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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에게 보낸 편지 - 어느 사랑의 역사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학고재 / 2007년 11월
평점 :
'누구나 자기의 '예술'을 사랑하게 되면 어떤 봉사도 서슴지 않는다'
- O. 헨리 -
백년해로 그리고 죽음마저 같이 한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읊은 이백의 <장한가>에는 양귀비가 사랑을 맹세하는 구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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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있을 때는 비익조가 되길 원하오며, 땅에 있을 때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在天願作比翼鳥, 在地願爲連理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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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익조는 날개가 하나 뿐인 새이다. 두 마리가 합쳐야 비로소 날 수 있기 때문에 역시 연리지처럼 부부의 깊은 애정을 뜻하는 말이다. 두 나무가 각기 자라다가, 나뭇가지가 서로 이어져 한 나무가 된 것을 '연리지'라 한다. '연리'(連理)라는 말은 처음에는 효성의 뜻으로 쓰였지만, 후대에는 부부간의 깊은 사랑을 표시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요즘 우리의 생활상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씁쓸하기만 하다.
현대인의 사랑에는 깊은 울림이 없다. 목적을 갖고 연애하고 작업으로 사랑을 얻으려는 것이 이제는 현대인의 사랑의 정석인 듯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 라디오가 되고 싶다.” 는 장정일의 시처럼 쉽게 만나고 가볍게 헤어진다. 그리고 한 번 결실 맺은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한다.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 까지 변치 않은 사랑을 다짐 했건만 단지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기는커녕 틀리다고 단언하고 과감하게 돌아서는 성격차이의 이혼율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기도하다. '백년해로(百年偕老)'라는 말의 의미와 부합되는 연인 또는 부부를 만나기란 보기 드물어졌다.
부부의 인연을 맺어 한평생을 같이 즐겁게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죽음마저도 한날 한시에 맞는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사랑이 만들어낸 숭고함 힘이라면 그 어떤 현실의 장애를 뛰어넘을 수 있는 행동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신좌파의 이론가로서 사회개조와 생태주의의 이념을 추구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상가 앙드레 고르는 불치병으로 인해 죽음을 앞둔 자신의 아내와 함께 동반자살을 함으로써 2007년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58년 간의 사랑에 스스로 종지부를 찍었다. 그 때 고르의 나이는 84세, 아내 도린의 나이는 83세였다.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고 사르트르가 평가했을 정도로, '유럽 최고의 지성' 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그가 왜 길고 긴 사랑의 역사를 동반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마무리 지으려고 했던 것일까?
'지식'보다는 '사랑'을 추구하다
아무리 앙드레 고르가 사랑하는 부인 도린을 위해서, 그것도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의 대상을 받는 지성인이 '자살' 이라는 극단적인 죽음의 방식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 우리에게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차이의 입장을 좀 더 깊게 이해해본다면 고르가 부인과의 동반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
젋은 시절의 앙드레 고르와 그의 아내 도린
고르 자신에게는 '앙드레 고르'라는 이름을 유럽에 널리 알려지게 해 준 자신의 저작물이나 그로 인해 얻게 되는 명성 그리고 '사상가'라는 지적인 명함이 단지 자신의 삶을 형성하고 유지하게 만드는 본질 그 이상이 아니었다. 그에게서 본질적인 것, 즉 자신의 삶에서 최고의 가치는 바로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었던 아내 도린이었다. 인생의 본질적인 가치인 아내를 위해서라면 세상의 모든 지식이나 사상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위한 소원은 잠시 미뤄 둘 수도 있거나 기꺼이 포기할 수도 있는 비본질적인 가치에 불과했다.
귀스타브 모로 <에우뤼디케의 무덤을 지키는 오르페우스> 1891년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 속에 누워 떠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pp 88~89)
편지의 마지막 내용은 죽음마저 초월하려는 도린을 향한 고르의 사랑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애써 아내의 부재를 믿으려는 하지 않는 남편의 심정이 무척 가슴 절절하다. 인생의 일부분이나 다름없는, 가장 중요한 본질적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사랑하는 도린을 먼저 보내는 두려움에 고르는 '함께 죽음'이라는 것을 선택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pp 89)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날,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부부가 죽음을 맞는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죽어서도 끝까지 도린과 함께 하고 싶은 고르의 사랑 앞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방해요소가 될 수가 없었다. 오직 사랑을 위해서 고르는 주체적인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자신의 곁을 먼저 떠난 연인 에우뤼디케를 만나기 위해서 혼자서 금단의 영역인 저승의 세계로 넘어 온 이승의 오르페우스처럼 말이다.
