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 한길그레이트북스 92
장 자크 루소 지음, 김중현 옮김 / 한길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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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문과 예술의 부흥은 풍속을 순화하는 데 기여했는가?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는 1750년 디종의 아카데미 논문 공모 대상을 수상한 장 자크 루소의 처녀작이다.   당시 아카데미는 '학문과 예술의 부흥은 풍속을 순화하는 데 기여했는가?' 라는 주제를 내걸게 되었는데 루소가 주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소논문 형식으로 쓴 것이다.  이 논문 한 편은 가난과 방랑 생활을 보낸 젋은 루소를 일약 지식인 사회에 떠오르는 스타로 만들어줬다.  

화려한 학력도 없이 그저 독학으로 숙지한 지식으로 무장한 무명의 젋은이가 단숨에 아카데미 논문 공모전에 대상을 받는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당시 사회를 주름잡고 있었던 기존의 지식인들에게는 풋내기 사상가의 입장을 반박할 정도로 루소의 명성은 대단하였다.   심지어 자신의 논문에 대해서 반박하는 당대 지식인들의 편지들이 날아 올 정도였다.  이에 대해 루소는 편지 교류를 통해서 자신에게 향하는 반박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재반박함으로써 정면에 맞섰다.   

루소는 학문과 예술의 발전이 오히려 인간의 풍속을 타락시켰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 당시 지식인 사회에서는 루소의 입장은 파격적이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이성' 을 중심으로 한 학문의 발달 덕택에 인간이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루소가 살던 시대보다 더 윤택하면서도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 중에도 루소의 입장에 수긍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비록 논문은 짧은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루소는 그동안 독서를 통해 쌓은 역사적 지식들을 총동원하여 학문의 발달과 관련된 문명에 대한 통설을 과감히 깨뜨리는 동시에 역사적 실례를 통해 충분히 논증하고 있다. 시대마다 명성을 떨친 여러 나라와 민족의 사례을 살펴보고 학문의 발전과 풍속의 타락, 패망 사이의 역학관계를 조망한다.    

   

 

  '못 된' 지식인과 권력자들에게 향하는 '가난한 노숙자' 루소의 비판

루소는 시대가 변할수록 학문이 사회 발젼에 이바지하기는커녕 타락하게 만드는 원인을 그 당시 학문 구조 자체에만 문제를 삼은 것이 아니다.   그는 학문이 사회 진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원인을 자신들의 이익욕과 오만 그리고 위선으로 점칠된 지식인들의 학문 남용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학자' 라는 이름 하에 오히려 사회 내 불신을 조장하고 대중들에게 왜곡된 학문을 제공하는 '못 된' 지식인이 인간의 풍속을 타락시켰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문예를 통한 교류의 주요한 이점, 다시 말해 칭찬받을 마한 작품을 써서 서로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망을 부추김으로써 자신들을 더 사교적이게 해주는 이점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 장 자크 루소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pp 36 -

 

인간이 '지식' 이라는 정신적 도구를 습득하게 될수록 학문과 문예가 더욱 발달해지자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정신적인 욕망을 형성하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권력자들까지도 정신적 욕망이 만들어낸 예속의 힘이 뻗쳐나가게 되었다.    

루소와 볼테르 등과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등장하기 전 유럽은 강력한 왕권을 옹호하는 절대군주 시대였다.   권력자들은 학문과 문예를 존립한다는 명목 하에 지식에 무지한 국민들을 '개화한 국민' 으로 만듦과 동시에 왕권을 강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몇 지식인들은 권력자 앞에 아부를 하며 학문을 통한 정의 구현과 사회적 문제 해결에 이바지하기보다는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상류사회 사교계에 널리 알리는데만 치중했다.    루소는 사교계에 들락날락거리는 지식인들의 행태를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남은 미덕'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pp 37)    실제로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던 볼테르가 점점 사교계 출입이 잦아들게 되자 그를 비난하기도 하였다.   

가난한 노숙자에 불과한 루소는 '아카데미' 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불려지는 지식인 집단이 내건 주제를 가지고 '참된 인간' 을 만들기 위한 올바른 윤리과 미덕을 강조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명예을 드높이기 위한다거나 얄팍하게 그지 없는 영영가 없는 학문과 지식으로 치장한 '못 된 지식인' 들이 활동하던 당대의 현실을 용기있게 정면으로 비판하였다. 

 

 

  학문 연마는 오직 소수의 천재만이 할 수 있다   

루소가 기존 지식인 사회의 현실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 지식인들은 듣도 보지도 못한 한 젊은이가 쓴 논문이 상당히 눈에 거슬렸을 것이다.  그런 점을 비추어 본다면 수많은 지식인들이 루소에게 논문 내용에 대한 반박성 편지를 보낸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식인들이 용기있게 자신들의 얼굴에 정면으로 침을 뱉은 루소의 행동 때문에 괜히 비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루소는 학문이 풍속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천재들만이 학문을 연마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 세상에 태아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학문 연마를 통해 천재가 될 수 없다고 본다.  심지어 소수의 천재들로 이루어진 사회 구성원 1%을 제외한 나머지 평범한 사람들 99%는 은 애초에 학문에 염두를 두지 말자고 냉정하게 경고를 하고 있다.   

