해지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러자 이를 잠자코 지켜 보고 있던 정다산은 제자의 태도에 대한 실망감과 한심함을 담은 편지 한 통을 보내게 된다.
네 말씨와 외모, 행동을 보니 점점 태만해져서, 규방 가운데서 멋대로 놀며 빠져 지내느라 문학 공부는 어느새 까마득해지고 말았다. 이렇게 한다면 마침내 못나고 어리석은 인간이 된 뒤라야 그칠 것이다. 텅 비어 실지가 없으니 소견이 참으로 걱정스럽구나. (중략) 진실로 능히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 뜻을 고쳐, 내외가 따로 거처하도록 해라. 마음을 오로지하여 글공부에 힘을 쏟을 수 없다면, 글이 안 될 뿐 아니라 병약해져서 오래 살 수도 없을 터.
- 정 민『삶을 바꾼 만남』pp 137~138 -
황상의 공부 태도에 못마땅하게 여겨 스승이 그에게 각방을 써라고 훈계를 한 것이다. 이제 막 신혼의 달콤함에 젖은 제자 입장에서는 각방을 요구하는 스승의 훈계에 황당할 터. 하지만 황상은 스승이 보낸 편지 한 통 앞에서도 스승의 격노한 모습이 느껴졌던가 보다. 그는 노한 스승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한 뒤 신혼집을 뒤로하고 이전에 스승 밑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고성사라는 절로 올라갔다. 어떻게 보면 공부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는 정다산의 훈계 그리고 그를 곧이곧대로 따르는 황상의 반응이 오늘날 현대의 독자가 보기에는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로 비쳐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당시 유교사회 내에서는 사제 간의 예의 역시 부자 간의 예의만큼이나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기본적인 도리였으며 항상 스승의 가르침을 끝까지 따르려고 하는 황상의 한결같은 성격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새신랑 황상에게 각방을 써라고 하는 훈계의 의미 뒤에는 외로움을 참지 못하는 정다산의 말 못하는 심정이 숨어 있다. 오랜 유배생활하는 동안에 부인의 얼굴이 잊혀질 정도로 만나지 못해 그리워하는 마당에 신혼생활을 하기 시작한 제자의 모습이 살짝 질투가 날 법했을 것이다. 그리고 황상이야말로 자신이 가르쳤던 강진 서당의 제자들 중에 친아들처럼 여길 정도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제자였다. 외로운 스승은 자신의 곁에 황상과 함께 하기를 바랬다. 특히 자신이 직접 인정할 정도로 시작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황상과 함께 시를 쓰면서 관계가 지속되기를 원했다.
노스승의 마지막 가르침
하지만 사람의 관계가 한결같이 유지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 정다산은 길고 길었던 유배생활을 끝내고 다시 한양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황상은 학식 좀 있는 선비들이라면 가게 되는 벼슬아치가 되는 삶의 길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농민으로서의 삶의 길을 선택했다. 이 두 사람은 간간이 편지로 근황을 확인했지만 오랫동안 서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 당시 지역적 제약 때문에 자주 보지 못한 것도 있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지역만큼이나 이 두 사람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은 간절한 그리움뿐만 아니었다. 속세의 삶에 집착하는 몇 몇 제자들로 인해서 정다산은 괴로워했으며 일부 제자들은 하나둘씩 그의 곁을 떠나기 시작했다. 황상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가사 일에 충실하느라 그동안 충실했던 학문 수양이 예전에 비해 소홀히 하기 시작했고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밭과 관련된 복잡한 송사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러나 각자 처하고 있는 괴로운 상황 속에서도 이 두 사람은 서로를 간절히 그리워했고 만나고 싶었다,
그러다가 정다산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접한 황상은 드디어 스승을 찾아 뵙기 위해 상경하게 된다. 이 때 정다산의 나이는 75세, 황상의 나이는 49세였다. 황상이 더벅머리 소년 시절 때 정다산을 처음 만난지 34년의 세월이 흘렀고 마지막으로 만난 이후로 18년 만에 재회하였다. 백발의 스승은 건강이 성치 않았지만 자신이 아끼던 제자의 방문을 알아봤고 크게 반가워했다. 비록 짧은 체류였지만 49세의 황상은 소년 시절 때처럼 변함없이 정다산의 곁을 지켜주었다. 정다산을 만난 지 이틀 뒤에 황상은 작별의 큰절을 올리고 다시 고향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정다산은 황상과의 만남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노환과 질병으로 인해 의식이 혼미한 상태 속에서도 애제자를 위해서 짤막한 글씨와 작은 선물을 전해주었다.
