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친분이 있는 지인들과 함께 '인문학 공부'라는 공통적인 목적 하에 읽고 있는 것이 알라이다 아스만의 『기억의 공간』이다. '기억'이라는 주제로 문화를 전반적으로 분석한 연구서인데 이 책에는 수많은 외국 문학작품들의 텍스트들이 인용되고 있다. 하지만 내용의 난이도는 만만치가 않다. 기존에 나온 판을 새롭게 개정해서 나온 번역판임에도 전문서적을 보는 듯한 서술 때문에 읽히기가 쉽지 않다. 사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도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적잖이 고생했다.

 

한 주에 정기적으로 두, 세 장씩 읽고 발제자가 쓴 발제문에 대해서 나름 감상과 개인적인 견해를 답글 형식으로 써내어가면서 각자가 쓴 글들을 서로 읽고 거기에 댓글을 다는 형식으로 일종의 '공부'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인문학 공부를 여러 명이 함께 한다고 해서 무조건 쉽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혼자서 하는 것도 내용을 이해하고, 공부를 하려는 의지의 정도를 비교하자면 그래도 공부는 함께 하는 것이 더 나은거 같다.

 

비록 관심 있는 내용을 골라 거기에 개인적인 감상과 견해를 덧붙이는 단상 형식의 수준이지만 그래도 이런 독서와 글짓기가 혼자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보다도 더 기억이 남고 거기서 얻은 것도 많았다. 학교 생활을 하다보니 공부할 게 많아졌지만 이미 여려 지인들 그리고 나 자신과 스스로 약속을 했으니 꾸준히 이어져 갔으면 좋겠다.

 

 

 

 

  1장 ‘기술’과 ‘활력’으로서의 기억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모든 길은 기억으로 통한다. 이 말은 신학, 철학, 의학, 심리학, 역사학, 사회학, 문학, 예술학, 매체학의 모든 길들이 바로 기억으로 통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문예학에서 기억으로 통하는 길은 한 번 더 나눌 수 있다. 그 중 한 길은 ‘기술’(ars)이란 길이고, 다른 길은 ‘활력'(vis)이라는 길이다. 기억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문학연구 논문들은 모두(冒頭)에 꼭 고대 로마의 기억술은 언급하고서 시작한다. 기억술이란 기억을 다루는 기예(기예)이며, 여기서 기예란 고대의 의미로 살펴보건대 기술이라는 뜻으로 보면 된다.  (pp 30)

 

 

 

고대 로마에서는 기억술을 하나의 ‘기술’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봤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기억'의 고대적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버린 것 같다. 학습하는 데 있어서 물론 '기억'이라는 기술(혹은 능력)도 중요하지만 요즘에는 '암송'이라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같은 정보의 양이 많은 시대에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같은 기기의 등장으로 굳이 정보를 기억해야 할 필요도 없게 되고, 심지어 기억하는 능력마저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퇴화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정작 중요한 정보는 직접 머리로 기억하려는 습관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루가 지날수록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성능이 향상된다 하더라도 굳이 정보기기들의 능력까지는 따라가야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기억은 단지 공부할 때만 필요한 정신적 행위도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좋고 행복한 일들을 죽을 때가지 평생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억술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살면서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어린 시절 때 행복했던 기억들이 하나하나씩 잊혀 간다는 것을. 그러한 기억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인간은 추억에 쉽게 빠져드는 감성적인 동물인거 같다.

 

 

 

 

 

나이가 들면서, 심지어 생물학적으로 꽤 젊다고 할 수 있을 때에도 우리는 짙은 향수에 잠겨 지나간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경우가 많다. 그런 향수는 박탈당한 삶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맛보았던 감정과 기쁨을 혹시라도 또다시 경험할 수 있을까 하여, 그런 순간들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헤럴드 블룸)

 

 

 

 

 

책의 주제인 '기억'과는 좀 연관성이 떨어지는 내용일 수도 있겠지만 다시 말하자면 사소하지만 행복한 일들을 기억할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삶에 있어서 중요하고 절대로 잊어버려서는 안 될 기억술이라고 생각된다. 과거의 좋은 일들을 기억함으로써 메마른 생(生)에 큰 '활력'(vis)을 불어 넣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기억술도 언뜻 보면 좋은 것 같지만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항상 행복하고 좋은 일들만 기억만 하고 산다면 좋겠지만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좋은 일들만 100% 기억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기억하기도 싫은 안 좋은 일들도 겪기 마련이다. 종이 위에 연필로 글을 쓰고 나면 그것을 깨끗하게 지울 수 있는 지우개가 한 손에 꼭 쥐고 있어야하듯이 불필요한 기억들도 스스로 여과하여 지울 수 있는 망각의 능력도 필요하다.

 

 

 

 

 2장 추모의 세속화 : 기억, 명성, 역사

 

 

망자에 대한 기억은 종교적인 차원과 세속적인 차원으로 나누어지는데, 전자는 경건함으로, 후자는 송덕으로 각기 대변된다. 경건함은 후손의 의무, 즉 살아 있는 자들이 망자를 기리며 추모하려는 의식을 말한다. 경건함이란 다른 사람들, 즉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망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송덕, 즉 칭송으로 명성을 얻는 일이란 어느 정도까지는 망자가 살아 있을 때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송덕이란 자기의 이름을 영구화하기 위한 세속적 형식으로, 당사자의 의지와 관련이 있다. 중세 기독교에서는 최후의 심판일에 구원을 얻기 위해서 애를 썼는데, 이것은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서 애쓴 것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 (pp 39)

 