 

하늘이 별로 큰 재능을 부여해주지 않았을뿐더러 별로 큰 영광도 예정해놓지 않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초야에 묻혀서 살 일이다.   (중략)    백성에게 의무를 가르치는 임무는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자.  우리는 그저 우리의 의무를 잘 이행하는 것으로 만족하자.  우리는 그 이상의 것을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다.  

- pp 66 -

  

루소가 생각하는 '천재' 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올바른 학문을 수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를 가리킨다.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에서 루소는 자신 스스로 '평범한 사람들' 이라고 겸손하게 낮추고 있지만 실제로 루소는 이 논문을 집필할 수 있게끔한 방대한 지식을 평생 독서를 통해 습득한 머리가 좋은 사상가이다.    

루소의 '천재' 예찬은 지식인들의 눈에는 루소의 갑작스런 등장은 그저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려는 젋은 지식인의 오만으로만 보게 되었으며 그리고 당시 설립되어지던 교육기관들의 존재를 부정하는듯한 그의 입장을 수긍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루소가 생각하는 인성교육의 중요성

그러나 루소가 '학교' 와 같은 교육기관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는 '참된 인간' 이 될 수 있는 '참된 지식' 을 가르치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루소가 생각하는 올바르고 참된 지식의 교육이란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닌 건전한 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도덕적 교양에 초점을 맞춘 인성 교육이다.  

분별없는 교육이 우리 정신을 치장하여 판단을 그르치는 것은 아주 오랜 전부터의 일이다.  나는, 많은 돈을 들여 젋은이들에게 온갖 것을 가르치지만 그들의 의무는 가르치지 않는 엄청나게 큰 교육기관을 도처에서 본다.   당신의 아이들은 자기 나라 말도 제대로 모를 것이다.  그들은 아무 데서도 사용되지 않는 이상한 말을 하고, 자기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시를 쓸 것이다.  그들은 진리와 오류를 분별할 줄 모른 채 그럴듯한 주장을 폄으로써 남들이 진리와 오류를 분간하기 힘들게 만드는 기교를 습득하게 될 것이다.  아량과 공정, 절도, 인간성, 용기 같은 말들이 뜻하는 바를 그들은 전혀 모른다.  

- pp 58 -

  

루소가 이미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일찍 주장한 것도 흥미롭지만 그가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직접 몸소 교육의 현장에서 체험한 경험 덕분이다.  루소는 사상가로서 활약하기 전에는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양한 직업을 진전하기도 하였는데 게중에 귀족 자녀의 가정교사 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세상이 요구하는 당장의 쓰임새만을 생각한다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사려 깊은 통찰이란 한낱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역사학, 철학, 문학 등은 전공에서 아예 자취를 감췄다. 인문학은 당대의 사회공동체를 존립하기 위해 구성한다. 사회공동체의 미래 비전도 인문학적 상상력 없인 제대로 세울 수 없다. 그런데도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인문 사회과학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규범과 가치가 날로 황폐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학문의 위기, 특히 인문학의 위기는 결국 한 사회공동체의 비판의식 마비와 학문의 실종, 그리고 윤리의 타락을 초래한다.    

설상가상으로 지식생산의 장소가 되어야 할 대학은 어려운 국면에 놓여 있다. 진리탐구를 위한 상아탑으로부터 취업을 위한 직업훈련장으로 바뀌고 있다.  대학은 차세대의 인재를 길러낼 뿐 아니라 교양있는 시민을 길러내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처럼 주요 자원으로 인적자본 밖에 내세울 것이 없는 국가에서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루소의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에밀> <사회계약론>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비하면 인지도가 떨어지는 편이며 유명 저작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작은 논문에 담겨져 있는 루소가 주장하는 의견들 중에는 오늘날의 관점과 맞지 않는 것도 있다.  하지만 지식과 학문을 내세워 대중들에게 불량 지식을 제공하거나 권력에 기대는 아부하는 지식인들이 판을 치고 참된 교양과 인성을 함양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을 가르치지 않는 현실을 비판한 학문 사회에 대한 루소의 비판은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의 학문, 교육 현실을 비추어본다면 지금도 유효하면 곱씹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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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1-09-19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존 지식인들의 속을 팍팍 긁어놨으니 루소가 욕을 많이 얻어먹었겠죠.그런데 루소의 지명도에 비해 댓글이 너무 한산하네요.왜 그럴까...

cyrus 2011-09-19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이 저작물의 인지도가 낮아서 그런게 아닐까요? 짧은 니
내용이었지만 학문에 대한 루소의 비판의식과 교육론에 대해 공감이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