황자중(=황상)에게 준다.『규장전운』한 건, 중국 붓 한 자루, 중국 먹 한 개, 부채 한 자루,
연배 한 개, 여비 돈 두 냥
- 정 민『삶을 바꾼 만남』pp 404~405 -
늙어버린 스승은 예전처럼 제자를 위해서 긴 내용의 시와 편지를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힘들지만 간단하게 제자에게 전해주고 싶은 선물의 목록만 썼을 뿐이다. 하지만 이 짤막한 선물 목록에는 애제자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 있다.『규장전운』이라는 책자 한 권을 준 이유는 농사일 때문에 접어두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할 것을 권하는 스승의 마지막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제자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 배를 곯을까봐 여비까지 따로 마련해주었다. 스승은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삼근계'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었다. 스승의 마지막 가르침이자 보은에 49세의 제자는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흐를 뿐이었다. 스승과의 작별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못난 제자를 위해 끝까지 배려해주는 스승의 고마움에 황상은 눈물을 흘렀다. 그리고 정확히 이틀 뒤에 황상은 또 한 번 울어야했다. 황상이 떠난 지 이틀 뒤에 정다산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런 스승과 제자, 또 없습니다."
내 스승이신 다산 선생께서는 이곳 강진에 귀양 오셔서 스무 해를 계셨네. 그 긴 세월에 날마다 저술에만 몰두하시느라 바닥에 닿은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났지. 열다섯 살 난 내게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삼근(三勤)의 가르침을 내리시면서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네. '나도 부지런히 노력해서 이를 얻었느니라. 너도 이렇게 하거라'. 몸으로 가르치시고, 말씀으로 이르시던 그 가르침이 6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어제 일처럼 눈에 또렷하고 귓가에 쟁쟁하다네. 관 뚜껑을 덮기 전에야 어찌 이 지성스럽고 뼈에 사무치는 가르침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그날로 나는 죽은 목숨일세.
- 정 민『삶을 바꾼 만남』pp 13 -
황상은 소년 시절 때 정다산이 강조했던 '삼근계'의 가르침을 절대로 잊지 않았으며 몸소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항상 '삼근계'를 마음에 새기며 평생 공부에 매진했고, 관 뚜껑을 덮을 때까지 한마음으로 공부하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황상은 정다산의 삶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었다. 깊은 산속에 거처를 마련하고 농사를 지으며 시 짓기 등의 공부를 계속 했으며, 늘그막에는 '일속산방'(一粟山房)이라는 조그마한 거처을 마련하여 그 곳에서 오직 공부에만 전념했다. 정다산의 제자들이 출세를 위해 공부할 때, 오직 황상은 스승이 입버릇처럼 일러주신 유인(幽人)의 삶을 실천했던 것이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스승의 날이 다가온다. 하지만 스승의 날을 맞이해야 할 학교 내 분위기는 예전 같지가 않다. 사제 간의 의리와 정이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스승이 어떤 분인지를 묻는 제자가 없는 시대다. 그리고 학교는 더 이상 학문을 배우는 곳이 아니다. 스승과 제자는 없고 돈과 폭력이 학교를 창고처럼 만들었다. 요즘 정다산처럼 숙제를 어렵게 내주고 토씨 한 개에 변죽을 부리는 선생이 있다면 인터넷에서 몰매를 맞을지도 모른다. 학부모위원회에 회부될 수도 있다. 사실 정다산은 까다롭고 쫀쫀하고 번잡한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특히 두 아들들뿐만 아니라 자신이 아끼는 제자인 황상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보게 된다면 매번 공부할 것을 권하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씩 유배지에 찾아오는 아들들에게 그동아 공부했던 것들을 확인할 정도로 무척이나 깐깐한 스승이었다. 애제자를 위해서 죽을 때까지 보살핀 스승과 백발이 성성한 나이가 되어서까지도 어린 시절처럼 한결같이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않으며 스승의 곁을 지킨 제자 그리고 수십년동안 이어져 온 끈끈한 사제 간의 정(情)은 이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정다산과 황상, 두 사제 관계에서 비롯된 일화들은 스승과 제자 사이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전범이 될 수 있다. 두 사람의 관계에는 신뢰와 존중이라는 핵심 가치가 녹아 있다. 진정한 교육과 만남이 어떤 것인지 살펴볼 수 있다. 제자는 없고 학생만 있는 요즘 학교 교육의 현실에 비추어본다면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공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연인은 사랑하는 남녀관계를 의미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형성되는 마음 깊은 모든 관계를 지칭한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만남도 가식적일 수밖에 없다. 내가 만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인간적 관계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야 될 미덕이다. 관계를 아름답게 바꾸는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면 내가 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진정한 연인으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