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최재천 지음 / 궁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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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한계  

어린 시절 TV 앞에 앉아서 즐겨보던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물론 세상물정 몰랐던 어린이라서 만화라면 무슨 내용이든지 간에 보곤 하였다.  그리고 맨날 비디오방에 들러 '후레쉬 맨' , '바이오 맨' 등 지구를 지키는 알록달록 색깔 용사들의 등장에 환호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어린 시절에 만화, 비디오만 즐겨 본 것은 아니었다.  어린이들이 TV를 시청하는 습관이 부모의 교육과 시청 취향에 따라 영향을 준다는 것은 사실인가보다.   

어머니는 동물을 좋아하시는 편인데 저녁 때만 되면 하던 동물 관련 프로그램을 즐겨 보시곤 하였다.  오늘날에는 동물들이 등장하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많이 방영되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동물이 등장하는 TV 프로그램이라면 '동물의 세계' 와 지금은 방영되지 않은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둘 뿐이었다.    '동물의 세계' 같은 경우에는 만화가 전파되는 시간대랑 겹쳐서 잘 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같은 경우에는 온 가족이 집에 모여 함께 볼 수 있는 시간대(저녁 8시쯤에 한걸로 기억하고 있다)라 볼 수 있었다.   '동물의 세계' 는 다큐멘터리라서 유익한 내용임에도 지루할 수도 있지만 '퀴즈탐험' 같은 방송은 동물의 신비로운 생활방식들을 퀴즈라는 오락적인 요소를 통해서 소개한다는 점에서 그 당시로서는 유익한 내용을 다룬 퀴즈 프로그램이었다.     

요즘에는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와 같은 프로그램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물론 'TV 동물농장' 을 중심으로 동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소개하는 동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존재하고 있지만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동물들의 다양하면서도 광범위한 생태 환경을 소개하기에는 범위가 협소한 감이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듯이 요즘 시청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것과 아주 거리가 먼 아마존 밀림의 '동물의 세계' 보다는 자주 볼 수 있는 친숙한 강아지와 고양이가 등장하는 'TV 동물농장' 을 즐겨 볼 수 밖에 없다.   r그리고 사람들이 '동물의 세계' 를 즐겨 보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는 다큐멘터리에는 버라이어티에서 볼 수 없는 웃음 코드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TV를 통해서 동물의 생활환경을 알기에는 당연히 한정적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보니 브라운관에 비치는 동물의 모습은 실재에 가깝기보다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희화화하는 장면 위주로만 가공, 편집되기도 한다.    

인간이 알지 못하는 동물의 생태를 시청자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동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의도라고 하지만 결국에는 동물의 생태를 '인간' 위주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동물의 눈으로 동물의 생활을 바라보기

최재천 교수는 인간을 동물의 눈으로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최 교수는 강의내용을 담은 <인간과 동물>에서 동물의 행태와 오묘한 자연 간의 조화를 분석해주며, 인간이 동물의 세계를 이기적인 잣대로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깨닫게 만든다.   구경거리, 포획 대상, 돈벌이 수단으로 보아온 동물의 세상를 자연 그대로 이해하고 환경 친화적인 태도를 가지게 한다. 그리고 동물들의 의사소통, 사회생활, 성생활 등을  인간의 생활과 비교해 인간은 무엇이며 인간의 행동은 ‘어떻게’ ‘왜’ 그런지를 설명하고 있다. 

책에 소개된 동물들의 생활 모습과 실험 내용은 TV에서도 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대중들을 위한 강의 내용답게 어렵지 않을뿐더러 흥미롭게 읽혀진다.  그리고 몇 몇 내용들 중에는 인간의 생활과 유사한 것도 있다.

 

  

원앙 부부는 금실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제로 원앙은   

일부다처제이므로 수컷 원앙은 여러 명의 암컷 원앙을 아내로 두고 있다.

 

스웨덴 행동생태학자 앤더슨은 참새만한 몸집에 꼬리가 아주 긴 천인조란 새를 대상으로 기발한 실험을 했다. 앤더슨은 이 새 암컷이 어쩌면 수컷의 꼬리를 보고 짝짓기 상대를 선택할지 모른다는 가정을 세웠다. 일군의 수컷에겐 꼬리의 절반을 잘랐다. 또 다른 집단에겐 자른 꼬리를 붙였다. 그리곤 두 집단간 암컷 사이에서 인기를 비교했다.  