'사랑'이라는 예술을 위해서 봉사하다
미국의 소설가 O. 헨리는 '누구나 자기의 '예술'을 사랑하게 되면 어떤 봉사도 서슴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와 부합되는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을 꼽으라면 앙드레 고르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애틋하면서도 그 누구보다 더 뜨거웠던 노부부의 사랑이 만들어 낸 죽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긍하지 못하는 독자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고르가 선택한 방식이 단지 사랑을 추구하기 위한 선택으로서 올바른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고르의 '사랑을 위한 함께 죽음'은 현해탄 한가운데서 투신한 김우진 & 윤심덕이 겪어야했던 상황과는 다르다. 동 서양 두 커플은 사랑의 감정이 계속 이어질 수 없는 극한의 한계에 마주치게 되자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그러나 김우진 & 윤심덕은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에 대한 비관적인 입장에서 '함께 죽음'을 택한 것이라면 고르 & 도린의 '함께 죽음'은 죽어서도 자신들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오고 인연의 끈을 돈독하게 유지지할 수 있는 오직 자신들을 위한, 긍정적인 입장이다.
여기서 확실하게 부언을 하자면, 절대로 '사랑을 위한 자살'을 미화하는 입장을 밝히고자 한 것은 아니다. (내용면에 그런 문제점이 될 여지가 있다면 문제되는 부분을 수정하거나 또는 삭제를 하겠다)
지금까지 쓴 내용과 앞뒤가 안 맞을 수도 있지만, 아무리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부재한다고 해서 고통의 감정을 극복하지 못한 채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선택의 결과과 될 수 있으며, 개인적으로 '사랑'을 위한 봉사 방식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점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이 책을 읽을 때는 사랑을 위한 '동반자살'이라는 현상의 결과보다는 오랫동안 서로의 곁을 지켜주며 희노애락을 함께 한 노부부의 사랑의 감정을 느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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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의 편지는 젋은 시절 때의 첫 만남부터 노부부가 되기까지 사랑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편지 내용이 시작되는 처음 부분에는 두 사람이 함께 사랑의 밤을 뜨겁게 보내는 장면을 묘사한 내용이 있다. 은근히 에로틱한 뉘앙스가 묻어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장 레옹 제롬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1890년경
우리는 서두르지 않았어요. 나는 조심스럽게 당신의 옷을 벗겼습니다. 그러자 현실과 상상이 기적처럼 맞아 떨어져, 난 살아있는 밀로의 비너스 상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pp 12)
사랑을 나누었던 일을 회상한 이 장면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의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만든 실물 크기의 여인상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갈라테이아'라는 이름까지 붙여줄 정도로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결국 비너스의 도움으로 대리석 조각상에 생명이 불어넣게 됨으로써 자신의 소원대로 갈라테이아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다.
피그말리온의 간절한 소원 끝에 사랑의 결실이 맺어지게 되었듯이 고르 역시 몇 번의 데이트 끝에 사랑하는 여자를 자신의 품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이 두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의 삶을 빛나게 해준 '예술'은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들 수 있는 조형 기술도 아니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지식도 아니었다.
이들에게 진정한 '예술' 은 곧 '사랑'이었던 것이다.
'사랑'이라는 예술을 위해서라면 무식하게 목숨까지 바칠 필요는 없다. 자신의 곁을 언제나 지켜주고 있는 인생의 동반자에게 변함없이 사랑의 감정을 표현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사랑이 유지되기 위한 언제든지 할 수 있는 봉사이며 결국에는 그 어떤 명화(名畵)보다도 아름다운 '백년해로'라는 자신의 인생을 빛나게 하는 위대한 걸작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걸작' 정도는 아니더라도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