민족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영원화의 기약은 수많은 기념비에 나타나고 있다. 무명용사들의 기념비에서 국립묘지까지 이 기념비들은 민족적 기념 사업의 과정된 형식이기도 하지만 어색한 형식이기도 하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현대 민족주의 문화에서 무명용사들이 위령탑과 빈 무덤만큼 인상적인 기호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육체의 잔재나 불멸의 영혼과 관련하여 그들의 무덤이 비어 있으면 있을수록, 그들은 유령 같은 민족적 환상으로 가득해지게 될 것이다.” (pp 55)

 

 

 

 

제2장의 내용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민족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망자에 대한 기억에 대한 내용이었다. 앞에서 저자는 제2장을 시작하는 부분에서 망자에 대한 기억을 종교적인 차원과 세속적인 차원, 이 두 가지로 구분했는데 민족적 차원도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속적 차원에서의 망자에 대한 기억이 민족주의적 요소와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 pp 55의 각주에 보게 되면 민족주의와 망자 숭배의 관련성에 대해서 베네딕트 앤더슨의 간단명료한 말 한 마디가 핵심을 잘 포착하면서도 동의할 수밖에 없다.

 

 

 

 

 

 “무명의 맑스주의자나 무명의 자유주의자는 없다.”

 

 

 

 

 

앤더슨의 지적은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와도 연관 지어 볼 수도 있다. 일본의 각료들이 매번 참배를 하게 되는 그 곳은 과거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난 태평양 전쟁에서 전사한 200여 명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 세운 종교적인 건물일 뿐이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이 안치되기 전에는 야스쿠니 신사는 막부 간의 싸움에서 희생된 자들을 기리기 위해서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이르게 되면서 망자에 대한 기억의 장소가 전쟁 때마다 국민에게 천황숭배와 군국주의를 고무, 침투시키는 데 절대적인 구실을 하는 망자 숭배의 장소로 변질되어 버렸다. 또 전몰자들은 천황을 위해 죽음으로써 생전의 잘잘못은 상관없이 신(神)이 되어, 국민의 예배를 받았다. 야스쿠니 신사에 직접 가 보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전몰자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힌 기념비가 있다. 전쟁이 아니었으면 일개 평범한 삶을 마쳤을 무명의 일본 국민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를 숙이게 만드는 이름뿐인 ‘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전장에 나서기 전에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전쟁터로 떠났을 만큼 모든 가치의 기준을 천황에 대한 충성 여부에 두었고, 따라서 야스쿠니 신사의 존재는 일본 국민의 도덕관을 혼란시키는 동시에 한일 간의 관계를 어긋나게 만드는 장애물이 되기도 했다. 천황을 위한 죽음은 대부분 명분 없는 침략전쟁에서의 죽음이었기 때문에 일본 군국주의는 이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로 신화의식을 조작해 야스쿠니 신사를 탄생시킨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 연합군총사령부는 야스쿠니 신사의 호국적 성격을 알고 단순한 종교시설과 순수한 전몰자 추도시설 중 하나를 택하라고 일본에 강요, 일본은 종교시설을 택하였지만, 야스쿠니 신사의 특수한 기능인 전몰자 추도시설 기능을 완전히 박탈하지는 못했다. 야스쿠니 신사의 상징인 흰 비둘기가 평화를 의미하는 것과는 반대로, 전시물들은 전쟁과 전투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어 전쟁박물관인지 신사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이중성을 지닌 건물로 남게 되었다.

 

 

시대가 불안하면 불안할수록, 다양한 이해집단들이 자기 확실성이 강화될수록 기념비들은 더욱더 많아지고 더욱더 극적으로 변화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런 기념비들은 후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동시대인들의 정치적 영향력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그것들은 현재를 영원한 역사로 만들고 역사적 과정을 부정하려는 도전과 여러 가지 면에서 일치한다. (pp 61)

 

 

망자 숭배 또는 추종에 가까운 기념비 설립의 현상은 비단 일본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기념비 설립이 정치적인 영향력의 수단으로 전략한 사례도 있고 또한 그것으로 인해 역사관의 가치를 둘러싸고 갈등을 낳기도 했다. 인천의 맥아더 미군 동상 그리고 남산에서의 이승만 대통령 동상 설립 문제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입니다. 정치적으로 권력을 가진 이해집단들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과거의 역사를 기념비를 통해 부각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목적은 자신들의 사상 또는 사회적 영향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면서까지 기념비 설립에 집착하는 것은 망자를 기억하는 의미의 추모 행위에서 벗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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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2-03-22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의 글은 가끔 제게는 너무 어렵군요.
흠 친한 척 해보려고 해도, 뭔가 꺼리가 부족함을 느낍니다.
이게 다 저의 부족함이니 남 탓을 할 수도 없겠네요.
암튼 오랫만에 들러서 인사 남깁니다. ^^

cyrus 2012-03-23 20:31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인사 댓글 남기셨는데 하필 부족한 글을 보게 되셨군요.
오히려 제가 송구스럽네요. ^^;; 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는 말이
있잖아요 ㅎㅎ 요즘 제가 글을 쓰면서 그런 경향이 있어 보여서
저 스스로 경계하려고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03-22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몇 년 동안 기억에 대해서 역사학 및 사회과학자들의 좋은 저술이 나오고 있습니다.저는 매우 중요한 연구라고 봅니다.역사를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은 역사해석의 핵심이거든요.특히 무덤을 비롯한 과거 흔적을 놓고 일종의 기억 충돌이 일어나고 있으니 더욱 연구해 볼 만한 소재지요.박정희 기념관을 둘러싼 갈등도 좋은 연구사례입니다.

cyrus 2012-03-23 20:32   좋아요 0 | URL
사실 이 책을 5장 정도까지 읽었는데요,, 생각보다 어렵네요 ^^;;
제가 책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ㅎㅎ
그래도 간만에 독서를 하면서 머리 아픈 것도 나쁘지가 않네요.
일종의 정신적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