각 영역 안에 둥지를 튼 암컷을 세어 본 결과, 꼬리를 잘린 수컷은 정상에 비해 훨씬 적은 수의 암컷을 맞아들였다. 반면 꼬리를 붙여준 수컷은 훨씬 많은 암컷을 얻었다.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엄청나게 긴 꼬리를 만들어 줬더니 암컷들이 수컷의 모습에 정신을 못차린 것이다.

천인조 실험을 통해서 비추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원앙의 이야기와 배치된다.  원앙 수컷은 아내와 함께 다니다가 다른 암컷을 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교미를 한다. 물론 아내가 보는 앞에서다.   원앙 사회에서 수컷은 자기 배우자는 지키면서 남의 아내는 빼앗으려 한다. 오리 종류의 새는 모두 그렇다고 한다. 일부일처제라고 믿고 있는 많은 새들이 사실은 바람둥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원앙의 생활만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컷이 다 원앙 같지는 않다. 해마는 교미를 하고나면 암수가 뒤바뀐다.  해마 사회에서 수정이 되면 암컷은 수정란을 수컷의 배주머니로 넘겨준다. 해마 새끼들은 자기 엄마가 누구인지 모른다.  아빠 해마는 새끼를 키워서 다 자라면 바다로 떠나 보낸다. 그 사이 엄마 해마는 다른 수컷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새끼를 또 넘겨주고는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난다.    

'인간' 의 시각으로 원앙과 해마의 사례를 본다면 수컷 원앙과 암컷 해마가 단지 바람둥이라서 짝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들의 교미는 종족 번식을 위해서 생활환경에 적합한 교미를 하고 있는 것뿐이며 이들이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생태적 과정이다.
 

  

 

  

동물의 사회에서도 개인의 이익을 위한 이기적인 동물이 존재할까? 

개미와 진딧물의 예를 보자. 개미는 진딧물의 단물을 빨아먹는데 진딧물에서는 아주 작은 방울이 가끔 삐죽삐죽 나온다.  개미 입장에서는 힘들게 단물이 나오는 진딧물 뒷꽁무니만 바라봄녀서 감질나게 단물을 먹느니 그냥 진딧물을 통째 삼켜버릴 수도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본다면 개미의 이런 습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개미 입장에서는 진딧물을 살려놓고 계속 거기서 단물을 빨아먹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진딧물을 통째로 잡아먹지 않는다. 이런 방식을 택한 개미들이 진딧물을 바로 잡아먹은 개미보다 더 많이 번식하면서 그런 습성이 진화되었기 때문이다. 개미도 인간처럼 어떤 상황 앞에서 다양한 전략을 세우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인간이 지구에 정착하기 전부터 이미 일상에 적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물의 삶을 통해서 배우는 삶의 지혜  

인간은 상당히 모순적인 동물이다. 일본이라는 타국에서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친 故 이수현 씨의 실화처럼 아름다운 일을 하는가 하면,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대규모의 전쟁을 일으켜 대량 학살을 감행하기도 한다.   

늑대들은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지만 상대를 적당히 위협하는 수준이지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인간이나 몇몇 동물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이런 절제된 듯한 동물들의 행동은 그들이 속해 있는 종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종족 번식 또는 종의 유지를 위한 행동이다. 

 

우리에게는 공존의 지혜가 조금 부족한 듯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잇속대로 나무를 마구 잘라내고 동물을 죽이면서 스스로 환경의 위기를 자초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개미를 비롯한 여러 동물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이들이 진화의 역사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공존의 지혜를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함께 살지 않으면 모두 멸망하고 맙니다. 우리 인간만 독불장군처럼 영원히 살 수는 없지요. 남을 배려해야만 우리도 사는 것입니다.    

- 최재천 <인간과 동물> pp 229~230 - 

  

그동안 인간은 인간의 시선과 입장으로 동물을 '오만과 편견' 으로 볼 줄만 알았다. 책을 덮고나면 동물에 대한 인간의 우월한 시선이 머쓱하게 느껴진다. 책에서 보여 준 동물의 세계는 인간 세계의 판박이나 다름없다. 정치와 사랑과 생존 전략이 숨 가쁘게 충돌하는 세계가 바로 생태계다.  <인간과 동물>생생한 사진이 곁들여진 21세기 이솝 우화를 읽은 듯하다.

인간은 무엇보다 인간들과 공생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사는 인간관계를 떠올려보면, 인간의 삶이야말로 다방면의, 가장 정교한 공생의 원리가 펼쳐지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물건을 사거나 파는 것도 결국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동물이나 식물과의 조화로운 공생 관계를 조작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발상은 같은 인간들 사이에서도 심각하게 드러난다. 힘을 가진 인간이 약한 인간을 착취하고 관계를 조작하는 현상들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려 한다. 인간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자연과의 관계를 이기적으로 변질시킬 때, 그 해가 인간에게 되돌아오는 것처럼, 힘 있는 자들이 약한 자들을 착취하는 관계에서 해는 결국 착취자들에게 돌아오게 되리라는 교훈은 자연과의 관계에서 짐작할 수 있다.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얼핏 보면 손해 보는 것 같은 이 말은 공생의 원리가 보여주는 과학적인 진리이기도 하다.공생의 원리로 개미와 진딧물과 같은 약하고 작은 생물들이 오랜 세월 생존해온 비결을 우리 인간이 머리숙여 배울줄 알고 되새기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야말로 최 교수가 입버릇처럼 강조하던 '알면 사랑하라' 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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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0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4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09-11 0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면 사랑한다'는 말은 대상이 그 무엇이든 좋은 말씀이죠!
추석인사 고맙습니다~~~
보름달 구경은 어렵다지만 즐거운 일 많은 추석되면 좋겠습니다.
추석이 지나면 열공모드로 들어간다니 응원합니다!!

cyrus 2011-09-14 17:1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좋은 응원을 해준만큼 그에 대한 보답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

2011-09-11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4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1-09-12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제일 재미있게 보는 프로그램은 뽀빠이 이상용 아저씨가 진행하는 '늘푸른 인생'이예요. 거기 나오는 어르신들 얘기하시는 거 보면 정말 할아버지들은 정말 한결같이 할머니 속 썩이고 바람 나고 노름 하고 가산 탕진하고 그러면서도 자손은 많이 낳고... 이해할 수 없지만 언제나 한세상 잘 산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는 프로그램이예요. 바람을 피건 게으름을 피건 노름을 하건 어쩌건 아무튼 방송에 나와 정말 그렇게 한마디 하실 수 있는 분들은 어쩌니 저쩌니 해도 결과적으로는 함께 살고계시기 때문이구나 하는 생각 드네요. 우리도 알라딘 서재에서 오래 오래 함께 '공생'하기루해요. 네?^^

cyrus 2011-09-14 17:22   좋아요 0 | URL
저는 아주 어렸을 때 이상용 씨가 진쟁하는 우정의 무대를 봤어요.
그 때는 너무 어려서 군대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태였죠 ^^;;
TV 속 군인들의 모습과 충성하는 거수 경례하는 모습이 멋져보였는데,,
어른이 되면서 실제로 군인 생활을 해보니깐,, 제가 어렸을 때 너무
한참 잘못 생각했더군요 ㅎㅎ

'공생' 이라는 표현,, 이렇게 서로 돕고 살아야하는 생활을 비유하는데도
적절하고 좋아요 ^^

노이에자이트 2011-09-15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앙이 바람둥이라는 사실은 요즘은 꽤 알려졌더군요.사진의 원앙수컷의 저 현란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cyrus 2011-09-16 18:57   좋아요 0 | URL
실제로 원앙 수컷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로 이쁘더군요. 그런데
제 주위에는 원앙 부부를 잉꼬 부부의 대명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더군요, 심지어 화려한 깃털의 원앙 수컷을 암컷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

노이에자이트 2011-09-17 15:48   좋아요 0 | URL
이쁘고 화려하면 암컷일 것이라는 편견이죠! 사실 사람의 암컷(여자)중에서도 못생긴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여자는 다 이쁘답니까? 그리고 남자들의 아름다움도 대단한 거죠.